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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승학의 시네마 크리티크] 안중근의 두 번째 역사
[지승학의 시네마 크리티크] 안중근의 두 번째 역사
  • 지승학(영화평론가)
  • 승인 2024.12.30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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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에서 이창섭(이동욱)은 안중근(현빈)에게 적대적이다. 관계의 회복이 불가능해 보이지만, 역사적 사명 앞에서 그들은 같은 임무를 부여 받는다. 이창섭이 안중근에게 느낀 배신감은 안중근의 동료에게로 향하고 급기야 밀정을 색출해야 할 때 그 의심은 모든 상황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그 뒤의 일은 우리가 익히 아는 사실대로 흘러간다. 

 

출처: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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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의 가치는 역사 속에서 절대로 흐려지지 않는다. <하얼빈>을 향한 질문은 여기에 있다. 사라지지 않을 역사적 빛을 재현한 영화를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 이 영화는 초반부터 안중근 역할의 현빈이 만들어내는 찬란한 미장센을 보여준다. 마치 신전의 대리석과 같은 두만강 얼음을 건너 연해주로 향하는 결기에 찬 안중근의 고난. 여기서 경모(敬慕)와 숭경(崇敬)은 미장센으로 재소환된다. 역사적 위인을 재현한 영화는 이런 두 감정을 하나로 합치하여 더욱 강렬한 빛을 뿜어내게 한다. 재현이라는 위인의 두 번째 역사. 하지만 그 역사는 역설적으로 사실(진실)과 추측(상상)을 더욱 구분하게 만든다.

 

출처: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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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은 안중근의 두 번째 역사를 보여주기 위하여 그의 고뇌와 사상을 조망하는 동안, 밀정 색출의 이야기도 나란히 병치한다. 이토 히로부미가 처형될 때(사실, 진실), 김상현(조우진)과 우덕순(박정민) 사이에서의 마피아 게임처럼 벌어지는 상황(추측, 상상)이 겹쳐진 것이다. 역사를 통해 사실과 추측을 엮어 놓으면 영화는 항상 상상에 힘을 싣는다는 걸 이 영화도 그렇게 보여준다. 첩보 스릴러다운 면모는 여기에서 극으로 치닫는다. 그 긴장감은 안중근의 거사 당시 긴장감을 대신 보여주는 것 같다. 그렇다면 사실(진실)과 추측(상상)은 <하얼빈>에서 균형을 이루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출처: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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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안중근을 다루었던 많은 서사와 달리 이번에는 어느 면에서 보더라도 그의, 그들의 인간적 상황과 그 속에서의 결단을 사실과 추측의 균형, 여기서는 첩보 스릴러의 긴장감이라 할만한 것을 통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하얼빈>은 그 긴장감 속에 품고 있던 의심의 배경을 선과 악으로 가르지 않은 채 인간적으로 이해해볼 필요가 있음을 이야기 한다. 그래서일까? 영화 마지막, 밀정으로 의심받던 자의 결자해지는 역사적 사실을 넘어선 의미를 극적으로 품을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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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에서 첩보 스릴러적 결말은 인간적 결단으로 그렇게 승화된다. 그러면 그들의 운명을 모두 알고 있는 상황에서 그 결단은 무엇을 말하고자 한 것일까? 어쩌면 약점이 두려워 영광을 포기해야 한다면 영광을 재현하려면 약점도 기록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 것은 아닐까. 이것은 있는 그대로 기록해야한다는 의무와는 다를 수 있다. 나약함을 각오하고 영광을 선택할 수도 있지만, 나약함 때문에 두려워지면 영광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은 의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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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전자는 극적일 수 있고 후자는 감동적일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역사를 다루는 영화는 거의 모두 그런 선택 사이에서 고민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역사라는 시간 속에서 나약함만을 숨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영광에는 인간적 두려움과 비겁함이 뒤따른다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런 영화는 언제나 위인의 나약함에서부터 모든 것을 시작한다. 신전의 대리석 같은 두만강 얼음 위에 쓰러져있던 안중근의 모습. 그의, 그들의 훌륭함은 그런 장면을 통해 더욱 아름다워질 수 있다. 그것이 나약해 보이거나 고지식해 보일지라도 말이다. 영화 <하얼빈>은 그런 이해 방식에 솔직하다.

 

글·지승학
영화평론가. 문학박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홍보이사,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 부문으로 등단. 현재 고려대 응용문화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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