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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애의 시네마 크리티크] 다시 본 <시몬>과 <트루먼 쇼>로 짧은 글 짓기
[송영애의 시네마 크리티크] 다시 본 <시몬>과 <트루먼 쇼>로 짧은 글 짓기
  • 송영애(영화평론가)
  • 승인 2024.04.08 09: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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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전히 유효한 '가짜: 진짜' 이슈에 관하여

그동안 영화에서 영화로 이어가는 글을 여러 번 썼더랬다. 연상되는 영화로 넘어가는 식이었는데, 이번엔 영화 몇 편을 이용해 일종의 짧은 글짓기와 부연 설명을 좀 해볼까 한다. 여러 생각이 겹치는 요즘이다 보니, 여러 영화가 겹쳐 떠올라 맴돌고 있기 때문이다. 비슷한 듯 다른 영화 비교하기라고도 할 수 있겠다. 아직 생각하고 정리할 것이 많지만, 시작 단계에서 몇 자 써보고 싶다.

가짜 뉴스, AI, 딥페이크 등에 관한 이야기가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다. 여러 차원의 논의가 가능한데, 관련한 공통의 두려움은 ‘과연 우리가 구분할 수 있는가?’에서 시작된다. 가짜 뉴스와 진짜 뉴스, AI와 인간의 활동, 딥페이크와 진실을 과연 인간이 구분해낼 수 있을까?

 

<트루먼 쇼> 포스터
<시몬> 포스터

어느새 오래된 영화가 되어 버렸지만, 여전히 유효한 이슈를 일찌감치 다룬 영화 <트루먼 쇼>(피터 위어, 1998)와 <시몬>(앤드류 니콜, 2003)은 모두 주인공의 이름이 제목에 들어가 있다. 그러나 상황 설정과 이야기 전개 시선은 비슷한 듯 다르다. 두 영화는 구분하기 어려운 가짜에 대한 두려움에 대해 꽤 유쾌한 그러나 비현실적이고 이상적인 답을 제시한다. 그래서 짧은 글짓기가 여럿 가능하다.

그럼, 시작!

 

- 짧은 글 #1. “우리는 이 세상의 ‘시몬’을 구분해 낼 수 있을까? 만약 가능하다면, 트루먼처럼 행동할 수 있을까?”

<트루먼 쇼>에서 트루먼은 기만당한 사람이다. 반면에 <시몬>은 기만하는 사람(으로 믿어지는 CG)이다. 트루먼은 자신의 ‘트루먼 쇼’의 주인공이란 걸 알게 되는데, 그동안 가족, 친구로 여겼던 모든 사람이 연기자이고, 집과 직장, 거리 등 자신이 지내고 있는 공간이 모두 세트장인 걸 알게 된다. 출연자, 제작진, 그리고 시청자까지 모두가 트루먼을 속이고 있었다.

 

<트루먼 쇼> 스틸 - TV쇼 제작진의 모습

<시몬>에서 시몬은 타란스키 감독이 만들어낸 사이버 배우다. 스타 배우들의 갑질에 고전하던 타란스키 감독은 시몬 덕분에 재기에 성공하고, 작품 활동을 이어간다. 관객은 시몬에게 열광하고, 시몬의 인기는 카란스키의 인기를 뛰어넘는다. 타란스키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시몬이 ‘진짜’ 배우가 아니라고 고백하지만, 아무도 믿지 않는다. 오히려 타란스키는 시몬의 살해범으로 몰린다.

 

<시몬> 스틸 - 시몬 주인공의 영화 제작 중인 타란스키

트루먼은 자신이 속았다는 걸 알고, 벗어나기 위한 행동에 돌입한다. 시몬의 팬들은 자신이 속았다는 걸 믿고 싶지 않다. 시몬이 가짜라고 말하는 타란스키를 오히려 비난한다. 모두가 트루먼처럼 진실, 진짜를 찾지는 않는다. 믿고 싶은 것만 믿으며 두려움을 피해 가는 인간의 모습이라 하겠다. 모두가 트루먼 같지는 않다.

 

- 짧은 글 #2. “수많은 트루먼과 시몬을 만들며 기만하는 건 결국 인간이다.”

트루먼은 자신이 기만당했다는 걸 알게 되지만, 시몬은 자신이 누군가를 기만하고 있다는 걸 인지하지 못한다. 시몬은 철저하게 타란스키 감독의 조종하에 존재하는데, 인간을 위협하지 않는 ‘착한’ 복종하는 AI의 모습이라고도 하겠다. 시몬 역시 인간에게 기만당하는 존재로 볼 수 있다.

트루먼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트루먼 쇼>는 그가 세트장을 벗어나, 진짜 자신의 인생을 살 수 있길 응원한다. 타란스키 감독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시몬>은 타란스키 감독이 시몬이 CG로 만들어진 배우라는 걸 들키지 않길 바란다. 타란스키가 살해범 혐의에서 벗어나고, 시몬도 배우 시몬으로 계속 존재하길 바란다.

 

<트루먼 쇼> 스틸 - 탈출 시도 중인 트루먼 

두 영화 모두 인간 중심적 시선을 담고 있는데, 인간 트루먼이 다른 인간에게 이용당하길 원하지 않고, 인간 타란스키가 시몬을 잘 활용하여 성공하길 바란다. 다만 두려움도 동시에 발견된다. 우리 주변의 수많은 ‘시몬’ 즉 가짜를 구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반드시 최신 기술이 개입할 필요도 없다. 트루먼 쇼처럼 인간이 마음만 먹으면 누군가를 거뜬히 속여낼 수 있다.

 

짧은 글 #3. “시몬을 꼭 구분해 내야 할까?”

트루먼과 시몬을 생각하다가 테오도르와 사만다도 떠올랐다. <그녀>(스파이크 존즈, 2014)에서 테오도르는 사만다가 인공지능 운영체계라는 걸 알면서도 사랑에 빠진다. 조금 다른 형태긴 하지만, 두 사람은 분명 늘 함께한다. 끊임없이 대화하고, 위로하고, 응원하고, 싸우고, 화해한다. 그 누가 테오도르가 느끼는 감정을 가짜라고 단정 지을 수 있겠는가? <트루먼 쇼>에서 트루먼을 지켜봤던 시청자들, <시몬>에서 시몬을 좋아했던 관객들이 느낀 감정도 마찬가지다.

 

<시몬> 스틸 - 타란스키와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시몬

진짜와 가짜의 구분은 어렵기만 한 게 아니라, 애초에 불가능한 면도 있다. 게다가 우리가 구분해내야 하는 시몬도 상황에 따라 다를 것이다. 반드시 구분해야 할 때도 있겠지만, 구분하고도 모른 척할 때도 있고,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을 때도 있지 않을까?

어디까지 진짜이고 가짜인가. 입장에 따라 전혀 다른 해석도 가능하기에, 더 열심히 논의되어야 할 이슈다. 당장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도 AI가 개입되고 있는데, 이에 관한 입장도 엇갈린다. 치열한 조율과 약속이 이루어지고 있기도 하다.

생각의 꼬리가 계속 이어지고 다른 영화도 떠오르는데, 이번에는 일단 여기까지!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글·송영애
영화평론가. 서일대학교 영화방송공연예술학과 교수. 한국영화 역사와 문화, 교육 관련 연구를 지속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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