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은 부드러운 신을 신고 걸어 들어온다./천둥 뒤의 침묵을 입은 채.//비는 이미 말했고,/씨앗들은 그것을 들었다.//이제 옥수수는 태양과 협상한다./더도 덜도 아닌,/딱 필요한 만큼만을 요구하며.//강은 논쟁하지 않는다./중력의 말에 순응하며 흐른다./파문(波紋)만으로 논의를 대신한다.//~(중략)~//사람들도 여기서 배워야 한다./굽힘은 부러짐이 아니며,/침묵은 때로/가장 큰 말이다.”
- <6월-협상의 계절(June-The Month of Negotiation)>, 칼 샌드버그(C.A.Sandburg) -
봄의 연둣빛 푸르름에 생명의 소리를 가득 채우는 달. 푸르른 뜨거움을 향해 가는 시간은 낮과 밤의 길이를 양극화한다. 소리와 색으로 변해가는 자연은 생장을 좇는 긴장감과 만개를 향한 느슨함 사이에서 숨 고르기를 한다. 균형과 협력, 경쟁과 충돌이 공존한다. 이 계절의 전환기는 협상의 세계와 닮아있다. 협상은 새로운 질서와 가치를 향한 인간 진화의 변수이자 생태적 생존 기술이다. 진화와 생존을 향한 협상장에 들어서는 두 사람, 이성과 감성이 만난다. 협상의 풍경이 진경(眞景)으로 향하며 그 틀(Frame)을 그린다.
내쉬(Nash)의 / 협상 이론 / 마그리트(Magritte) / <인간의 조건>
자연이 봄의 긴장감을 떨치며 여름의 느슨함으로 넘어가듯, 협상은 각자의 논리 체계를 풀어서 상대의 언어 속성을 받아들이는 계절의 흐름과 닮아있다. 계절 전환의 리듬을 타며 푸르름이 이슬로 내리는 날. 협상의 틀을 찾아가는 길에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 1898년~1967년)의 <인간의 조건(La condition humaine)>(1933년)을 만난다.

<인간의 조건>은 현실과 환상, 인지와 표현을 통해 인간의 인식 방식에 대한 질문(‘우리가 보는 것은 무엇인가’, ‘보이는 것이 전부 인가’, ‘우리는 어디까지를 실제로 인식하고 있는가’)을 그린다. 그림은 창 바깥 풍경을 그린 캔버스를, 내부의 창 앞에 세운다. 캔버스는 우리가 보게 될 실제 풍경을 가린 채, 가려진 풍경과 같은 장면을 담고 있다. 커튼이 달린 커다란 창은 바깥의 풍경 소재와 내부의 표현 수단 간 경계를 나타낸다. 경계에 세워진 캔버스 위에 그려진 나무, 들판과 하늘의 풍경은 실제 창밖의 모습으로써, 외부와 내부가 구분되지 않고 이어져 있는 듯 보인다. 창밖의 풍경을 묘사한 캔버스가 창밖과 이음매 없이 연결되며, 보는 것과 믿는 것, 실재와 경험 사이의 경계가 무너진다. 이 초현실주의적 표현 기법을 통해 인간이 세상을 바라보고 인지하는 방식에 대해 말한다. 캔버스 속 또 다른 그림을 보며 인간은 실제 세상을 본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착시일 뿐이다. 인간이 보고 있는 것은, 경험과 고정 관념의 재현이다. 인간은 자신의 시공간이라는 제한된 틀 속에서 세상을 바라보며, 그 자체를 실재라고 간주한다.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실재가 아니라 보이는 것의 표상, 인식의 허상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는 인간의 관습과 익숙함이라는 캔버스에 의해 가려져 있는, 바깥의 실재를 인지하고 표현하는 것을 강조한다. ‘현실’과 ‘환상’의 관계를 해체하면서도, 동시에 그것들이 얼마나 밀접하게 균형을 이루며 인간 삶의 조건으로 작용하고 있는지를 드러낸다.
