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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희의 시네마 크리티크] <나를 찾아줘>
[서성희의 시네마 크리티크] <나를 찾아줘>
  • 서성희(영화평론가)
  • 승인 2019.12.09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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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먹고 갈래”의 은수에서 “너나 잘하세요”의 금자까지

여성 캐릭터의 외연 확장, 배우 이영애

한국 영화에서 여성이 서사의 중심에 서 있는 영화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한 지 꽤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상업 영화 영역에서는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영화 내적으로 여성 캐릭터의 역할과 여성 서사와 관객의 욕구가 만나는 지점이 영역 확장되어야 한다. 그 가운데 여성 스타의 부재와 상대적으로 여성 배우의 두텁지 못한 연령층이 아쉬웠는데 반가운 두 배우가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바로 김희애와 이영애 배우이다. 이제는 중견배우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의 스크린 복귀는 앞으로 더 좋은 여성 캐릭터와 여성 서사의 다양성이라는 영역 확장을 기대하게 한다. 이런 관점에서 14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이영애의 <나를 찾아줘>는 더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영화이다.

<나를 찾아줘>는 이영애가 2009년 결혼 뒤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2017)에 출연한 적이 있지만, 장편영화는 <친절한 금자씨>(2005) 이후 14년 만에 복귀한 작품이다. 사실 이영애가 출연한 영화와 드라마는 그리 많지 않았고 관객의 기억에 각인된 작품도 그리 많지 많다. 장편영화는 <공동경비구역 JSA>(2000), <선물>(2001), <봄날은 간다>(2001), <친절한 금자씨>, 드라마도 <대장금>(2003~4)과 <사임당 빛의 일기> 정도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최고의 스타로 기억되고 있는 건 연기력보다는 꾸준히 광고에 등장하고, 몇 편 안 되는 영화에서 강한 인상을 준 탓일 것이다. 무엇보다 <인샬라>(1997)를 제외하면 결과적으로 꽤 의미 있는 작품에 출연했고 영화를 고르는데 선구안이 있는 배우라는 생각이 든다.

 

이영애는 한 인터뷰에서 이 영화는 확 빨려드는 몰입도가 뛰어나고 ‘희망 있는 맺음’에 출연을 결정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20·30대와 달리 40대 이후엔 ‘온전한 배우’인 나를 찾는 중”이라는 이야기대로 자신의 이미지 관리에도 철저하지만,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한 편 한 편 신중한 선택을 하는 배우임이 분명하다.

 

아이를 잃어버린 절망적인 삶

<나를 찾아줘>는 6년 전 잃어버린 아들을 찾기 위해, 그리고 6년 전 아들을 잃어버렸다는 결코 인정할 수 없는 현실에 적응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엄마 정연의 이야기이다. 영화의 초반부는 아이를 잃어버렸다는 현실에 적응하며 현실을 살아내야 하는 부모의 삶을 너무나 차갑고 무표정하게, 그래서 더 잔인하도록 슬프게 그려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6년 전 실종된 아들을 봤다는 연락을 받는다. 숱하게 반복되던 거짓 제보와 달리 생김새부터 흉터, 세세한 특징까지 모두 다 알고 있는 듯 묘사하는 낯선 이의 전화에 바로 아들을 찾아 떠난다. 아들을 찾으러 낯선 곳으로 향한 정연은 낯선 사람들과 마주치고, 그들이 뭔가 숨기고 있음을 직감하면서 그들에 대한 의심이 더 커지면서 그곳을 떠날 수가 없다.

 

영화의 주 무대는 정연의 아들로 추정되는 아이 민수가 일하는 해안가 한 낚시터이다.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 엄마를 연기하는 넋이 나간 정연이 갯벌을 홀로 걷는 장면은 명장면으로 오래 남을 것 같다. 그런데 <나를 찾아줘>는 이영애의 스크린 복귀작이기도 하지만, 김승우 감독의 장편 연출 데뷔작이기도 하다. 김승우 감독이 직접 각본을 쓰고, 10년 넘게 준비해온 작품이다.

