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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바이든 이후 미중러 3각관계와 한반도 下
[기획] 바이든 이후 미중러 3각관계와 한반도 下
  • 강태호 l 본지 편집위원, <한겨레> 전 외교전문기자
  • 승인 2022.03.02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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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러 전략 협력의 새로운 단계와 한국외교의 방향

미중러간 양자 정상회담과 중러의 공동전선(반닉슨 전략)

2021년이 저무는 12월 미러(7일) 중러(15일) 화상 정상회담 그리고 그에 앞서 11월 16일엔 바이든 행정부 들어 첫 미중 화상 정상회담이 열렸다. 이 3자간의 양자 정상회담에서는 푸틴이 나토의 동진정책에 대응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개입을 카드로 러시아의 안전보장을 요구하며 미국을 압박했으며, 베이징 동계올림픽 보이콧 등 미국의 대중국 포위전략에 대해선 중러가 강력한 공동 대응을 과시했다.

12월 15일 시진핑 푸틴의 화상 정상회담은 2021년 들어서는 두 번째로, 시 주석은 특히 ‘2013년 이후 우리의 37번째 회동’이라면서 두 지도자간의 굳건한 연대를 과시했다. 시 주석은 “당신과 손잡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포스트 코로나' 시기 중러관계의 새로운 장을 함께 열고 싶다”고 강조했으며, 푸틴 대통령은 "나는 러중 관계를 21세기 국가간 협력의 진정한 모범이라고 평가한다"고 화답했다. 특히 대만 문제에서 군사적 대응을 내세운 중국과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군사적 개입을 내세운 러시아 모두 미국을 압박했다. <신화통신>(2021년 12월 16일)에 따르면 푸틴은 “러시아는 대만 문제에 대한 중국 정부의 정당한 입장을 가장 확고히 지지할 것이며, 어떤 세력이든 대만 문제를 빌어 중국 측의 이익을 해치는 것을 결연히 반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어떤 형태로든 '소그룹'을 구성하는 것을 결연히 반대할 것이며, 중러 사이를 이간질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실현될 수 없을 것”이라면서 매우 강경한 어조로 오커스와 쿼드 등 중국 견제를 목적으로 하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공격했다. 또한 유리 우샤코프 크렘린궁 외교담당 보좌관은 시 주석이 나토의 동진에 대응한 러시아의 안전보장 노력에 대해 “러시아의 우려를 이해하고 러시아의 구상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미국은 두 개의 전선에 직면했으며, 미국이 중러가 휘두르는 이른바 ‘반닉슨 전략’에 포위되는 모습이었다.

 

우크라이나 위기와 새로운 단계의 중러 협력

2022년 2월4일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맞춰 열린 중러 정상회담은 38회(2021년 12월15일의 비대면 정상회담 포함하면 39회)에 이르는 두 지도자간의 정상회담이자, 시진핑 주석은 코로나 사태 이후 2년여만의 첫 대면 회담이었다. 회담은 두 정상이 발표한 공동성명의 제목(‘새 시대 국제관계와 글로벌 지속적 발전에 관한 공동성명’)이 표현하고, 중국 언론들이 평가하고 있듯이 중러가 미국 주도의 서방 패권주의를 거부함과 동시에 국제관계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겠다는 걸 천명했다는 점에서 중러의 전략적 협력의 새로운 단계를 보여주고 있다.

