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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생명 임원 아들이자 삼성생명 수원지역단 사원 A씨가 만취한 상태에서 주차관리원을 폭언·폭행해 기업의 갑질논란이 또다시 불거지고 있다. 사진은 '사람, 사랑'이 새겨진 삼성생명 로고 이미지. |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다. 개인의 취약성을 고려해 기본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보살피거나 분배하기보다는, 구성원 모두를 ‘자유롭게’ 경쟁시켜 승리한 이를 우선 돕고 국가 전체의 성장률 지표를 높이는데 골몰한다. 이렇게 성장해 이탈리아와 스페인보다 조금 모자란 1인당 GDP 2만 5990$를 기록하고 있지만, 대한민국의 대다수가 그 숫자만큼 삶의 질이 높아졌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힘센 대기업 위주로 운영된 국가는, 그동안 축적한 부(富)를 제대로 나누려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불평등은 사회적 불평등으로까지 확산됐고, 급기야 19세기 말에 폐지된 신분제도까지 불러왔다. 기업의 갑질이 그것의 가장 쉬운 예다. 돈이 있으면 욕을 해도, 폭행해도, 강간해도 그 죄는 가벼워지고 상쇄되기 까지 한다. 돈으로 재편성된 신분제도가 현대 대한민국에서 작동되고 있는 것이다.
“개인 대 개인간 일일뿐, 원만하게 해결” 일축…삼성생명 이상무?
최근 잠잠하던 대기업 갑질이 삼성생명으로 하여금 터졌다. 또다시 주차관리 직원을 대상으로 한 폭력이었다.
지난달 말 삼성생명 수원지역단의 20대 사원 A씨는 삼성생명 건물에 주차된 차량을 빼기 위해 주차관리인 B씨(59세)에게 주차장 입구를 열라고 한다. 하지만 삼성생명 수원지역단 건물은 오후 10시 이후 주차장 입구를 잠그는 것이 관리규정이다.
만취 상태였던 A씨는 B씨가 관리규정에 어긋난다며 거부하자 고성을 퍼부었고 급기야 폭언을, 그리고 폭행을 가했다. 게다가 A씨의 부친은 현재 삼성생명 임원으로, A씨가 소위 ‘아버지빽’을 믿고 아버지뻘인 주차관리 직원에게 해서는 안 될 짓을 한 것 아니냐는 비난도 일각에선 나오고 있다. 올해 상반기 거듭 있었던 재벌 3·4세의 갑질과 그 유형이 흡사하다는 의견도 다수다. 대기업 임원 자녀의 갑질이라는 것.
하지만 더 황당한 것은 이에 대한 기업의 대응 방식이었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6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불미스럽긴 하지만 개인 대 개인 간의 일이었고 결과적으로 원만하게 해결됐다”며 단지 개인의 일로 축소시키는데 급급했다. 또한, A씨가 만취된 상태에서 운전을 하려고 했던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그건 알 수 없는 것이고, 이번 일과는 관련이 없는 질문인 것 같다”고 일축했다.
만일에 B씨가 규정을 어기고 주차장 입구를 열었다고 하더라도 또 어떤 사고가 발생했을지, 그 경우의 수는 다양하다.
또한 삼성생명 관계자는 사건당사자들의 현재 상태에 대한 본지의 물음에, 잘 모르고 파악해야하는 부분이며 그것 역시도 개인적인 부분이라고 답했다.
한 언론 매체에 따르면, A씨는 현재 일주일이 넘도록 출근을 하고 있지 않으며, 주차관리인 B씨는 휴가를 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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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직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축소하는 순간 조직은 본질적으로 수정되지 않고, 또다시 문제를 안고 반복하게 된다. |
도마뱀 꼬리 자르듯 개인의 일로 축소…문제 회피 익숙한 사회
이득을 취할 때는 함께 모이고, 문제가 발생하면 흩어지는 것이 대한민국 정재계의 가장 보편적이고 기본적인 문제 해결 매뉴얼이다. 이 방법은 조직 전체를 건드리지 않고도 최소한의 손상으로 덫에서 빠져나갈 수 있게 한다. 그래서 조직은 본질적으로 수정되지 않고, ‘꼬리’ 하나 자르고 또다시 문제를 안고 반복하게 된다.
A씨와 B씨는 같은 선상에 서 있지 않다. A씨는 대기업의 20대의 젊은 정규직에 부친은 그곳의 임원이다. 반면에 B씨는 낮밤 상관없이 교대하며 대기업 정규직의 차를 관리하는 50대 비정규직이다. A씨는 유흥을 즐기다가 술이 만취된 상태였고, 늦은 밤임에도 B씨는 업무 중 규정을 지키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A씨는 욕을 했고 폭력을 가했지만 B씨는 욕을 먹었고 폭력을 당했다.
일방적으로 누군가는 가하고 누군가는 당한 시점에서 이것을 개인적인 일로 축소하고 은폐할 수 있는 것일까. 이것은 동등한 상황에서 벌어진 일개 다툼이 아니다. 한 대기업의 문화와 구조, 그리고 문제 회피가 익숙한 대한민국의 단면을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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