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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도 긴, 찐 여름
길고도 긴, 찐 여름
  • 이상엽 l 사진작가
  • 승인 2022.06.30 19: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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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로 새로 쓰는 24절기 - 7월 대서
멀리 대청댐이 보인다. 1975년에 공사가 시작돼 1980년에 끝난 대청댐은 거대한 호수 속에 4,000세대의 집과 농토가 잠겼다.

7월은 대서(大暑)다. 연중 가장 더운 절기다. 그런데 보통 절기는 15일인데 기후변화로 인해 대서는 이제 한 달 가까이 진행된다. 소서까지 합친다면 두 달 가까이 돼서 겨울 한 달이 줄어든 것을 여름이 채우는 형국이다. 이렇게 여름이 늘어났다는 것은, 냉방을 위한 에너지 사용으로 다시 기후변화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악순환이다. 한여름 열대야는 수면의 질을 매우 떨어뜨리기에, 요즘에는 불가피하게 에어컨을 켜고 자는 경우가 많다.  

새로 쓰는 절기상, 대서는 7월 19일로 길어진 소서 뒤에 나타나 8월 20일 입추 때까지 이어진다. 이때 초복, 중복, 말복이 모두 들어온다. 이러니 삼복더위를 피해 찬 음료수와 음식을 마련해 산간계곡이나 해변을 찾아 떠나는 것도 당연하다. 이런 때 과로하다가는 더위를 먹기 십상이다. 게다가 장마전선이 한반도에 걸쳐져 시도 때도 없이 비가 내리면 찜통더위를 겪게 된다. 전부터 이때는 계곡 그늘에 앉아 발을 물에 담그고 수박, 참외와 같은 수분 많은 과일을 먹는 것이 최고의 신선놀음이었다. 요즘이야 풍속이 많이 달라져 정말 신선놀음으로 여길 만도 하다. 

 

무지개송어를 찾아서

 

양식한 송어의 회다. 대청댐 아래 찬물을 이용해 송어 양식을 하는 곳이 몇 있다.

내가 십 대였던 아주 오래전, 아버지와 친척들이 강원도 춘천시 소양호로 여름 피서하러 간 일이 있다. 당시는 강 곳곳에 댐이 들어서 광대한 호수들이 생겼고, 정부는 그곳을 유원지로 조성했다. 호수 주변에 음식점들이 있었는데 특히 내수면 양식으로 길렀던 향어(이스라엘 잉어) 회가 아주 인기였다. 지금은 어디서 그런 회를 먹어보기 힘들지만, 당시는 꽤 흔했던 민물 회였다. 

원래 음식이란 것이 어릴 적 향수가 강한 것이라, 지금도 그 회의 맛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래서 대전에서 볼일을 보고 땀도 식힐 겸 지인과 인근의 대청호를 찾았다. 대전시와 충북 등 여러 지자체에 걸쳐 있는 이 곳은 국내에서 3번째로 큰 인공 호수다. 1975년에 공사가 시작돼 1980년에 끝난 대청댐은 거대한 호수 속에 4천 세대의 집과 농토가 잠겼다. 2만 6000명의 지역 원주민들이 고향을 잃고 대전시와 다른 도시들로 이주했다. 이젠 너무 오래된 일이라 실향민을 빼면 대청호 안에 무엇이 있었는지 알 사람은 거의 없다. 대청호를 관광지로 만들고 이날 최고 집권자였던 전두환이 1983년에 별장인 청남대를 대청호 주변에 만들었다. 지금은 누구나 들어가 볼 수 있는 곳으로 풍광이 좋다. 

이곳도 소양호처럼 관광지를 조성하면서 민물고기를 취급하는 양식장과 음식점이 들어섰다. 그런데 이곳은 향어 대신 송어다. 정확히는 북미가 원산인 무지개송어다. 요즘 어린이도 즐긴다는 연어 회도 있지만, 그 사촌쯤 되는 송어가 오래전부터 인류에게는 귀중한 식량이었다. 연어과로 민물에 들어와 터를 잡아 ‘육봉’이라 하는 송어는 전 세계 내륙 깊숙이 강을 따라 분포한다. 이 송어는 잉어와 함께 우리 인류가 바다에서 고기를 잡을 엄두도 못 냈을 때 쉽게 강가에서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는 물고기였다. 

사실 이제는 강에서 어업에 종사한다는 것이 매우 이례적으로 들리지만, 여전히 국토의 약 6%를 차지하는 내수계에서 약7,000명이 1,514톤의 물고기를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과거 20년 전에 비하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바다보다 훨씬 쉽고 에너지와 비용을 적게 들이며 물고기를 키울 것 같지만, 맛에서 떨어지고 대량 생산이 여의치 않다. 그래서 내수면 어업은 계속 줄고 있다. 

