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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경의 시네마 크리티크] <12년의 밤>(2018) : 말랑거리는 감동과 단단한 메시지 - “단결한 민중은 절대 패배하지 않는다!”
[김 경의 시네마 크리티크] <12년의 밤>(2018) : 말랑거리는 감동과 단단한 메시지 - “단결한 민중은 절대 패배하지 않는다!”
  • 김 경(영화평론가)
  • 승인 2024.12.16 09: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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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루과이 군사 쿠데타에 대한 동병상련

 

포스터
<12년의 밤> 포스터

<12년의 밤>(2018)은 알바로 브레흐너(lvaro Brechner) 감독이 1973년 우루과이에서 발생한 군사 쿠데타와 그로 인한 군사 독재 정권하에서 12년 수감 생활을 겪은 세 명의 정치범에 대한 실화를 각색하고 연출한 수작이다. 미래의 우루과이 대통령 호세 무히카(2010-2015 대통령 역임, 알폰소 토르트)를 포함한 세 명의 포로에게 가해지는 독방 감금과 고문, 생존을 위한 사투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대개의 정치범에게 ‘미치광이 칼을 휘두르는’ 자들이 그러하듯이 법보다는 복수심으로 고통을 주는 장교는 “기회가 있을 때 죽여야 했다.”고 적의를 숨기지 않는다. 이념이 다른 동족에게 보이는 이러한 적개심 또한 남의 나라 일만은 아니다.

 

“수십 년의 민주주의 체제 이후 우루과이는 독재 정권이 들어선다.”

 

영화는 어둠 속, 총기로 무장한 군인들을 배경으로 이 자막으로 시작된다.

이는 민주주의가 독재 정권으로 인해 퇴행하는 국가에 동병상련을 일으킨다. 그리고 자막은 <12년의 밤>이라는 영화 전체로 구체화한다. 카메라가 겹겹이 쌓인 창살에서 서서히 줌아웃하는 동안 라디오 방송과 소음이 겨우겨우 연결되며 지지직거린다. 라디오에서는 일상적인 담소가 아무렇지도 않게 흘러나온다. 곧이어 경쾌한 라틴음악에 맞춰 흐르는 카메라 패닝은 혹독하게 매 맞는 포로들을 풍경처럼 보여준다. 다분히 의도적인 미장센일 것 같은 카키색 배경의 창살은 소리마저도 가두고 있는 듯 답답하고 견고하다. 이는 포로들이 라디오 소리는 물론 대화, 햇빛까지도 차단당하는 고문에 대한 예고이기도 하다.

 

고립 고문 당하는 정치범들
고립 고문 당하는 정치범들

이들은 교도소뿐 아니라 전국 각지의 알려지지 않은 육군 기지를 전전하며, 포로들의 건강과 의지를 파괴하도록 설계된 물고문, 전기 고문 같은 물리적 고문은 물론, 대화 금지 등의 고립 고문 등으로 생매장당하고 미쳐간다. 그러나, 다행히(?) 이 암울한 과정은 영화 서사 안에서는 길지 않다. 그래서 지루할 겨를이 없으며, 의외로 해방감을 만끽할 수 있는 소통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고립 고문 중 극대화되는 말랑말랑 해방감

관객이 이 생매장 간접 체험(!)에 익숙해질 즈음, 포로들은 답답한 무채색과 흙벽에 둘러싸인 체 팔꿈치와 손가락 모스 신호로 다른 동지들과 교신을 시작한다. 비록 손톱과 손마디가 닳아 없어지지만, 소통할 수 있다는 것에 숨통이 트인다. 사실, 이 영화의 매혹은 자칫 피곤할 수 있는 숨 막히는 과정보다 숨통 트이는 말랑말랑한 해방감이다. ‘12년의 밤’은 고문을 극복해 내는 밤이기도 하지만, 고문의 과정은 빠른 몽타주로 흘려보내며 관객의 상상에 맡긴다. 대신에, 관객은 모진 세월을 견뎌내는 수감자들의 극복 방식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중사의 연애편지 대필로 누리는 특혜, 탁 트인 풍광 보기

