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은 필요 없다 애들 나와라
창작 동요와 전래동요
옛날이야기처럼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온 아이들의 노래가 있었다. 이런 노래들을 전래동요 혹은 구전 동요라고 하는데 언제부터 시작되었고, 어떤 내용의 노래를 불렀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어린이들이 그들의 삶 속에서 놀이와 함께 불러왔던 노래들을 말한다.
개화기와 맞물려 일제 강점기에 들어서면서 서구식 악곡에 맞추어 부르는 노래들이 등장했는데 당시 그런 노래를 창가라고 했고, 당연히 어린이들을 위한 노래는 아니었다. 어른들을 위한 창가였다 해도 어린이들은 노래를 불렀을 것이고, 이런 상황에서 어린이 문화운동의 중심에 있던 방정환과 뜻을 같이하던 이들이 어린이들을 위한 노래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1920년대에 시작해서 1930년대 황금기를 맞았던 창작동요는 1940년대 들어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으로 빛을 잃어가는 듯했다. 광복이 되었으나 한국전쟁이 이어졌고 이 시기를 거치며 언제부터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어린이들은 숨바꼭질, 고무줄놀이, 줄넘기, 술래잡기, 친구를 놀리는 노래를 부르며 함께 놀았다.

술래잡기할 사람 여기 붙어라
야 야 모두 나와라 어른은 필요 없다 애들 나와라
꼬마야 꼬마야 뒤로 돌아라 돌아서 돌아서 땅을 짚어라
짚어서 짚어서 만세를 불러라 불러서 불러서 잘 가거라
똑똑 누구십니까. 손님입니다. 들어오세요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꼭꼭 숨어라, 잘잘잘,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집 다오, 우리 집에 왜 왔니, 대문 놀이 등 친구들과 함께 놀 때 부르는 노래들이다.
시대가 변하고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아이들의 삶도 변화했다. 아이들이 뛰어놀 마당은 없어졌고, 더 이상 ‘함께’ 놀 수 없게 되면서 아이들은 ‘전래동요’를 부를 일이 없어지게 되었다. 아쉽게도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는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에 나오는 노래가 되어버렸다.
바람이 머물다 간 들판에

1983년 MBC 창작동요제의 등장은 어린이들에게 그야말로 ‘한 줄기의 따스한 햇살 받으며 희망으로 가득한’(<네 잎 클로버> 1996년 14회 MBC 창작동요제 대상) 사건이었다. 1990년 KBS 창작동요대회가 합류하면서 창작동요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MBC 창작동요제는 2010년까지 28회 진행되었다. <이슬>, <종이접기>를 비롯해서 <숲속을 걸어요>, <네잎클로버>, <산마루에서>, <그림 그리고 싶은 날>, <넌 할 수 있어라고 말해 주세요>, <골목길>, <예쁜 아기곰>, <아기 염소>, <아빠 힘내세요>, <참 좋은 말>, <고운 꿈>, <우주 자전거>까지 우리에게 익숙한 많은 곡이 발표되었다. <즐거운 소풍길>, <봄>, <하늘나라동화>, <화가>, <노을>, <새싹들이다> 등 여러 곡이 초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되기도 하였다.
<노을> 이동진 작사 최현규 작곡 1984년 2회 MBC 창작동요제 대상
바람이 머물다간 들판에 모락모락 피어나는 저녁연기
색동옷 갈아입은 가을 언덕에 빨갛게 노을이 타고 있어요
허수아비 팔 벌려 웃음 짓고 초가지붕 둥근 박 꿈꿀 때
고개 숙인 논밭의 열매 노랗게 익어만 가는
가을바람 머물다간 들판에 모락모락 피어나는 저녁연기
색동옷 갈아입은 가을 언덕에 붉게 물들어 타는 저녁놀
방송국에서 주최하는 동요제를 통해 아름다운 동요들이 알려지게 되었지만, 어린이들이 대중가요에 빠져드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등장했다.
어린이들의 ‘무턱댄 대중가요 탐닉 현상’에 대한 기사에 이제는 댄스뮤직에 포함하기에 부족하다 싶은 곡들을 보며 세월의 변화를 실감한다. “격렬한 몸놀림과 독특한 제스처를 쓰며 감각적 율동을 보여주는 것”이 동심을 잃게 만든다는 것과 “무분별하게 내보내는 TV 라디오의 대중가요 방송”에 대해 경각심을 갖자는 내용이 인상적이다.

