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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숙의 문화톡톡] 시작의 의미
[이인숙의 문화톡톡] 시작의 의미
  • 이인숙(문화평론가)
  • 승인 2024.01.08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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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한다는 것

우리나라 속담에”시작이 반이다” 라는 말이 있다 또”첫 단추를 잘 꿰야 한다“ 등 시작에 의미를 두는 속담이나 격언들을 자주 접한다. 우리 옛 선조들은 시작에 큰 의미와 신중함을 가졌다. “시작이 반이다” 라는 것은 시작하는 것이 이미 반을 이루었다는 뜻이 아니라 시작이 그리 쉽지는 않다는 의미이며 시작을 위해 계획과 많은 준비와 공을 드리고 신중해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그만큼 시작은 어렵다. 철저한 준비를 해도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 할 수 있고 그러기 위해 대비나 대응 방법 또한 계획안에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 시작의 첫 단추도 잘 꿰게 되고 진행되는 다음 과정이 계획과 예상 안에서 조절 가능한 범위에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시작의 중요함을 속담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전하는 충고일 것이다.

시작에는 공이 든다. 방향을 설정하고 목표와 목적을 정해 어떤 방법으로 해나갈 것인지 신중히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일단 시작을 하면 반은 이룬 셈이다. 물론 생각만하고 실행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시작 또한 그 용기와 마음가짐이 이미 반 일수 있다. 목표가 없으면 방향도 방법도 세울 수 없다. 작은 일이나 큰일이나 시작을 위한 마음의 준비, 그리고 용기가 필요하다. 새해에는 이모든 것을 장착하고 앞으로 향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2024년의 새날이 시작되었다. 시간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흐른다. 사실 시간은 시작과 끝의 마디나 정의가 없는 연속선상에 있다. 그러나 계절과 절기가 일정하게 순환되는 적절한 한 시점을 시작으로 정하고 다음시작 절기의 바로 전을 한 해의 마무리로 삼아, 사람들이 한 해를 시작과 끝으로 정해 지켜오고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동아시아 국가에서는 태양의 위치변화에 따라 계절을 세분화한 24절기를 정해 계절의 시작과 끝을 나타내는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있다. 그러한 절기의 구분을 통해 시작하고 맺고 또 다른 시작을 하며 고비 고비를 넘긴다. 나아가 그 시작을 앞에 두고 마음을 새롭게 하고 기운을 회복하며 삶의 과정에 다양한 의미와 가치를 두기도 한다. 그리고 한해 혹은 한 절기를 잘 마무리했다는 자부심과 위안, 성취감을 가진다. 또 다른 시작이 있기에 부족하거나 아쉬웠던 일들을 다음에는 더 잘하고자 하는 바램과 각오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시작은 때로는 용기도 가지게 한다. 지나간 것, 실수나 부족한 것 들을 뒤로 물리고 새해를 맞이 함으로 다시 시작 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매해 반복되는 새날, 새로운 시작은 그 만큼 위안과 희망과 기대를 품게 한다. 2024년을 맞이하면서 없을 것만 같았던 희망과 기대가 또 나도 모르게 생기는 것을 보면 시작은 방향감각을 잃고 혼돈에 빠져있는 우리들에게 앞으로 발걸음을 내딛게 하는 용기를 주기도 하는 것 같다. 그러한 시작을 가능하게 하는 다른 요소들이 우리의 세시풍속에 행해지는 민속놀이나 연희에도 있다.

 

시작 앞에서  (출처 blog.naver.com)
시작 앞에서 (출처 blog.naver.com)

세시풍속에서의 해소와 정화, 그리고”다시“의 의미

한 해의 절기나 계절에 되풀이하여 행해지는 관습을 세시풍속(歲時風俗)이라 한다. 예로부터 전해지는 농경사회의 고유한 풍속으로 설, 정월대보름, 한식, 단오, 추석, 동지 등과 같은 명절이 대표적인데 설빔, 추석빔과 같이 새 옷을 해 입고, 떡과 고기 술 등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 자연과 조상에 감사하고 이웃과 서로 나누며 지금까지의 노고를 위로하며 결속을 다지고 화합하는 공동의 잔치이다. 이 날 만큼은 마음껏 먹고 신나게 놀 수 있는 공인된 날 이다. 각 명절마다 그 계절에 적합한 음식을 만들어 먹고 덕담을 나누고 민속놀이에 참여한다. 개인의 놀이부터 마을 전체의 공동체 놀이까지 다양한 놀이를 통해 그 해의 풍년을 기원하고 나쁜 것들을 털어버리며 마을과 개인의 건강과 평안을 기원하는 중요한 통과의례(通過儀禮)이기도 하다.