식당에 앉아 땀을 말릴 때쯤, 대청호 주변에서 양식한 송어회가 나왔다. 붉은 살이 아주 매력적이다. 게다가 연어보다 인기가 없어 횟값치고는 싸다. 한입 입에 넣으니 부드럽게 씹힌다. 송어를 생각하니 슈베르트의 가곡 <송어>가 떠오른다. 1817년, 슈베르트가 20세 때 이 곡을 작곡했다. 독일의 낭만파 시인 프리드리히 다니엘 슈바르츠의 시 <송어>에 곡을 붙인 것이다. 한국어로 번안한 가사 내용은 이렇다. 

 

거울 같은 강물에 송어가 뛰노네! 화살보다 더 빨리 헤엄쳐 뛰노네 / 나그넷길 멈추고 언덕에 앉아서 거울 같은 강물에 송어를 바라보네 / 젊은 어부 한 사람 기슭에 서서 낚싯대로 송어를 낚으려 했네 / 그걸 내려 보는 나그네 생각에는 거울 같은 물에선 송어가 안 잡혀 그 어부는 마침내 꾀를 내어 흙탕물을 일으켰노라 / 아, 그 송어 떼가 모여들어 이윽고 송어는 낚였네 / 마음이 아프게도 나는 그것을 봤네

 

우리 어릴 때는 ‘숭어’라고도 했지만, 슈베르트가 이 곡을 작사할 때 머물던 오스트리아 할슈타트 호수는 바닷물고기 숭어가 살 리 없다. 숭어가 맞는다며 지인과 너스레를 떨며 또 한 점 송어회를 입에 집어넣는다. 나는 송어가 참 맛있다. 먹는 것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으면 기후가 변하고, 기후가 변하면 원하는 것을 얻기 더 힘들어진다. 성장이 아니라 어느 때는 멈추고 지금 있는 것에 만족하며 감사해야 할 날이 올 것이다. 

 

해변의 모래가 사라지고 상어가 온다

 

강원도 장호항 방파제에서 여름철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 7번 국도에서 만나는 아름다운 항구 마을이다.

여름 피서하면 한국인에게 해변을 빼놓을 수 없겠다. 이 나라가 반도라 참으로 다양한 풍광과 지형의 해변을 보유하고 있다. 그중에서 물 깊고 맑은 동해 바다는 단연코 최고의 피서지로 꼽힌다. 특히 삼척의 맹방, 장호, 나곡 해수욕장으로 이어지는 모래밭 벨트가 유명하다. 그런데 최근 맹방 해변의 백사장 2km가 바다로 쓸려나가면서 비상이 걸렸다. BTS의 노래 버터 뮤직비디오로 유명해진 맹방해수욕장의 침식은 자연현상인지 인근 화력발전소 항만시설 공사 때문인지 설왕설래하지만, 강원도는 최근 5년간 해안침식으로 인해 유실된 백사장이 축구장 80개 규모라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해 이선경 강원도인권위원장은 “강원도는 지금까지 동해를 지키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지만 해안침식을 막지 못했고, 현 상황은 매우 심각하다”라며 “정부는 대통령 직속 탄소중립 위원회를 출범시키고, 2040년까지 100% 탄소중립을 실천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는데, 강원도에서는 화력발전소가 건설되고 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립해양조사원은 기후변화로 지난 30년간 동해안 해수면이 연평균 3.71mm씩 상승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서해·남해·동해 등 우리나라 세 개 해안의 해수면 상승치 가운데 가장 높은 것으로, 1991년부터 2020년까지 30년간 우리나라 전 연안의 평균 해수면이 매년 3.03mm씩 높아져 평균 9.1cm가 높아진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조류의 파도를 변화시키기 충분한 수치이며, 해안침식의 원인 중 하나임은 분명해 보인다. 

 

장호리 해수욕장의 모래도 유실되고 있다. 강원도 대표 해수욕장들이 지난 5년간 잃어버린 백사장의 넓이는 축구장 80개 면적이다.

게다가 동해안의 해수욕장 근처에서 공격성이 강한 청상아리나 악상어 등 3~5m 짜리 상어들이 출몰하고 잡힌다는 것이다. 이들은 주로 오키나와 아래쪽에서 서식하던 아열대성 종들로, 우리 바다에는 어울리지 않지만 꾸준히 동해안의 수온이 상승하면서 출현 빈도가 높아지고 특히 여름철에 몰려들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상어의 공격성은 영화 <조스> 이후 부풀려진 측면이 있고 실제 피해자가 나오지도 않으니 지레 겁먹을 필요 없겠지만, 바뀌는 생태계에서 과연 여름 피서가 얼마나 피서다울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여름이 참으로 길다. 

 

 

사진/글·이상엽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고 논픽션 글을 쓴다. 우리 땅 변경을 기록한 사진으로 2015년 <일우사진상>을 수상했고,『파미르에서 윈난까지』(현암사)는 2011년 올해의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늘 기록은 힘이 세다 믿으며 예술노동자로 산다. 지금은 비정규노동센터의 이사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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