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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화의 문화톡톡] 산조춤도 나이를 먹어야 한다.
[김기화의 문화톡톡] 산조춤도 나이를 먹어야 한다.
  • 김기화(문화평론가)
  • 승인 2023.12.27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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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올 한 해 산조춤 공연이 유독 많았다. 최근 들어 산조춤이 무대에 많이 올려지고 있어 한국에 이리 많은 산조춤이 있었나 싶다. 산조는 전통 기악의 음악 형식이기도 하고, 곡의 제목이 되기도 한다. 19세기 후반 김창조(金昌祖)의 가야금 산조를 시작으로 거문고산조, 대금산조, 해금산조, 피리산조가 공연되었고, 1950년경 아쟁산조로까지 확대되어 현재는 세부의 기법과 정조가 더해져 다양한 악기, 다양한 유파로 발전되어 산조의 전승이 다채롭게 이루어지고 있다.

산조의 선율은 전라도·충청도·경기도 등 남부지방에 전승되던 무속의 시나위 음악, 혹은 민간의 봉장취 같은 기악합주 곡에서 연주하던 독주가 점차 변화·발전되며 시작되었다. 이후 판소리의 장단과 정조가 더해지면서 틀 거리가 더 명확하게 마련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산조는 느린 장단에서부터 빠른 장단으로 전환되는 과정에 최소한 3개~6개의 장단이 악장으로 구성되어있다. 이렇듯 많은 장단과 가락이 흩어지고 모이면서 선율을 만든다고 하여 산조(散調)라는 이름이 붙었으니, 무용가들이 집화(集貨)되어 변화무쌍한 산조 가락에 춤을 추고 싶은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최초로 무대에 올려진 산조춤은 1942년 12월 동경제국극장에서 공연한 최승희의 <산조>였다. 동방의 무희로 널리 알려진 스타급 신무용가 최승희의 연행은 이후 후배 신무용가들에게 영향을 끼쳐 1950년대 이후 산조춤이 급증하였다. 그리고 1970년대까지 활발하게 공연되던 산조춤이 1980년대 한국창작춤의 대두로 잠시 주춤하다가, 1990년대에 들어서며 재조명되기 시작하였다. 산조춤은 무대 미학이 담긴 비례적이고 원근이 적용된 다양한 형태로 창작이 이루어졌고, 공연의 연행도 한층 활발해졌다. 현재는 신무용 계통의 산조춤뿐 아니라 전통춤 양식이 더해진 산조춤까지 더욱 범주가 커지고 있다.

 

1. 2023년 무대에 오른 산조춤

신무용가들에 의해 창작된 산조춤은 <산조>라는 제명 뒤에 부제를 달아 본인이 담고 싶은 정조나 춤에서 취하고자 하는 주제를 덧붙였다. 신무용가로 이름을 날린 무용가라면 대부분 한두 개의 산조춤을 갖고 있었다. 김진걸(金振傑 1926~2008)류 산조춤의 뒤에는 ‘내 마음의 흐름’이 부제로 달리기도 하였고, 최현류의 산조춤에도 ‘여울’, ‘비상’, ‘고풍’ 등의 부제를 달아 연행하였다.

