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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승학의 시네마 크리티크] <오징어 게임> 시즌2의 명확한 한계
[지승학의 시네마 크리티크] <오징어 게임> 시즌2의 명확한 한계
  • 지승학(영화평론가)
  • 승인 2024.12.30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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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영웅의 성공이야기

황동혁 감독의 <오징어 게임> 시즌1은 죽음을 통해 게임이라는 현실을 다룬다. 거기서 인생 막장의 게임 참여자들이 따라야 하는 게임 룰은 마치 심적 갈등이나 죽음 자체에서 오는 두려움을 미지의 쾌감으로 증폭시키기 위한 수단처럼 보였다. 죽음의 두려움이나 심적 갈등의 절박함은 게임 참여자 당사자에게는 일시적인 이벤트일 뿐 제3자, 그러니까 게임 설계자나 직접 게임 결과에 개입하는 군대조직과 같은 빨간 옷의 그(녀)들, 더 나아가 관객에게만 알 수 없는 쾌감을 매개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말이다. 그러나 <오징어 게임> 시즌2는 분명 게임의 의미가 무뎌지고 죽음의 날카로움은 사라지고 말았다.

 

출처: 넷플릭스
출처: 넷플릭스

죽음과 게임이라는 키워드는 인간의 삶에서 같은 맥락을 갖는다. 죽음은 모든 사건, 상황, 장소, 인물을 포괄하는 편재적 존재다. 게임 역시 사회적 상호작용으로 인해 발생하는 편재적 행동이자 경험이다. 삶이 죽음과 분리될 수 없다면 게임도 삶과 분리될 수 없다는 뜻이다.

원래부터 죽음은 역사적으로 문화 생산의 중심주제였다. 죽음에 대한 표현이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해왔다는 것은 학문적으로 사회적으로 틀린 말이 아니다. 이를테면 자연스러운 죽음은 일상에서 배제되거나 침묵으로 축소되는 반면, 폭력적인 죽음은 판타지 이야기로 변형되어 확대, 재생산을 반복해왔다.

 

출처: 넷플릭스
출처: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은 확실히 폭력적인 죽음의 문제를 다루었다. 혹자는 이런 죽음을 지칭하기 위해 “비일상적인 죽음”이라는 용어를 도입했는데, 이 말은 죽음 자체의 폭력성보다는 죽음을 통해 불공정하며 정당하지 않은 행위를 부각하는 데 주로 활용된다. <오징어 게임>은 사회적 불평등이 곧 비일상적인 죽음으로 이어진다는 메시지를 줄기차게 전한다. 그렇게 비일상적인 죽음은 불공정함을 폭로하는 게임 콘텐츠가 되어 우리의 정서에 침투한다. 

 

출처: 넷플릭스
출처: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시즌2는 사회적 불평등이 낳은 결과가 곧 죽음으로 이어진다는 충격에 이미 적응한 상태에서 출발한다. 우리의 정서에 침투한 죽음의 게임을 주인공과 관객 모두 두 번 경험하기 때문이다. 등장하는 참가자들은 시즌1편과 마찬가지로 자기가 직면한 금전적 문제 해결에 집착하다가 결국 주기적인 죽음을 반복해서 맞이한다. 하지만 시즌2에서는 투표를 통해 게임 참여 여부를 게임마다 선택할 수 있게 한다. 시즌1과 달리 게임을 포기하면 죽는 것이 아니라 참여자의 선택에 끌려가게 만든 것이다. 죽음에 대한 암묵적 동의는 다수결의 원칙과 엮여 그렇게 더욱 강조된다.

 

출처: 넷플릭스
출처: 넷플릭스

폭력적인 죽음이 다수결의 원칙과 엮이면 현실의 문제를 직격하게 된다. 공포스러운 현실을, 우리 사회가 직면한 지금의 당면과제를,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그러함에도 두 번째 참여라는 관점은 <오징어 게임>이 가지고 있었던 모든 반전요소를 무력화시킨다.

사실 <오징어 게임> 시즌2의 전략은 이를 예상한 것에서부터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오영일(아직 안보신 분들을 위해 배역이름은 미표기 합니다)의 배치 전략은 이를 잘 증명한다. 하지만 이런 전략은 허무하게도 영웅과 그 조력자의 관계에서 조력자의 배신이라는 전형적인 서사로 마무리되고 만다. 이는 옳고 그름을 주장하려는 윤리적 강박만을 드러내려다 실패한 모습으로 변질된다.

 

출처: 넷플릭스
출처: 넷플릭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기훈(이정재)이 오징어 게임 그 자체를 없애기로 결심한 이후, 시즌2에서는 그 준비와 실행 과정이 기훈의 독보적인 존재성을 강화하는 측면으로 손쉽게 휩쓸릴 수밖에 없는 모양새를 갖추게 되었다는 것이다. 영웅의 등장이라는 이런 헐리우드 식 스토리를 피하려는 전략적 포인트을 황동혁 감독이 고심한 흔적은 분명히 확인할 수 있지만, 그 고심이 깊어질수록 새로운 인물과 게임의 등장은 필요악이 되고 만 느낌이다. 게임에 두 번 참여한 기훈의 존재는 시즌2에서 그가 필요충분조건인 한,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다고 해도 그들의 역할은 조력자 아니면 반대자일 수밖에 없는 데다가, 배신자를 그대로 노출 시키지 않으면 안되는 불가피한 서사적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출처: 넷플릭스
출처: 넷플릭스

특히 옳고 그름의 명확한 구조가 드러난 상태에서 황준호(위하준)의 역할과 다수결의 원칙이 작동하는 모습은 기훈의 존재때문에 윤리적 질서를 다시금 회복하려는 전형적인 영웅 서사의 몸부림으로 보일 뿐이어서 시즌1에서 볼 수 있었던 죽음과 게임의 무차별적인 혼돈 양상을 기대하기 어렵게 한다. 기훈이 다시 참여하게 된다는 설정은 시즌1의 아성에 도전하는 데 태생적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출처: 넷플릭스
출처: 넷플릭스

시즌2의 관전 포인트는 그러한 조건, 다시 말해 시즌1의 우승으로써 영웅화된 기훈의 존재를 어떻게 중화시킬 것인가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징어 게임> 시즌1의 성공은 죽음과 게임 사이에서 벌어지는 극단적인 혼돈이 현실 그 자체라는 교감을 애초부터 비-영웅적 존재였던 기훈을 통해 이끌어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시즌2에 이르면 필연적으로 영웅 서사로 흐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기훈의 이야기가 우려대로 전형적인 영웅 서사의 구조 속으로 흘러들고 말았다는 아쉬움은 그래서 감출 길이 없다. 영웅의 자리에서 영웅이 아니어야 하는 영웅(혹은 주인공)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시즌1의 성과는 그래서 더 기적같아 보인다.

 

글·지승학
영화평론가. 문학박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홍보이사,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 부문으로 등단. 현재 고려대 응용문화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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