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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양국의 문화톡톡] 방향성-변동성 그리고 세잔의 노래
[최양국의 문화톡톡] 방향성-변동성 그리고 세잔의 노래
  • 최양국(문화평론가)
  • 승인 2024.09.02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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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영원한 봄, 영원한 여름을 프로방스의 자산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햇빛이 참으로 우리들의 눈이 아니라 프로방스의 속담처럼 ‘나의 살을 노래하게 하는 것’이 되기 위해서 모든 부질없는 허영을 버릴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 《행복의 충격》, 김화영 -

 한가위 보름달이 허영을 버린다. 단순화된 원이 유난히 밝다. 달이 움직인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한다. 그 방향성을 타고 빛으로 넘실대는 남프랑스의 프로방스를 찾으며, 다정한 물의 도시 언덕에 내린다. 형태의 재창조~색채의 변조~공간의 조화를 위한 세잔의 투박한 손이 달을 정겹게 맞이한다. 달이 변한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형태의 연결~색채의 연작~공간의 추상화를 통해 세잔의 마술(Magic) 액트를 보여준다. 경제계(界)에 방향성과 변동성이 재현되며 경제 지표의 달 놀이로 환원되어 재창조된다. 달을 따라 흐르는 산을 보며, 세잔이 에밀 졸라와 함께 원(圓)의 노래를 부른다.

 

세잔의 / ‘방향성’은 / 형태와 색채 / 공간 재창조

 폴 세잔(Paul Cézanne, 1839년~1906년)은 19세기 프랑스의 후기 인상주의 화가이다. 프랑스 남동쪽 끝부분의 지중해에 인접한 도시, 라틴어의 ‘Aqua(물)’에서 유래한 ‘Aix(엑스)’라는 이름으로 시작하는 엑상프로방스(Aix-en-Provence)에서 태어난 그는 그림에 몰두하기 위해 파리로 간다. 당시 1860년대의 파리에서는 기존의 낭만주의나 사실주의를 떠나 생물학적 눈에 보이는 자연현상을 그리기 위해, 선과 면을 무시하며 빛을 강조하는 인상주의(Impressionism)가 충격과 비판 속에 태동하기 시작한다.

그는 20대의 젊은 시절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지만, 그의 그림에 대한 파리 화단의 조롱과 어린 시절 단짝 친구였던 에밀 졸라(1840년~1902년)와의 절교 등 좌절을 겪으며, 40대 후반에 고향인 엑상프로방스로 돌아와 칩거한다. 그곳에서 그동안 느꼈던 그림에 대한 문제점을 탐구하며, 자신이 추구하는 그림을 향한 새로운 길을 걷는다. 그의 그림은 태생적 한계를 반영하며, 주로 정물화와 풍경화를 위한 유화와 수채화로 피어난다.

일반적으로 그림을 구성하는 기본 축은 전통적인 ‘색채’와 ‘형태’, 그리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주도하는 ‘공간’이다. ‘색채’, ‘형태’ 및 ‘공간’의 세 가지 축이 상대적 드러냄과 함축의 상호작용을 통해 그림의 특성을 결정한다. 색채보다 형태를 강조한 사실주의는 추상적이고 역사적인 대상에 대한 교훈이나 의미 부여보다는 눈에 보이는 삶과 경험을 그려낸다. 형태에 대한 사실적 재현이 색채를 통한 화가의 감성 표현을 압도한다. 형태보다는 빛을 통해 비치는 순간적인 자연 현상을 색채로 나타내는 것을 중시하는 인상주의는 이의 대척점에 있다. 세잔, 고흐 및 고갱 등으로 대표되는 후기 인상주의(Post-Impressionism). 형태 중시의 사실주의와 색채 위주의 인상주의에 대해, 정반합의 진화를 통해 가지 않은 길을 만들어 나간 중심에 50대의 세잔이 있다. 그는 인상주의가 강조하는 자연의 빛에 의해 시시각각 변하는 외부 현상에 대한 표현은, 그림의 대상에 대한 본질을 나타내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이의 극복을 위해 그림의 대상들이 방향성과 변동성으로 향한 길을 걷도록 만들어간다. 이 중 방향성은 대상에 대해 화폭 안에서 상하좌우 방향이 나타내는 시각적 특성을 반영하며 공간 내의 균형을 부각함을 의미한다. 방향성을 좇아가는 길에서 드러나는 세잔의 후기(엑상프로방스 칩거 시기 이후) 그림의 우선적 특징은 형태의 해체와 환원, 색채의 형태화와 변조, 그리고 공간의 조화이다.