「댄스뮤직 바람에 동심도 흔들 ‘무턱댄 대중가요 탐닉 현상 우려’」
MBC FM 국교생 1,500명 음악선호도 조사 격렬한 율동 짜릿한 전자음 인기
댄스뮤직이 국민학교생들 사이에서도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 대중가요의 영향력이 연령의 벽을 무너뜨리고 있다. 국교생이 좋아하는 <가요베스트 10>은 <널 그리며> 박남정, <하얀 바람>소방차, <바람아 멈추어 다오> 이지연, <담다디> 이상은, <토요일은 밤이 좋아> 김종찬, <붉은 노을> 이문세, <그대에게> 무한궤도등의 순. <붉은 노을>을 제외한 전곡이 댄스뮤직으로 격렬한 몸놀림과 독특한 제스처를 쓰며 감각적 율동을 보여주고 있는 것. 동심을 잃고 대중가요를 탐닉하는 현상 무분별하게 내보내는 TV 라디오의 대중가요 방송이 국교생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는 데 공통된 인식
1989년 5월 2일 경향신문
트로트 키즈와 어린이 트로트 경연대회
너는 내 남자
2019년 2월부터 5월까지 방영된 TV조선 <내일은 미스트롯>으로부터 시작해서 <내일은 미스터 트롯> <불타는 트롯맨> 등 우리나라는 트로트 열풍에 휩싸였다. 집에 혼자 있지 않는 이상 식당, 미용실, 상가 등 한동안 가는 장소마다 하루 종일 트로트가 방송되고 있어 도저히 안 볼 수가 없었던 경험을 한 적도 있다.
이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가자 중 어린이들이 눈에 띄었고, 어린이들의 재능과 표현력은 너무도 놀라울 정도였다. 「댄스뮤직 바람에 동심도 흔들 ‘무턱댄 대중가요 탐닉 현상 우려’」라는 기사에서 “무분별하게 내보내는 TV 라디오의 대중가요 방송”을 지적하던 때에 비해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다고 해도, <미스트롯2>에서는 아예 초등반이 편성되었고, 2023년 전라북도 임실에서는 2010년 이후 출생자를 대상으로 키즈 트로트 경연대회도 열렸다는 사실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했다.
그리고 참가자 어린이들이 부르는 노래의 가사가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2007년생 트로트 가수 정동원이 14살 때 부른 노래 <여백>의 가사이다.
“얼굴이 잘생긴 사람은 늙어 가는 게 슬프겠지 아무리 화려한 옷을 입어도 저녁이면 벗게 되니까 내 손에 주름이 있는 건 길고 긴 내 인생에 훈장이고 마음에 주름이 있는 건 버리지 못한 욕심의 흔적. 청춘은 붉은색도 아니고 사랑은 핑크빛도 아니더라 마음에 따라서 변하는 욕심 속 물감의 장난이지 그게 인생인 거야”
14살에 깨우친 인생이라는 자막이 달려있다.
2021년 데뷔한 2011년생 임서원 어린이가 부른 <너는 내 남자>의 가사는
“내가 미워도 한눈팔지마 너는 내 남자 그래도 언제나 너는 내 남자 너를 의식 못 한 내 방식대로 사랑한 탓으로 왠지 너를 놓칠 것 같은 예감 때문에 돌아오는 길이 난 무척 힘들었어”
트로트를 어린이가 부르면 안 된다는 것이 아니다. 어린이들이 동요만을 불러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청춘은 붉은색도 아니고 사랑은 핑크빛도 아니”라며 인생을 깨우친 열네 살과 “내 방식대로 사랑한 탓으로 왠지 너를 놓칠 것 같은 예감”이 들어 “돌아오는 길이 난 무척 힘들었” 다는 열 살 어린이의 고백을 듣는 것은 무척 힘들었다.
노래는 시이다. 모든 노래가 시가 될 수 있는가. 시가 될 수 없다고 생각되는 노래도 있을 수 있겠지만 시는, 노래는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고, 시와 노래를 읽고, 들으며 공감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던가.
더욱이 아직 인생을 논하기에는 살날이 너무도 많은 어린이가 듣는이로 하여금 당혹감을 주는 노래를 부르지 않으면 좋겠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하이데거의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어린이들이 어릴 때부터 부르는 노래들을 통해서 '말'을 배우고, 공감하고 사고하는 능력을 키우면 좋겠다. 동요는 단지 어린이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동요란, ‘어린이들의 맑고 순수한 동심이 담겨있는 노래, 어린이들의 꿈과 희망을 전해주는 노래, 어린이들을 위한 어린이들의 노래’라는 당위성을 실현할 수 있는 노래여야 한다.
동심을 담은 노래
어린이는 우리의 미래라고 한다. 어린이들이 동심을 담은 노래를 부르면서 ‘파아란 하늘과 하얀 눈을 보며 깨끗한 마음’으로 자라고, 아스팔트길을 떠나 ‘흙먼지 모두 마시면서’ 내 땅을 씩씩하게 갈 수 있다면 좋겠다.
<파란 마음 하얀 마음> 어효선 작사 한용희 작곡 (1956년)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 여름엔 여름엔 파랄 거여요
산도 들도 나무도 파란 잎으로 파랗게 파랗게 덮인 속에서
파아란 하늘 보고 자라니까요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 겨울엔 겨울엔 하얄 거여요
산도 들도 지붕도 하얀 눈으로 하얗게 하얗게 덮인 속에서
깨끗한 마음으로 자라니까요

천 리 길 김민기 글·곡
동산에 아침 햇살 구름 뚫고 솟아와 새하얀 접시꽃잎 위에 눈부시게 빛나고
발 아래는 구름바다 천 길을 뻗었나 산 아래 마을들아 밤새 잘들 잤느냐
나뭇잎이 스쳐 가네 물방울이 날으네 발목에 엉킨 칡넝쿨 우리 갈 길 막아도
노루 사슴 뛰어간다 머리 위엔 종달새 수풀 저편 논두렁엔 아기 염소가 노닌다
가자 천 리 길 굽이굽이 쳐 가자 흙먼지 모두 마시면서 내 땅에 내가 간다
글·김정희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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