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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필립의 시네마 크리티크] 드라마 <천국보다 아름다운>, 죽음과 사랑에 대한 유쾌한 명상
[윤필립의 시네마 크리티크] 드라마 <천국보다 아름다운>, 죽음과 사랑에 대한 유쾌한 명상
  • 윤필립(영화평론가)
  • 승인 2025.06.02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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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보다 아름다운 공식 포스터(JTBC 제공)
천국보다 아름다운 공식 포스터(JTBC 제공)

죽음은 출구인가 아니면 또 다른 입구인가? 드라마 <천국보다 아름다운>(JTBC, 2025)은 이러한 물음에서 출발해 삶과 죽음, 사랑과 이별을 따뜻하면서도 낯선 풍경 속에 그려낸다. 이 드라마는 단순한 판타지 로맨스를 넘어선다. 김석윤 감독의 카메라는 사후세계를 마치 또 하나의 사회처럼 조형하며, 사랑의 지속 가능성과 인간 존엄의 회복이라는 묵직한 화두를 던진다.

주인공 이해숙(김혜자)은 병들어 쇠약해진 남편 고낙준(박웅)을 오랫동안 간병하다 남편이 죽은 후 뒤늦게 천국에 입성한다. 그러나 천국에서의 남편은 30대 청년(손석구)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그렇게 이들은 두 번째 사랑을 시작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천국의 시공간보다 그들이 어떤 모습으로 사랑할 것인가라는 물음이다. 해숙은 노인의 육신으로 생전에 가장 사랑받았던 모습을 선택하고, 낙준은 젊은 육체로 부인의 마음을 다시 얻으려 한다. 이 모든 서사는 나다움의 복원이라는 관념과 맞닿는다.

 

드라마 속 목사(류덕환)와 해숙(김혜자)의 대화 장면(JTBC 제공)
드라마 속 목사(류덕환)와 해숙(김혜자)의 대화 장면(JTBC 제공)

이 드라마에서 김혜자는 70년을 향해 가고 있는 연기 인생의 농밀함을 쏟아부었다. 대사보다 침묵으로, 눈빛보다 쉼표로 감정을 표현함으로써 애절함이 아닌 체념에서 비롯된 해숙의 사랑이 절절하게 전달되며, 드라마 속 부부가 겪었을 노년의 슬픔은 주름진 얼굴 위에서 따뜻한 미소로 승화된다. 천국에서 김혜자의 상대역으로 등장하는 손석구는 청춘의 육체를 지닌 노년의 영혼이라는 이중적 인물을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이는 단순한 로맨스를 넘어서 세대 간 단절을 회복하는 은유로 기능한다. 이러한 두 사람의 연기 합은 이 드라마의 서정적 중심축이며, 특히 회상 장면에서 말보다 감정이 앞서는 사랑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이러한 가운데 신민재(짜장 역)와 김충길(짬뽕 역)은 천국의 일상을 대표하는 인물로 등장해 극의 리듬을 정교하게 조율하며 코믹 요소를 더한다. 이들은 고봉수 감독의 저예산 코미디 <습도 다소 높음>(2021)에서 보여준 풍자적 에너지를 넘어 이 작품에서는 정제된 감성과 사려 깊은 감정 전달로 한층 성장한 모습을 보여준다. 신민재는 유쾌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말 없는 순간에서 온기를 더하며, 김충길은 생활 밀착형 연기를 감성적 톤으로 전환시켜 보는 이로 하여금 천국조차 낯설지 않게 만든다.

 

영화 습도 다소 높음(고봉수, 2021) 포스(네이버 영화)
영화 습도 다소 높음(고봉수, 2021) 포스(네이버 영화)

이 드라마가 우리 시대에 던지는 함의는 분명하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삶을 되돌아볼 기회라는 것이다. 천국에서 인물들은 덕업(德業)으로 결제하고, 지옥행을 막기 위한 선택이 인간의 존엄과 구원의 가능성을 암시한다. 이는 무겁지 않은 철학적 상상력으로, 현대인이 금기시하며 기피해 온 죽음 담론을 새롭게 열어젖힌다. 특히, 고령화 사회에서 노년의 사랑과 존재 가치를 전면에 내세운 점은 시대정신의 반영이자 사회적 금기를 부드럽게 전복하는 시도다.

촬영과 연출 역시 주목할 만하다. 김석윤 감독은 사후세계를 밝고 생기 넘치는 색조로 그리며, 천국을 삶의 연장이 아닌 또 다른 형태의 공동체로 시각화한다. 간혹 등장하는 천국과 지옥의 기하학적 미장센은 초월적 공간감을 살리는 동시에 현실과의 미묘한 거리감을 유지한다. 또한, 회상 장면과 현재 시점 사이의 전환은 몽타주의 교과서적인 완성도를 보이며 시청자들에게 시간의 흐름이 아닌 감정의 연속성에 집중하게 하고, 결과적으로 시청자의 향수와 회환을 자극하며 극의 정서적 결을 매끄럽게 지탱한다.

 

천국의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는 해숙(JTBC 제공)
천국의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는 해숙(JTBC 제공)

 

<천국보다 아름다운>은 삶과 죽음 사이의 틈을 따뜻하게 메우는 드라마다. 그것은 죽음이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아직 전하지 못한 사랑을 다시 한번 표현할 기회가 될 수 있음을 말한다. 즉, ‘그때’ ‘그 말’을 하지 못했던 ‘나’에게 손을 내미는 작품이며 지금의 삶을 더 절실히 살아가게 만드는 조용한 울림이다. 이렇게 본다면 천국보다 아름다운 것이란 어쩌면 지금 이 순간, 누군가를 다시 사랑할 수 있다는 희망이 아닐까 싶다.

 

 

글·윤필립

영화평론가, 응용언어학자, 영상번역가. 학부에서 국문학과 영문학을, 대학원에서 국어학과 한국어교육학을 전공하였으며, 석사 과정에서 <대중문화론> 수업을 통해 한국 공포영화와 그 이론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사)한국시나리오작가협회에서 극영화 시나리오를 공부하며 영화의 내러티브 분석력을 훈련했고, 제1회 나라꽃 무궁화 스토리 텔링 공모전에서 동화 부문 입선을, 서울국제사랑영화제(SIAFF) 기독교 영화비평 대상 수상을,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 부문 당선을 했다. 만화평론상,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 심사위원, 영평상 집행부와 한겨레신문 <한국영화사 100년, 한국영화 100작품> 집필진 등을 역임했다. 대학에서 한국어교육 담화분석, 한국 대중문화, 인문치료 분야에 집중하며 연구하고 강의하는 한편, 《르몽드 코리아》, 《영화의 전당》, 《경기일보》 등에 글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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