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임죄 적용여부 쟁점
손태승 전 회장 처남 명예지점장 행세해 논란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의 친인척 부당대출 의혹과 관련해 현 우리금융 경영진의 대응을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이 원장은 20일 임원회의에서 "우리금융이 보이는 행태를 볼 때 더는 신뢰하기 힘든 수준"이라며 손 전 회장 친인척 부당대출 의혹과 관련한 우리금융지주 및 은행 경영진의 상황인식과 대응태세를 질타했다.
이 원장은 해당 의혹에 대해 "제왕적 권한을 가진 전직 회장의 친인척에게 수백억원의 부당대출이 실행되고, 그 결과 대규모 부실이 발생한 사안"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은행 내부 시스템을 통해 사전적으로 인지할 수 있었어야 하며, 사후적으로도 부당대출과 관련한 조직적인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엄정한 내부감사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조치했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나아가 "기관 자체의 한계 등으로 문제점을 밝혀내지 못할 경우, 계좌추적권·검사권 등이 있는 금융당국이나 수사기관 등에 신속히 의뢰해 진상을 규명해 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이 원장은 우리은행이 친인척 대출에 대해 몰랐었다는 손 전 회장의 발언을 옹호하면서 심사소홀 등 외에 뚜렷한 불법행위가 없었다며 금감원에 보고하지 않은 것을 합리화하는 행태를 지속했다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이 원장은 "은행 부문 현업부서는 이번 사고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 및 재발 방지에 힘써달라"고 강조했다. 그가 유사한 행태를 보이는 금융회사에 대해 시장에서 발을 못 붙일 정도로 강한 법적 권한을 행사하는 등 엄정한 잣대로 감독업무에 임해달라고 당부했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앞서 금감원은 현장 검사를 통해 우리은행이 2020년 4월부터 올해 1월까지 손 전 회장 친인척 관련 법인 등에 총 42건, 616억원의 대출을 한 사실을 적발했다.
우리은행은 올해 초 이같은 사실을 파악하고 관계자들에 대해 면직 등 징계조치를 했지만 심사소홀 외 뚜렷한 불법행위가 없어 금융사고로 볼 수 없다며 금감원에는 따로 보고하지 않았다.
3월 18일 보고 받은 임종룡…배임 해당할까

우리은행 측은 지난 1월부터 부당대출 취급 의심사례를 발견해 3월까지 1차 자체검사를 실시하고 관련 임직원 8명에 대해 면직 등 제재조치를 했다. 이어 5월부터 6월 사이 친인척 관련 대출 전체를 대상으로 2차 검사를 진행했다.
적어도 징계를 확정한 4월에는 부당대출에 대한 결론을 낸 것으로 보이지만 금융감독원이 현장점검에 나선 6월까지 관련 내용을 보고하거나 홈페이지에 공시하지 않았다.
우리은행에 따르면 지난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과 조병규 우리은행장이 1차 검사 결과를 보고받은 것은 지난 3월 18일이었다.
쟁점은 현 경영진이 손 전 회장 친‧인척이 연루된 대출의 존재를 어느 시점에 인지했느냐다.
법조계에서는 현 경영진이 손 전 회장의 친·인척과 관련한 수백억원의 부당대출을 인지했음에도 회수 등 신속한 조치에 나서지 않았다면 배임에 해당할 수 있다고 본다.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를 위반해서 손해를 일으켰을 때 성립한다. 알고도 시간을 미루거나 임무를 해태(책임을 다하지 않음)해서 회사에 손해를 입혔다면 별도의 배임죄가 될 수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손 전 회장 친·인척 관련 대출 616억원 중 350억원 규모는 서류 진위 확인 누락, 담보·보증 부적정, 대출 심사 절차 위반 등 통상의 대출 기준과 절차를 따르지 않고 부적정하게 취급된 것으로 파악됐다.