세 명의 포로 중 작가 마우리시오 로세코프(치노 다린)는 탁월한 필력으로 중사의 연애편지를 대필해 주며, 중사로부터 남몰래 인간적인 대접을 받기 시작한다. 연필과 종이를 받아 들고 설렘에 떨리는 손, 오래간만에 받아보는 빵과 담배, 그리고 햇볕을 쪼이는 특혜까지 모두 마음이 말랑해지는 대목이다. 마치, 영화 <피아니스트>에서 느꼈던 극한의 상황 속 ‘쇼팽의 발라드 G 단조’처럼, <쇼 섕크 탈출>의 ‘피가로의 결혼’ 아리아처럼.

환청으로 미쳐가던 호세 무히카가 어머니의 호된 질책에 정신을 차리는 과정도 인상적이다. 빗속에서 아들 면회를 기다리는 어머니의 강한 모성은 숱한 어머니들처럼, 모진 풍파로 주름 가득한 얼굴로 인해 더 마음에 파고든다. 도대체 내 아들이 어디에 수감된 것이냐고 묻는 어머니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병사에게 촌철살인 질문을 던진다. “당신들이 아는 게 도대체 뭐가 있느냐?”. 이 또한 우리에게도 매우 친숙한 질문 아닌가. 그리고 이는 감독이 서문에 인용한 카프카의 <유형지에서>에 대한 응답이기도 하다.

 

 “남자가 죄수를 보고 장교에게 물었다. 죄수가 본인의 선고 내용을 압니까? 아뇨, 몸으로 깨달을 겁니다. 장교가 답했다.” - 프란츠 카프카  『유형지에서 』중

 

모르면 알면서 죽어야 한다는 가혹한 응답. 『유형지에서』는 죄수가 죄수가 된 이유는 ‘몰랐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몰랐다’는 자들은 자신의 몸을 통해서 알게 될 것이고, 이것이 유형지 기계, 판결 기계의 존재 이유다. 카프카는 그 과정을 아주 끔찍하게 그렸다. 기계가 몸에 판결을 새기면, 피 칠갑 된 몸은 죽을 수밖에 없다. 어머니가 던지는 질문은 군사독재에 대한 형벌을 상징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무히카는 어머니가 준 플라스틱 변기에 꽃씨를 심고, 수감이 끝나고 세상으로 돌아올 때 꽃이 핀 화분을 들고나온다. 그리고 어머니가 아들을 포옹한 후 그 화분을 받아 드는 장면이 클로즈업된다. 감독은 ‘모성이 아들을 지지했고 아들은 민주주의 의지를 꽃 피웠다.’라고, 말하고 싶었나 보다.

 

“단결한 민중은 절대 패배하지 않는다!” 

마침내 우루과이가 1985년에 자유 민주주의를 되찾은 후, 이 영화 속 포로들은 모두 대통령, 국방부 장관, 작가와 문화부 장관 등 각계 지도층 인사가 되었다. 이 포로들의 12년 수감 오디세이는 극심한 박탈과 고립 속에서 지성과 감성을 지켜내며, 자아실현의 활력을 찾아갔던 시간이었다. 관객이 영화 <12년의 밤>을 통해 느끼는 건 외면하고 싶은 고문과 고통의 트라우마가 아니라, 마치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마주할 때 느낄 수 있었던 감사와 각성이다. 라디오의 일상 소음에서 시작한 이 영화는 마지막 부분에 잊지 못할 ‘사운드 오브 사일런스’의 우루과이 버전 노래를 남긴다. 그리고, 풀려난 포로들과 가족들의 포옹 위로 깊게 수긍할 수 밖에 없는 자막이 흐른다.

“단결한 민중은 절대 패배하지 않는다!”

 

글·김 경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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