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창호는 통한의 멜로드라마 안에서 후회하는 인물들을 서술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써 내려 가는 감독이다. 반복적인 정사 장면과 노출은 신체의 드러남과 함께 내면의 불안함을 폭로하고, 순진했던 이들은 배창호의 작품 세계 안에서 쉽게 살아남지 못한다. <별들의 고향>(1974), <바보선언>(1984)을 연출한 이장호의 <바람 불어 좋은 날>(1980)의 조감독 출신이던 그는 <꼬방동네 사람들>(1982)을 시작으로 데뷔하였다.
수많은 작품 중에서 필자는 <적도의 꽃>(1983)과 <깊고 푸른 밤>(1985)을 선정해 논의를 이어가려고 한다. 굳이 두 작품인 이유는 안성기, 장미희 배우의 동일한 출연도 있겠지만, 멜로드라마를 전면으로 내세우면서 파괴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건너편 아파트에 거주하는 선영(장미희)를 몰래 스토킹하는 미스터 M(안성기)의 불편하고 껄끄러움을 다룬 <적도의 꽃>과 아메리칸드림을 외치며 미국에 간 백호빈(안성기)와 계약 결혼으로 영주권을 얻게 해주는 제인(장미희)의 지독하게 공허한 이방인으로서 감정을 다룬 <깊고 푸른 밤>은 2년의 간격을 두고 안성기, 장미희를 기용했다. 두 작품은 공통적으로 음흉하고 폭력적인 아름다움을 탐닉하는 남자 주인공과 사랑에 목매던 순종적인 여자 주인공의 변화를 관찰한다.
쉬이 동의하기 어려운 캐릭터들의 그릇된 욕망이 뻗어나가는 것을 외부에서 목격하는 관객들은 묘한 피로함을 느끼게 된다. <적도의 꽃>과 <깊고 푸른 밤>의 주요 무대는 반짝이는 야경의 도시이며, 높게 솟은 건물 아래에서 작은 미물에 불과한 인물들은 사회에 녹아들기를 소망하지만 실패한다. <적도의 꽃>의 빽빽한 아파트는 누가 어디에 사는지 모르는 독립적인 공간이며, <깊고 푸른 밤>의 미국 라스베이거스는 이방인과 내부자를 구분 짓는 산업 시스템의 복잡함을 표현한다. 이는 대만의 에드워드 양 감독의 타이페이 3부작인 <타이페이 스토리>(1985), <공포분자>(1986),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1991)에서 드러난 도시의 이면과 비슷한 결을 지닌다.
완벽하게 서로에게 기댈 수 없는, 이기적인 사람들의 형상

망망대해에서 표류하는 것처럼 방향을 잃은 인물들은 본래의 궤적으로 진입하기 위해 애쓰지만 돌아갈 수 없다. 대신 타인과의 완벽한 결합을 소망하며 새로운 경로를 만드는 시도를 하게 된다. <적도의 꽃>의 내러티브는 그 외양이 히치콕의 <이창>(1957)을 닮아있다. 하지만 내러티브의 유사성만 보고 이 작품을 판단하게 되면 심각한 오류에 빠지게 된다. <이창>에서 다리를 다친 사진작가 제프(제임스 스튜어트)는 반대편 아파트의 커플을 보고 탐정처럼 추측한다. 그에 반해 <적도의 꽃>의 미스터 M은 선영을 관찰하고 직접 사건을 해결하는 실행자로서 보이지 않는 은밀한 스토킹을 진행한다. <이창>의 핵심이 관음이라면, <적도의 꽃>은 관음을 넘어선 범죄에 가깝다. 아이러니한 점은 지켜봄을 당하는 대상인 제인은 미스터 M에게 반감을 느끼기도 후에는 사랑과 연민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생일선물로 나이만큼 꽃을 받고 싶어.”라는 선영의 말처럼 꽃은 영화의 중요한 매개물이 된다. 자라는 환경, 토양이 중요한 꽃은 보살핌과 관심이 필요하며 불완전하다. 물이나 햇빛이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으며, 서로에게 기생해서 자신을 활짝 피우기도 하고 저물기도 한다. 그만큼 꽃으로 표상되는 선영은 다양한 환경적 변이에 자신을 탈바꿈하기도 하면서 흔들린다. 계약 결혼을 통해 돈을 얻는 <깊고 푸른 밤>의 제인은 선영과는 다르게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인물처럼 보이도록 설계되어 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데 첫 번째 흑인 남편의 폭력적인 성향을 견디지 못해 이혼을 하고, 아이의 양육권도 남편에게 넘어간다. 이렇게 믿음이 없는 제인은 미스터 백과의 계약 결혼에서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들은 사회에 쉽게 소속되지 못하고 바깥으로 이탈한다. <적도의 꽃>에서 미스터 M은 아파트 주민들과 일절 교류를 하지 않고, 5번 모두 직장에서 잘렸다는 사실을 초반부 내레이션을 통해 설명한다. 미스터 M에게 아파트는 온전한 자신만의 공간이다.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관객은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미스터 M이 선영에게 다가갈 여러 번의 기회가 존재했음에도 앞에 나타나지 못하고 포기해버린다는 것. 심지어 미스터 M과 선영의 어긋남은 답답함을 유발한다. 이후 미스터 M의 스토킹 행위는 거세지는데, 거리를 두고 관찰하는 것은 소속되지 못하고 주변을 맴도는 것과 비슷하다. 미스터 M은 어둠 속에서 자신의 얼굴을 감추고, 선영에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오히려 경계를 해야 할 대상은 선영임에도 미스터 M은 선영이 다가오는 것에 위협을 느낀다. 이는 자신이 아름답다고 여기는 대상을 신격화하면서 바라보는 존재로 창조해낸 것이다. 미스터 M의 아파트 벽면에는 어울리지 않는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그림이 붙어 있다. 미스터 M에게 선영은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와 같은 것이다.