올해는 크고 작은 전통춤 기획전에 반드시 산조춤을 포함하여 공연하였고, 스승을 기리는 추모전에서도 산조춤을 중심 레퍼토리로 하였다. 지난 9월 6일(수)과 8일(금) 양일간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주최로 국내 초청 전통춤 공연에 <산조춤, 그 흐름 속으로>가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올려졌다. 윤미라(경희대학교 교수)가 연출을 맡고, 이틀간 총 12개의 산조춤이 공연되었다. 첫째 날에는 윤여숙의 ‘강태홍류 산조춤(김온경 안무)’, 유정숙의 ‘그 너머의 봄(유정숙 안무)’, 최영숙의 ‘황혼(송범 안무)’, 정혜진의 ‘여울(최현 안무)’, 김수현의 ‘연(배정혜 안무)’, 정은혜의 ‘청명심수(김백봉 안무)’가 공연되었다. 그리고 둘째 날에는 윤미라의 ‘저 꽃 저 물빛(윤미라 안무), 김명신의 ’호남산조춤(이길주 복원)‘, ’황희연의 ‘연지월(배명균 안무)’, 원필녀의 ‘신명(최현 안무)’, 장래훈의 ‘산조춤(황무봉 안무)’, 양성옥의 ‘산조(양성옥 안무)’가 공연되었다. 대부분 60대 이상의 명무자(名舞者)가 참여한 이 공연은 스승인 신무용 안무가들이 안무한 장대[스펙터클(spectacle)]하고 아름다운 산조춤, 혹은 복원하여 전승하고 있는 전통춤 계열의 묵직함을 더한 산조춤, 자작(自作) 안무로 전통춤 형식에 자신의 미학을 담은 산조춤에 이르기까지 망라(網羅)하여 공연하였다. 산조춤의 여러 유파를 한자리에서 감상하며 눈이 호사하였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인 9월 9일(토)에도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와 서울남산국악당 이 공동주최로 한국의 춤–유파전 <산조 그 고귀함의 의미>가 남산국악당에서 공연되었다. 김진걸 유파의 춤을 전승하는 김진걸 산조춤보존회의 주관으로 스승 김진걸(金振傑, 1926~2008)을 추모하는 제자들의 헌무(獻舞) 공연이었다. 보존회장 유정숙이 예술감독을 맡아 김진걸 안무작(按舞作) ‘시나위’, ‘잉꼬’, ‘화접’, ‘노들강변’, ‘내 마음의 흐름’을 무대에 올렸다. 그리고 김진걸의 영향을 받은 큰 제자들이 함께 참여하였다. 조흥동의 ‘회상(조흥동 안무)’, 이화숙의 ‘애상(이화숙 안무)’, 강윤나의 ‘비선(강윤나 안무)’이 공연되었다.

 

사진 1. '산조 그 고귀함의 의미' 포스터 (SIDance와 서울 남산국악당 주최로 열린 공연으로 유정숙이 예술감독을 맡았다. 포스터 디자인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사진제공 김진걸산조춤보존회)
사진 1. '산조 그 고귀함의 의미' 포스터 (SIDance와 서울 남산국악당 주최로 열린 공연으로 유정숙이 예술감독을 맡았다. 포스터 디자인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사진제공 김진걸산조춤보존회)

<산조 그 고귀함의 의미>는 김진걸의 활동 당시 춤의 양식과 표현에 대한 흐름을 보여주는 유익함이 있었다. 춤 스타일의 변화하는 흐름을 후학들에게 전달하려는 주최 측의 의도가 잘 간파되었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근현대 시기에 활동하던 신무용가 김진걸을 기리는 이번 공연에서 ‘내 마음의 흐름’은 김진걸류 산조춤의 새로운 전승에 대한 가능성을 예견하게 하였다. 김진걸에게 사사한 유정숙과, 유정숙에게 사사한 박주상, 최호종, 선승훈, 노연택이 함께 춤추어 3대의 전승을 보인 남녀 혼성군무 ‘내 마음의 흐름’은 김진걸의 내적인 마음의 흐름을 춤으로 간결하게 잘 담아내었다. 유정숙은 담백하지만 너그럽고, 그 가운데 섬세함이 묻어나는 김진걸 춤의 독창성을 남성인 스승 김진걸을 대신하여 후학들에게 전해 품귀한 남성 춤 레퍼토리를 확장하려는 의미 있는 행보를 하였다.