‘새 시대 국제관계와 글로벌 지속적 발전에 관한 공동성명’은 미국이 추진한 나토의 동진정책과 아태지역의 폐쇄적인 안보블럭 반대를 동시에 밝혔다. 공동성명은 호주 등 아시아 국가들과의 동맹과 군비통제 등의 정책을 문제 삼으며 미국의 이름을 6차례나 거세게 비판하면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폐쇄적인 안보블록과 적대적인 진영을 만드는 것에 반대한다”고 밝혔으며, “일부 국가와 군사·정치 동맹체 및 연합체들이 다른 측의 안보를 희생하면서 직·간접적으로 일방적인 군사적 우위를 차지하려는 목표를 추구하고 지정학적 경쟁을 강화하며 대립과 대결을 부추기고 국제안보 분야 질서와 글로벌 전략 안정성을 훼손하고 있다”면서 “나토의 추가 확장에 반대하며, 나토가 냉전 시절의 이데올로기화된 접근법을 포기하길 촉구한다”고 밝혔다. 또한 “중국은 러시아가 제기한 장기적이고 법률적 구속력이 있는 유럽 안전보장 제안을 이해하고 지지한다”고 명시적으로 밝혔다, 두나라는 미국이 아시아태평양 지역과 유럽에 배치한 지상 중단거리미사일을 포기할 것도 촉구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번 공동성명에서 확인된 중국의 입장은 지난 40여년에 걸친 중국의 대미 정책에서의 근본적인 전환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중국 전문가들과 외교관들은 이제 더 이상 미국이 중국의 대외관계에서 가장 핵심적인 국가라고 보고 있다고 말하지 않으며, 그에 반해 러시아와의 협력은 금지된 분야가 없으며, 모든 분야에서 어떠한 제약도 없이 추진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뉴욕에 기반을 둔 싱크탱크인 아시아 소사이어티(Asia Society) 회장인 케빈 러드(Kevin Rudd) 전 호주 총리는 “1950년대 후반 소련과 중국 사이에 격렬한 공산주의 블록이 분열된 이후로 중국이 유럽 안보에서 러시아를 지지하는 결정적인 입장을 취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라고 지적하면서 “세계는 중국과 러시아의 안보와 경제 관계의 협력이 더욱 심화될 수 있다는 데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1) 뤼샹(呂祥) 중국사회과학원 연구원도 “중·러 양국 정상회담에서 주요 현안과 전략적 문제를 모두 담은 장문의 성명을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이는 중·러관계가 전례 없는 수준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2) 그는 또한 “세계 질서는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었다.. 냉전적 사고방식의 잔재인 미국의 패권주의에서 핵심 이익과 주권을 지킬 능력을 갖춘 나라는 중국과 러시아뿐”이라고 지적했다. 중러가 미국의 냉전적 패권주의에 대한 공동연대를 넘어서 이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국제관계를 위한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의 <인민일보>는 5일 논평에서 이번 정상회담이 입춘(立春)에 맞춰 이뤄진 것을 거론하며 '신춘지회'(新春之會)라 지칭하면서 양국은 “전날 공동성명을 통해 중·러 관계와 국제 안보 전략에 관한 중대 문제의 청사진을 충분히 논의해... 대국간 전략적 상호 신뢰 모델과 새로운 국제 관계 모델을 수립했다”고 평가했다.

또한 이번 회담 모두 발언에서 푸틴 대통령은 “러·중 관계는 사상 유례없는 수준에 이르렀고, 양국 관계는 21세기 국제 관계의 모범”이라고 강조하면서 “극동 지역에서 중국에 100억 입방미터(10bcm)의 천연 가스를 공급하는 새로운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이 에너지 협력은 2014년 4000억달러 규모의 ‘세기의 합의’ (4천억 달러, 475조2천억 원)로 불리는 시베리아 힘 1(시베리아 서부노선)가스관 사업에 따라 연간 38bcm(2019년 말 개통해 2021년에는 5bcm을 공급, 2025년부터의 공급규모)을 공급하기로 한 것에 추가해 10bcm을 추가로 중국 동북부 지역에 공급하기로 한 것이다.

이번 합의는 극동 지역 가스관을 이용해 사할린 등서 생산되는 천연가스를 중국으로 공급하기 위한 계약이지만 가즈프롬(Gazprom)은 극동 지역의 가스전이 어디인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고, 중국석유천연가스공사(CNPC, China National Petroleum Corporation)도 이에 관한 질의에 아무런 답을 내놓지 않았다. 그러나 <로이터 통신>(2월8일)은 소식통들이 미국이 제재를 가한 유즈노 키린스코예 가스전을 포함한 사할린 지역을 지목하고 있다고 전했다. 모스크바에 본사를 둔 소바 캐피탈측은 러시아가 중국에 수출할 가스가 키린스코예 지역에서 나올 것이라며 “아마도 유즈노 키린스코예 가스전일 개연성이 더 높고, 2023년이나 2024년 채굴이 시작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강제 합병한 이듬해인 2015년 이 키린스코예 가스전에 대한 제재를 단행, 외국 기업들이 이곳에서 석유나 가스의 원료인 탄화수소 채굴과 생산을 못하도록 했다. 오호츠크해 키린스키 구역의 일부인 이곳에는 가스 외에 석유도 매장돼 있다. 가즈프롬은 홈페이지에 이곳에서 “반잠수식 석유시추선을 이용해 채수정(採水井)을 건설 중이며, 2023년부터 2025년에 걸쳐 본격 가동에 들어갈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로이터>는 러시아가 이곳에서 가스를 채굴해 중국에 파는 것은 러시아가 미국의 제재를 어떻게 우회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될 수 있다고 논평했다. 그런 점에서 이는 2022년 1월25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안드레이 데니소프 주중 러시아 대사가 기자들에게 이번 회담에서 시진핑 주석이 푸틴을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한 ‘깜짝 선물’인 것으로 보인다.

