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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경의 시네마 크리티크] 보이지 않아 보이는 담장 너머의 진실-<존 오브 인터레스트>
[김희경의 시네마 크리티크] 보이지 않아 보이는 담장 너머의 진실-<존 오브 인터레스트>
  • 김희경(영화평론가)
  • 승인 2025.01.06 11: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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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상 가장 큰 과오이자 상처로 남은 일은 ‘홀로코스트’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영화는 홀로코스트를 반복적으로 다루며, 이를 기억하고 있다. <쉰들러 리스트>, <피아니스트>, <인생은 아름다워>, <클랜>, <사울의 아들> 등이 대표적이며, 감독들은 다양한 연출 기법으로 홀로코스트를 재현해 냈다.

이 작품들에 이어 2024년에 개봉한 조나단 글래이저 감독의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홀로코스트 영화의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존에 다수의 작품들은 학살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에 치중했다. 반면 이 영화는 보이지 않음으로써 모든 것을 보이게 하여, 역사적 진실의 잔혹함을 극대화한다.

 

영화는 유대인 대량 학살을 이끌었던 실존 인물 루돌프 회스(크리스티안 프리에델)와 그 부인인 헤트비히(산드라 휠러)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카메라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벌어진 유대인 학살 장면이 담기지 않는다. 그 안에서 일어난 끔찍함을 재현하는 대신, 수용소 밖에서 일어난 일들을 그려낸다.

영화는 수용소와 담장으로 구획된, 루돌프 부부의 집안 풍경을 담아내는 데 주력한다. 담장 안 세상은 아늑하고 화사하며, 평온함만이 가득하다. 헤트비히는 정원 꾸미기에 몰두하며, 집안을 온통 꽃으로 물들이고 그 상태를 유지하는 데 힘을 쏟는다.

그런데 이 집안 담장 너머의 풍경을 바라보면, 항상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수용소에서 유대인들의 시체를 끊임없이 소각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아무리 연기가 나더라도 담장 안에서 그 연기를 쳐다보는 이도, 신경쓰는 이도 존재하지 않는다. 루돌프는 집에서 다른 장교들과 회의를 하며, 더 효과적으로 많은 시신을 태울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할 뿐이다. 헤트비히는 남편이 압수해 온 모피 코트를 입고 거울 앞에 서서 행복해 한다. 아이들은 저 멀리서 들려오는 비명 소리와 총소리에 잠깐 멈칫하지만, 이내 다시 열심히 놀이를 이어간다. 그렇게 영화는 온전히 집안의 풍경과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에만 집중하여, 악의 평범성을 극대화한다.

 

그 가운데서도 영화는 작은 온기를 놓치지 않는다. 수용소에 있는 유대인들을 위해 음식을 숨겨뒀던 실존 인물을 모티브 삼은 한 소녀의 모습을 통해서다. 영화는 이 소녀가 유대인들을 위해 몰래 다니며 먹을 것을 숨겨놓는 과정을 열화상 카메라로 담아낸다. 인적조차 드문 어두운 밤이며, 열화상 카메라를 사용했기 때문에 영화에서 소녀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관객들의 시선은 소녀의 움직임을 숨죽이며 따라가게 된다. 그리고 칠흑같이 어두웠던 역사의 어느 순간에도 분명 존재했을 작고도 소중한 온기를 느끼게 된다.

보이지 않음으로 극명하게 아우슈비츠의 비극을 보여준 <존 오브 인터레스트>. 그렇게 이 작품은 홀로코스트 영화의 역사성, 예술성을 더욱 발전시켜 관객이 그 참상을 오롯이 기억할 수 있도록 돕는다.

 

*사진 출처: 네이버영화

글·김희경
인제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영상물등급위원회 자체등급분류 사후관리위원, 국제영화비평가연맹 한국본부 사무총장, 은평문화재단 이사, 영화평론가, 만화평론가로 활동. 前 한국경제신문 기자, 前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예술경영 겸임교수, 前 한국영화학회 대외협력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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