 

사진 2. '산조 그 고귀함의 의미 中 (내 마음의 흐름)' (유정숙의 지도로 박주상, 최호종, 선승훈, 노연택이 출연 한 혼성 5인 군무, 사진쵤영 옥상훈, 사진제공 김진걸산조춤보존회)
사진 2. '산조 그 고귀함의 의미 中 (내 마음의 흐름)' (유정숙의 지도로 박주상, 최호종, 선승훈, 노연택이 출연 한 혼성 5인 군무, 사진쵤영 옥상훈, 사진제공 김진걸산조춤보존회)

다른 일정이 겹쳐 공연관람은 못했으나 2023년 12월 1일부터 3일간 아르코극장 대극장에서는 최현 춤 연구원의 주최로 당대 최고의 춤꾼 최현(0000-2002)을 기리는 공연이 있었다. 작품 대부분은 산조 형식의 춤으로 '연가', '신명', '남색 끝동', '흥과 멋', '고풍' 등 이었다. 최현이 생전에 제자들에게 남긴 춤과 함께 후학들이 맥을 이어 재해석, 혹은 새로운 창작의 모티브로 적용하여 공연을 성황리에 마쳤다고 한다. 오랜 기간 서울예고와 서울예술대학교에 재직했던 최현은 당대의 무용가로서는 최고의 기교와 안무역량으로 좋은 평가를 받아 왔다. 그의 대표작 ‘비상’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실릴 만큼 그의 예술적 위상은 실로 대단하였다.

‘비상’은 남만주의 무용가 최현이 교통사고의 후유증에서 벗어나고자 자기 극복을 위해 춘 춤이다. 호방함의 기개 사이사이에 풍류의 멋이 담긴 춤은 창공을 나는 학의 고고함과 자유분방함을 ‘비상’에 담아 표현하였다. 최현의 ‘비상’은 제자들의 역량에 따라 다양한 버전으로 전승되면서 아직도 명작무(名作舞)로서 그 이름을 알리고 있다.

 

2. 산조춤도 나이가 들어야 한다.

올 한해 크고 작은 공연에서 펼친 산조춤의 향연을 감상하면서 잔잔한 감동과 함께 아쉬움이 함께 남았다. 김백봉, 송범, 최현, 김진걸, 황무봉 등 당대의 기라성(綺羅星) 같은 신무용가들이 남긴 산조춤을 재현, 혹은 전승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유념할 지점이 있다. 그들 대부분이 남성이라는 점, 그리고 제자, 혹은 전승자들이 그들에게 춤을 사사한 시기가 20대, 혹은 그 전후의 나이였다는 점이다. 따라서 춤을 사사한 목적이 입시나, 콩쿠르, 혹은 개인 발표회에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젊은 제자들에게 사사한 대부분 산조춤 안무는 속도감, 활발함, 교태적 여성성, 다채로운 춤사위, 화려한 기교, 짧은 변화의 주기 등을 무대 공간과 어우러지도록 안배하였다. 이 시기의 춤을 최근 공연에서 60대를 지나 70대에 진입한 일부 무용가들이 공연하는 경우가 자주 목격된다. 스승에게 사사했거나 자신이 젊은 시기에 안무한 산조춤을 변용 없이 그대로 춤추는 광경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세월이 흘러 변해버린 외모와 몸의 기능을 고려하지 않고 지나치게 교태를 과시하거나, 무리하게 빠른 박자로 춤추고, 춤사위도 덜어내지 않으며 강행하는 공연을 보며 한숨을 내쉬는 사람도 있었다.

스승에게 받은 산조춤도 이제는 나이를 먹어야 한다. 핵심적인 기교와 정조를 살리되 춤추는 사람의 신체 역량에 맞게 조율하고, 세월의 깊이에서 얻은 연륜을 넣어 춤의 깊이를 심화해야 한다. 스승의 기질과 제자의 기질이 다르듯이 새로운 접근을 통해 춤도 나이를 먹어 지금의 나를 표현해야 한다. 많은 무용수가 추는 산조춤 공연을 보면서 새로운 변화가 필요함을 느끼는 것이 무리는 아닐 것이다. 새해에 만날 새로운 산조춤을 기대하며 산조춤에 대한 소회(所懷)를 마친다

 

 

글·김기화(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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