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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늘의 시네마 크리티크] 도시라는 이름의 생명체 <세입자>(2024)
[이하늘의 시네마 크리티크] 도시라는 이름의 생명체 <세입자>(2024)
  • 이하늘(영화평론가)
  • 승인 2024.12.16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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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세입자' 스틸컷
영화 '세입자' 스틸컷

“도시라는 것도 생명체 같은 거거든, 사람이나 세포가 점점 줄어들면 결국 죽게 돼. 안 죽으려고 발악을 하겠지. 그렇게 해서 나온 게 천장세 같은 거야” 

장은호 작가의 소설 ‘천장세’를 원작으로 한 윤은경 감독의 영화 ‘세입자’(2024)의 세계관에는 ‘천장세’라는 낯선 단어가 등장한다. 건물을 짓기 전부터 천장에 사람이 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면 세금으로 혜택을 준다는, 이른바 천장세는 신용불량으로 회생 불가능한 사람들을 구제해주고, 시에서 120%를 지원해 준다는 명목의 제도다. 또한 시에서는 “아주 황당한 망상은 지워지지만, 아주 그럴듯한 망상은 심어주는” 약물을 제공해 주면서 그들이 어둠 속에서도 살아갈 수 있도록 한다.

겉보기에는 아무런 하자도 없는 천장세의 개념만 보기에는 도시 복구와 국민들의 회복을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어딘가 꺼림칙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한 개인의 거주하는 ‘집’이라는 공간 안에서 천장만을 똑 떼어내서 온전하게 분리해 내기를 쉽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숨을 같이 공유하게 된다는 점에서 온몸에 소름이 쫙 도는 기분을 감출 수가 없다. 

 

‘세입자’의 주인공 신동(김대건)은 그런 기묘한 이해관계가 켜켜이 얹어진 채 살아가게 된다. “지독한 공기질”과 “살인적인 물가”를 견뎌내며 간신히 삶을 부여잡고 살아가는 신동은 ‘해피미트’라는 직장으로 오늘도 꾸역꾸역 출근한다. 어린 집주인은 신동에게 리모델링을 한다면서 집을 비워달라는 통보를 하게 되고, 그에게는 지금 당장 갈 곳이 없다. 친구 오타쿠(신영규)와의 전화통화를 통해 월월세와 천장세라는 제도를 알게 된 신동은 그날부로 월월세 게시물을 올린다. 

월월세로 계약을 묶어두면, 집주인에게도 복잡해져서 함부로 집에서 쫓아낼 수 없다는 것. 당일에 바로 입주하겠다는 세입자의 연락을 받은 신동은 집을 청소하고 기다린다. 초인종이 열리고 현관문 앞에서 신동을 기다리는 것은 깃털이 꼽혀있는 커다란 검은색 챙 모자를 쓴 남자(허동원)와 망사 모자를 쓴 여자(박소현)다. 신혼부부라는 두 사람은 신동의 집을 기웃 기웃거리더니, 별안간 화장실에서 살겠다며 계약서를 내민다. 한 쌍의 바퀴벌레 같은 느낌의 부부에게 신동은 화장실에 사는 것이 불편하지 않겠냐고 묻지만, 남자는 “저 정도면 평소에 비해 아주 잘 빠진 것”이라며 흡족해한다. 

화장실에 세를 놓은 탓에 회사에 가서 씻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자그마하게 소곤거리는 대화 소리를 참더라도 더 이상의 희망이 없는 도시의 풍경은 신동에게 떠나기를 부추긴다. 마침 회사에서 지사를 확장하면서 공기질이 좋기로 유명한 집을 지원해 준다는 모집 공고에 신동은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회사에서 발버둥 친다. 야근은 기본이고 동료의 보고서를 훔쳐보는 행위를 저지르기도 한다. 결국, 인사 발령을 받은 신동은 발령자들은 안내한 기한 내에 도시와의 관계를 청산해야 한다’는 요구 조건 아래에 월월세로 사는 부부에게 일종의 퇴거 명령을 내린다. 

