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우 샤오시엔의 <자객 섭은낭>을 본 후, 나는 ‘무술에 한 가지 원칙이 있었다면, 그건 무술도 중력을 거스를 수 없다’는 허우 샤오시엔의 말을 듣고 감명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8년 만에 신작을 만들었다. 1980년대 후반의 로테르담 영화제에서 “미래를 짊어질 세계의 영화작가”에 언급된, <빨간 풍선>을 완성한 후의 지난 8년 동안 영화 제작 현장이 아니라 타이베이 영화제와 금마장 영화제 조직위원회에서 일했던 감독이, 그의 필모에서 처음으로 무협영화를 만들면서 한 첫 번째 원칙은 중력을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이다. 중력을 거스르지 않겠다는 의지가 아닌, 중력을 거스르는 무술은 없다는 선언을 들으며 작년에 고인이 된 마누엘 데 올리베리아를 떠올리지 않는 것은 불가능했기에 어떤 인간도 죽는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는 아주 슬픈 진실과 마주해야 했다.
시간이 지나서 사물이 사라지게 된다는 것은 대단히 애상한 일이고, 무언가를 잃어버린다는 것이기에 노스탤지어적인 서정이 있는 현상일 것이다. 한 때 <동동의 여름방학>에서 소년들이 강에서 헤엄치는 모습의 활력을 검정바탕의 필름에다 빛으로 박아 넣었던 영화작가는 이제 블랙 바를 무너지지 않는 기둥처럼 세운 디지털의 세계로 들어와 있다. 그 블랙 바는 모종의 단념의 정서를 불러일으키기기에 노스탤지어적인 것이다. 분명 이 영화는 코닥 35mm 필름으로 찍었지만, 후에 감독이 밝히듯 D.I를 거쳐서야 완성된 이 영화는 가변화면비를 사용하고 있다. 분명 1.37:1의 비율을 고집할 수 있었지만, 영화 초반 몇 장면에서 1.85:1의 화면비로 바뀌는 것을 고집한 것은 분명 디지털에 들어온 허우 샤오시엔의 심정일 것이다.
예컨대, 코닥 35mm로 찍힌 영화는 듀프 네거티브필름(상영 프린트의 원본)이 super35에 의해 디지털로 전환된다. 그러므로 샤오시엔은 자신이 찍은 결과물을 한 번 필름으로 확인하고, 투사되는 과정을 온전히 본 유일한 관객이다. 그 특권적 위치를 스크린과 공유하지 않겠다는 것은 샤오시엔에게 단절이자 결의이다. 이 견고하고 단단한 선언에는, 결국 프로그램에 올라 변형되고 말 영화의 ‘소스영상’을 위해 35mm 필름 촬영을 고집한 놀란과 같은 허식이 없다.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등장했던 그 시대는 이제 끝난 게 아닌가 생각한다.”는 그의 고백은 시간을 온전히 받아드리겠다는 말처럼 들리기까지 한다. 어머니에게 결(結)은 결의라고 말을 듣고 실크로 얼굴을 가린 체 우는 섭은낭의 모습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결국 진계인을 죽이지 않고 스승을 찾아가 아이를 보고 죽이지 못했다는 섭은낭의 진술은 이제 도래할 자신이 모르는 미지의 세계를 마주하는 것과 같다. 그 이야기를 하고 나서야 섭은낭은 신라국으로 떠난다. 섭은낭이 암살에 실패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너의 검술은 완벽하나, 아직 인륜의 정을 떼지 못하였구나.”라고 말하는 스승은 분명 전에 “검은 무정한 것이니, 성인군자의 고민과 번뇌와는 다른 것”이라고 말했다. 그 말을 대변이라도 하듯, 저 멀리서 진짜 안개가 그들이 서있는 산을 뒤덮는다. 그러나 그 안개는 결코 블랙 바를 뒤덮을 수 없다. 어떤 무술도 중력을 거스를 수 없다는 그의 말은 그런 칼날과 같은 현실 위에 서 있다. 슬픈 일이지만, 이제 우리는 그 이전의 시각이나 영상의 감수성으로 되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글‧이현재
경희대학교 K컬쳐・스토리콘텐츠연구소 연구원.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부문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신인평론상 △게임제네레이션 비평상에 당선되어 다양한 분야에서 평론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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