한국을 벗어난 미국에서 이민자들이 살아가는 삶을 그린 <깊고 푸른 밤>은 완전히 동화되어 살 수 없는 뼈아픈 현실을 그린다. 화려한 도시가 이민자들을 배척하는 방식은 다양한 방식으로 노출된다. 한국인 동료 직원과 마트에서 일하는 미스터 백은 일종의 경쟁관계다. 캐셔를 하던 동료가 미스터 백에게 본인의 자리를 뺏기는 무한한 경쟁 사회다. 그들은 같은 민족이라는 이유로 결합하지 않고, 오히려 더 멀어진다. 또한 이민국 직원은 제인과 미스터 백의 계약 결혼을 의심하고 면접을 시행하는 권위자, 내려다보는 자의 위치를 지닌다. 이러한 폭력은 물리적인 형태로 드러나기도 하는데, 미스터 백과 동료 직원과 일하던 마트에 흑인 강도가 들어와 동료를 총살한다. 이러한 아이러니는 미국에 소속되고 동화되기는 어렵지만, 폭력에는 쉽게 노출이 된다는 점이다. 이들은 도움을 주고받지 못하고 서로를 이탈해 외부에서 맴돈다.
여성(들)의 이상한 연대와 중심에서 빗겨난 남성

사랑에 헌신적이었던 여성들은 배신을 당하고 돌아선다. 배창호 감독의 작품 속 여성들은 사랑을 삶의 지표로 생각하지만, 이와 같은 기대는 처참히 무너진다. <적도의 꽃>에서 선영은 유부남과 3년간 불륜을 이어가다가 미스터 M이 남자의 부인에게 폭로하면서 사랑은 중단된다. 남성은 선영의 육체를 사랑한 것이었으며, 그것을 알아차린 미스터 M은 선영이 그 굴레에서 빠져나오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선영은 또 다른 남성을 만나게 된다. 두 번째 제주도에서 만난 남성의 적극적인 구애로 선영은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선영의 친구 설희와의 바람으로 의도하지 않는 모멸감을 당하게 된다. 이전까지 선영은 본인이 상대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기보다는 누군가가 자신에게 다가오고 떠나가는 과정을 반복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곁을 맴도는 미스터 M에게 선영은 적극적으로 다가간다. <깊고 푸른 밤>의 제인에게 남자는 하나의 상품에 불과하다. 계약 결혼 시스템 안에서 자신은 남성에게 영주권 획득의 기회를 주고, 남성은 자신에게 일정 금액의 돈을 지급한다. 독자적인 산업을 구축한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적도의 꽃>의 선영 친구 설희와 <깊고 푸른 밤>의 미스터 백에게 배신당한 여성의 행보다. 초반부 설희는 선영의 둘도 없는 친구처럼 묘사되지만, 이후 선영의 남자와 바람을 피우는 등의 행위를 하게 된다. 서사의 공백으로 전후 상황을 알 수 없는 관객은 설희의 갑작스러운 모습에 당혹감을 감출 수 없으며, 이는 선영에게 다가오는 충격과도 같다. 설희와 마찬가지로 미스터 백에게 배신당한 여성 역시 제인 앞에 예고도 없이 찾아온다. 관객들은 이 여성이 영화의 오프닝에 미스터 백에 의해 사막에 고립된 여성이라는 사전 정보가 있지만, 러닝타임의 후반부에 등장하자 여성에 대한 흐릿한 기억 찾기에 돌입한다. 영화 속의 여성들은 이상한 연대 의식을 통한 동질감과 함께 서로에 대한 적대감을 느낀다. 적대의 주체는 남성인 것이 마땅하지만, 오히려 남성 앞에서는 원망하는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배창호 감독은 데뷔작 <꼬방동네 사람들>에서 명숙의 현 남편 태섭에게 살해당한 남자의 아내를 마주하는데, 위협이 되는 존재라고 여겨져 경계하던 명숙은 사건의 원흉인 태섭 대신에 가게를 판 돈을 여성에게 전달한다. 다소 뜬금없다고 느껴질 수 있는 서사의 방향성은 <깊고 푸른 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미스터 백에게 복수심을 표출하는 여성은 제인에게 “위험한 남자”라며 조심하라고 당부한다. 아직 미스터 백에게 사랑하는 감정이 남아있음에도 제인의 목숨을 걱정해 주는 태도는 양가적인 감정임을 보여준다.
