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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애의 시네마 크리티크] <새해전야>에서 <해피투게더>, <편지>, <하나비>까지
[송영애의 시네마 크리티크] <새해전야>에서 <해피투게더>, <편지>, <하나비>까지
  • 송영애(영화평론가)
  • 승인 2021.02.15 09:3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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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 보면 연상되는 다른 영화가 떠오르기 마련이다. 영화에서 영화로 끝말잇기 같은 영화 잇기를 하다 보면 여러 기억도 소환되는데, 오늘은 그렇게 떠오른 영화 몇 편과 관련 옛이야기를 좀 해볼까 한다.

 

- <새해전야>, 이구아수 폭포

시작은 지난 10일에 개봉한 홍지영 감독의 <새해전야>다. 코로나19 상황으로 개봉 일정이 미뤄지면서 음력 새해 전에 개봉한 이 영화에는 다양한 설정의 네 커플이 등장한다. 직업, 국적, 배경도 다양해서 더 호기심을 자극한다.

<새해전야> 포스터

형사, 여행사 사장, 카페 사장, 재활 트레이너, 원예사, 국가대표 스노보드 선수, 와인 배달부 등인 주인공 중에는 독일교포도 있고, 중국인도 있다. 그들은 서울과 평창, 부에노스아이레스 등지에서 오해하고, 화해하고, 사랑을 확인한다.

해피엔딩으로 가는 과정이 좀 급작스럽긴 하다. 아마도 사랑의 힘 덕분이겠지만, 주인공들 사이의 문제가 어느새 해결되어 그 과정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다들 아는 사이로 엮어진 주인공들의 새해 전야 감정의 변화를 따라잡기가 쉽지 않다.

대신 다른 볼거리가 많다. 김강우, 유인나, 유연석, 이연희, 이동휘, 천두링, 염혜란, 최수영, 유태오 등 화려한 출연진들의 연기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여행을 많이 하지 못하는 요즘의 상황에서 영화로나마 남산, 스키장, 그리고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이구아수 폭포를 구경할 수 있다.

 

<새해전야> 중
<새해전야> 중
<새해전야> 중

진아(이연희)는 연인에게 이별 통보를 받은 후, 무작정 멀리 아르헨티나로 떠난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만난 재헌(유연석)과 와인도 마시고, 탱고도 추고, 이구아수 폭포도 간다. 잠깐이지만 장대한 폭포의 모습에 압도당하게 되는데, 유쾌 상쾌 시원한 분위기의 이구아수 폭포라 설렌다.

 

- 이구아수 폭포, <해피투게더>

지구 반대편 아시아인들에겐 이구아수 폭포에 대한 로망이 있는 걸까? 왕가위 감독의 <해피투게더>(1997)에서 아휘(양조위)와 보영(장국영)은 이구아수 폭포를 보기 위해 함께 홍콩을 떠난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이구아수 폭포에 도착하기 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헤어지게 되고, 아휘 홀로 폭포에 도착한다.

폭포 앞에 선 아휘의 내레이션이 흐른다. “이구아수 폭포에 도착하니 보영 생각이 났다. 슬펐다. 폭포 아래 둘이 있는 장면만 상상해 왔기 때문이다.” <해피투게더>가 담아낸 이구아수 폭포는 신비롭지만 우울하다.

<해피투게더>도 지난 4일 리마스터링 버전이 재개봉되어, 현재 국내 영화관에서는 이구아수 폭포를 각기 다르게 담아낸 두 편의 영화가 상영 중이다.

 

<해피투게더> 리마스터링 버전 포스터

- <부에노스아이레스>, 1998년

<부에노스아이레스>는 1998년 8월 국내 첫 개봉 당시 <해피투게더>의 제목이다. IMDb를 보니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이 제목으로 개봉이 됐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해피투게더>가 국내에 개봉되는 과정은 험난했다. 애초 예정보다 1년이 미뤄졌는데 1997년 수입심의를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지금이야 외국영화를 수입하기 위해 사전에 허가를 받을 필요가 없지만, 1997년엔 그래야 했다.