우리의 세시풍속 중에 행해지는 민속놀이와 연희들이 있는데 놀이에서의 이기고 지는 과정에서 그리고 극(劇)중의 갈등구조가 해소됨으로 현실적으로도 그렇다고 인정하고 마음의 위안이나 혹은 조심하고 신중하게 행동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게 한다.

우리나라의 전통 줄다리기나, 윷 놀이 등에도 이러한 의식이자 놀이가 포함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마을단위의 전통 줄다리기에서 이기는 마을은 풍년이 들고 지는 마을은 그 만큼 더 열심히 일하자는 각오를 가지게 되며, 개인 단위의 윷 놀이도 이기는 편은 재물을 많이 획득한다는 희망을 가지게 된다. 실제 그렇든, 그렇지 않든 이는 마음의 위로이며 재미있게 함께 할 수 있는 즐거운 명절의 행사이다. 섣달부터 정월대보름 사이에 놀던 연 놀이도 전통 민속 놀이 중 하나이다. 연을 날리고 연 싸움도 한다. 놀이를 다 놀고 나서 음력정월 열나흗날에는 연을 날려보낸다. 그 날려보내는 연에는 근심, 걱정, 부정한 것을 담아 날려버림으로 우리들에게 장애가 되는 요소들을 모두 멀리 날려 버렸다는 심리적 안정을 가지게 한다. 그래서 다시 희망과 기대를 품을 수 있고 새로운 시작에 도전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상태로 회복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행위를 통해 개인과 공동체의 심리적 장애를 제거하는 놀이며 의식인 것이다.

세시풍속으로 지키는 명절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민속공연이 있다. 절기나 지역에 따라 다양한 민요와 놀이, 연희(演戲)행사들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탈춤과 농악을 들 수 있다. 탈춤은 함경남도 북청사자놀음, 황해도의 봉산, 강령, 은율탈춤, 중부지방의 양주, 송파산대놀이, 강원도의 관노가면놀이, 경상북도의 하회별신굿 탈놀이, 경상남도의 통영, 고성 가산오광대놀이, 부산의 수영, 동래들놀음 등으로 지역에 따라 각기 다르게 불려진다. 발 탈춤이나 꼭두인형극 등도 재미있는 볼거리이며 어쩌면 흔치 않았던 공연을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였을 것이다. 농악 지역에 따라 경기농악, 영동농악, 호남우도농악, 경남농악, 경북농악으로 구분된다. 농악은 꽹가리, 징, 장구, 북과 같은 타악기와 호적, 나발 등의 관악기로 구성되며 명절에 놀이를 위해 흥을 돋우는 역할을 한다. 일단 농악의 풍물소리가 나면 사람들이 모이고 온종일 같이 따라 다니며 흥이 나서 즐겁게 놀게 된다.

전통연희는 독특하다. 우선 공연 되는 공간이 개방된 마을 공터나 장터이고 한 면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원형으로 둘러앉아 보는, 앞과 뒤가 구분되지 않은 구조이다. 그래서 연희자는 한 방향이 아닌 이곳 저곳을 다니며 공연을 한다. 이미 의도된 동선도 상황이나 분위기에 따라 언제든 즉흥적으로 변할 수 있고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관중과 함께 하는 특징이 있다. 연희에 사용되는 음악도 현장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풍물연주로 연희자의 대사나 추임새 속도에 따라 악사들은 장단의 느리고 빠름을 조절한다. 뿐만 아니라 극의 진행에 따라 장단을 더 늘리기도 하고 빠르게 몰아 치기도 한다. 그만큼 포용력과 유통성을 가지고 즉흥적인 애드립(Ad lib)으로 극을 더욱 재미있게 하고 관중을 더욱 몰입하게 한다. 연희자와 관객이 분명하게 구분되는 현대의 공연과는 다르게 관중들도 중간중간 추임새나 연희자의 대사를 받아 치면서 극에 참여 하기도 하고 장이 마무리 되면 뒤풀이라는 형식에 따라 누구나 나와 신나는 춤판을 벌인다. 그래서 보는 이와 하는 이가 다 신나고 함께라는 공동체감을 느끼게 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특히 탈춤은 각 과장의 내용과 등장인물은 다르지만 공통적인 것은 극중에 권선징악과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그 부조리를 해소하는데 모두 극에 참여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극중에서 그 문제와 갈등이 해소되면 현실에서의 문제도 해결된 것 같은 위안과 안도 그리고 새로운 시작의 준비를 한 것으로 인정 할 수 있는 마음으로 회복 된다. 또한 삶에서 발생하는 부조리와 불평등, 역경과 갈등을 그대로 어둡고 심각하게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인 특유의 해학과 풍자로 즐겁고 유쾌하게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이해와 화합을 도모한다는 것이다.

