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월 5일에 개봉한 김태용 감독의 영화 <원더랜드>는 제목 그대로 ‘놀랍고 신기하고 이상한 세상'을 보여준다. 등장인물도 많고, 그들의 시선, 입장, 감정도 다양하다. 어쩌면 당연한 세상의 모습이라 할 수 있는, <원더랜드>가 담고 있는 복잡한 공존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
- 이상하고 신기한 ‘원더랜드’
'원더랜드'는 산자와 망자에게 제공하는 영상통화 서비스이다. 다만 화면 속 인물은 기억과 기록, 본인의 바람 등을 바탕으로 AI가 복원(창조)한 인물이다. 완전히 새로운 가상의 인물인 건 아니지만, 원더랜드에만 존재하는, 휴대전화로 통화만 가능한 인물인 셈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모르는 그들은 ‘원더랜드’ 여행사를 통해 출장 중이거나 여행 중이다.
영화 <원더랜드>에는 원더랜드 서비스를 설계하고, 운영하고, 관리하는 사람도 있고, 원더랜드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고, 원더랜드 여행사를 통해 여행이나 출장 중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AI)도 있다. 인간의 범위를 넘는 모두가 공존하는 세상인 셈이다.

- 인간, AI, 모든 인물의 존재감
자기 죽음을 어린 딸에게 알리고 싶지 않아 원더랜드 서비스를 신청한 바이리(탕웨이)는 AI로 복원되어 어린 딸 지아(여가원), 엄마 화란(니나 파우)과 영상통화로 수시로 소통한다. 현실 속 바이리는 이미 사망했지만, 그녀가 남긴 AI 복원 바이리는 원더랜드에서 고고학자로서 살고 있다.

정인(수지)은 의식불명인 남자 친구 태주(박보검)가 그리워 원더랜드 서비스를 이용 중이다. 원더랜드에서 복원된 태주는 우주 기지에서 열심히 임무 수행 중이지만, 아침 모닝콜로 시작해 수시로 정인과 통화 중이다.

정란(성병숙)은 어린 나이에 사망한 손자 진구(탕준상)의 꿈을, 원더랜드를 통해 이루어 주고 있다. 영국으로 연기 유학을 떠난 진구는 여전히 철부지지만, 무엇이든 모두 해주고 싶다. 용식(최무성)은 원더랜드를 통해 사후 제2의 인생을 설계했다.

해리(정유미)와 현수(최우식)는 원더랜드 플래너로서, 서비스를 신청한 사람들의 바람대로 누군가의 새로운 삶을 복원(창조)하고 관리 중이다. 해리 역시 원더랜드를 통해 일찍 돌아가신 부모님과 함께하고 있다. 성준(공유)은 AI로서 원더랜드 속 다른 AI 인물들을 살피고 있다.

언뜻 보면, 모두 열심히 일상을 살고 있다. 멀리 떨어져 있으니, 영상통화를 수시로 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들의 대화, 감정에 빠져들다가도, 이게 과연 진짜일까? 라는 의심이 들기 시작하면, 이상해진다.
통화 중인 사람 중 한쪽이 AI로 복원된 사람이라는 게, 겉으로 보기엔 구분조차 되지 않지만, 그들의 관계는 분명 낯설다. 사실 우리가 직접 본 것보단 미디어를 통해 간접적으로 본 건게 훨씬 많지만 이건 좀 다른 느낌이다.
그러나 가상 혹은 허상이라도 그들이 느끼고, 그들을 상대로 느끼는 감정은 모두 허상이 아니다. 모두 절실하다. 그립고, 슬프고, 순간순간 반갑고 기쁘다. 공감가는 감정 덕에 그들 모두는 나름의 강렬한 존재감을 확보하고 있다.
- 깊은 몰입보단 넓은 시야
<원더랜드>는 주요 인물 몇 명을 중심으로 주변 인물을 배치하지는 않는다. 느슨한 옴니버스 영화처럼 모든 인물이 자신의 일상에서는 중심을 차지한다. 김태용 감독의 전작인 <가족의 탄생>(2006)과 떠오르고, 리처드 커티스 감독의 <러브 액츄얼리>(리처드 커티스, 2003)도 떠오른다.
이런 구성의 영화를 보는 관객은 아무래도 특정 인물이나 상황에 깊이 몰입하기보단 여러 인물과 그들의 상황을 두루 지켜보게 된다. 그렇다고 관찰자로서 멀어지기만 하는 건 아니다. 순간순간 모두에게 공감도 하게 된다. <원더랜드>에서는 그 공감의 범위가 매우 넓다. 그들 사이에 갈등이 발생하면, 어느 한쪽 편만 들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 모두 이해할 수 있다. 그들 중 AI로 복원(창조)된 인물들도 자리하다 보니, 익숙한 듯 낯선 공감을 경험하게 된다.
인간과 AI 구분을 초월한 신기한 공감이 가능해지는 거다. 더 나아가 안타까움도 든다. 통화 상대자가 AI 복원 인간이라는 걸 아는 사람이나, 자심이 AI 복원 인간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나 모두를 지켜보는 건 정말 낯설다.
영화 내내 깊게 몰입하기는 어렵지만, 이별에 대한 두려움, 다시 만날 수 없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 미처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열망 등 원더랜드 서비스를 선택한 이들의 상황과 감정에도 공감이 가고,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 채 상대에게 진심인 그들, 통화로나마 다시 보는게 좋지만, 그럴수록 느껴지는 부재감도 크다.

법적으로 사망이나 사망에 준하는 상황에서만 서비스가 가능하다는 언급이 잠시 나오긴 하지만, 법이든 법을 만드는 인간이 이래도 되는 걸까라는 생각도 든다. 인간과 AI를 적대관계로 그리지 않았고, 해리나 현수 같은 원더랜드 플래너를 창조주(신) 놀이를 하는 인물로 설정하지 않았다.
대신 일상성이 강화된 묘한 공존의 세상을 만들어냈다. 화면 가득 모던한 화이트 톤과 따뜻한 파스텔 톤의 색감까지 더해진 일상으로 재구성된 <원드랜드> 속 여러 공간과 상황은 어쩌면 이미 우리 곁에 와있을지 모른다. 익숙한 듯 낯설지만, 인간과 인간, 인간과 기술 등의 다양한 형태의 관계와 공존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영화 <원더랜드>이다.
이미지 출처: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글·송영애
영화평론가. 서일대학교 영화방송공연예술학과 교수. 한국영화 역사와 문화, 교육 관련 연구를 지속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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