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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미의 문화톡톡] 좋은 사람이 되고 싶지만, 손해 보긴 싫어!
[장윤미의 문화톡톡] 좋은 사람이 되고 싶지만, 손해 보긴 싫어!
  • 장윤미(문화평론가)
  • 승인 2024.05.07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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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좋은 사람이 되기 힘든 이유

배운 사람이라면 손해 보는 짓 따위는 절대 하지 않되, 교양인으로서 타인에게 ‘적당히’ 양보하는 행동을 잊어서는 안 된다. 여기에 팁을 얹자면 전자는 되도록 타인이 눈치채지 않게, 후자는 가능한 모든 사람이 알게 하는 것이 좋다. 그래야 ‘좋은 사람’이라는 평판까지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주변을 돌아보면, 자기 것을 야무지게 챙기면서도 적을 두지 않으며 좋은 평판까지 유지하는 만렙러는 극히 드문 것 같다. 그런 사람을 뒷담화하는 사람은 많이 있어도 말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로 이기심과 이타심이 수시로 충돌하며 개인이 올바른 결정을 하는 데 방해하거나 어렵게 하기 때문이다. 이익과 좋은 평판을 동시에 얻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이건 보통의 내공을 가진 사람이 아니고서는 힘들기에 보통의 사람이라면 어떤 선택과 행동이 더 유리한지 꼼꼼하게 계산하는 것이 최선이다. 혹 계산이 어렵다고 느껴진다면 이것만큼은 피하자. 손해는 손해대로 보고 좋은 평판도 얻지 못하는 그야말로 최악의 경우. 속된 말로 ‘호구’가 되는 경우 말이다.

두 번째로 과거에는 양보와 겸손을 공동체 미덕으로 삼았지만, 지금은 경쟁을 통한 지위 획득이 정의와 공정이 되면서 양보와 겸손의 가치가 과거에 비교해 축소, 왜곡되었다는 점이다. 특히나 물질만능주의, 극단적 자본주의가 팽배하는 사회일수록 근거 없는 양보는 불공정한 것으로, 겸손은 무능함의 다른 말로 이해되는 경향이 짙었고, 이른바 부와 성공을 차지한 사람들은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하듯 선행(善行)은 남들보다 선행(先行)한 후에, 겸손 역시 이해관계에 따라 선택적으로 하라고 조언한다. 이러나저러나 좋은 사람이 되는 건 참으로 어렵고, 반대로 호구가 되는 건 한순간이지 싶다.

독일 학자 아르민 팔크는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왜 어려운가』를 통해 공동체 집단에서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어려운 이유를 행동경제학으로 풀어낸다. 그는 개인이 타인과 관계 맺을 때, 개인의 욕망을 누르고 공동체의 규범을 따를 때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되는 손해 보고 싶지 않다는 마음과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어떠한 방식으로 충돌하고 발현되는지 실험을 통해 알아보고 그 결과를 토대로 공익을 추구하는 공동체 집단에서 개인이 좋은 사람이 되기 어려운 이유, 그리고 우리 사회에 좋은 사람이 많아지기 위한 몇 가지 방법을 제안한다.

 

2. 좋은 사람이 되는 것보다 나쁜 사람이 되지 않는 게 쉽다

사람들은 자신을 평가할 때 스스로를 대개 ‘평균 이상으로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두 가지 전략에 근거하는데 하나는 도덕적 회계 장부, 다른 하나는 (나에게 유리한) ‘내러티브’를 만드는 것이다.

먼저 도덕적 회계 장부란, 과거 자신의 선행을 기억해두었다가 나쁜 행동 했을 때 앞선 선행을 떠올리며 죄책감을 상쇄하는 전략이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그린워싱인데 공장식 축산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대중에게는 동물복지를 실천하고 있다고 홍보하는 기업, 노동자의 노동을 불법으로 착취하면서 전면에서는 노동자 인권 보호를 선언하는 기업, 일회용품 사용을 멈추지 않으면서 환경오염 방지에 노력하고 있다 홍보하는 기업들이 대표적이다.