 

꼭두놀이 ( 출처 : 한국민속대백과사전)
꼭두놀이 ( 출처 : 한국민속대백과사전)

우리민속과 전통이 가지는 의미를 담아

이러한 세시풍속은 현대 사회에서 그대로 이루어 지기는 어렵다. 예전과는 다른 사회구조와 시간사용, 삶의 공간이나 가족 구성원의 변화 등 다양한 이유와 변화로 현대에 적용하기는 쉽지 않다.더구나 전통문화로 보존 계승해야 한다고는 하지만 현대 인들에게는 그다지 중요하게 인식되어 있지 않고 박물관이나 전시관 혹은 지역정부의 특별한 행사에 어쩌다 선보이는 정도 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우리의 전통문화를 재현하거나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아닌 그 안에 내포되어있는 의미와 삶의 지혜를 이해하고 이를 통해 나의 정통성과 정체성에 대한 인식을 가져보자는 것이다. 우리의 이러한 놀이와 연희는 개인을 위함이 아닌 우리라는 공동체를 위함이었고 그 공통체를 위해 양보와 배려 그리고 어느 정도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겼던 우리선조들의 정신과 나와 우리를 하나로 인식하고 우리의 일이 나의 일이고 진심으로 그에 대한 책임을 나누어 가졌던”우리“ 라는 그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그게 우리만의 특징이고 다른 문화와 구별되는 우리 문화인 것이라 생각된다. 우리 집, 우리 아들, 우리 동내라고 말하는 한국인의 말 습관처럼 다른 문화에는 찾아보기 힘든 ”우리” 라는 공통체를 기반으로 하는 강한 결속력, 그러한 정체성이 애향심으로 애국심으로 발전해 온 것이 아닌가 한다.

세시풍속을 통해 각 절기와 계절을 지나며 작은 시작과 마무리를 통해 마음을 다잡고 희망과 기대를 가지며 어려움을 극복해온 우리 선조들의 지혜와 용서와 이해, 배려와 존중, 희생과 봉사를 기반으로 이루어낸 공동체, 노동을 놀이로 전환시켜 노동의 고단함을 극복하는 창의성, 불만과 갈등을 놀이와 연희를 통해 극(劇)으로 풀어내며 함께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게 하는 정신력의 우수성, ”시작“의 중요함과 “함께”의 가치를 알고 있었던 선조들의 슬기, 시작을 위한 마음가짐을 견고히 하고 그 의미를 중요시하여 오래 지켜올 수 있었던 우리의 전통과 문화, 이제 현대에 독특한 문화와 예술로 그 가치를 담아 세계 속에 한국문화의 영향력을 확대해나가는 원동력으로 승화시키는 한국인의 그 우수함을, 2024년을 시작하는 지금, 정치며 경제며 주변국가와의 관계 등 순탄치 만은 않을 것 같은 여러 여건과 환경 앞에 염려와 근심 대신 힘과 용기를 장착하고 숨 한번 크게 내쉬고 시작을 해 봅니다.

 

 

글·이인숙
문화평론가, 교육학박사, 문화예술경영전공. 현재 청주대학교 영화영상학부 초빙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면서 한국ESG위원회 공연예술위원회 위원장, 북경수도사범대학교과덕대학 공연예술대학부학장, 한국문화예술위원회위원, 한국연기예술학회이사, 국제문화예술교육교류협회회장, 청주시 도시문화추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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