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6월호 구매하기
[연재] 강은영의 샹송이야기(3) 에디트 피아프, 삶의 위기 속에서 희망을 선사하다
[연재] 강은영의 샹송이야기(3) 에디트 피아프, 삶의 위기 속에서 희망을 선사하다
  • 강은영 | 가수 & 강혜영 | 작가
  • 승인 2025.05.30 18: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은영의 샹송이야기(3)

샹송은 프랑스인의 정서를 가장 섬세하게 담아내는 노래다. 달콤한 선율과 시적인 가사로 사랑을 받아온 샹송은, 때로 불의에 맞서고 현실에 순응하기를 거부하는 목소리를 담기도 한다. 지난해 본지 ‘르몽드 에스파스’에서 샹송을 소개한 강은영 가수가 우리가 미처 몰랐던 샹송의 도발적이고 매혹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프랑스에서 재즈를 공부한 강은영과 연극학을 전공한 강혜영이 함께하는 ‘샹송 이야기’, 그 3번째 연재는 아픈 과거를 딛고 희망을 노래한 에디프 피아프의 노래세계를 소개한다. 

2024년 7월 26일 저녁에 열린 파리 올림픽의 개회식은 여러모로 독특하고 파격적이었다. 대규모 콘서트를 방불케 했던 일련의 행사들은 경기 내내 타오를 성화를 성화대에 옮겨 붙이며 마무리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성화대를 실은 대형 열기구가 공중에 높이 떠오른 순간, 귀에 익은 목소리가 밤하늘에 울려 퍼지면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흰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에펠탑에 모습을 드러냈다. 강직인간증후군(면역계 문제로 근육의 긴장도가 비정상적으로 증가하는 질환)이란 희귀병을 앓아 수년 간 공식 무대에 서지 못했던 셀린 디옹이었다.

셀린 디옹의 열창은 개막식을 지켜본 세계인을 감동시켰다. 긴 시간 그녀를 고통스럽게 한 병마에 굴복하지 않은 굳센 의지, 음악에 대한 변함없는 열정과 헌신이 진심을 담아 노래를 부르는 그녀의 목소리에 짙게 묻어났다.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올림픽 정신을 이보다 더 잘 보여 줄 수 있을까. 전위적인 몇몇 장면들 때문에 일부 비판을 받기도 한 개막식이었지만 셀린 디옹이 장식한 마지막 순서는 세계인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 평화와 화합의 대축제를 여는 신호탄으로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특히 그녀가 부른 노래의 마지막 구절이 그랬다. “신은 서로 사랑하는 이들을 한마음이 되게 할 거예요(Dieu réunit ceux qui s’aiment).”
이 노래는 물론 저 유명한 <사랑의 찬가(L’hymne à l’amour)>로, ‘단 하나의 이름, 그 이름 하나만으로도 샹송 전부인 에디트 피아프(Un seul nom, et dans ce nom toute la chanson: Edith Piaf)(1)’의 히트곡이다.

에디트 피아프는 연인이었던 복싱 영웅 마르셀 세르당과의 영원한 사랑을 염원하며 <사랑의 찬가>의 가사를 직접 썼다. 그런데 그녀가 뉴욕에서 이 노래를 선보인 지 한 달 반 만에, 마르셀 세르당은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고 만다. 그녀를 만나기 위해 뉴욕으로 오던 길이었다. 사고 다음 날, 피아프는 극심한 고통을 안고서 무대에 올라 <사랑의 찬가>를 부르며 연인을 추모했다. 그녀가 부른 마지막 소절이 얼마나 절절했을지 헤아리기 어렵다.

운명이라 여겼던 사랑을 만나기 전에도 또 잃은 후에도 피아프는 여전히 ‘프랑스 샹송의 거장(la grande dame de la chanson française)’이라 불리며 대스타로 자리매김했지만, 보통 수많은 스타들이 그렇듯이 그녀의 출발점은 보잘것없었다. 아니, 보통의 경우보다 훨씬 미미했고, 초라했고, 고달팠다.

