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6월호 구매하기
오른쪽으로 활짝 편 민주당의 ‘빅텐트’
오른쪽으로 활짝 편 민주당의 ‘빅텐트’
  • 목수정 | 작가
  • 승인 2025.05.30 18: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건실한 박정희 시대 예고하는 이재명 VS 불평등 해소 약속하는 권영국

놀랍게도 이재명의 공식 대권 행보는 이승만과 박정희 묘를 참배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가 말한 “민주당은 원래 중도 보수 정당” 주장에 기꺼이 동의하는 사람들에게도 보수 민족주의자 김구가 시해된 이후, 보수를 참칭해 온 세력에 대한 그의 참배는 선뜻 동의할 수 없는 행동이다. 이재명은 통합과 화해를 위한 제스처로 자신의 행위를 설명했다. 본격적 대선 레이스가 펼쳐지며, 각 후보의 공약이 공개되었다. 이재명이 제시하는 청사진은 자신이 절하고 온 박정희의 건실한 21세기 버전을 보여주려는 듯, ‘경제 성장’에 충실히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세계를 선도하는 경제 강국”이라는 그의 첫 번째 공약은 K-방산, K-주식, K-컬쳐, K-이니셔티브, K-항공, K-푸드 등의 수사로 채워져 있다. 반도체 1등 국가, 글로벌 4대 방산 강국, AI 세계 3대 강국, 글로벌 소프트파워 빅5, 주가지수 5000시대 등 등수와 수치로 기술된 그의 공약들은 무한경쟁 사회에서 성장해 온 대한민국 유권자들에게 익숙한 화법을 구사했다. 소위 “미래의 먹거리”들을 제시하며 앞으로 더 잘 먹고, 더 잘 살게 하겠다는 약속이었다.  

이재명은 그 어떤 현역 정치인보다, 추진력과 실천력이 탁월한 사람이다. 당선권에 가장 가까이 서 있을 뿐 아니라, 의회 권력 구도에서도 압도적 다수를 차지한 민주당 대선 주자의 약속은 조만간 실현될 가능성이 크다. 그의 약속들이 현실이 될 때, 우리는 어디로 가게 될 것인지, 그것이 내포하는 위험과 보완점은 어떤 것인지 짚어보는 과정이 필요해 보인다. 

 

“여전히” 잘 먹고 잘 살자는 공약
 
한국 사회는 전후 지금까지 오직 <성장>이라는 목표로 달려왔다. 그리하여, 우리는 세계 경제 10위권에 이르는 규모의 경제적 위상을 달성했다. 가혹한 채찍이 우리의 등짝을 후려치는 시간이 있었지만, 한국인 대다수는 쉬지 않고 달렸던 그 시간 덕에 오늘에 이르렀음을 알고 있기다. <무한경쟁>만이 우리가 아는 유일한 규칙이고, 거기서 마침내 높은 고지에 오를 때 얻는 <짜릿한 보상>이 한국 사회를 멈추지 않고 달리게 했던 모터다. 그 모터를 무한 가동시키는 동안, 우리는 우수한 성적으로 결승점에 도달하면서 승리감에 도취하곤 했지만, 무시할 수 없는 부작용들이 다른 한 켠에 쌓여가기 시작했다.  

높은 자살률, 최저 수준의 출생률, 극단적 불평등, 젠더와 계급, 학력, 출신 지역 등으로 끝도 없이 모래알처럼 분열하고 반목하는 사람들이 그것이다. 무한경쟁이 기본값인 사회에서, 상대의 결점은 내가 딛고 올라설 수 있는 빈틈이 된다. 그것을 관용하고 보듬으며, 그 속에서도 또 다른 의미를 찾아보는 여유를 우리는 배우지 않았다.

2004년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출로 우린 처음 성장이 쌓아놓은 상처들을 전면적으로 수술하겠다는 정당을 만났지만, 20년 만에 그들은 원외정당으로 전락했다. 그것은 여전히 <성장>이, 오직 그것만이 고프다는 유권자들의 신호다. 그들을 대상으로 표를 구하는 자칭 보수 이재명, 0.7%로 권력을 놓쳤던 통한의 기억을 가진 그의 공약들은 다수가 보수인 유권자들을 위해 설계되어 있다. 