이는 내쉬(John F.Nash,1928년~2015년)의 협상 모델인 ‘내쉬 균형(Nash Equilibrium)’(1950년)과 상통한다. 협상의 게임장(場)에서, 의사결정의 주체는 상대방 전략에 대한 제한된 정보를 바탕으로,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최적의 선택을 하며 이를 고수한다. 이는 유기체 전체에서 그 선택들이 상호 충돌하지 않고, 더 이상 변하지 않는 안정적 결과를 낳는 상태인 내쉬 균형에 이르도록 한다. 즉, 캔버스 ‘그림 속 그림’이 실제 풍경과 이질감을 느끼지 않고 통합될 때, 인간은 내적 만족과 외적 조화를 동시에 얻는다. 내쉬의 협상 전략은 상대와의 일방적 충돌이 아닌 양 방향적 관계를 고려한 것이다. 이를 통해 선택한 각자의 최선은 최적이 되며, 서로에게 방해되지 않고 협상의 전략을 바꿀 유인이 없는 지점에서 균형을 이루며 멈춘다. 내쉬의 협상은 보이는 것과 계산할 수 있는 것, 전략과 신뢰, 개인의 이익과 공동체의 조화를 동시에 고려하는, 구조화된 상호작용의 예술과 그 궤를 같이한다. 그는 전면 충돌이 아닌 최소한의 마찰로 지속 가능한 질서를 찾고자 한다. 그것은 상대방의 조건을 그림처럼 읽어내고, 그 위에 나의 조건을 겹쳐보며 상생하는 능력이다. 그는 협상을 이성에 바탕을 둔 상호 이해와 조화의 산물로 본다.
마그리트의 <인간의 조건>과 내쉬의 협상 인식은, 서로 다른 언어 수단을 통해 공통의 지향점을 찾는다. 인간은 전체를 보지 못하며, 제한된 조건 속에서 자신의 틀에 맞추어 현실을 재구성한다. 이 조건은 인식 주체(관찰자, 전략 결정자 등)의 위치, 상대방과의 상호 관계를 반영한 선택적 전략의 결과이다. 그들은 모두 주관적으로 해석된 다층적 현실 속에서 구조적 안정성을 추구하며 더불어 살아간다. 이는 갈등과 충돌이 아닌, 균형과 조화를 통해 질서를 형성하려는 인간의 가치 추구 산물이다.
주체와 대상의 분리 불가능성을 강조하며, 전략은 독립적이되 타자와 연결되어야 한다고 제안한 내쉬의 협상을 위한 수학적 이상향이, ‘인간 인식의 조건’인 마그리트의 풍경화에 담겨있다.
터너(Turner)의 / <눈보라>는 / 트럼프의 / 협상 기술
계절은 하지를 지나며 장마의 운율을 실어 온다. 협상 틀은 빗줄기를 뚫고 윌리엄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1775년~1851년)의 <눈보라:항구를 떠나는 증기선(Snow Storm: Steam-Boat off a Harbour's Mouth)>(1842년)을 찾는다.

<눈보라>는 증기선을 중심으로 소용돌이와 색채의 교차를 통한 감정의 시각화를 극대화한다. 극심한 눈보라 속 밤바다를 향해 항구를 떠나며 위태롭게 흔들리는 작고 희미한 한 척의 증기선. 어둠 속 밤바다는 배를 희롱하듯 파도와 하늘과 구름이 하나로 어우러져 상승과 하강의 에너지로 꿈틀거린다. 휘몰아치는 나선형 에너지에 형태는 사라져가며 색이 지배하는 시공간.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색은 경계마저 모호하게 만든다. 격렬하게 나부끼는 듯한 선과 색이 형태마저 삼키고 있는 구성이지만, 가운데의 증기선이 전체 구도의 역동성을 이끈다. 폭풍의 어둠 속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으려 하는 인간의 힘과 의지를 드러낸다. 증기선이 진화를 위한 기술의 진보를 상징한다면, 그 어떤 방향성도 없이 소용돌이치는 눈보라는 인간이 나아갈 방향의 불확실성을 시각화한다. 이것은 곧 인간은 시간의 흐름을 통한 진보를 말하지만, 진실은 앞을 볼 수 없는 눈보라 속에 있다는 인식론적 메시지로 이어진다.
