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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승학의 시네마 크리티크] 절묘한 청출어람의 윤리: 영화 <승부>
[지승학의 시네마 크리티크] 절묘한 청출어람의 윤리: 영화 <승부>
  • 지승학(영화평론가)
  • 승인 2025.04.07 1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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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無心)의 승부

영화 <승부>는 실존 인물들이 겪은 불안에 관한 영화다. 조훈현(이병헌)의 불안은 이창훈(유아인, 아역: 김강훈)에게서 기인하고 이창훈의 불안은 조훈현에게서 기인한다. 그 관계는 조훈현이 어린 이창호를 발굴하면서 시작한다. 함께 살며 조훈현에게 가르침을 받게 된 이창훈은, 겉보기에, 오로지 조훈현에게만 의지하며 성장하는 것 같다.

 

출처: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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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음 중요해지는 것은 이창훈의 그 천재적인 바둑 실력이 누구(자기 자신 아니면 조훈현) 덕에 더 성장하게 되었느냐의 여부가 아니라 이른바 그들의 공생 관계로서의 경험이 두 사람에게 어떤 의미를 남겼는가 하는 물음이다.

이 물음은 이창훈이 때마침 조훈현으로부터 제안을 받아 스승과 제자의 연을 맺게 된 사실에서 출발하여, 눈오는 어느 날 이창훈이 조훈현에게 큰 절을 올리면서 끝이 난다. 모두에게 성장이라고 할 수 있는 그 시간은 그 둘이 살벌한 경쟁 관계가 된다는 사실을 냉혹하게 암시한다.

 

출처: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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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와중에 이창훈은 좋은 제자이면서 좋은 승자가 되기는 힘들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승자가 되어야 한다는 목표가 좋은 제자도 되어야 한다는 윤리를 통제하지 못하면 그것은 불안으로 남는다.

이창훈의 마음에 새겨진 불안은 그가 스승을 이기고 나면서부터 현실이 된다. 그렇게 승부가 이창훈에게 기울면 기울수록 그의 불안은 점점 더 커져간다.

 

출처: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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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훈현은 이창훈의 그 불안을 감지하면서 같은 불안에 빠진다. 패배를 인정한다면 그간 쌓아온 명성이 무너질 테니 문제이고, 승리한다 해도 제자를 이긴 것이니 그것도 문제다. 두 경우 모두, 관계가 예전 같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조훈현과 이창훈과의 관계에서 승패가 정말로 중요한 일인가를 확정하는 일이다. 이전까지는 그런 고민을 한 적이 없는 조훈현은 이창훈과의 대결에서 얻은 불안을 통해 다음과 같은 깨달음에 다가선다. 승패는 결과이고 승부는 과정이라는 사실. 그 결과, 조훈현은 모든 조건에서 벗어나 오로지 승부에 참여하는 것만이 순수하게 중요해지는 순간을 맞이한다. 무심(無心)의 의미는 거기에서 완성된다.

 

출처: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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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무심으로써 승패를 초월한다. 조훈현은 승패에 집착한 자신을 극복한 것이다. 이는 조훈현의 담배가 캐러멜로 바뀌는 것으로 상징된다. 여기서 나는 승패에 더욱 집착하느라 건강을 생각하게 되어 담배를 캐러멜로 바꾸게 된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에 반대한다. 그건 승패에 집착하는 우리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거치면서 강화된 세속적인 관점일 뿐이다. 승패를 초월하여 자신을 극복했다는 징표. 캐러맬은 그 의미에서 빛을 발한다. 그래서일까. 제자 이창훈의 불안 역시 캐러맬의 등장과 함께 사라진다.

왜냐하면, 이창훈의 불안도 마찬가지로 승패에 대한 불안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반집 승리의 목표는 오로지 승패에 집착한 결과 아니던가.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스승과 제자로 남는다. 그건 무심의 승부 속에서는 그들의 관계가 영원히 깨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출처: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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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두 사람의 경쟁 불안은 무심의 승부 속에서 해소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불안은 그들의 관계에서 출발한 것이므로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승부는 오직 각각 처한 자신의 상황을 극복하는 과정일 수밖에 없다.

이 영화의 백미는 이러한 두 사람의 관계를 과하지 않게, 충분히 공감할 수 있게 말해주는 그 이야기의 순수함에 있다. 영원한 관계의 깨끗한 순수함. 좀처럼 발견하기 힘든 긍정적인 경쟁관계의 균형미. 어쩌면 영화<승부>에서 말하려는 이런 관계의 미학은 절묘한 청출어람의 윤리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글·지승학
영화평론가. 문학박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홍보이사,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 부문으로 등단. 현재 고려대 응용문화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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