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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진의 문화톡톡] 로스엔젤레스 코리아타운의 어떤 벽화
[황수진의 문화톡톡] 로스엔젤레스 코리아타운의 어떤 벽화
  • 황수진(문화평론가)
  • 승인 2024.01.15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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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겨울. 오랜만에 저녁 식사 약속이 잡힌 코리아타운으로 향하는데, 때마침 라디오에서 코리아타운 내 로버트 F 케네디 공립학교의 벽화에 대한 뉴스가 흘러나왔다. 2016년 보 스탠튼이라는 브루클린 출신의 벽화 작가가 학교 안에 그린 벽화에 대한 논란이었다. 학교 행사의 일환으로 그려진 벽화의 햇살 문양이 욱일기를 연상하게 한다는 코리아타운 커뮤니티의 반발로 인해 학교 측인 LA 통합교육구에서 해당 벽화를 지우기로 했다는 내용이었다. 작가인 스탠튼은 욱일 문양과 자신의 벽화 속 문양에는 디자인의 구성과 색상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으며, 자신의 이전 작품에서도 종종 응용된 장식 문양이라고 반발했지만, LA 통합교육구의 생각은 달랐다. 벽화라는 공공예술 매체 특성상 주변 맥락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해당 벽화는 지우는 것으로 학교가 결정을 내렸다는 내용이었다. 스탠튼의 주장대로 햇살 문양은 미국의 일상 디자인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코리아타운의 벽에 그려지는 순간, 욱일 문양을닮은 햇살 문양에는 특별한 의미가 생기게 된다.

 

1959년 앰베서더 호텔 정문 풍경(출처 Wikipedia)
1959년 앰베서더 호텔 정문 풍경(출처 Wikipedia)

사실 코리아타운은 그 이름으로 불리기 이전에는 1920년대부터 본격화된 할리우드의 황금시대를 만끽하던 공간이었다. 바로 위쪽으로는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이 위치해있었고, 할리우드 제작자들과 당대 스타들이 살던 고급 아파트를 비롯, 최고급 백화점 블록 윌셔, 아트 데코 건축양식의 윌턴 극장, 그리고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던 앰베서더 호텔이 들어서 있었다. 1921년 1월 1일 화려하게 문을 연 이후 프랭크 시나트라, 주디 갈런드 등의 당대 스타들의 공연이 끊이지 않았던 앰베서더 호텔은 1968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예비선거에서의 승리를 기념하는 연설을 마친 로버트 케네디가 바로 그 자리에서 암살당하면서 급격히 내리막을 걷기 시작했다.  한때 할리우드의 황금기를 대변하던 공간은 점점 범죄의 온상이 되어 기존에 살던 주민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했고, 70-80년대 한국에서 온 이민자들이 그 자리를 채워나가기 시작했고 마침내 코리아타운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사람들이 더 이상 찾지 않게 된 앰베서더 호텔은 이후 오랫동안 빈 상태로 유지되며 영화 촬영지로 가끔 사용되곤 했다. 로스앤젤레스의 중요한 역사적 공간이었기에 역사 보존 위원회를 비롯한 다수의 문화단체들은 이 역사적인 호텔을 그대로 보존하고자 애를 썼지만, 새로운 주인이 된 LA 통합교육구는 최종적으로 호텔을 완전히 허물고 공립학교를 새롭게 세우기로 결정했다. 2006년 완전히 사라져버린 호텔 위에 현재의 로버트 F 케네디 공립학교가 세워졌다.