이는 곧 도널드 트럼프(Donald John Trump)의 협상 방식과 맞닿아 있다. 터너는 하얀 눈보라와 꿈틀거리는 바다를 휘청이는 배와 대비시키며, 인간의 욕망을 증기기관의 수증기로 피어오르게 한다. 이 풍경은 마치 트럼프식 협상장을 연상시킨다. 안정된 중심은 없고, 상대방은 심리적 공황 상태에 빠진다. 이 두려움과 부딪침의 시공간에 트럼프식 언어가 가득 채워진다. 그의 언어와 행태는 협상의 기술이라기보다는, 공감각적 감정의 폭풍이다. 그의 협상은 눈보라가 배경인 공격적 무대극. 그는 예측 가능성과 안정이 아니라, 불확실성과 교란, 압박의 지형 속에서 협상을 전개한다. 스스로가 만든 폭풍의 중심에 자신을 두고, 상대방을 그 속으로 끌어들이는 방식을 선호한다. 이 회오리의 역학 속에서 상대방은 자신의 기준을 잃고, 그가 설정한 조건에 순응하게 된다. 이는 터너의 <눈보라> 속 배처럼 방향 감각을 잃은 채, 생존을 위한 타협을 강요받는 것과 같다. 그의 그림은 빛과 색, 폭풍과 선체의 흐릿한 경계로 인해, 현실을 향한 이성이 사라져가는 듯한 느낌을 중첩으로 보여준다. 이는 트럼프 협상술의 핵심인 현상 교란, 이미지 왜곡 및 무분별한 감정 자극과 유사하다. 그는 전략적으로 현실의 뼈대를 흔들어, 협상 상대의 합리적 계산을 무력화시킨다. 이는 내쉬가 전제하는 이성을 전제로 하는 합리적 인간 모델의 붕괴이자, 상호 균형을 향한 협상 자체를 뒤집는 불균형 전술의 전형이다.
터너의 <눈보라>와 트럼프의 협상 기술은 형식적 대상 분야는 다르지만, 실질적 심층 구조에는 불확실성, 혼돈성과 중심성의 역설이라는 공통된 속성이 존재한다. 터너의 그림 속 증기선은 작고 존재를 상실한 듯 흔들리지만, 그 안팎에는 의지와 방향성의 에너지가 있다. 모든 방향에서 휘몰아치는 자연의 힘에 휘둘리면서도, 그것을 관통하려는 바다를 향한 의지가 긴장감으로 이어진다.
트럼프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는 ’증기선‘에 해당한다. 세계 무역 질서라는 ’눈보라‘ 속에서, 그는 미국이라는 국가를 중심에 놓고, 그 항로를 고집스럽게 유지한다. 그것이 국제적 신뢰를 저해하고, 글로벌 경제에 불확실성을 초래할지라도, 그는 ‘눈보라를 뚫고 나가는 배’라는 상징을 국민에게 주려 한다. 터너의 증기선은 자연의 위력 속에서 외롭게 고립되어 있지만, 중심을 잃지 않으며 명백히 존재한다. 트럼프 역시 글로벌 동맹의 균형 속에서 고립되어 가지만, 그 중심성은 협상장에서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터너는 고전주의의 정확하고 명확한 풍경화에서 벗어나, 감정과 에너지의 흐름을 전면에 내세운 근대적 시각 경험을 창출한다. 그의 작품은 현실을 정확히 모사하는 대신, 자연의 위력에 대한 체험의 감각을 제공한다. 트럼프의 협상술 또한 기존의 외교 방식(정중함, 합리성, 다자주의 등)을 깨고, 자기중심의 감정 동원 방식을 전면에 내세운다. 그는 국가 간 협상을 한 편의 드라마로 탈바꿈시키며, 마치 시청률 높은 리얼리티 쇼처럼 언론의 시선을 끌고 협상의 주도권을 장악한다. 터너의 그림이 기존 사조를 벗어나 새로운 사조의 경계를 넓힌 것처럼, 트럼프는 협상의 틀 자체를 새롭게 구성하며 그 언어와 가치를 피사체처럼 던진다. (추구 가치와 방법이 좋든 나쁘든).
주체와 대상의 분리를 강조하며, 전략은 독립적이되 타자와 단절되어야 한다는 트럼프식 협상은, 터너의 <눈보라>같은 정치・경제적 수사를 향해 소용돌이치는 풍경화로 재현된다.