<소년공 출신> 이재명에게 걸었던 일말의 기대는, 기필코 권력을 얻어야 하는 절박함 속에 발톱을 감출 것일까? 물론 이재명은 일부 약자를 위한 공약도 내놓고 있다. 10대 공약 중 7번째에서 그는 “노동이 존중받고 모든 사람의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겠다”라고 약속했다. 핵심은 하청 노동자들의 원청과의 교섭권 보장과 노란봉투법이다. 일찍이 국회를 통과했으나 윤석열의 거부권 행사로 폐기된 노란봉투법은 노동쟁의에 참여한 노동자들에게 사주가 청구해왔던 손해배상을 제한하는 법이다.

헌법상 권리인 노동쟁의권을 사실상 무력화시켜 왔던 사측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대한민국 노동자가 처한 처절한 현실을 증명하는, 지구상에서 거의 유일하게 사용되던 사측의 일방적 무기였다. 그밖에 아동 수당을 18세까지 지급하고, 노인 돌봄을 국가책임제로 하겠다는 등의 복지 공약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방식은 <경제 강국 건설>이라는 압도적 기치 아래, 시혜성으로 행해지는 모양새를 취했다. 

 

글로벌 순위의 강박

성장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면서 <세계 1위>, <3대 강국>, <4대 강국>처럼 등수를 강박적으로 제시하는 것은 단순히, 국민을 마케팅의 대상으로 여기는 민주당 캠프의 의식을 드러내는 데 그치지 않는다. 국가 경영이 마치 월드컵 경기에 참가하는 일인 양, 순위를 들먹이는 방식은 우리가 선진국이라 부르던 나라들과 어깨를 나란히 견줄 때, 남들이 우리 것을 ‘K-OO’식으로 부르며 칭송할 때만, 마침내 채워지는 만족감의 공식을 강화한다. 이는 다시 한번 우리의 삶을 타인의 인정이라는 틀 속에 가두며 삶의 주체로서의 우리의 존재를 잠식하는 것이다. 

K-POP이란 표현은 서구에서 J-POP 이후 등장한 한국의 대중음악을 구분 지어 부를 때 등장했다. 그것이 코로나 팬데믹 시절, K-방역이라는 이름으로 확장되면서, 국민적 자긍심을 고취하는 의미를 획득한다. 이후, 이 말은 전방위에서 우후죽순으로 증식하며, 자고 일어나면 또 다른 K-OO이 탄생하기를 반복했다. 우리가 자신의 것을 지칭하면서 굳이 K-OO이란 표현을 남발하게 된 것은 정권과 미디어의 암묵적 동의 속에 공허한 쇼비니즘으로 국민을 소위 국뽕에 취하게 하는 효과를 발휘했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이 K-OO을 보고 감탄했다는 자화자찬의 기사들이 미디어를 채우는 동안, 값싼 국뽕을 받는 다수 시민은 자신의 구차한 일상의 고통을 자신만의 문제로 치부하며 쓰레기통에 넣게 된다. 그렇게 우린 스스로의 삶에서 소외되는 것을 당연시하며 살아가게 되었고, 그것은 남들이 알아주는 성공적 삶에만 의미를 부여하는 사회에서, 우리가 쌓은 GDP와 비례해 덩치를 키워온 우리의 그늘이 되었다. 

아쉽게도 4명의 후보 가운데, 국민을 마케팅의 대상으로 여기는 이같은 어휘로 공약집을 채우는 후보는 이재명뿐이었다. 그의 대표 공약들은 시민들 삶에 길게 드리워진 그늘에 대한 숙고 보다, 다시 더 큰 보폭으로, 박정희식 전력 질주를 위한 활주로를 닦겠다는 선언에 가까웠다. 

이런 사회에 착실하게 적응, 우수한 학생으로 성장하여 최고 학력을 획득한, 이른바 한국식 무한경쟁 교육시스템의 승자, 그 대표적 인물이 바로 후보 토론회 중 이재명 옆에서 비아냥을 일삼던 이준석이었다.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낮은 임금을 지급하여 해외로 떠나간 공장들을 한국으로 돌아오게 하자는 어이없는 발생, 최저임금을 지자체에 자율적으로 맡기자는 생각, 여성을 공격하고, 장애인들을 향해 싸움을 거는 등, 끊임없이 편 갈이에 몰두하며, 뒤틀린 정치를 해온 그와 그를 추종하는 청년세대는 지난 30년간 한국 교육이 만들어 온 결과물이다.
    