또한 러시아 국영석유회사 로스네프트(Rosneft)도 2월4일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CNPC와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을 통해 10년 동안 1억t의 원유를 중국에 공급하는 협정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 원유는 중국 북서부 지역 공장에서 석유화학제품으로 가공될 예정인데 로스네프티는 지난 2005년부터 지금까지 모두 4억 4천200만t의 원유를 중국에 수출해 왔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중러가 체결한 이 두가지 에너지 거래의 규모가 약 1,175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다만 가즈프롬과 CNPC가 추진해온 또 다른 사상 최대규모의 메가 프로젝트인 시베리아 힘 2 가스관 사업(3)은 예상과 달리 이번 회담에서도 성과가 없었다. 이는 서부 시베리아 가스전(야말 가스전 생산을 추가함)에서 생산된 러시아 천연가스를 몽골을 경유해 중국 동부로 공급하기 위한 프로젝트로 공급규모가 50억 bcm 이상으로 시베리아 힘 1을 능가한다.

타스 통신(2월3일)에 따르면 러시아는 2020년 중국의 석유 수입 총량의 15.4%인 8,357만톤을 공급했으며 이는 사우디에 이어 2위이며, 특히 ‘미국의 제재에 맞서 위안화와 루블화의 상호 결제가 보편화해 2020년의 경우 자국 통화 결제 비율이 25%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했다. 러시아는 이외에도 2019년 시베리아 힘1 가스관과 액화천연가스(LNG) 선적을 통해 중국에 가스를 보내왔으며, 러시아가 2021년 중국에 수출한 가스는 총 16.5bcm(165억 입방미터)였다. 리쯔궈 중국국제문제연구소 수석 연구원은 “전통적인 에너지인 석유 이외에 LNG 및 원자력과 같은 새로운 에너지에 대한 중국과 러시아의 협력이 증가하고 있다”면서 “2022년 에너지가 중ㆍ러 무역액의 35% 이상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야말 가스전 북극해 2 가스전 개발 등 업스트림에 이르는 중국의 금융지원 및 투자, 채굴 기술 및 장비협력, 석유화학 분야와 북극해 통과 LNG 운반선 등 조선협력을 포함해 매우 광범위한 한 분야에 걸친 장기 에너지 협력이 두나라 협력의 실질적 토대가 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흐름에 맞춰 중러는 2024년까지 두나라 무역규모 2000억달러 달성을 목표로 내세웠으며, 2020년 코로나 사태로 일시 감소를 보였으나 2021년 사상 최대규모로 2020년 대비 35% 증가한 1,460억달러를 달성했으며, 시진핑 주석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목표치를 2500억달러로 확대 제시하기도 했다.