그의 그림 중 정물화인 《사과와 오렌지》(1895년~1900년). 같은 제목으로 6년여에 걸쳐 다수의 작품을 남긴다.

 

* 사과와 오렌지, 폴 세잔(Paul Cézanne)
* 사과와 오렌지, 폴 세잔(Paul Cézanne)

《사과와 오렌지》를 통해 알 수 있는 형태의 특성이 싱그럽다. 이는 원근법(perspective, 눈으로 보는 3차원의 세계를 2차원의 평면인 화폭으로 옮길 때, 일정한 시점에서 본 것 그대로 멀고 가까운 거리감을 느낄 수 있도록 표현하는 그림 기법)의 해체를 통해 같은 대상에 대한 다양한 시점으로의 대체로 시작한다. 왼쪽의 낮은 사과 접시는 위에서 내려다본 시점, 가운데 위쪽 오렌지 접시와 오른쪽 꽃문양이 새겨진 단지는 옆에서 바라본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주변에 흩어져 있는 사과와 오렌지, 소파와 주름진 식탁보들도 모두 바라본 시점이 다르다. 대체는 형태의 본질을 추구하는 수단이다. 그가 그리는 형태의 본질은 궁극적으로는 구, 원뿔, 원기둥으로 환원하며 기하학적 수렴의 길을 걷는다. 이는 사진이나 사실주의와는 다르게 대상을 모방하고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인상주의의 순간적 시점에서 발견한 하나의 대상을 표현하는 것에서 벗어난다. 나타내고자 하는 대상 본질 추구를 위한, 다양한 방향에서의 다각화를 통해 단순화를 추구한다.

이어서 색채는 형태의 완성을 위한 종속적 보완물이 아니다. 형태의 본질적 구조를 드러내기 위한 주도적 독립물로서 형태와 일원화된다. 다양한 방향에서 바라보는 시점의 반영을 위한 색채의 변조와 더불어 형태의 존재성이 진실을 얘기하며, 3차원의 대상을 2차원의 화면에 결합한다.

같은 대상에 대해, 형태와 색채의 다양성을 반영하며 동일한 화폭에 담는 것은 구성의 부조화와 연결될 수 있다. 이는 단절된 듯한 식탁의 선과 좌우 식탁 높이의 부조화를 통해 교정되며 공간의 안정적 조화를 이룬다. 당장 굴러떨어질 듯한 사과와 오렌지, 흘러내릴 듯한 식탁보가 시점의 다각화와 색채의 변조와의 부조화 속 조화를 통해 방향성을 드러낸다. 세잔의 투박한 손이, 달에게는 사물의 향기처럼 정겹다.

 

‘변동성’ / 세잔 마술(Magic) / 연결과 연작 / 추상화 액트(Act⋕)

 이제 우리는 세잔이 변동성을 향해 나아간 길을 걸어본다. 변동성은 대상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바뀌어 달라지는 성질을 나타냄을 의미한다. 그는 1880년대부터 말년까지 고향인 엑상프로방스에 있는 생트 빅투아르산(Mont Sainte-Victoire)을 주제로 유화 36점과 수채화 45점을 그린다. 이는 ⟪생트 빅투아르산⟫(Mont Sainte-Victoire)(1882년~1906년) 연작으로 불리며 그의 후기 인상주의적 풍경화를 대표한다. 그의 작품 특성인 방향성과 더불어 변동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변동성을 강조하는 그의 특성상 ⟪생트 빅투아르산⟫을 포함한 다수의 작품이 시간의 흐름을 반영한 연작으로 이어진다.