 

영화의 포인트는 ‘세를 내고 남의 집이나 방 따위를 빌려 쓰는 사람’인 세입자의 존재가 포개지면서 블랙 코미디적인 요소로서 작용한다는 것이다. 앞서 신동의 집주인은 전화통화를 이미지화해해서 잠시 비치지만, 10살 정도 어린아이로 그려진다. 그는 신동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그저 계약 관계 안에서 우위에 설 뿐이다. 월월세로 세입자를 들여온 신동도 같은 위치가 된다.

화장실에서 사는 부부와 사는 시기가 길어질수록 불편함을 느끼면서 자신도 기존의 집주인처럼 세입자에게 통보하는 모습을 닮게 된다. ‘산책을 가야 한다'며 어둠 속에서 신동의 집을 누비고 다니는 부부의 기이한 행동에 주의를 주거나, 발령을 받았다면서 빨리 방을 빼달라고 하는 식이다. “기왕이면 빨리”라는 신동의 말투는 낯설지 않다. 먹이사슬의 우위에 서서 화장실에 사는 세입자들의 사정보다는 나의 사정이 더 중요할 뿐인, 계약상의 우위에 있는 사람으로서 존재한다. 

해당 설정은 한 번 더 꼬인 상태로 등장하는데, 사정이 어려워져 월세를 내기 어려워진 부부가 천장세를 낸 것이다. 화장실 안의 통로와 천장이 연결되면서 서로의 계약이 묶여있는 복잡한 관계가 성립했다. 발령을 받으면서 계약 관계를 모두 청산해야 하는 신동의 입장에서 여간 골치 아픈 일이 아니다. 어느샌가 없어진 자신의 사진과 그림들, 늘 집 천장 위에서 지켜보는 묘한 시선과 밤마다 얼굴 위에 뚝뚝 떨어지는 물기, 천장에 번지는 얼룩들까지. 망상인지 환상인지 모를 것들은 신동을 괴롭히는데, 이는 혐오와 공포로 번지게 된다. 

 

게다가 ‘천장세’에 대해 알려줬던 친구가 사실은 천장에서 살다가 죽게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천장에 사는 인간들은 기본적으로 쓰레기들이야”, “너 쓰레기 재활용을 왜 한다고 생각해? 재활용 쓰레기들 대부분이 재활용이 안 되는데 말이야. 그럼 포인트가 쓰레기에 맞춰져있겠냐? 재활용에 맞춰져있겠냐?”라며 비아냥거리던 친구가 사실은 천장에 살고 있었다는 말은 신동에게 충격으로 다가온다. 천장에 사는 존재들에 대한 의문과 호기심 그리고 본질적인 공포는 점차 크기를 키워간다. 

가뜩이나 빨리 집을 빼야 하는 입장에서 월월세를 낸 부부의 남편을 통해 계약 해지 거부를 전해 들은 신동은 결국 천장 위로 직접 올라가는 선택을 하게 된다. 그를 직접 대면하기로 한 것이다. ”이제 보니까 구멍이 형님한테 딱 맞네요”라며 음흉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월월세 남자의 말이 끝나기를 무섭게 천장의 어두컴컴한 공포는 신동을 곧바로 덮친다. 

영화 ‘세입자’는 결말부에 다다라 그 어둠 속에 숨겨져있던 본질에 대해 마주하면서 도시가 지닌 기이한 구조에 대해 파헤친다. 누구나 될 수 있는 '세입자'라는 위치가 전복되고, 실제와 환상이 중첩된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통해 피부에 닿는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오프닝에서 보여줬던 파도 소리가 가득한 해변가가 줌아웃을 하면서 실제가 아닌 그림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처럼, 빽빽하게 들어찬 건물이 가득한 도시 안에서 '세입자'는 어떤 희망과 공포를 품고 살아가는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글·이하늘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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