K- 방산, 글로벌 4대 강국!

“강력한 제조업을 기반으로 AI 첨단기술로 무장한 K-방산이야말로 우리 경제의 저성장 위기를 돌파할 신성장 동력이자, 국부 증진의 중요한 견인차임을 확신한다.” 방위산업, 정확히 말하자면 전쟁을 위한 무기 생산으로 우리의 먹거리를 삼겠다는 포부를 이재명은 이같이 밝혔다. 이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압도적 1위 국가는 미국이다. 무기를 팔아 부를 축적해 온 미국은 세상의 모든 전쟁에 끼어들었고, 심지어 없는 이유를 만들어 전쟁을 유발하며 지구촌 전쟁광의 명성을 누려왔다. 

약 장사는 큰 병이 돌아야 돈을 벌고, 무기 장사는 전쟁이 계속 나야 돈을 버는 법이다. “평화가 밥이다“라고 외쳐온 사람이, 동시에 무기 제조를 통해 국부를 쌓겠다고 장담하는 것은 명백한 모순이다. “해병대의 위상을 강화, 무적 해병대를 통해 K-국방 강국을 만들겠다”라는 것도 이재명의 주요 공약 중 하나다. 군사력 강화를 언급하는 공약들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반면, 북한과의 관계 개선, 자유 왕래, 평화 구축을 위한 구상은 이재명의 공약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이것은 “높은 문화”의 힘인가? 

이재명은 백범 김구의 문화에 대한 유명한 말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을 언급하며 그의 혜안에 경의를 표한 바 있다. 이재명은 한국 드라마와 영화, 대중음악 등이 세계시장에서 거두고 있는 눈부신 성공에 더욱 힘을 실어, K-콘텐츠 문화수출 50조 원 달성하겠다는 포부를 공약에 담았다.

김구가 위의 말을 할 때, 전제한 것은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이 실제로 삶에서 문화생활을 폭넓게 누리며, 그것으로 행복을 얻고 있는가? 내지는 문화예술, 대중문화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일 속에서 충분한 만족을 얻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거기서부터 정부의 역할을 찾는 것이 김구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하는 일일 터이다. 

2023년 통계에 따르면, 대한민국 20~30대 가구의 평균 도서 구입비가 한 달 9,000원이라고 한다. 같은 해 서울문화재단이 조사한, 서울 시민의 연간 문화생활비는 연간 10만 원에 불과하다. 산업화한 우리의 대중문화가 해외에서 큰 성과를 얻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정작 한국인들의 문화생활은 지극히 메말라 있는 것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한강 작가가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며 온 국민에게 큰 기쁨과 감격을 안겼다. 그것이 한강 작가의 전 작품들이 베스트셀러에 등극하는 현상을 가져왔을지언정, 한국인의 빈곤한 독서 습관을 바꾸진 않았다. 

수개월째 이어진 한강 신드롬은 문학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아니라 노벨상에 대한 우리의 숭배를 입증한 것에 가깝다. 심지어 공공도서관에서조차, 점점 더 적은 책을 구입, 전체 운영비의 9%만을 도서 구입에 사용한다는 통계(2023)가 나온 바 있다. 국민들의 문화생활은 점점 빈곤해져 가지만, 그것을 타개하는 덴 무관심하고, 큰돈을 벌어다 줄 문화 콘텐츠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겠다는 생각은 김대중 시절부터 이어져 온 정치권이 문화를 대하는 태도다.

우린 흔히 20년 무명 생활 끝에 빛을 보기 시작한 배우들이 과거엔 연봉 200만 원으로 버텼다는 식의 이야기를 듣는다. 누군가 열심히 일을 하는데, 한 해에 200만 원을 번다면 그것은 시스템의, 그 시스템을 허용하는 사회의 잘못이다. 정부의 역할은, 잘나가는 산업에 돈을 더 투자하여 더 큰 돈이 들어오게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해당 업계에 속한 사람들이 최소한의 생활 조건을 갖추면서 건강하게 그 생태계가 돌아가도록 구조를 설계하는 데 있다. 스타가 되지 않더라도, 자신의 일을 사랑하며 즐겁게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그래야만 우리는 나를 행복하게 하고, 남에게도 행복을 주는 문화의 힘을 비로소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불평등 해소를 약속하는 권영국, 성숙한 정치적 지평 제시