난 그저 항구의 소녀
거리의 그림자일 뿐

Je n’suis qu’une fille du port
Qu’une ombre de la rue
(<밀로르(Milord)> 중에서)

에디트 피아프가 가장 크게 성공을 거둔 노래 중 하나인 <밀로르>에서 주인공인 매춘부가 자신을 소개하는 부분이다. 피아프 본인에 따르면 그녀는 거리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생가에 붙은 기념 현판에도 “이 집의 계단에서 태어났다”라고 새겨져 있다. 파리 등기소에는 그녀가 병원에서 태어난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그녀 자신의 인터뷰로 인해 프랑스인들에게 피아프는 ‘거리에 버려진 아이’로 각인되었다. 이 이미지는 에디트 피아프의 타고난 재능을 더욱 부각시키며 거리의 그림자에 불과했던 소녀가 샹송의 여왕이 되는 극적인 서사에 일조했다.

실제로 피아프의 어린 시절은 떠도는 거리의 그림자에 가까웠다. 본명은 에디트 지오바나 가시옹(Édith Giovanna Gassion)으로 아버지는 곡예사였고 어머니는 거리의 가수였다. 제1차 세계대전 중 빈곤 속에서 태어난 에디트는 어머니에 의해 외할머니에게 떠넘겨졌지만 학대에 가깝게 방치되었다. 전쟁에서 돌아온 아버지가 이번엔 그녀를 친할머니에게 맡겼지만 영양실조로 시력을 수년 간 잃는 등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했다. 에디트가 일곱 살이 되자 아버지는 딸에게 일을 시켰다. 곳곳을 유랑하며 곡예를 할 때 손님을 끌도록 옆에서 노래를 부르게 했다.

열다섯 살이 되자 에디트는 아버지를 떠났고 그녀가 태어났던 파리의 변두리 벨빌(Belleville)에 살면서 피갈(Pigalle) 거리에서 노래하기 시작했다. 열일곱 살에 사랑에 빠졌고 임신 중에도 거리에서 노래를 불렀다. 딸을 낳은 후에는 딸을 안고 노래했다. 태어난 지 2년 만에 딸이 뇌수막염으로 죽은 뒤에도 노래했다. 십대의 에디트 피아프는 나중에 그녀가 성공하고서 발표한 노래 <그녀는 피갈 거리를 드나들었지(Elle fréquentait la rue Pigalle)>와 어딘가 닮았다.

그녀는 피갈 거리를 드나들었지,
싸구려 악덕의 냄새를 풍겼지,
죄로 온통 검게 물들어 있었지
창백한 가련한 얼굴을 하고.
(중략)

그가 그녀에게 말했지: “당신은 아름다워요.”
그리고 보통 이 동네에서는
그녀와 같은 일을 하는 여자들에게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지;
그리고 그녀가 고백하고 싶어 하자
그는 그녀에게 키스를 퍼부으며
“당신의 과거는 잊어요,
내겐 당신이 아름답다는 것밖에 안 보여요.”라고 말했지.
(중략)
그래서 그녀는 그에게 떠나달라고 부탁했고
그는 그녀를 몽파르나스로 데려갔지.

그녀는 자신의 삶을 다시 시작할 거라고 믿었지, 
하지만 변하기 시작한 건 그였어, 
그는 그녀를 완전히 놀란 듯 바라보며 말했지: 
“난 네가 더 예쁠 줄 알았어, 
여기선 햇빛이 너무 밝아서 
네 악덕이 피부 표면에 드러나, 
어쩌면 네가 저 위로 돌아가는 게 더 나을지도 몰라 
그리고 각자 자신의 삶을 다시 시작하는 게.”

그녀는 자신의 피갈로 돌아왔지,
더 이상 그녀를 건져줄 사람은 없어,
그녀는 자신의 모든 죄,
어두운 구석과 더러운 보도를 다시 찾았지.

Ell’ fréquentait la rue Pigalle,
Ell’ sentait l’vice à bon marché,
Elle était tout’ noir’ de péchés
Avec un pauvr’ visag’ tout pâle.
(중략)

Il lui avait dit : “Vous êt’s belle.”
Et d’habitud’ dans c’quartier là
On dit jamais les chos’s comm’çà
Aux fill’s qui font l’mêm’ métier qu’elle ;
Et comme ell’ voulait s’confesser
Il la couvrait tout’de baisers
En lui disant : “Laiss’ ton passé,
Moi j’vois qu’un’ chos’, c’est qu’tu es belle.”

