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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의 문화톡톡] K - 페스티벌과 통행금지 2
[김정희의 문화톡톡] K - 페스티벌과 통행금지 2
  • 김정희(문화평론가)
  • 승인 2024.12.31 17: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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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지하철 1호선 공사 중 영풍문고 앞에서 발굴된 종루 주춧돌경복궁으로 옮겼다가 2011년 서울역사박물관으로 이전하였다  사진 ©김정희
1972년 지하철 1호선 공사 중 영풍문고 앞에서 발굴된 종루 주춧돌
경복궁으로 옮겼다가 2011년 서울역사박물관으로 이전하였다
사진 ©김정희

조선 여성의 통금 시간

“저녁 8시경이 되면 큰 종이 울리는데 이것은 남자에게는 귀가할 시간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이며, 여자들에겐 외출해 산책을 즐기며 친지들을 방문할 수 있는 시간임을 알려주는 것이다. 내가 처음 서울에 도착했을 때, 깜깜한 거리에는 등불을 들고 길을 밝히는 몸종을 대동한 여인네들만이 길을 메우고 있는 진기한 풍경을 볼 수 있었다. 그 밖에는 장님과 관리, 외국인의 심부름꾼, 그리고 약을 지으러 가는 사람들이 통행금지에서 제외되었다. 이러한 제도는 범인 도피에 악용되기도 하였으며 어떤 자들은 일부러 긴 지팡이를 짚고 장님 흉내를 내기도 하면서 이를 악용하였다. ...한 양반가의 귀부인은 내게, 자기는 아직 한 번도 한낮의 한양 거리를 구경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 이사벨라 버드 비숍

“해가 지고 한 시간 후가 되면 남자는 모두 집으로 들어가고 여성이 길가로 나오게 된다. 그것은 여성들을 위한 시간이며, 이 시간에 그녀들은 시가를 자유로이 다닐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인의 비극, 프레데릭 맥켄지

해가 져서 성문을 닫은 후에는 부녀자만 집 밖으로 나다녔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지만, 외국인들의 기록을 보면 사실인 듯하다.

이화학당 최초의 한국인 교수였던 김란사가 등불을 들고 학당에 찾아갔다는 유명한 이야기도 사실에 근거한 내용이라는 것도 알 수 있다.

통금과 우리 생활

통금이 있었던 시절의 일화이다.

장항발 서울행 완행열차가 연착되어 통금 시간을 십 오분 앞두고 서울역에 내린 20여명은 역전 파출소에 찾아가 “통금 시간이 가까와서 버스를 탈 수 없으니 차편을 제공해달라”고 요구하자 파출소에서는 좀 기다리라고 말한 후 12시가 넘자 별안간 이들을 모두 통금 위반자로 몰아 즉결에 돌렸다는 것. 또 이 열차에서 내린 친척을 마중 나왔던 숭실중 3년 등 3명의 학생도 통금 위반으로 몰아 즉결에 넘겼다고 한다.

1968.03.05. 동아일보

「수학여행 귀가길 서울 남산순환도로에서 여중생 80명 통금 묶여 버스 안에서 밤새워 밥도 굶어」

경기도 파주 문산여중 3학년 학생 80명이 스쿨버스를 탄채 통금에 걸려 버스 속에서 저녁을 굶은 채 밤을 새웠다. 학생들은 저녁을 굶은 채 버스 안에서 추위에 떨면서 밤을 새우고 통금이 풀린 상오 4시 20분 학생 28명은 열차편으로 51명은 이 버스 편으로 문산으로 돌아가고 집이 서울인 학생 5명은 서울집으로 돌아갔다. 1972.10.17. 경향신문

통금의 해제

알람 소리에 놀라 일어나는 것처럼 파루 소리에 놀라 잠이 깨는 채제공의 모습을 그려보면 학교를 졸업하고도 한참을 시험 보는 꿈을 꿨던 기억이 떠오른다.

 

보신각 사진출처: 국립민속박물관
보신각
사진출처: 국립민속박물관

대전 섬돌에서 익숙하게 길 밝힐 촛불을 찾고

대궐 문에서 때로 이경의 쪽잠을 청했지.

사직을 하였지만 마음은 여전히 매여 있어

이불 속에서 멀리 새벽 파루에 놀라네.

채제공(1720~1799) 『번암집』 제11권

1982년 1월 5일부터 통금이 없어진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그렇다면 밤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 지 갑자기 주어진 자유시간에 어쩔줄 몰라하는 학생들처럼 당황했다.

하지만 통금해제를 누군가 선물 한 것이 아니라 통금 자체가 있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글·김정희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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