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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경의 시네마 크리티크] 자조적인 따뜻함, 그 위안에 대하여-<사랑은 낙엽을 타고>
[김희경의 시네마 크리티크] 자조적인 따뜻함, 그 위안에 대하여-<사랑은 낙엽을 타고>
  • 김희경(영화평론가)
  • 승인 2025.01.06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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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견뎌내야만 하는 현실 속에서 타인에게 곁을 내어주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사랑 앞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랑은 현실 앞에서 턱없이 무력해지곤 한다. 현실에 찌들어 있는 나 자신으로 인해 씁쓸한 결말을 맺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사랑은 세상 속에 존재하고 지속된다. 누군가에게 기대고 의지하며, 서로 따뜻한 위안을 건네고자 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니까.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의 <사랑은 낙엽을 타고>(2023)는 현실과 현실 속 인물들을 자조적으로 반영하면서도, 사랑으로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작품이다. 나아가 남녀 간의 사랑이라는 외피를 떠나, 차가운 현실에 놓인 현대인에게 깊은 위안을 선사한다.

 

영화는 안사(알마 포외스티), 홀라파(주시 바타넨)의 만남과 사랑을 다룬다. 마트에서 일하던 안사는 유통기한이 지난 샌드위치를 챙겨왔다는 이유로 해고된다. 그러다 술집에서 설거지 일을 하게 되고, 열악한 환경에서 고된 일상을 보낸다. 홀라파는 건설 노동자로, 일을 할 때도 몰래 술을 마셔야 할 정도로 알코올 중독에 빠져있다. 두 사람이 만난 장소는 작은 가라오케이다. 노래와 술로 지친 하루를 달래는 노동자들이 주로 이곳을 찾는다. 가라오케에서 호감을 느낀 두 인물은 점차 사랑에 빠지게 된다. 영화는 두 인물의 현실과 사랑을 애처롭게 다루지도, 다정하게 다루지도 않는다. 커피를 함께 마시자는 제안에 “시간은 있는데 돈이 없다”라는 답을 하는 등 자조적이면서도 무심한 대화들을 툭툭 배치하는 식이다.

 

또한 영화는 21세기 현대를 배경으로 한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고전적인 방식으로 전개된다. 두 사람이 종이에 전화번호를 남겨 이후의 만남을 약속하는 식이다. 그리고 그 쪽지는 바람에 날아가며 만남은 어긋나고 지연된다. 그러면서도 영화는 라디오를 통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소식을 반복적으로 전하며, 영화 속 인물들이 엄연히 관객들과 동일한 현재를 살아가고 있음을 각인시킨다. 나아가 이를 통해 안사와 홀라파에게 닥친 해고와 고용 불안 문제에도 동시대성을 불어넣게 된다.

영화에서 두 인물이 연결되는 장소는 극장이다. 이들이 만남을 약속하는 장소도 극장이며, 재회하는 장소도 극장이다. 치열한 삶을 사는 가운데 만남은 의도치 않게 어긋나거나 지연될 수 있지만, 끝내 안식의 공간에서 서로 마주하게 됨을 의미한다. 그렇게 영화는 극장이 현대인에게 늘 휴식과 만남, 위안의 장소가 되고 곁에 머물 것임을 암시한다.

 

*사진 출처: 네이버영화

글·김희경
인제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영상물등급위원회 자체등급분류 사후관리위원, 국제영화비평가연맹 한국본부 사무총장, 은평문화재단 이사, 영화평론가, 만화평론가로 활동. 前 한국경제신문 기자, 前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예술경영 겸임교수, 前 한국영화학회 대외협력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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