협상 틀 / ‘정반합’ 정점 /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가 / 진경(眞景)이네
6월은 음과 양의 전환기다. 해는 강해지지만 동시에 장마가 시작되어 음기(陰氣)가 서서히 그 영역을 깊게 넓혀간다. 단순한 힘의 부딪침이 아닌 순환하는 에너지의 흐름으로 다가온다. 이슬, 안개, 소나기와 장마, 그리고 햇살. 자연의 흐름이 협상으로 이어지며 정선(1676년∼1759년)의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1751년)를 소환한다. ‘정(마그리트와 내쉬)-반(터너와 트럼프)-합’의 관점에서 협상이 가야 할 길을 걷는다.

협상이란 단순히 조건을 맞추는 퍼즐 게임(Puzzle Game)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 또는 세계와 맺는 관계 전략(Relationship Strategy)이다. 내쉬는 이를 위해 ‘내쉬 균형’이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이는 각자의 선택은 타인에게 의존하지만, 더 이상 누구도 일방적으로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즉, 협상의 참여자들이 상호 최적 반응을 통해 안정적인 평형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다.
<인왕제색도>는 내쉬의 균형 감각을 드러낸다. 이 그림에서 인왕산은 협상 당사자 간 이해관계의 기본 형태, 생성과 소멸의 동의어적 성격인 비구름과 안개는 관계 전략의 탄력적 유연성, 안개가 걷히며 드러나는 산세는 상생의 결과인 균형 도달을 의미한다. 이처럼 정적인 산세와 동적인 기상(氣象), 정체성과 대응성의 조화는 내쉬가 추구한 협상에서의 조율과 균형을 상징한다. 트럼프는 「거래의 기술(The Art of the Deal)」(1987년)에서 의도된 불확실성을 바탕으로 극단적 임계치 대안과 심리적 압박을 핵심 도구로 하는 협상술을 강조한다. 이것은 상대방의 약점을 부각하며 협상 판에서 밀어내기 위한 강박형 위협 전략이다. 이는 정선의 그림이 나타내는, 비가 온 후 구름이 산을 덮어 본래의 형체를 감추고 있는 것과 같은 정보 비대칭성(과장 및 조작, 가짜 포함)에서 시작한다. 산을 가리며 물기를 머금고 있는 먹구름 같은 모호한 압박과 호우를 닮은 위협적 언어 유희의 순간을 느린 듯 빠르게 드러낸다. 트럼프식 협상은 이처럼 상호 협력을 통한 균형 대신, 자의적 정보 왜곡을 통한 긴장과 불확실성 속에서 승자의 자리(Lion's share)를 독식하기 위한 불균형 전략이다.
결국 협상을 향한 내쉬의 균형 이론과 트럼프의 불균형 기술은 조화와 긴장의 이중주로 다가온다. 협상장에서 내쉬는 상호 작용을 전제로 한 이성적 운율을 연주하고, 트럼프는 감성적 리듬을 추구한다. 이 점에서 <인왕제색도>는 정–반–합의 상징적 귀결로 해석된다. 폭풍우가 지나간 뒤, 인왕산의 모습은 더 깊은 명암과 윤기를 띠며 드러난다. 운무와 햇빛은 내쉬와 트럼프가 지향하는 협상을 위한 전략의 공존, 비 온 후의 맑음은 협상 과정의 갈등 극복, 그리고 산세의 드러남은 협상의 결괏값을 상징한다. 협상에 대한 내쉬의 이론이 산의 기본 형태라면, 트럼프의 기술은 비와 안개다.
<인왕제색도>는 정태적이며 고정적인 듯이 보이는 세상 질서 속에도, 동태적인 변화와 불확실성이 스며 있는 것을 나타낸다. 인간과 자연 간 관계가 변한 뒤, 더욱 심오한 풍경으로 드러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내쉬의 수학적 이성과 트럼프의 정치적 감성은 서로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진정한 협상 풍경을 완성하기 위한 정–반의 요소로써 합의 정선을 만난다. 정선의 풍경은 협상이 단순한 이익과 욕망의 교환이 아니라, 상호 존재의 관계 조건을 회복하는 인간 생태계의 주요 과정임을 깨닫게 한다. 이는 자연이 스스로 만들어낸 협상 틀의 구조이며, 생태적 질서 회복을 위한 침묵적 미학이다. 생명의 소리로 가득한 6월의 어느 날. <인왕제색도>에서 협상의 진경(眞景)을 본다.
글·최양국
격파트너스 대표 겸 경제산업기업 연구 협동조합 이사장.
전통과 예술 바탕하에 점-선-면과 과거-현재-미래의 조합을 통한 가치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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