유리 우샤코프 러시아 대통령 외교 담당 보좌관은 국제 관계에 대한 공동성명과 함께 이번 정상회담에서 에너지·금융 분야 등 15개 이상의 협력 협정에 서명할 예정이라고 예고한 바 있다.(4) 러시아 외무부가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반독점 입법 및 경쟁 정책에서의 협력에 관한 정부간 협정 △시스템 시간 규모 측면에서 글로나스(GLONASS) 및 바이두(BeiDu) 항법 위성 시스템의 호환성 및 상호 운용성을 보장하기 위한 협력에 관한 협정 △러시아-중국간 높은 수준의 상품 및 서비스 무역의 발전을 위한 로드맵 완성에 관한 공동합의△ 2022년 러시아와 중국 외교부 간 협의 계획 △지속 가능한 (녹색) 투자 협력을 촉진하기 위한 러시아 경제 개발부와 중국 상무부 간에 양해각서 등이 체결됐다. 또 상업 계약은 푸틴이 밝힌 10bcm(100억 입방미터) 규모의 극동 루트를 통한 천연 가스 구매 및 판매, 카자흐를 경유한 1억톤 규모의 중국 서부의 정유소로 배송하기 위한 원유 구매 및 판매 합의였다. 이외에 로스네프트와 중국석유천연가스공사(CNPC)간의 저탄소 개발 분야 협력에 관한 양해각서, 로스네프트와 화웨이(Huawei Technologies)간의 정보 개발 및 디지털화 분야 협력에 대한 협정등이 포함돼 있다.

 

지정학적인 주체로 나아가는 외교전략의 필요성

남북관계 및 북방 유라시아 협력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정책은 미중러 3자 전략 구도의 변화와 패권의 흐름에 대한 냉철한 인식이 전제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난 5년 가까운 시기 동안 신북방정책이 과연 그런 인식 위에 추진됐는지는 의문이다.

특히 일본·인도·호주와의 비공식협력체 ‘쿼드’(Quad)를 강화하고, 영국·호주와 안보동맹인 ‘오커스’(AUKUS)를 결성 반도체 연합 등 미중 패권 대결구도에서 진행되고 있는 미국의 대중 대결별(그레이트 디커플링)이 시대적 흐름이라고 한다면 신북방정책이 미국에 의해 요구되고 있는 동맹 외교의 방향과 부조화하고 갈등 관계에 놓일 수 있다.

미국(트럼프는 물론이고 바이든 정부에서도)은 중국 러시아를 포함한 유라시아 국가들간의 협력을 때로는 양립할 수 없는 위협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특히 동맹의 이익을 내세워 한중의 협력을 견제하기까지 하고 있다. 따라서 정책 차원에서는 한미 관계가 북방 협력과 갈등하고 있지 않는 것으로 보이나 실제 북방 경제협력은 대러 제재, 미국의 대중 경제전 속에서 한 걸음도 나 아가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신북방정책을 동맹관계를 중심에 둔 우리 외교 안보 정책에서 어떻게 재정립할 것인가라는 근본 문제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며, 한미 동맹을 강화하고, 신북방 협력은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한다는 식의 접근법은 현실이 될 수 없다는 냉철한 인식이 출발점이 돼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2022년 1월 3일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신년 외교정책 방향으로 “모든 국가와의 우호 협력 관계를 계속 발전시켜 나가자”며 “한미 간 확고한 동맹을 바탕으로 주변국들과의 전략적 외교도 강화해 나가야 한다”고 한 것은 미중 패권경쟁에서의 전략적 모호성으로 이해되기 보다는 깊이 있는 현실 인식을 결여하고 있는게 아닌가라는 의문을 낳는다.

문재인 정부는 모든 외교 역량을 2018년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시작된 남북 북미 정상회담 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쏟아부었으며, 신북방정책도 이와 연계돼 진전될 수 있으리라는 기 대를 했다고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임기를 6개월여 남겨둔 시점(2021년 9월 문재인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에서 ‘종전선언-베이징 동계올림픽-남북관계-북미관계 진전’으로 이어진다는 희망 섞인 전망으로 종전선언을 추진했다. 그러나 이는 바이든 정부가 2월의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외교적 보이콧'을 선언하고 일본이 이를 추종하는 등 한국에도 동참을 압박했으며, 정작 북한이 동계 올림픽에 참가하지 않는다고 발표함으로써 어긋나고 말았다.