반면, 남자들은 중심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이동 수단에 여성을 태우고 외부로 이탈한다. 두 작품은 공통적으로 엔딩 부분에 자동차를 타는 모습이 등장하는데, 선영과 제인에게 각각 외치는 미스터 M과 미스터 백은 도시에서 벗어난 황량한 공간으로 가서 “몸에 묻은 더러움을 씻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적도의 꽃>에서 선영을 태우고 비 오는 강가로 향한 미스터 M은 강물에 선영이 다른 남자들과 몸을 섞었던 더러움을 씻으려고 하며, <깊고 푸른 밤>에서는 제인을 태우고 사막으로 향한 미스터 백은 폭주하면서 “너의 말은 모두 거짓”이라며 제인을 죽이려고 한다. 이들이 행사하는 폭력은 자신이 우위에 서서 여성들을 판단하고 용서해 주는 비도덕적인 태도에서 비롯되었다. 결국 도시에서 벗어난 비겁한 남성들은 국가의 통제에서 빗겨나 윤리에 어긋난 신념을 여성에게 강요하기에 이른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중심부에서 벗어나서 여성들을 심판하는 것일까. 사회에 인정받지 못하고 반듯한 직장도 없는 미스터 M과 제인이 없으면 영주권을 얻을 수 없는 미스터 백은 사실상 무능력하다. 인정받지 못하는 욕구는 어긋난 욕망으로 발현되어 폭주하고, 도시는 그들의 폭주를 감시하고 용인해 주지 않는다. 은밀하고 조심스러운 방식으로 추악한 마음을 비추던 남성들은 중앙에서 벗어나 바깥으로 이탈하는 것이다.
메마른 사막 위에서 허무주의에 빠진 인간

이탈한 공간은 도시와 반대 선상에 있는 황량한 사막이다. <적도의 꽃>은 이름 자체에서, <깊고 푸른 밤>은 수미상관을 통해 미스터 백이 도망치던 공간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공간으로 중첩시킨다. 배창호는 왜 사막이라는 공간을 <적도의 꽃>과 <깊고 푸른 밤>에서 제시하는 것일까. 길을 잃으면 다시 되돌아올 수 없는 사막은 결코 벗어날 수 없음을 선언하면서, 메마른 감정을 표상하는 허무주의가 깔려있다. 두 작품은 공통적으로 마지막에 인물이 죽는 것으로 영화가 마무리된다. <적도의 꽃>에서 선영의 자살과 <깊고 푸른 밤>에서 미스터 백을 총살한 제인과 자신의 이마에 총을 대고 죽을 것으로 예상되는 제인의 프리즈 프레임은 사막이 죽음을 상징하는 장소임을 알려준다. 물론 <적도의 꽃>은 앞서 말한 것처럼, 사막이 직접적인 이미지로 등장시키지는 않는다. “황량한 사막 위에 내가 피워보려고 했던 꽃이었을 뿐”이라는 미스터 M의 대사와 아파트에서 멀어지는 카메라와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포커스 아웃된 아파트의 간접적인 제시만 있을 뿐이다. 사실 이 대사는 모순 덩어리다. 미스터 M이 하고자 한 행위는 정당하지 않으며, 동의 없이 선영을 꽃으로 피워보려고 한 추악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사막은 생명이 쉽게 살 수 없는 공간이며, 마지막으로 도착한 공간에서 인물들은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배창호 감독 영화에서 죽음은 현실을 벗어나려는 마지막 선택이며 동시에 (불)가능성을 이야기한다. <적도의 꽃>에서 선영과 미스터 M의 사랑은 애초에 불균형을 지니고, <깊고 푸른 밤>에서 제인과 미스터 백 또한 계약으로 묶인 거래의 일부다. 보이지 않는 상대와의 연결 지점은 한쪽에서 균형을 깨뜨리는 순간 빠르게 한쪽으로 치우쳐지고야 만다. 이러한 (불)가능성은 도시의 야경과 함께 유리창에 지속적으로 반사된 얼굴들에 서려있는 허무한 표정으로 예측해 볼 수 있다. 외로움에 타인에게 기대려고 하지만, 자신에게 집중해서 타인의 슬픔을 목격할 수 없는 밤이 지나고 꿈에서 깨어나면 인물들은 죽음을 선택하게 된다. 하지만 <적도의 꽃>과 <깊고 푸른 밤>이 다른 이유는 선영과 다른 제인의 선택이다. <적도의 꽃>에서 선영은 자신의 꽃을 스스로 메말라 죽게 한 반면에, <깊고 푸른 밤>은 자신을 메마르게 하는 존재를 죽게 한 이후에 죽음을 선택한다. 2년의 간격을 두고 개봉한 두 작품 사이의 차이는 여성이 하는 선택이 조금은 뚜렷해졌다는 것이다. 어쩌면 허무주의를 딛고 일어난 인물들은 메마른 사막에서 자신만의 방법으로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글·이하늘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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