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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의 시네마 크리티크] 캡틴 아메리카, 조커 그리고 ‘과잠’을 입은 청년들
[김경욱의 시네마 크리티크] 캡틴 아메리카, 조커 그리고 ‘과잠’을 입은 청년들
  • 김경욱(영화평론가)
  • 승인 2025.05.30 18: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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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을 옹호하는 극우성향 한국인의 조커 코스프레

2024년 12월 3일부터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내란 사태’의 와중에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폭도들의 서부지법 난입이었고, 가장 기이한 장면은 캡틴 아메리카 코스프레를 하고 나타나 난동을 부린 인물이었다. 안병희로 알려진 그 인물은 2월 10일의 국가인권위원회 점거 사태에서도 엘리베이터 출입을 막았고, 2월 14일에는 주한중국대사관에 난입을 시도했고, 2월 20일에는 서울 남대문 경찰서 출입문을 부수고 들어가려고 시도하다 결국 구속되었다. 그런데 거리를 활보한 폭도들 가운데는 조커 코스프레를 한 인물이 등장하기도 했다. 

마블 코믹스의 슈퍼히어로인 캡틴 아메리카는 2차 세계대전 시기에 몸이 너무 허약해 미 육군 입대를 거부당했지만, 조국에 봉사하기 위해 초인 병사 계획 ‘프로젝트 리버스’에 자원해 특수 혈청을 맞고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능력을 갖게 된다. 캡틴 아메리카의 주적은 아돌프 히틀러. 따라서 캡틴 아메리카는 나치의 초인 레드 스컬과 맞서 싸우며, 2차 세계대전에서 큰 공적을 세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2025년의 대한민국에 캡틴 아메리카 코스프레를 하고 나타난 인물은 파시스트로 추정된다.

장 뤽 고다르 감독은 <미치광이 피에로>(1965), <그녀에 대해 알고 있는 두세 가지 것들>(1967) 같은 영화에서, 베트남 전을 수행하는 미국을 비판한다. 고다르는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의 로고와 나치를 의미하는 이니셜 SS 등을 병치시키며, 미국을 제국주의 국가로서 나치와 다를 바 없다고 주장한다. 미국인의 입장에서 캡틴 아메리카는 미국 만세를 외치는 애국심의 화신으로서 추앙받을만한 영웅일 것이다. 

그러나 고다르의 비판에서처럼, 미국이 적으로 규정하면 반드시 제거해야 할 악 그 자체가 되는 논리를 투영한 슈퍼히어로의 세계에는 파시즘이 내재해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힘을 갈망하며 자신의 능력을 지나치게 과신하는 안병희가 캡틴 아메리카를 추앙하고 동일시하는 건 크게 이상하지 않은 현상이다. 

미국에 가본 적이 없는 걸로 알려진 안병희는 성조기를 벽에 걸어놓고 자신의 진짜 정체가 미국 CIA 블랙 요원 마이클 피터스 대위라고 주장하며 방송국 PD와 인터뷰까지 했다. 이렇게 강자에게 엎드리는 심리 상태는 패권국가 미국의 성조기를 흔들며 시위에 참석하는 한국의 극우 집회 참석자들과 겹친다. 

 

파시즘을 옹호하는 극우성향 한국인의 조커 코스프레

그런데 캡틴 아메리카와 영화 <조커>(2019)의 조커를 코스프레한 인물들은 왜 공통의 목적을 공유하며 거의 동시에 서울 한복판에 등장한 것일까? 여기서 캡틴 아메리카가 애국심과 선함과 도덕심으로 똘똘 뭉친 자아 이상을 통해 초자아의 명령을 강박적으로 수행하는 영웅이라면, 조커는 그 뒷면인 이드의 충동에 따라 살아가는 안티히어로라는 점을 생각해보게 된다.

다시 말해서 캡틴 아메리카와 조커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로 비유할 수 있다. <조커>는 DC 코믹스의 악당 캐릭터인 조커에 대한 프리퀄 격인 영화로서,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인물 아서가 조커가 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은연중에 주인공인 아서의 범죄를 정당화하면서 파시즘을 옹호하는 경향을 띤다. 이것이 극우성향 한국인의 조커 코스프레와 연결되는 지점이다.

영화를 좀더 살펴보면, 먼저 아서가 약자이며 피해자라는 점을 부각한다. 아서는 광대로 분장하고 일하다 청소년 양아치들에게 무자비한 구타를 당하거나, 버스에서 앞자리에 앉은 아이를 웃기려고 하다 아이 엄마에게 오히려 안 좋은 소리를 듣는 등, 끊임없이 주변으로부터 고통당하며 억울한 상황이 반복된다. 

그러나 누구도 아서의 처지를 알아주지 않고 오해만 더 쌓여간다. 이와 더불어 망상증과 병적으로 웃는 증상 등 아서의 병적인 정신 상태는 어릴 때 양부모에게 끔찍하게 학대당한 결과로 설명된다. 따라서 아서는 동정할만한 피해자이자 불쌍한 희생자로서 분노의 표출은 당연하게 여겨진다. 