공연윤리위원회(이후 공윤)는 수입 불허 이유를 ‘영화의 일관된 소재가 동성애여서 한국 문화에는 시기상조’라고 밝혔다. (“왕가위 영화 <부에노스아이레스> 수입 불허”, <<동아일보>>, 1997년 7월 14일 26면)

 

<부에노스아이레스> 포스터

필자는 <해피투게더>가 수입이 불허된 직후인 10월에 뉴욕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감독과의 대화 시간에 한국에서 수입 금지된 이야기가 나왔고, 관객들이 실소를 터뜨렸던 기억이 남아있다.

사실 이 시기는 영화 심의 역사에 있어 변화의 한복판이었다. 1996년 10월 헌법재판소는 영화 사전 검열에 대해 위헌 판정을 내리면서, 이후 법 개정이 진행 중인 상황이었다.

<해피투게더>가 수입 불허를 받은 직후인 1997년 10월 영화진흥법이 개정되어 공윤의 사전 심의 제도는 상영 등급만 부여하는 제도로 바뀌었다. 여전히 수입 불허나 등급 부여 보류 방식을 통해 사실상의 상영 금지가 가능했지만, 이전보다 심의가 완화되는 중이었다.

<해피투게더>는 수입사에서 약 10분가량을 자진 삭제한 버전으로 심의를 통과해 1998년 8월에 개봉되었고, 서울 관객 기준 12만여 명을 동원했다. (법 개정은 지속되고, 1999년 현재의 영상물등급심의위원회가 발족한다.)

<해피투게더>의 무삭제 버전은 장국영 사망 6주기였던 2009년이 되어서야 국내에서 처음 상영되었다. 2021년 현재 상영 중인 버전은 4K 리마스터링 버전이다.

 

- 1998년, <편지>, <약속>, <하나비>

<해피투게더>가 처음 개봉되었던 1998년은 한국영화 역사상 여러 의미가 있는 해이다.

 

<편지>, <약속> 포스터

먼저 한국영화의 흥행 규모가 확대되었고, 더불어 한국영화에 대한 인식도 빠르게 개선되었다. 1997년 <접속>(장윤현)의 흥행에 이어 1998년에는 <편지>(이정국), <약속>(김유진), <여고괴담>(박기형), <8월의 크리스마스>(허진호), <퇴마록>(박광춘) 등이 서울 관객 기준 40만 명 이상을 동원했는데, 한국영화로서는 새로운 상황이었다.

뒤이어 20만 명 이상의 서울 관객을 동원한 <조용한 가족>(김지운), <처녀들의 저녁식사>(임상수) 등까지 1998년은 다양한 장르의 한국영화와 새로운 영화감독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해였다.

1998년은 또 다른 의미로도 변화의 한복판이었다. 찬반 논란 속에서 일본대중문화가 개방되었다. 해방 이후 국내에서 합법적으로 일본대중문화를 접할 방법은 없었다. 영화도 마찬가지였다. 칸, 베를린, 베니스, 아카데미 영화제 수상작들로 한정되긴 했지만 1998년부터 단계별 확대를 통해 일본영화가 국내 시장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나비> 포스터

과연 어떤 영화가 처음으로 국내에서 개봉될지 관심을 끌었는데, 첫 번째 개봉 영화는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하나비>였다. 베니스영화제 수상작이었고, 서울 관객 기준 <해피투게더>보다 적은 8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 당시 일본영화를 비롯한 대중문화 개방과 관련해 우려와 기대가 공존했었다. 결과적으로 한국영화시장에서 일본영화는 우려만큼 큰 영향을 끼치진 못하고 있다. 다양한 문화를 향유하고 교류하게 되었다는 점에선 긍정적인 평가도 가능하다.

<새해전야>로 시작해 1998년까지 흘러오면서 지난 20여 년 한국영화계의 변화도 새삼 확인했다. 사전 심의가 사라지고, 일본영화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국영화의 흥행 규모도 급성장했다. 1년 후인 1999년이면 한국영화 산업에 큰 충격을 준 ‘쉬리’(강제규)가 개봉되기에 이른다.

2020년 영화계도 큰 변화의 시기로 인식될 것이다.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영화계는 전무후무한 상황을 겪고 있다. 시간이 흘러 지금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지 궁금해진다. 비록 힘들었지만, 덕분에 이러한 변화를 만들어냈다고 추억할 수 있길 바라본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글·송영애

영화평론가. 서일대학교 영화방송공연예술학과 교수. 한국영화 역사와 문화 관련 연구를 지속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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