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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문학의 출구, 가라타니 고진
근대문학의 출구, 가라타니 고진
  • 이충신/기획위원
  • 승인 2010.04.09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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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근대문학의 기원>
가라타니 고진 지음, 박유하 옮김, 도서출판b 펴냄, 2만원
<정치를 말하다>
가라타니 고진 지음, 조영일 옮김, 도서출판b 펴냄,1만5천원

<일본근대문학의 기원> 가라타니 고진 지음, 박유하 옮김, 도서출판b 펴냄, 2만원 <정치를 말하다> 가라타니 고진 지음, 조영일 옮김, 도서출판b 펴냄,1만5천원

 

<일본근대문학의 기원> 가라타니 고진 지음, 박유하 옮김, 도서출판b 펴냄, 2만원 <정치를 말하다> 가라타니 고진 지음, 조영일 옮김, 도서출판b 펴냄,1만5천원 

 

“내가 ‘근대문학의 종언’이라고 말한 것은 특별히 문학의 종언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특수한 문학, 그보다는 특수한 의미를 부여받은 문학의 종언이다. 문학을 특별히 중시하는 시대의 종언이다. 문학을 소재로 삼음으로써 무언가 가능했던 시대가 끝났기 때문이다.”

 당·학문 대신 선택한 문학
 몇 년 전 <근대문학의 종언>을 발표해 문학계에 큰 논쟁을 불러일으킨 일본의 세계적 사상가 가라타니 고진의 저서 두 권이 새롭게 나왔다. <정치를 말하다>와 <일본근대문학의 기원>(개정 정본판)이다. 가라타니 고진이 지금까지 펴낸 저작이 하나의 훌륭한 건축물이라면 <정치를 말하다>는 그 건축물의 골격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려준다. 일본의 소설가 고아라시 구하치로가 묻고, 가라타니 고진이 답하는 형식인 이 책은 1960년대 대학 시절부터 가장 최근까지 사상의 지평을 넓혀온 ‘인간 가라타니’를 엿볼 수 있다. 1960년대 당시 그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세 가지였다. 당을 결성하든지, 대학에 남아 학문을 하든지, 문학을 하는 것이었다. 그는 결국 문학의 길을 걸었고, 일본을 대표하는 사상가가 됐다. 가라타니는 <트랜스크리틱> <역사와 반복> <네이션과 미학> <일본근대문학의 기원> <근대문학의 종언> <세계공화국으로> 등 그의 저서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정치’를 말한다.
 1980년에 출판돼 이미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일본근대문학의 기원>도 새롭게 나왔다. 이 책은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이 차지하고 있던 영향력에 비견될 정도로 한국 문학 연구에 큰 영향력을 끼쳤다. 가라타니의 근대성 분석이 일본 근대문학 연구를 넘어서 ‘근대문학’ 연구 자체의 보편성을 획득했기 때문이다.
 그가 의식했던 문제 중 하나는 정치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1960년대 이후 일본 사회는 급진적 정치운동이 좌절되자 ‘문학’으로 발길을 돌렸다. ‘내면’을 향하는 일을 통해 모든 공동 환상으로부터 ‘자립’하는 일이 가능한 것처럼 여겼다. 가라타니는 그런 경향에 부정적이었지만, 단순히 ‘정치’를 말하는 것만으로는 그것을 부정할 수 없다고 여겼다. 좀더 근본적 비판이 필요했다. 그때 그가 알게 된 것은 그런 현상이 메이지 20년대(1887~96)부터 되풀이돼왔다는 사실이다.