한편 내러티브란,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사실이나 진실을 왜곡, 축소, 재생산하는 것을 말한다. 내러티브를 구성할 때 필요한 것은 과학적 결과나 증명된 자료가 아닌 내가 믿는 것을 사실이라고 말해주는 자료다. 중요한 건 사실이 아니라 내가 믿는 것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내가 선택한 자료 외에 모든 것은 가짜뉴스이며, 나와 생각이 같지 않은 사람들은 나쁜 언론에 호도되어 ‘잘못’ 배우거나 지식이 부족해 ‘잘’ 못 배운 사람들에 불과하다.

이렇게 ‘나는 좋은 사람이다’로 시작한 명제는 모든 합리화와 꼼수를 동원해 ‘그러므로 나는 좋은 사람이다.’라는 원하는 결론에 도달한다. 논리에 위배되지 않는 결론이라면 명쾌해야 하는데 찜찜한 기분이 사라지지 않는다. 게다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가 나를 비난하고 있을 것만 같아 불안감도 밀려온다. 마치 ‘반쪽짜리’ 좋은 사람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다.

왜 이런 불편한 감정이 생기는 걸까. 팔크는 불균형한 호혜성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아르민 팔크,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왜 어려운가], 김영사, 2023.
아르민 팔크,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왜 어려운가], 김영사, 2023.

호혜성이란 특정 변수나 조건이 다른 변수들과의 관계에서 미치는 경향을 설명하는 개념으로, 긍정적인 호혜성과 부정적인 호혜성으로 나눌 수 있다. 전자는 한 가지 조건이 증가함에 따라 다른 변수도 증가하는 경향, 후자는 한 가지 조건이 증가함에 따라 다른 변수가 감소하는 경향이다. 긍정적 호혜성의 예로 타인과 내가 모두 모두 공정하고 친절하게 대하는 행동이 있고, 부정적 호혜성의 예로 불친절이나 부당함을 근거로 타인을 제지하고 처벌하는 행동이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호혜성을 선택할지는 상대방이 나에게 드러내는 호혜성을 확인한 후에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좋은 마음으로 상대를 대했다고 하더라도, 상대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할지, 그리고 어떤 행동을 선택할지 나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내 행동은 나에게 달렸다기보다 상대의 선택과 행동에 달려 있으며, 이 곧 불균형한 호혜성의 근거가 된다.

팔크에 따르면, 다양한 이해가 공존하는 공동체, 강제성보다 자율성을 우선시하는 공동체에서 긍정적인 호혜성보다 부정적인 호혜성이 더 높은 확률로 발생한다고 한다. ‘(나만) 손해 보는 건 싫다’라는 본능적 욕구, ‘나 대신 누군가가 하겠지’라는 회피적 태도, ‘나 하나 노력해봤자 세상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결과론적 사고가 공익을 위한 행동에 우선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알다시피 부정적 호혜성을 선택하는 개인이 많아질수록 공동체는 지속, 유지되기 어렵다. 공동체를 만드는 힘이 구성원들의 연대와 협력이라면, 이를 이끌어가는 힘은 믿음과 신뢰이기 때문이다.

팔크는 자기 모습을 인식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있을 때, 바람직한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사회적 규범이 있을 때, 개인은 자신의 이익보다 공익을 위해 행동한다는 메커니즘을 찾아내고, 이 메커니즘을 잘만 이용한다면 불균형한 호혜성을 해결하는 것을 넘어 긍정적 호혜성까지 끌어낼 수 있다고 말한다.

앞서 언급했듯 인간은 좋은 선택, 올바른 행동을 하는 자기 모습을 볼 때 만족감과 성취욕을 느끼는 동시에 타인의 시선 또는 평판의 만족도에 따라 행동을 결정한다. 이러한 습성을 이끌어내려면 다양한 넛지를 이용하는 것이 좋은데 칭찬, 합리적 보상, 자기성찰을 도와주는 보조적 장치(자기계발 프로그램, 사회적 지원 서비스) 등은 넛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좋은 예다.