사실 이 종전선언 구상은 애초부터 미국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서 성과를 기대할 수 없었다. 2021년 11월 17일 종전선언을 협의한 워싱턴 한 미 차관회의(웬디 셔먼 부장관이 일본 외무 차관을 참여시킴으로써 3자 협의로 바뀜)는 한미의 동상이몽을 보여줬다. 그럼에도 한국 외교부의 보도 자료는 “종전선언 진전 방안을 놓고 한미 양국간 소통과 공조가 빈틈 없이 진행되고 있음을 평가한다”는 것으로 사실을 호도했다. 미국측 발표는 단 한 문장으로 “북한 문 제를 비롯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공동의 약속을 논의했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셔먼 부장관은 “종전을 선언하는 것에 미국이 동의하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우리는 좋은 협의를 하고 있다”고 말해 동문서답의 태도를 보였다. 이미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은 문 대통령이 유엔 연설에서 종전선언을 제안한 한달 뒤인 10월 26일 언론 브리핑에서 종전선언을 두고 “우리(한·미)는 정확한 순서와 시기, 혹은 조건 등에서 다소 시각차가 있을 수 있다”고 이견을 드러냈다. 이는 매우 이례적인 것이었다. 그건 북한이 먼저(순서와 시기) 핵 폐기에 대한 선의를 보이는 조건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으로 미국의 이런 입장은 예견된 것이었다.

게다가 이 종전선언 구상은 미국의 학자 및 전직 관료들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었다. 미 국무부의 핵심부서로 외교전략을 수립하는 정책기획실 실장을 역임한 미첼 라이스는 “지금의 상황에서 종전 선언을 한다는 것은 마치 암 환자에게 반창고를 붙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로버트 죌릭 전 세계은행 총재가 지적하고 있듯이 중국의 협력 없는 한반도 문제에서 중국이 당사자가 되는 종전선언은 기대할 수 없는 것이었다. 대니얼 러셀 전 아시아 태평양 담당 국무차관보도 ‘종전 선언을 나쁜 생각’이라고 지적하면서 바이든 행정부가 딜레마에 처해 있기 때문에 한반도 문제에서 미국이 취할 수 있는 정책대안이 별로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북한이 협상을 거부할 때는 외교적 진전을 낼 수 있는 ‘기회의 문’은 닫혀 있기 때문에 바이든 행정부가 처해 있는 딜레마에 공감한다” 며 여기에 “중국이 미국과의 전략적 경쟁으로 인해 협력을 거부하고 있을 때는 북한에 효과적인 압박을 가할 수 있는 ‘기회의 문’도 닫혀 있으며, 바이든 정부는 ‘좋은 선택지’는 고사하고 북한에 대한 선택지 자체가 별로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고 진단했다.(5) 실제로 미국은 북한이 2022년 들어 1월 한달 동안에만 7차례에 걸쳐 단거리, 순항, 중거리(화성 12형) 등 대대적인 미사일 무력시위를 벌였음에도 중러의 반대로 인해 안보리 제재 결의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그에 반해 중러는 이미 지난 2017년 한반도 문제의 종합적 해결 방안을 위한 '로드맵'을 제시했다. 2019년에는 이 로드맵을 보완한 행동계획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바 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정당한 관심을 보인 바가 없으며, 트럼프가 국내정치와 선거전략에 따라 보여온 즉흥적이고 임기응변적인 외교에 매달렸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2020년 9월 한소(러) 수교 30주년 기념 국내 언론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2017년 러시아와 중국의 정상이 모스크바 공동성명(2017년 7월)을 통해 한반도 문제 해결 3단계 '로드맵'을 발표(쌍중단과 쌍궤병행 양대 구상)하면서 다른 나라들의 동참도 요청했으며, 이들 단계적 조처 가운데 대북 제재의 점진적 해제가 포함돼 있음을 강조했다. 라브로프 장관은 또 이 회견에서 “말에서 행동으로, 이미 이루어진 합의들의 실질적 이행으로 넘어가는 것이 중요”한데 “싱가포르에서의 북미 정상 공동성명,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판문점 선언과 평양 공동선언 (9.19) 등은 이행 단계로 접어들었을 때 관련국들은 준비가 안 된 것으로 드러났다”면서 핵심적인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한러 협력의 전략적 의미에 대한 새로운 인식

동맹 관계와 북방협력의 모순과 충돌이라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남북을 아울러 해양-대륙과의 연계, 둘을 잇는 교량 교두보로서의 지정학적인 위상의 재확립이라는 관점에서 외교 다변화를 통한 세력균형을 추구하는 국가전략이 필요하다. 특히 미중의 패권적 대결 상황에서 한국 외교는 양자택일의 딜레마에 빠지지 않고 제3의 세력화를 통한 완충적 다자적 세력균형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러시아와의 전략적 협력은 미중의 패권적 경쟁과 대결 사이에서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딜레마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외교와 경제협력의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는 지정학적 돌파구가 될 수 있다. 중국과의 관계 강화는 미국과 일본의 우려를 촉발시키거나 국내의 친미 세력의 반발을 초래함으로써 외교의 자주성을 제약하거나 외교적 균형을 추구하는 데 한계로 작동하는 반면, 러시아와의 관계는 유라시아 연합 등 중앙아시아 국가를 포함해 외교관계의 다변화를 추구하는데 자유로울 수 있다.