명실공히 유일한 진보 진영의 주자로 나선, 민주노동당의 후보 권영국은 이재명이 외면한 지점들을 살뜰히 보듬었다. 그가 전면에 내세운 약속은 <불평등의 해소>이며, 그 방법은 <부자 증세>이다. 부자 감세 원상 복구와 불로소득 과세를 통해서 부의 재분배를 이루겠다는, 북유럽에서 광범위하게 채택하고 있는 방식이다. 몇 군데서 크게 벌어 약자들에게 시혜성 복지를 시행하겠다는 이재명의 방식과는 근본적 차이가 있다. 권영국은 또한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통해 제도적 차별을 근절하고 혐오와 위험으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들 것을 약속했다. 이재명은 차별금지법의 원칙에는 동의하지만, 그것이 일으킨 사회적 갈등 때문에 당장 하긴 어렵다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바쁜 길 서둘러 가려면 시끄러워질 갈등은 아예 건드리지 않겠다는, 결국 다시 한번 차별이 권리인 사회를 묵인하겠다는 선택을 했다. 

권영국은 또 대기업 · 플랫폼 기업 · 금융지주회사에 의한 수탈적 경제구조를 개혁하여 공생경제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했다. 자본주의 시스템을 부인하지 않지만, 부를 독식하는 그들의 구조를 적절히 세금으로 다스려, 부의 재분배가 이뤄지게 하겠다는 얘기다. 자본을 위해 서비스 센터 노릇을 하는 정부가 아니라, 그들의 수탈로부터 다수를 지키는 역할을 제안했다. 바닥 수준인 식량자급률에 대해선, 식량주권을 아예 헌법에 담아, 국가적 의무로 만들고, 지속가능한 농업으로, 농어민 권리 보장 및 국민 먹거리 기본권을 실현하겠다고 약속했다.

권영국은 지뢰밭을 철길로 만들어, 남북 간 자유로운 왕래의 길목을 트고, 경제 활성화와 한반도 평화시대를 열어 대외무역통상 다변화를 추진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북한을 적대적 대상이 아니라 함께 평화를 도모하며, 경제 활성화를 모색할 수 있는 대상으로 간주하는 상식적이고도 실용적인 시선은 오직 권영국에게서만 발견할 수 있었다. 

군사적 패권주의를 포기하겠다는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된 시점에서, 여전히 한국의 보수는 냉전시대의 자발적 포로가 되어 스스로를 포박하고 있다면, 이같은 대한민국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가장 적극적으로 타계할 모습을 권 후보가 보여주었다. 

당선권에서 가장 먼 후보이기에, 가장 이상적인 공약들을 내놓을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공약들은 성장 일변도의 사회가 만든 그늘을 돌보는 해법을 체계적으로 제시하고 있으며 그것은 사회가 더 큰 질병으로 신음하기 전에 꼭 필요한 생각들이다. 공약에는 특허도, 저작권도 없다. 그래서 진보진영이 내놓은, 처음엔 허무맹랑해 보이는 공약들이 몇 년 뒤, 보수정당의 공약집에 들어가 있는 경우가 흔하다. 

민주당의 빅텐트는 현재 오른쪽을 향해서만 넓게 펼쳐지고 있지만, 집권 이후에는 왼쪽으로 넓게 펴진 정책적 결합을 주문하고 싶다. 공약으로 판단하건대, 현재로선 권영국이 대표하는 왼쪽 지대에서, 비로소 시민을 준엄한 주권자로 대하는 어휘와 사고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의 목소리가 좀 더 넓게 들리는 정치적 지평 속에서 대한민국은 좀 더 성숙해질 수 있을 것이다. 

 

글·목수정
파리에 거주하며, 칼럼 기고와 책 저술, 번역을 하고 있다. 2023년 저작으로 『파리에서 만난 말들』, 역서로는 『마법은 없었다』(알렉상드라 앙리옹-코드 저) 등이 있다.

  • 정기구독을 하시면, 유료 독자님에게만 서비스되는 월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잡지를 받아보실 수 있고, 모든 온라인 기사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온라인 전용 유료독자님에게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모든 온라인 기사들이 제공됩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독 신청을 하시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후 1:1 문의하기를 작성해주시면 1회에 한해 과월호를 발송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