감독은 2008년 즈음에 길을 가다가 ‘아이를 찾습니다’라는 현수막을 보고 그 현수막을 내건 사람들은 어떤 사연이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일었고, 그들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데뷔 감독이지만, 충무로의 초호화 스탭들이 모두 모여 이영애 배우의 복귀를 축하한다는 듯 만들어진 영화 같다. 스탭들의 면면이 화려한데, 이모개 촬영감독과 이성환 조명감독, 조화성 미술감독, 또 이영애 배우와 함께 작업해왔던 조상경 의상감독, 송종희 분장감독 등 베테랑 스탭이 다 모였다. 그런 만큼 비주얼과 스릴러 장르의 감각이 한껏 더 살아나 있다.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가 등장하거나 실종사건 자체를 다룬 영화들이 많지만, <나를 찾아줘>는 분명 스릴러의 비주얼 측면에서 완성도가 신인 감독 맞아 할 정도로 장르적 묘미를 잘 살린 영화이다.

 

자기 합리화를 하는 악인들이 많은 사회

<나를 찾아줘>는 실종 아동, 아동 학대 등 사회의 어두운 면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영화이고, 15세 이상 관람가이지만 폭력적인 묘사도 적지 않아 관객을 불편하게 하는 영화라는 우려도 있다. 그런 우려에 대해 이영애 배우는 “뉴스를 보면 너무 이해할 수 없는 사건사고도 많고, 정연보다 더 고통을 받는 사람들도 많다. 사회 부조리를 영화를 통해 보여주는 것으로, 과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라고 말했다. 다만 “엄마 입장에서 보면 여러 장면이 마음 아프다. 그러나 그게 현실”이라며 “그런 현실을 알고 봐주시면 더 묵직한 울림이 있지 않을까”라고 했다.

<나를 찾아줘>에서 악한 사회를 묘사하기 위해 등장시키는 악인 중에서 이영애와 대립각을 세우는 사람은 단연 유재명이다. 유재명은 인생 악역 홍경장을 맡아 열연한다. 바로 직전에 개봉한 영화 <윤희에게>에서도 경찰로 나온다. <나를 찾아줘>에서는 같은 직업이지만 완전히 다른 성격의 경찰 역으로 나와 잊을 수 없는 악인 연기를 한다. 홍경장은 정연 때문에 일이 다 꼬여서 이렇게 된 거지 우린 ‘원래’ 이렇게 살아왔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꽉 박힌 사람이다. 자신의 틀은 죽어도 깨기 싫어하는 경찰,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공권력을 너무 자연스럽게 행사하는 경찰. 경찰이라는 공권력을 가진 사람이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을 때 사회가 얼마나 끔찍해질 수 있는지를 상상하게 한다. 이 상상 속의 경찰 이미지가 너무 현실적으로 무섭게 다가와 더 무섭게 느껴지는 유재명은 오래 기억될 악인으로 남을 것 같다.

 

타인의 고통에 무심해 더 무례한 세상

감독은 극구 부인했지만, 영화를 보면 자연스럽게 목포 신안군에서 일어났던 ‘염전 노예 사건’ 실제 이야기가 떠오른다. 실종된 사람들의 전단지는 여전히 우리 주위에 많이 돌아다니는데 지금 그 사람들은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는지 새삼 궁금해진다.

악은 특별하지 않다. 악인은 정작 자신이 악인지 모른다는 것이 이 사회의 비극이다. 어린아이들의 악의 없는 장난 전화, 자신들의 욕심이 먼저인 친척과의 식사 자리, 전단지를 내팽개치고 낚싯줄을 당기는 낚시꾼, 악은 이미 우리 일상에 뿌리내려져 있다. 어린아이가 노동을 하고 있는데도 관심이 없는 낚시터 사람들의 모습은 우리의 평상시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아이를 노예로 부리고 있으면서도, 자신들의 일이 발각되자 정작 아이 엄마를 원망하는 낚시터 사람들의 심리가 바로 악의 본질이다. 내 일이 아니면, 내 욕심을 챙기는 일이 아니면 크게 관심 없는 세상. 이 세상에 대한 무심함이 고통 받는 타인에게 무례함 저지르면서도 무례했는지 인식하지 못하는 토대가 된다.

조금 더 현실적으로는 영화적 재미나 스릴 같은 장치도 중요하지만, 가족 그것도 아이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마음을 한순간이라도 공감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추천하고 싶은 영화이다.

 

 

글: 서성희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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