러시아는 여전히 세계정치 경제 안보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 주요 국가 가운데 하나일 뿐만 아니라 유라시아의 대국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상대다. 푸틴 대통령의 신동방정책은 오바마가 추구했던 아시아 재균형(또는 중시) 전략과 마찬가지로 ‘Pivot to Asia’라 할 수 있으며,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미국 유럽의 제재로 러시아 지도부는 그 어느 때보다 아시아에서 대안을 모색하려 하고 있다.

이른바 아시아 중시(Pivot to Asia)라 할 러시아의 신동방정책은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고 있는 건 분명하다. 그러나 중앙아시아에서 러시아와 중국의 관계 협력과 경쟁 갈등의 이중적인 성격을 띠고 있듯이, 러시아는 경제 및 금융 분야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과 지역적으로는 극동지역에서의 중국의 경제적 영토적 이해에 대해 강한 경계감을 갖고 있다. 푸틴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과의 협력은 러시아내 ‘중국 활용론’의 지지를 받고 있으나 중러 협력이 심화될수록 역설적이게도 중국 위협론 경계론에 따른 대안적 균형을 찾는 협력상대가 필요하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동맹의 이익을 훼손해 온 트럼프 행정부와 달리 바이든 행정부는 동맹의 상호 이익을 존중하겠다는 방침을 내세운 만큼 한-러 협력이 북한의 도발 억지, 러시아를 통한 중국의 북한에 대한 일방적인 영향력 견제 등 긍정적인 역할을 하며 한국의 국익에 부합한다는 입장을 견지할 필요가 있다. 미러 대결의 핵심 쟁점은 유럽이지 아시아는 아니며, 중러 협력을 강화하는 정책은 미국에게도 바람직하지 않다.

북한과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러시아는 북핵 문제에서 중국과 함께 대화를 열어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으며, 북한 또한 전통적으로 중국의 일방적 영향력을 견제하는 차원에서 러시아와의 관계를 중시해 왔다. 따라서 한러 협력의 내용과 범위를 정할때 경제적 관점에서만이 아니라 북러 협력을 고려한 전략적인 관점을 견지해야 하며 남북러 3자 관계의 형식 만이 아니라 북-러, 한-러 양자가 서로 연계되는 형태로 교류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러시아를 매개로 한 북한과의 상호신뢰를 구축하는 한편, 러시아를 중재자로 삼아 북한을 대화의 테이블로 끌어들여 북한 체제의 안전을 보장하는 실질적인 협상에 러시아가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양자간 전략 대화를 추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글·강태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편집위원장, 전한겨레 평화연구소장


(1) 푸틴 시진핑, 미국에 대항하는 러-중 파트너십 목표(Putin, Xi Aim Russia-China Partnership Against U.S.) <월스트리트 저널> 2022년 2월 4일.
(2) 관영 영자지 <글로벌 타임스> 2022년 2월 5일.
(3) 2014년 동부 가스관(시베리아의 힘 1) 합의 당시 함께 협상 중이었던 서부 가스관 사업으로 당시 50 bcm(5백억 입방미터) 규모에 몽골과 카자흐 사이의 알타이쪽 노선을 검토하고 있었기 때문에 알타이 가스관 프로젝트로 불렸다, 이후 중러는 몽골의 요청을 받아들여 이 가스관 사업의 노선을 몽골경유로 수정하고, 시베리아 힘 2로 명명했다.
(4) 러시아 <타스통신> 2022년 2월 2일.
(5) 대니얼 러셀 전차관보 인터뷰 “종전선언은 ‘나쁜 생각’…‘안미경중’ 벗어나야” <미국의 소리 방송(VOA)> 2022년 1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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