이것만큼이나 필요한 것이 사회적 규범이. 더 정확하게 말하면 부정적 호혜성을 처벌할 수 있는 사회 규범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새치기는 나쁘다’ ‘남의 물건에는 손대지 말아야 한다’, ‘차별은 부당하다’라는 사회적 명제는 대부분의 공동체 집단에서 디폴트값으로 삼고 있는 것들이다. 그리고 이를 어겼을 경우 그 대가가 어떠할지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비난과 격멸은 당연하고, 때에 따라서는 물리적 처벌도 감수해야 하는데 보통의 사람이라면 당연히 피하고 싶은 것들이다. 나에게 득이 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회적 규범의 디폴트 값을 올바른 행동이 아니라 올바르지 않은 행동에 둔다면 개인은 그것을 위반하지 않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이는 결과적으로 개인과 공동체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

모든 개인은 공동체의 이익과 개인의 이익 사이에서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간다. 인간과 공동체 집단이 추구하는 이상이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런 곳은 그저 ‘저세상’에나 있을 법한 일이다. 공동체라는 집단은 하나의 덩어리가 아니라 이해관계를 가진 개인이 모여서 만든 집합체이기 때문이다. 

공공의 선을 정의하는 건 어렵지만 공공의 악을 정의하는 건 쉽다. 타인에게 악한 것은 곧 나에게도 악하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긍정적 호혜성을 이끌어내는 것보다 부정적 호혜성을 막는 것이 협력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공동체를 만드는 데 훨씬 효율적이라는 팔크의 주장은 우리 사회에 충분히 적용해 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3. 호구를 만들지 않는 사회

한편에서는 ‘인간관계 호구’ 되지 않는 법, ‘쇼핑 호구’ 되지 않는 법, 하다못해 ‘세금 호구’ 되지 않는 법까지, 손해를 보지 않는 각종 방법이 비법처럼 공유되고, 다른 한편에서는 그 비법을 몰라 호구 되었던 경험을 토로하며 분노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난무한다.

자본의 규모가 선택을 좌우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선택에 대한 책임을 오로지 개인에 전가하는 자유시장 경제에서 손해 보지 않는 선택을 하기란 굉장히 어렵다. 작정하고 나를 속이고 기만하려 드는 이들을 무슨 수로 이기겠는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인터넷에서 호구 되지 않는 법을 찾아 학습하거나 호구 된 사람들의 경험담을 읽으면서 나는 바보같이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야무진 다짐뿐이다. 정작 풀어야 할 문제는 뒷전으로 미뤄둔 채로 말이다. 그러면서도 이런 공동체에선 살고 싶진 않다는 생각을 마음 한구석에 품고 있다면 너무 이기적인 마음일까.

공동체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위해서는 개인의 조건과 위치에 상관없이 선과 악은 가려진다는 믿음, 그리고 믿음을 증명해주는 사회적 규범이 필요하다. 손해는 최대한 피하고 싶고, 손실은 최소화하고 싶은 인간의 본능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공동체의 이익을 동시에 추구하고 싶다면 선한 행동을 한 사람에 대해서는 각종 혜택을 제공하고, 반대로 나쁜 행동을 하는 사람에 대해서 마땅한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문제는 풀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일을 하는 건 어렵지만 나쁜 행동을 하지 않는 건 쉽고, 한 사람이 공동체의 신념이나 가치관을 바꾸는 것보다 공동체의 신념이나 가치관이 개인의 그것을 바꾸는 것이 훨씬 쉽다단, 공동체의 신념과 가치관이 올바르고 선해야 한다는 것이 전제조건이지만 말이다.

 

 

글·장윤미
문화 평론가 겸 소설가. 인하대 한국학과 박사 졸업. 저서로 독서평론 에세이 「우세한 책들」과 장편소설 「또다른 세계로 가는; 플랫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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