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몰하던 거함'을 살리라는 주문을 받고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오른 구원투수였었다.

인텔 이사회는 최근 팻 겔싱어(63)에게 '은퇴할지, 해임 당할지' 둘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최종 통보를 했다고 한다. '월급쟁이 사장 신세'를 한탄하던 갤싱어는 결국 지난 2일 스스로 은퇴를 선언했다. 스스로 물러난게 아니라 쫒겨난 셈이다.
사실 겔싱어는 3년전인 2021년 인텔 이사회로부터 '침몰하던 거함'을 살리라는 주문을 받고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오른 구원투수였다. 인공지능(AI)시대에 발빠르게 적응하지 못하고 '반도체 공룡'이 되버린 인텔을 환골탈퇴시키든지, 턴어라운드시키라는 특명이었다.
그는 취임하자 마자 AI반도체인 '가우디 시리즈'를 야심차게 추진했지만 엔비디아와 경쟁에서 완패했다. 또 인텔이 군림하던 PC용 반도체칩 시장이 크게 위축된 가운데, 당초 사업성이 없다며 포기했던 파운드리(공장을 가진 반도체 위탁생산)분야에 재진출하는 전략을 꺼냈다. 2030년까지 파운드리 업계 2위가 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1위인 대만의 TSMC와 2위인 삼성전자의 높은 장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인텔 안팎에서는 "겔싱어가 반도체 산업 변화에 대한 감각을 잃고 첨단제품 개발보다는 공장을 짓는데 집중했다"는 혹평을 받은 이유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인텔은 겔싱어가 취임한 2021년 200억달러 흑자에서, 올해(3분기까지) -186억달로 적자로 돌아서는 충격적인 실적을 기록했다. 이 기간 동안 주가는 무려 60% 넘게 추락했다. (아래 그래프)

참다 못한 인텔 이사회는 대규모 적자로 허덕이는 파운드리 사업부문을 분사하거나 매각하는 생존 방안을 추진했었다. 하지만 겔싱어는 고집을 부렸다. 심지어 이를 주장하던 립부탄 이사가 사사건건 겔싱어와 부닥치다가 지난8월 사표를 던지고 나가버리기도 했다.
더구나 고객사 브로드컴이 최근 인텔 반도체의 주문을 취소하기도 했다. 이에따라 인텔은 자금난으로 직원 1만5천명을 해고하는 등 비상경영체제로 바꿨다. 미 오하이오주와 유럽 등지에 계획중이던 생산라인 건축 계획도 백지화했다.
인내심에 한계를 보인 인텔 이사회는 마침내 그를 전격 해고하고, 새 인물을 찾을 때까지 이사 2명을 임시 공동CEO로 임명했다.
한편 펫 겔싱어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18살에 인텔에 품질관리 기술자로 입사해, 33년을 근무한 '전설의 인텔 신봉자'로 한때 명성을 날렸었다.
그는 35살의 나이에 인텔 역사상 최연소 부사장으로 승진한 뒤, 9년간 최고기술책임자(CTO)로 일하다 회사를 떠났었다. 2021년 인텔의 구원투수로 다시 돌아왔으나 ,CEO로서의 역량을 발휘하지 못한 채 불명예퇴진을 당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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