아서의 범죄는 광대 모습으로 지하철에 탔다가 술에 취해 시비를 거는 남성 셋에게 폭행당하면서 시작된다. 동료가 억지로 건네준 총을 갖고 다니던 아서는 정당방위처럼 남성들을 사살한다. 더 큰 문제는 이 범행에 대한 고담시 시민들의 반응이다. 그들은 잘나가는 웨인 엔터프라이즈의 직원들을 살해한 광대를 비난하기는커녕 사회정의라도 실현한 듯 미화한다. 살인 광대를 서민들의 영웅으로 추앙하며 광대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들도 점점 더 늘어난다. 

아서는 어머니를 살해하고 총을 건네 자신을 곤경에 처하게 했던 동료를 죽인다. 이때 아서는 자신에게 우호적인 또 다른 동료는 살려준다. 이러한 설정을 통해 아서가 무차별적인 살인마가 아니라는 점을 부각하면서, 그의 범죄에 어떤 정당성의 근거를 제시한다. 아서는 기세를 몰아 자신을 조롱거리로 만든 유명 토크쇼 진행자 머레이를 텔레비전 시청자들이 지켜보는 생방송 중에 총으로 쏜다. 

경찰에 체포된 아서가 호송되면서 바라보는 거리의 풍경은 아비규환이다. 아서를 지지하는 폭도들이 광대 가면을 쓰고 약탈과 방화와 폭력을 저지르며 고담시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아서는 눈앞의 지옥도를 바라보며 만족해하며, “아름답다”라고 말한다. 영화 도입부부터 고담시는 이미 손쓰기 어렵게 망가진 상태로 묘사되고 있으므로, 폭도들의 분노는 자연스러운 귀결처럼 보인다. 이는 폭도들의 서부지법 난입과 유사한 광경이다. 조커처럼, 내란을 일으킨 수괴와 내란의 가담자들 그리고 동조자들은 민주공화국의 근간을 위태롭게 하는 폭력 행위를 지지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과잠 청년들 코스프레, 우열을 나누는 파시즘 특징 드러내

캡틴 아메리카와 조커 코스프레에 이은 또 다른 코스프레는 윤석열이 용산 관저를 떠날 때 등장한 과잠을 입은 청년들이다. 윤석열은 그들과 포옹하는 퍼포먼스를 과시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들이 진짜 그 잠바가 명시하는 대학교 학생인지 아닌지가 아니라, 과잠을 걸쳐야 그 자리에 설 수 있었다는 것이다. 청년들을 (괜찮은 대학의) 과잠이 있는 청년과 없는 청년으로 분리하고 전자에 특별대우를 한 것이다. 이는 끊임없이 우열을 나누는 파시즘의 특징과 부합한다.

그렇다면 과잠을 입은 청년들은 왜 그런 행태를 보이게 된 것일까? 1971년, 사회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가 실시한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을 영화로 각색한 올리버 히르비겔의 <엑스페리먼트>(2001)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이 영화에서 연구소 소장은 감옥 내 행동을 관찰하려는 목적으로 지원자들을 모집한 다음, 그들을 무작위로 간수와 죄수로 나눈다. 처음에 그들은 역할 놀이에서 간수와 죄수를 맡은 것처럼 재미있게 여긴다. 

서로 큰 차이가 없어 보였던 지원자들은 간수복과 죄수복을 착용하자 갭이 생기기 시작한다. 간수들이 진짜 간수처럼 죄수들을 통제하려고 시도하면서 문제가 불거지게 된다. 간수들은 규율을 잘 따르지 않는 죄수에게 죄수복을 벗겨 나체로 만들거나 화장실 청소를 시키는 등 모욕감과 수치심을 준다. 

소장은 역동적인 실험을 명목으로 규칙을 어긴 간수들의 행위를 비판하거나 제지하는 대신 오히려 인정하고 칭찬한다. 소장으로부터 권위를 위임받았다고 판단한 간수들은 죄수들을 점점 더 폭력적인 방식으로 통제하게 된다. 그들은 죄수들을 폭행하고, 금고 같은 폐쇄 공간에 감금하고, 급기야 살인까지 자행하며 교도소 공간 전체를 무법천지로 만든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인간의 행동이 환경과 상황에 따라 얼마나 큰 영향을 받게 되는지, 평범한 사람들에게 치외법권적인 권위가 부여되면 얼마나 쉽게 폭력성을 발현하게 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바로 내란 사태 과정에서 우리가 목도한 것이다. 한국 사회의 일부 엘리트들과 권력자들은 내란 사태를 일으킨 자들을 비판하고 단죄하는 것이 법치주의 국가의 기본임에도 불구하고 그 범죄를 계몽령이라는 등의 괴변으로 포장하고 옹호하는 행태를 보였다. 이는 범법행위를 자행하거나 범죄를 공개적으로 지지해도 괜찮은 위임장으로 작용해, 서울 한복판에 캡틴 아메리카, 조커, 과잠을 입은 청년들과 폭도들이 난입하는 위기 상황을 초래했다.

2005년, 로버트 O. 팩스턴의 저서 『파시즘』의 머리글에서 조효제 교수는 “히틀러가 독일 우파 세력을 어떻게 이용했고 이들을 종국에 어떻게 파멸시켰는지를 한국의 보수우파는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우리는 지금 이 경고를 무시한 한국 보수우파의 몰락을 지켜보는 중이다. 아울러 파시즘에 경도된 채 한국 사회 곳곳에서 활개 치고 암약하는 무리를 제어해야 할 과제 역시 현재 진행 중이다. 

 

글·김경욱
대학에서 영화 관련 강의를 하면서, 영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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