부적정하게 취급된 대출은 상당 부분 부실화되기도 했다. 지난 9일 기준 단기 연체(1개월 이상 3개월 미만)되거나 부실 대출화(3개월 이상) 된 금액은 198억원에 달한다.
부당대출 은폐 목적으로 금감원 보고 지연했나
우리은행은 손 회장 친인척 관련 부당 대출 사실을 최종 확인했음에도 4개월 넘게 은폐하려고 금감원 보고 등을 지연했다는 의혹에 대해 전면 부인하고 나섰다.
우리은행은 "이때 본 건을 금감원에 보고하지 않은 것은 '금융기관 검사 및 제재에 관한 규정 시행세칙' 67조 규정에 근거해 심사소홀 외 뚜렷한 불법행위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해당 규정엔 '심사 소홀 등으로 인해 취급여신이 부실화된 경우는 이를 금융사고로 보지 아니한다'고 적시돼 있다.
1차 자체 검사에서 파악한 내용은 ‘여신심사 소홀’일 뿐 금융사고가 아니고, 금감원이 현장검사에 돌입한 6월 이후부터는 보고대상이 아니라는 게 우리은행 측 주장이다. 특히 우리은행은 이번 부당대출이 손 전 회장 친‧인척과 관련됐다는 것을 2차 자체검사와 금감원 현장검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알게 됐다고 강조하고 있다.
결국 금감원이 현장검사에 착수한 6월 전 우리은행이 어디까지 알고 있었는지가 관건이다.
우리은행은 지난 12일 관련 보도참고자료에서 “1차 자체검사 과정 중 발견된 특이 자금거래 동향 및 여신 감리 등을 기초로 ‘친‧인척 관련 여신’ 전체를 대상으로 2차 자체검사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5월 시작된 2차 자체검사의 대상이 애초에 ‘친‧인척 관련 여신’이었다는 점은 6월 착수한 금감원 현장검사 과정 등에서 손 전 회장이 연루된 사실을 알게 됐다는 최근 해명과는 배치돼 더욱 논란을 사고 있다.
350억원 규모의 부당대출과 부실 발생 건을 단순 심사 소홀로 자체 판단한 점도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금감원의 금융기관 검사·제재에 관한 규정 시행세칙 제67조는 ▲위법 또는 부당한 업무처리로 금융기관의 공신력을 저해하거나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경우에 지체없이 당국에 보고토록 하고 있다.
금감원 고위관계자는 “우리은행은 자체검사에서 발견된 여신심사 소홀로 인한 부실 여신은 보고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금감원 입장에서는 사문서 위조 등 금융사고 보고 누락 여부에 대해 살펴볼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손 전 회장 처남 '우리은행 명예지점장' 행세해

한편 손 전 회장의 친인척이 평소 '우리은행 명예지점장' 명함을 사용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회장 친·인척이 뒷배를 과시하고 다녔는데 은행이 거르지 못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권에 따르면 손 전 회장의 처남 김 모 씨는 우리은행 명예지점장이라는 직함이 새겨진 명함을 사용했다. 김 씨는 서울 신도림동금융센터, 선릉금융센터 등의 지점의 명예지점장이라는 직책이 박힌 명함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이번 사건에서 김 씨에게 부정한 대출을 내준 혐의(배임)로 함께 고소당한 임모 지점장이 근무했던 지점이다.
우리은행은 해당 명함이 공식적으로 발급한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명예지점장도 아니었고 본인이 명함을 파서 사칭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라며 "은행도 피해자"라고 말했다.
명예지점장은 우리은행이 우수거래처 대표 중 지점 발전에 기여가 높은 이를 선발해 위촉하는 직책으로, 본점에서 심사를 맡아 선정하며 현재는 301명의 명예지점장이 활동 중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현장검사에 앞서) 금감원에 접수된 민원에 이미 그런 명함을 파고다닌 다는 내용이 있었다"라며 "본인이 직접 명함을 팔 일은 없어 보이고 지점에서 파주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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