 자유민권과 권선징악의 결합

▲ <한겨레> 이정용 기자
 일반적인 문학사에서 근대문학은 권선징악을 부정하는 데서 그 이념이 확립된다. 하지만 그는 권선징악은 에도시대 유교적 가치에 기반을 둔 전근대적 문학이 아니라, 일본에서 근대화가 시작된 메이지 10년대(1877~86)에 자유민권운동과 밀접한 관련을 맺은 정치소설의 경향을 띠었다고 말한다.
 메이지 20년대 정치현실에서 자유민권운동은 좌절했다. 대신 껍데기뿐인 헌법과 의회가 주어졌다. 메이지 20년대의 근대문학은 자유민권 투쟁을 계속하는 대신 그것을 경멸하고 투쟁을 내면적 과정으로 바꿔치기하는 것으로 사실상 당시 정치체제를 긍정했다. 그런데 1970년대에 그런 현상이 다른 문맥에서 반복되고 있었다. 가라타니가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 비판하려 했던 것은 그러한 ‘문학’, ‘내면’, ‘근대’였다.
 일본 사회는 1980년대에 들어서자 소비사회 현상과 함께 포스트모더니즘이 한 시대를 풍미했다. 1984년 가라타니는 평론 <비평과 포스트모더니즘>을 발표해 일본적 포스트모더니즘(근대의 초극)에 대립했다. 그 결과 그는 주위에서 ‘근대주의자로 전향했다’는 평을 들었다. 실제로 그는 전형적 근대주의자로 간주되던 당시 일본 최고의 사상가이자 정치학자인 마루야마 마사오를 다시 읽고 평가했다. 이는 그가 근대주의자를 지지했기 때문이 아니다. 마루야마는 <일본의 사상>에서 나카에 초민의 말을 인용했다. 민권론을 들이대며 “이론으로서는 진부하되 실천으로서는 신선하다”고 말한 것이다. 이 말은 근대주의·시민주의가 아무리 진부하더라도 일본에서 근대도 시민도 실현된 적이 없는 한 지금도 여전히 신선하다는 것이다. 실천되지 않은 이론은 진부하게 보일지라도 신선하다는 나카에 초민의 말은 가라타니에게도 ‘신선’했다.
 1989년은 동유럽 사회주의가 붕괴하던 때였고, 일본에서는 쇼와 천황이 사망한 해였다.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역사의 종언’이라는 말로 시대를 규정하던 때다. 가라타니가 역사에 대한 나름의 새로운 관점을 확보하는 데 결정적 준거로 끌어들이는 것이 카를 마르크스의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이다. 이 저작은 ‘역사의 반복’이라는 문제를 다뤘다는 점에서 주목할 저작이라고 가라타니는 말한다. 마르크스는 “헤겔은 어디에선가, 모든 거대한 세계사적 사건과 인물은 두 번 나타난다”고 지적하고 있다. 가라타니는 ‘반복성’의 문제에 주목한다. 이 반복 강박은 경제 영역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호황과 침체를 반복하는 ‘경기순환’이야말로 반복 강박의 가장 적실한 사례인데, 가라타니는 정치 영역에서도 이 반복이 나타난다고 말한다.
 가라타니가 <일본근대문학의 기원>이나 <근대문학의 종언>에서 말하는 ‘언문일치’나 ‘풍경의 발견’은 근본적으로 ‘네이션-스테이트’ 장치다. 1990년대 말 이후 가라타니의 사상은 ‘트랜스크리틱’과 ‘세계공화국’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네이션과 미학>은 이같은 가라타니의 ‘네이션’(국민·민족·국가)에 관한 통찰을 보여준다.
 메이지 20년대에는 제국주의를 지탱하는 우승열패의 사회적 다위니즘(진화론)이 새로운 이론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그때는 ‘15년’(메이지 10년대) 전에 ‘민권’을 외치던 사람들이 일제히 전향한 상태였다. 민권적 내셔널리스트던 사람들이 이 시기에 제국주의적 내셔널리스트로 바뀐 것이다. 그때 일본 근대문학은 어떤 상황이었는가.
 “문학은 옛날부터 있었으며, 이후로도 있을 것이다. 옛날에는 문학이 근대문학같이 특별한 가치가 있지 않았다. 이후로 그같이 될 것이다. 즉, 근대문학에 있었던 것과 같은 특별한 가치를 부여받는 일은 없다. 이것은 문학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예술 영역에서도 같은 것이 일어나고 있다. 근대에는 예술에 특별한 가치가 부여됐다. 이는 국민국가에 불가결했기 때문이다. 이후로도 계속 필요하기 때문에 국가가 보호할 것이다.”  

 근대문학의 종언은 소멸 아닌 완성
 가라타니가 말하는 ‘근대문학의 종언’은 근대문학의 ‘소멸’이라기보다는 ‘완성’의 의미에 더 가깝다. 일정한 주기를 두고 되풀이되는 ‘정치소설-근대문학-프롤레타리아문학-전후문학(근대문학)-신좌파문학-근대문학’식으로 번갈아가면서 헤게모니를 잡아가는 반복적 과정으로 나타난다. 그렇다면 근대문학의 ‘종언’은 바로 반복의 ‘정지’(완성)를 뜻한다. 근대문학의 종언은 근대문학의 반복 강박이 사라지는 지점, 근대문학이 치유되는 막다른 지점에 꽂힌 이정표가 된다. 가라타니는 바로 이 지점, 막다른 ‘종언’에 이르러 그 ‘기원’을 되돌아보고 있다.

글•이충신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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