 

한인타운에 위치한 로버트 케네디 공립학교
한인타운에 위치한 로버트 케네디 공립학교

문제의 벽화는 바로 그 호텔 위에 만들어졌다. 작가인 스탠튼이 벽화의 모티브로 삼았다는 코코아넛 그로브는 스타들의 공연을 눈앞에서 즐길 수 있었던 앰베서더 호텔 나이트클럽으로 여배우 에바 가드너가 즐겨 찾던 곳으로도 알려져 있었다. 스탠튼에게 해당 벽화는 오래전 할리우드의 전성기를 의미했다. 벽화 논란이 시끄러워지면서 지역 문화 예술계는 스탠튼의 벽화를 지우기로 한 결정은 예술에 대한 검열이 아닌가라는 문제의식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학교가 이름을 딴 케네디 가문에서조차 스탠튼의 벽화를 지우는 것은 예술에 대한 검열이라며 반대하는 서신을 학교로 보내왔고, 오바마 포스터로 알려진 유명 벽화 작가 셰퍼드 페어리는 스탠튼의 벽화가 지워진다면, 학교에 그려진 자신이 그린 벽화도 지워달라며 표현의 자유에 무게를 실기 시작했다. 두 개의 목소리가 팽팽하게 대치하게 되었다.   

그렇게 6개월의 논쟁 끝에 애당초 문제의 그 벽에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했던 스탠튼은 2019년 여름, 벽화를 수정하는 것에 동의하게 된다. 미국의, 코리아타운의, 공립학교 안에 위치한 이 벽화의 수정을 위해 LA 통합교육구와 한인 예술가 단체인 ‘교포’의 공동 주관으로 수정 아이디어 공모전이 열렸다. 그렇지만 이후 전 세계에 닥친 코로나로 인해 실제 수정된 벽화는 2021년 가을이 되어서야 완성이 되었다. 5년 동안의 지난한 여정이었다. 스탠튼과 학생들이 함께 참여한 수정된 벽화는 기존 벽화 위에 한국의 봉황, 사다리 위에 올라 오렌지를 따는 이민노동자, 앰베서더 호텔 유니폼을 입고 있는 한국인 이민노동자, 그리고 한국을 비롯해 멕시코,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등 남미 국가들을 상징하는 꽃들로 덮혀졌다. 논란의 햇살 문양은 희미하게 뒷배경으로 남아 있다. 학교는 이번 벽화 논란을 통해 문화의 다양성이라는 가치를 지켜냈다고 평가했다. 익숙한 할리우드식 해피엔딩이다.

 

한인타운 8가 길에서 본 보 스탠튼의 벽화
한인타운 8가 길에서 본 보 스탠튼의 벽화

벽화는 그 위에 밝은색 페인트로 덮는 방식으로 지워진다. 그렇게 덧칠된 새로운 벽 위에 새로운 벽화가 그려진다. 지워진 벽화는 사실 페인트 아래에 여전히 남아있다. 벽화는 다른 벽화로 덮혀지거나, 뜨거운 태양에 색이 바래지고 벗겨지다가 새로운 건물이 지어질 때 비로소 사라진다. 벽화가 학교 안에 위치했기 때문에 나는 8가 거리에 서서 저 멀리 윗부분만 보이는 수정된 벽화를 바라보았다. 멀리 떨어져서 보는 벽화에서는 할리우드 여배우도, 이민노동자도 딱히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양한 문화와 의견을 수용한다는 것은 간단하지 않고, 불편하기도 하고, 꽤 시간이 걸리는 과정이다. 무엇보다도 결론이 분명하게 나지 않을 수도 있다. 2024년 1월,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멀리 있는 벽화를 보는 내 눈에 들어온 것은 햇살을 배경으로 한 오래된 할리우드도, 이민자들의 모습도 아니었다. 화려한 깃털과 꽃 장식을 한 아메리칸 원주민의 옆모습이었다.

 

 

글‧황수진
영화 및 아트, 문화 분야의 컨설턴트 및 큐레이션을 제공하는 복합문화 에이전시 MHM(Multi Hyphenate Media) 대표. 현재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도시와 벽화에대한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2023년에는 미디어 아티스트로서 <Desert Is The Sea> 전시 기획, 참여를 한 바 있다. 사라지고 있는 아름다운 것들을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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