(중략)
Alors ell’ lui d’manda d’partir
Et il l’emm’na vers Montparnasse.

Ell’ croyait r’commencer sa vie,
Mais c’est lui qui s’mit à changer,
Il la r’gardait tout étonné
Disant : “J’te croyais plus jolie,
Ici le jour t’éclair’ de trop,
On voit tes vic’s à fleur de peau,
Vaudrait p’t’êtr’ mieux qu’tu r’tourn’ là-haut
Et qu’on reprenn’ chacun sa vie.”

Elle est r’tourné’ dans son Pigalle,
Y’a plus personn’ pour la r’pêcher,
Elle a r’trouvé tous ses péchés,
Ses coins d’ombre et ses trottoirs sales.
(<그녀는 피갈 거리를 드나들었지> 중에서)

노동자와 빈민의 구역인 피갈 거리의 한 매춘부가 그녀에게 반한 남자를 따라 센 강 좌안의 고급 구역으로 거처를 옮기지만, 남자는 그녀가 자신의 동네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곧 깨닫게 되고 결국 여자는 다시 피갈로 돌아간다는 내용이다. <그녀는 피갈 거리를 드나들었지>는 에디트 피아프의 또 다른 노래들인 <나의 병사(Mon légionnaire)>나 <밀로르>처럼 사회의 어두운 현실이 투영된 사실주의 샹송 계열의 노래다.

생가에 붙은 기념 현판
생가에 붙은 기념 현판

 

사실주의 샹송은 19세기 말 몽마르트르의 카바레를 중심으로 사회 비판적이고 정치적인 노래가 인기를 끌면서 샹송의 한 주류가 되었다. 주된 내용은 도시 노동자, 부랑아, 창녀들의 불행과 사랑, 사회적으로 소외된 어두운 삶을 그린 것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여성 가수의 전유물이 되었는데 이들은 가난하고 사회적으로 고통 받는 여성들, 즉 매춘부나 무명 가수 혹은 미혼모 등 소외된 여성들의 박탈감을 감상적으로 호소했다.

에디트 피아프는 빈곤하고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거리에서 노래하며 생계를 꾸린 데다 미혼모에 일찍 아이를 잃은 슬픔까지 경험한, 사실주의 샹송의 주인공 자체였다. 사람들은 그녀의 노래를 들으면서 그녀의 삶과 노래를 구별할 수 없었고 그녀를 그녀의 노래와 동일시했다. 그녀는 노래가 묘사하는 고통을 직접 경험한 가수, 누구보다도 진정성을 가진 가수로 대중에게 인식되었다.

거리의 무명 가수였던 에디트 피아프는 스물이 될 무렵 삶의 전환점을 맞는다. 유명 카바레의 지배인이었던 루이 르플레(Louis Leplée)의 눈에 띈 것이다. 그녀는 작은 몸집에 어울리는 ‘작은 참새(la môme Piaf)’라는 예명을 얻고 카바레에서의 성공에 이어 라디오 방송에도 데뷔했다. 음반도 내고 파리의 가장 이름난 뮤직홀들에서 정상에 올랐으며 그녀를 주인공으로 하는 연극과 영화에도 출연했다. 이후 <아코디언 연주자(L’Accordéoniste)>, <장밋빛 인생(La vie en Rose)> 등 시대를 대표하는 히트곡들을 연거푸 발표했다. 

그녀는 더 이상 거리의 가수도, 그녀의 노래에 등장하는 슬픔에 찬 우울한 여인도 아니었다. 에디트 피아프라는 샹송의 신화적 존재가 된 그녀는 사실주의 샹송 가수라는 틀 안에 있으면서도 어두움보다는 밝음을, 저속함보다 시적인 표현을, 한탄과 후회보다 사랑의 기쁨을 표현하며 변화를 꾀했다. 하지만 대중에게 그녀의 노래는 여전히 그녀의 삶과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었다. 피아프의 실제 삶에서 고난과 고통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여전히 사실주의 샹송의 주인공이었다.

