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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의 문화톡톡] K 역사여행 전시사용설명서 2
[김정희의 문화톡톡] K 역사여행 전시사용설명서 2
  • 김정희(문화평론가)
  • 승인 2024.12.31 16: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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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계태평(太平繼太平): 태평성대로 기억된 18세기 서울

서울역사박물관

성시전도(城市全圖)와 『성시전도시(城市全圖詩)』

성시(城市)는 ‘성곽(城郭)과 시장(市場)을 갖춘 도시’라는 의미로 ‘성시전도(城市全圖)’는 18세기 말 한양도성의 풍경을 그려 병풍으로 만든 그림이고, ‘성시전도시(城市全圖詩)’는 정조가 신하들에게 성시전도를 묘사하여 지어 올리라고 한 1백 운의 장편 칠언고시를 말한다. 현재 성시전도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1796년 (정조 16) 4월 24일 정조는 이런 명을 내렸다.

“지난 2월 초하루에 초계문신들이 과시를 치렀으니, 다시 어제(御製)로 ‘성시전도를 묘사한 칠언백운고시’를 짓도록 하라. 압운은 시(市)로 할 것이며, 기한은 삼 일 뒤 묘시(오전 5~7시)까지로 정한다. 초계문신과 검서관은 모두 응시하고, 오늘 입궐한 신하들과 새로 임명된 이들도 함께 시험에 참여하도록 한다.” 『내각일력』

현대식으로 바꾸어 보면, 국가고시에 합격한 후 연수원 과정에 선발되어 시험을 치른 지 얼마 안 된 이들(초계문신)에게 다시 시험을 보도록 하겠다며, 삼일 뒤 오전 7시까지로 기한을 정해주고, 그날 참석했던 이들과 새로 관리로 임용된 이들도 함께 시험에 참여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갑자기 시험이라니. 학문을 좋아했던 정조에 대해 긍정적인 마음이 옅어지는 지점이다.

 

신광하(1729~1796) 성시전도시 시권 1792년 정조 16년
사진 출처: 서울역사박물관
장원을 차지한 신광하의 성시전도시 답안지

1등은 병조정랑 신광하, 2등은 검서관 박제가, 3등은 검교직각 이만수이다. 승지 윤필병, 겸검서관 이덕무· 유득공은 삼상(三上)으로 공동 4등을 하였다. 그리고 정조는 1등에서 4등까지 6편의 시에 대해서 직접 평을 하였고, 종이, 붓, 먹 등을 하사하였다.

시험에서 장원을 차지한 사람은 신광하였다. 정조가 직접 붉은 색으로 이하일(二下一)이라는 등수와 ‘소리가 있는 그림(有聲畵)’이라는 평가를 적어 넣었다.

박제가(1750~1805)의 시는 이하(二下)의 성적으로 2등을 하였는데, 정조로부터 ‘말을 알아듣는 그림 같다’(解語畵) 는 평을 받았다.

“잣나무잎으로 과실을 닦으니 윤이 반질반질 나고

목화씨로 계란을 싸니 입으로 핥은 듯 깨끗하구나

두부 파는 광주리는 탑처럼 높게 쌓여 있고

참외 가득한 망태기 그물코는 노루 눈처럼 늘어졌네.

게 광주리 머리에 이고 아이는 등에 업고

젊디젊은 나루터 여인은 무명수건 썼구나.

무게를 다려는 듯 닭 한 마리 들어보기도 하고

소리 지르는 것이 싫은지 돼지 두 마리 지고 있네.

소에 실은 땔감 사려는 듯 고삐를 끌기도 하고

말 이빨을 살피려고 옆구리에 채찍을 꽂고 있으며

눈을 껌뻑이며 말 거간꾼을 부르기도 하고

싸움을 말리려고 동서할 것 권하거나

새 노래에 맞추어 거문고를 타고

피리 불며 묘한 재주 자랑하는 이도 있네.

누가 악기는 그려도 소리는 그릴 수 없다고 하였나

손가락 대는 법만으로도 족히 음률을 살필 수 있네.

염전국(염색 집) 누가 잊을까 봐 쉬이 알 수 있도록

벽 가득 푸르게 손자국을 찍어 놓았네. ”

‘모두가 그림 같다’는 평을 받은 유득공과 함께 삼상(三上)을 한 이덕무는 정조로부터 고아하다(雅)는 평가를 받았다.

“9천9백7십 보

띠 같은 성곽은 천치의 성임이 분명하네

별이 펼쳐지고 바둑알이 놓인 듯 공고하고

범이 웅크린 듯 용이 서린 듯 뛰어나기 비할 데 없네

북쪽 산은 백악만큼 좋은 곳이 없고

오른쪽으로 인왕산을 잡고 있으니 형과 아우 같네”

 

이집두(1744~1820) 성시전도시 시권 1792년 정조 16년 수원 광교박물관

이집두는 차상(次上)의 등수를 받았다.

전시는 ‘지도로 읽는 18세기 서울’로 이어지고 지도라기 보다는 한 폭의 그림 같은 우리나라의 지도들을 만날 수 있다.

조운선으로 가득 찬 한강을 그린 지도, 시전 행랑으로 가득한 서울 지도, 성북동의 복사꽃 핀 풍경을 그린 지도, 금표가 세워진 경계를 기록한 지도, 임금의 시선에서 바라본 서울 지도, 봉투에 담아 휴대하기 쉽게 만든 서울 지도 등 다양한 지도들을 비롯해 김정호가 직접 손으로 그린 동여도 중<도성도>,<경조오부도>를 볼 수 있다.

다음은 ‘장소로 읽는 서울’로 광통교와 운종가, 구리개 약방, 서화사, 술집, 세책점을 재현하고 있다.

 

곽장양문록 (의빈글씨라고 표시되어 있음) 사진출처: 서울역사박물관 

세책점을 재현하고 있는 공간에서는 인상적인 유물은 『김상서전』 (여성 영웅소설)과 『곽장양문록』이다. 이곳에서 전시되고 있는 『곽장양문록』은 1773년(영조 49) 봄에 청연공주(당시 20세), 청선공주(당시 18세) 궁녀 덕임(당시 21세), 영희, 경희, 복연 등 궁중 여인 6명이 필사한 책 (전 10권 10책을 필사했다) 으로 알려져 있는데, ‘의빈 글씨’라는 내용이 적혀있다.

18세기 조선은 균역, 탕평, 준천이 시행되었던 영조 시대와 태평성대를 꿈꾸었던 정조시대 학문적으로, 문화적으로 발전했던 것이 틀림없으나 같은 시기 서양에서는 산업혁명과 프랑스 대혁명, 미국의 독립전쟁을 지나오고 있었다. 세상은 우리만의 태평성대를 꿈꾸게 기다려주지 않고 있었다.

 

글·김정희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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