⟪생트 빅투아르산⟫연작 중 초기 작품은 프랑스 남부 산의 높이, 구릉과 집, 그리고 수호신 같은 소나무를 드러내며 다소 평이하고 세밀하게 다가온다. 형태에 대한 원근법적 접근, 형태와 구분된 순간적 인상에 대한 색채의 보편적 표현 및 화폭 공간과 자연의 조화로 이루어져, 인상주의 그림 특성과 일정 부분 교감을 나누며 익숙하게 서 있다.

 

* 생트 빅투아르산(1890년), 폴 세잔(Paul Cézanne)
* 생트 빅투아르산(1890년), 폴 세잔(Paul Cézanne)

이후 시간의 흐름에 따라 형태와 색채가 점차 흐릿해지며 공간과의 일치를 향해 큰 걸음을 걷는다. 형태와 색채의 이원화를 떠나 정반합의 통합을 통해, 점차 생트 빅투아르산과 그 근처 풍경의 구조와 본질을 드러내며 자연과 인간의 합일을 그린다. 비대칭적인 듯 안정적인 공간 균형은 두껍고 투박한 붓놀림으로 인해, 대상 본질의 진실 드러남과 감성의 어우러짐을 집요하게 추구한다.

 

* 생트 빅투아르산(1904년), 폴 세잔(Paul Cézanne)
* 생트 빅투아르산(1904년), 폴 세잔(Paul Cézanne)

방향성과 더불어 변동성을 찾아가는 길, 엑상과 생트 빅투아르산을 조망할 수 있는 레 로브(Les Lauves) 언덕에 있는 그의 작업실에서 세잔을 생각한다. 그의 그림 중 변동성의 특징은 형태의 해체와 환원을 통한 ‘연결’, 색채의 형태화와 변조를 통한 ‘연작’, 그리고 공간의 조화를 통한 ‘추상’이리라. 첫째, 형태에서는 대상에 대한 재현을 통한 인간과 자연의 분리가 아닌, 대상 본질에 대한 관찰과 재창조를 통한 인간과 자연의 연결과 화해의 손짓을 그린다. 둘째, 색채는 대상 본질에 대한 기하학적 구현과 감각의 지속적 실현을 위한 변조와 가벼운 듯 두꺼운 붓터치를 반영한다. 이는 색채를 통한 형태의 지속적 재정립을 나타내며 연작으로 이어진다. 셋째, 공간에서는 전체적인 공간의 질서를 구성하던 대상의 선과 면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흐릿해지며 원경(산과 하늘 등)이 점차 전경(구릉, 숲과 집 등) 속으로 투입되어 들어온다. 점차 추상의 세계에서 그 존재감을 드러낸다.

고정되어 있는 대상인 산과 주변 풍경의 본질에 대한 끊임없는 관찰과 탐구를 통한 숙고의 결과는, 변동성을 통해 세잔의 마술을 발산하도록 한다. 액트⋕1~형태의 재구조화를 통한 자연과의 일체성, 액트⋕2~⟪생트 빅투아르산⟫에서 보여준 청색으로 대표되는 색채를 통한 사라진 공간의 부활, 액트⋕3~도형 형태의 기하학적 단순화로 구성의 조화를 이루며 3차원 공간의 2차원 화폭에의 공존. 세잔의 눈과 손이 만나는 언덕에, 달이 사유의 멋스러움을 나누며 머문다.

 