연인 마르셀 세르당이 뜻하지 않은 사고로 사망한 뒤 정신적, 정서적으로 큰 타격을 입은 피아프는 공연 투어 중 세 차례나 심각한 교통사고를 겪으며 생사를 넘나들기도 했다. 고통을 달래기 위해 알코올과 약물에 의존하는 바람에 생의 말년에 이르기까지 술과 약물 중독 그리고 해독 치료를 반복해야 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삶에 대한 애착과 희망을 잃지 않았고 꾸준히 공연에 나서는 한편 히트곡들을 발표했다.

그러다가 피아프는 무대 위에서 쓰러지기에 이르렀다.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았고 노래를 할 수 없을 만큼 건강이 악화되었다. 거의 1년 동안 공연 계약을 받지 않아, 누구도 피아프가 다시 노래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 무렵 파산 위기에 몰린 뮤직홀 올랭피아의 감독 브뤼노 코카트릭스(Bruno Coquatrix)가 에디트 피아프에게 도움을 청했다. 피아프는 거의 걸을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지만 의사의 만류에도 공연 준비를 했고 마침내 1년의 공백을 딛고 올랭피아의 무대에 섰다. 그녀의 삶이 응축된 듯한 또 하나의 노래를 들고서.

아니요! 정말 아무 것도……
아니요! 나는 아무 것도 후회하지
않아요
사람들이 내게 줬던 행복이건
불행이건 내겐 다 마찬가지예요!

아니요! 정말 아무 것도……
아니요! 나는 아무 것도 후회하지 않아요
이미 대가를 치렀고, 쓸려 나가버렸고, 잊혀졌죠
나는 과거에 신경 쓰지 않아요!

Non! Rien de rien……
Non! Je ne regrette rien……
Ni le bien qu’on m’a fait
Ni le mal tout ça m’est bien égal!

Non! Rien de rien……
Non! Je ne regrette rien……
C’est payé, balayé, oublié
Je me fous du passé!
(<아니요, 후회하지 않아요(Non, je ne regrette rien)> 중에서)

이 노래에는 거리의 여가수나 매춘부가 등장하지 않는다. 피갈 거리도, 어둡고 슬픈 소외된 삶의 묘사도 없다. 한탄과 후회도 없고 오히려 당당하게 “과거는 신경 쓰지 않아”라고 선언할 뿐이다. 그럼에도 이 노래는 올랭피아에 모인 관객에게 완벽한 사실주의 샹송으로 각인되었다. 후회하지 않는다는 가사가 노래 속 화자를 넘어 가수인 피아프 자신의 이야기로 여겨졌던 것이다.

복귀 무대는 대성공이었다. 마를렌 디트리히와 폴 뉴먼을 비롯한 최고의 스타들과 관객들은 수십 분 동안 박수치며 환호했고, 30회로 예정되었던 공연은 두 달 더 연장되었다. 올랭피아는 극적으로 회생했고 사람들은 피아프의 음반을 구매하기 위해 다투기까지 했다. 쇠약해진 육체를 뛰어넘는 그녀만의 의지와 갈망으로, 에디트 피아프는 불사조처럼 부활하여 그녀와 그녀의 노래를 사랑해 준 이들에게 희망을 안겼다.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노랫말과 함께.

아니요! 정말 아무 것도……
아니요! 나는 아무 것도 후회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나의 삶이, 나의 기쁨이,
오늘, 그대와 함께 시작되니까요!

Non! Rien de rien……
Non! Je ne regrette rien……
Car ma vie, car mes joies
Aujourd’hui, ça commence avec toi! (<아니요, 후회하지 않아요> 중에서) 

  • 정기구독을 하시면, 유료 독자님에게만 서비스되는 월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잡지를 받아보실 수 있고, 모든 온라인 기사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온라인 전용 유료독자님에게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모든 온라인 기사들이 제공됩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독 신청을 하시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후 1:1 문의하기를 작성해주시면 1회에 한해 과월호를 발송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