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해의 계획을 세우는 연초가 되면 성수기를 맞는 곳이 있다. 점집과 철학관이다. AI시대에도 여전히 유명 점집들은 문전성시를 이룬다. 오히려 인터넷 상담 등 다양한 형태로 ‘운세 서비스’를 이용하려는 고객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미신에 대한 사람들의 흥미는 미디어에서도 발견된다. 유명인의 운수를 풀이하거나 타로 상담을 하는 유튜브가 인기를 얻고, 한국산 오컬트 영화 <파묘>와 무속인들의 연애를 보여주는 예능 <신들린 연애>가 흥행했다. 일반 토크쇼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도 양념처럼 미신을 곁들이는 경우가 많다. <런닝맨>에서는 연례행사처럼 신년 운세 특집을 방영하고, <무엇이든 물어보살>은 ‘보살’들이 점괘를 풀어 사연자의 고민을 해결해준다는 콘셉트다. 흔히 사람들은 미신을 하찮게 여기면서도 그것에 이끌리는 측면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미신 담론’이 형성된 것은 1920~30년대 무렵이다. 과거에는 질병의 원인이 귀신에게 있다 여겨 주술적 치료를 시도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아픈 사람을 의사가 아닌 무당에게 데려가 복숭아 가지로 때린다든가, 부적을 태운 물을 먹인다든가 하는 식이었다. 이런 비과학적 행위를 하다가 제대로 된 치료 시기를 놓쳐 신체 불구가 되는 일도 있었다. 식민지 시기 일본 당국은 이러한 풍속을 ‘미신’이라 비판하며 근대 의학과 위생 개념을 적극적으로 주입했다. 이 시기를 전후로 우리나라에서 무속 신앙의 존재는 크게 격하된다.
이렇게만 보면 ‘미신 담론’은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 것 같지만, 한편으로 이것은 일제 식민통치의 도구로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비판의 대상이 된다. 일제는 ‘조선인은 불결하고 우매하다’는 인식을 형성하며 우리의 신체와 사상을 통제하려 하였다.[1] 이 점에서 미신은 민족주의와 결합한다. 한국 고유의 무속 신앙이 식민지 근대화와 함께 미신으로 폄하되고 축출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이 영화 <파묘> 흥행에 힘입어 ‘K-무속’의 전통적 의미를 조명하는 목소리로 존재감을 드러낼 법도 한데, 요즘 대놓고 무속 신앙을 긍정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은 보기 어렵다.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정치권 이슈와 무속인 논란으로 나라가 시끄러운 영향이 크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이렇게 비과학적인 것들이 살아남는 이유는 무엇일까?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볼 때 원시 시대 인간들은 포식자의 위협에 상시 대비해야 하는 환경 속에 있었다. 풀숲이 흔들리는 소리를 듣고 아무런 위험을 감지하지 않는 쪽과 천적의 접근을 상상해내는 쪽 중 누가 살아남았을까. 더 예민하고, 사건의 인과관계를 잘 파악하는 존재가 생존에 유리했던 것이다. 미신은 이와 같이 주변 환경을 이해하고 통제하려는 욕구에서부터 비롯된다. 현대 문명 사회에는 더 이상 천적의 위협이 존재하지 않지만, 신체의 진화 속도가 그를 따라가지 못해서 아직까지 그러한 정신 문화가 남아있다는 것이 진화심리학자들의 의견이다.[2]
나는 이런 입장에 절반만 동의한다. 인간이 스스로를 생존에 최적화하는 방식으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미신이 발생했다는 점은 동의하지만, 그것이 미처 퇴화하지 못한 ‘흔적 기관’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가시화된 ‘천적’이 존재하지 않을 뿐, 인간은 현대로 올수록 자신이 파악하고 통제하기 어려운 환경을 마주하게 되었다. 봉건 시대에 인간은 신분제도에 의해 태어나면서부터 운명이 결정되었다. 근대에 접어들면서 인간은 노력에 따라 어느 정도 계층 이동이 가능해진다. 그래서 ‘장래희망’이라는 것은 근대 시대의 산물이다. 그런데 현대 사회로 오면서 규칙이 더욱 복잡해진다. 급변하는 현실 속 인간의 운명은 성실함보다 운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시키는 대로 공부만 하면 된다던 어른들의 말과 달리, 우리가 마주한 것은 하루아침에 벼락부자와 벼락거지가 탄생하는 현실이다. 사회의 트렌드가 너무 빨리 바뀌어서 무언가를 계획하고 진득하게 준비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요즘 젊은이들이 뚜렷한 장래희망이 없고 코인, 주식, 부동산 같은 금융소득에 관심을 가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과학’과 ‘합리성’이 한 세트인 것 같지만, 과학기술이 발전한다고 해서 우리가 바라보는 사회가 더 합리적으로 변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비합리적이고 비일관적인 현상들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일관된 공식을 도출하기 어려운 시대인 것이다. 이런 와중에도 사람들은 나름대로 세상의 규칙을 파악하려 애쓰는데, 그 방법 중 하나가 미신이라 볼 수 있다.

요즘 청년들 사이에 ‘끌어당김의 법칙’ 같은 유사과학이 대유행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자기계발 이론과 미신의 중간쯤에 있는 것으로 평가되곤 하는 이 이론은 ‘유사한 에너지가 유사한 결과를 끌어당긴다’는 원리를 바탕으로 한다. 이는 누군가의 머리카락 태우거나 부두 인형을 만드는 ‘전염 주술’과도 비슷한 메커니즘이다. 이 이론을 신봉하는 자들을 비웃는 사람도 많지만, 개인적으로는 염세주의와 무기력증에 빠지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동기부여 효과는 있지 않겠는가. 무속 신앙이나 사주명리, 타로, 별자리 등도 다 마찬가지다. 점을 보는 사람들은 자기 삶을 진단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갈 의욕을 지닌 사람들이라 생각한다.
사실 미신에 조금도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은 드물다. 미신을 정말 싫어하는 나의 어머니도 빨간 볼펜으로 이름을 쓰지 않고, 내가 다리를 떨면 ‘복 나간다’며 핀잔을 준다. 점복은 우리 문화적 관습과 결합 되어 있는 측면이 있고, 또 마음이 힘든 사람들의 상담 수단이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이를 우리 사회에서 축출해야 할 불온한 것으로까지 여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개인의 심리적 위안을 위해 사용할 때만 존중받을 수 있으며, 공적 영역으로 끌고 오는 것은 절대 삼가야 할 것이다. 또한 개인적 믿음이라고 해도 과도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인간은 불안을 통제하기 위해 미신을 가까이 하지만, 역으로 그 미신이 불안을 만들어내고 인간을 통제하게 된다는 것도 기억하자.
[1] 문혜진, 「근대 위생담론과 판수의 치병의례」, 『역사와 세계』61, 효원사학회, 2022, 13쪽.
[2] 김동현, 「왜 미신을 믿는 것이 잘못인가?」, 『철학논총』112, 새한철학회, 2023, 73쪽.
글·김세연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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