경제계(界) / 방향과 변동성 / 세잔 본질 그린 / 노래를 닮아가네

 형태, 색채 및 공간의 재창조를 강조한 세잔의 후기 인상주의 화풍은 방향성과 변동성을 매개로 경제와 연결된다. 경제 변수 중 최근의 화두는 금리와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다. 미국의 금리와 인플레이션에 대해 한겨례(2024년 8월 25일 자)는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9월 금리인하’ 가능성을 강력히 시사하면서 시장의 관심이 금리인하 폭과 속도에 쏠리고 있다. 파월 의장은 23일(현지 시각) 와이오밍주 잭슨홀에서 열린 경제정책 심포지엄 기조연설에서 “통화정책을 조정할 때가 도래했다”고 밝혔다. 그는 “인플레이션이 (목표 수준인) 2%대로 복귀할 것이라는 확신이 커졌다. 노동시장의 추가 냉각을 추구하거나 반기지 않는다. 다만, 금리인하와 속도는 추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미국 연준은 지난해 7월 이후 기준(정책)금리를 연 5.25∼5.50%로 유지하고 있으며, 한국은 기준금리를 역대 최장인 13차례 연속 동결(3.50%, 2024년 8월 22일)하고 금리인하 시점을 10월 이후로 미룬 상황이다. 한가위 연휴 다음 날 발표될 미국의 기준금리는 어떻게 될까? 미국의 기준 금리는 우리의 거시경제 변수 및 주가 등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 변수 중 하나이다. 이러한 금리와 인플레이션의 관계는 부(-)의 상관성을 갖는다. 일반적으로 인플레이션을 억제해야 할 정도로 높을 때, 물가를 낮추기 위해 금리를 인상한다. 금리는 그 변동 폭과 속도도 중요하지만, 인하 또는 인상의 여부와 그 시기가 선제적으로 중요한 방향성 위주의 경제지표이다. 이에 비해 물가는 절대 내려가지 않는(일시적 물가 하락이 있기는 하지만) 자본주의의 특성을 반영하며 지속 상승한다. 인플레이션의 일상화가 우리의 현실이다. 최근 유명 영화배우가 저격한 비싼 영화관람료 논란(코로나 전 대비 약 40% 상승), 졸업식과 이삿날 대표 추억의 음식인 자장면 가격 상승(1970년 100원 대비 2024년 평균 7,000원) 등. 인플레이션은 상승을 전제로, 시간 흐름에 따른 그 속도와 폭이 중요한 변동성 위주의 경제지표이다.

체코의 작곡가인 드보르자크(Antonín Leopold Dvořák,1841년~1904년)가 남긴 총 9개의 오페라 중 《루살카, Rusalka》(1901년)는, 체코판 인어공주의 사랑 이야기라고 회자 되고 있다. 물의 요정이며 인어의 모습을 하고 있는 루살카가 인간인 왕자를 사랑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비극적 서사를 중심으로 한다. 그중 1막에 나오는 <달의 노래(Song to the Moon)>는 가장 널리 애창되는 곡으로써, 인간 왕자와 사랑에 빠진 요정 루살카가 달에게 자신의 사랑을 전해달라고 부르는 아리아다.

 

* 루살카(Rusalka) 1막-달의 노래, 드보르자크(A.L.Dvořák)
* 루살카(Rusalka) 1막-달의 노래, 드보르자크(A.L.Dvořák)

“하늘 높이 떠 있는 달이여, 그대는 인간이 사는 모든 곳을 내려다볼 수 있겠지. 잠시 멈춰 내 연인이 어디 있는지 알려다오. 내가 마음속에 그를 품고 있다는 걸, 누가 여기서 기다리는지를 전해다오. 그가 나를 꿈꾼다면 옛 추억이 그를 깨울지도 모르니까. 오, 달이여 제발 사라지지 마오.”

- 《루살카, Rusalka》(A.L.Dvořák), 1막 가사 -

금리가 방향성 위주의 형태적 특성을 부각한다면, 인플레이션은 변동성 위주의 색채적 특성을 강조한다. 금리와 인플레이션에 대해 세잔의 그림으로 그린다면? 그 형태를 해체하고 본질을 재창조하며 색채의 시대적 변조를 반영한, 형해화된 인간의 욕망, 자원과 가치로 그려지겠지. 금리와 인플레이션을 세잔의 노래로 부른다면? 《루살카》의 요정 인어공주와 인간 왕자의 관계 같은 비극적 상관성을 가진 경제계(界)의 사랑 노래를, 세잔과 에밀 졸라가 이중창으로 생트 빅투아르산을 향해 부르겠지. 세잔의 대상 본질이 원(구, 원뿔, 원기둥)을 기본 도형으로 하듯, 한가위 보름달이 허영을 버리며 둥근 원으로 찾아와 유난히 밝게 빛난다. 우리 삶도 프로방스의 속살 같은 햇빛을 기다리며 원(圓)을 닮아 간다. 가을이 둥그렇게 열린다.

 

 

글·최양국
격파트너스 대표 겸 경제산업기업 연구 협동조합 이사장
전통과 예술 바탕하에 점-선-면과 과거-현재-미래의 조합을 통한 가치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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