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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그림을 무단 학습한 AI의 저작권을 인정해달라고요? 그건 불법입니다!”
“내 그림을 무단 학습한 AI의 저작권을 인정해달라고요? 그건 불법입니다!”
  • 추유진 | 콘셉트 아티스트
  • 승인 2024.03.29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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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할리우드에서 콘셉트 아티스트로 활약 중인 추유진 씨는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는 챗지피티(ChatGPT)와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AI)의 위협에 대해 ”일부 제작자들의 개념 없는 복제로 인해 최근 들어 창작자들의 일감이 급격하게 줄고 있다”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미국 할리우드에서는 최근 작가, 배우조합의 파업에 이어 일러스트레이터, 아트디렉터, 콘셉트 아티스트 등 다양한 직군의 창작자들이 생성형 AI 반대 운동에 나서고 있고, 한국·일본 등 아시아 국가와 유럽 창작자들과 국제연대 투쟁도 준비 중이다. 

<토르:러브 앤 썬더>, <미즈 마블>, <더 마블스> 등 마블 시리즈 작품의 콘셉트 아티스트로 참여했고, 미국에서 영화, 게임, 책 등 다방면에서 콘셉트 아티스트로 활동 중인 추유진 씨는 국내 유튜브와 언론을 통해 최근 생성형 AI의 창작품 표절 반대의견을 적극 개진해 주목을 받고 있다. 휴가차 한국에 잠깐 나온 그를 만나, 생성형 AI의 작품표절에 대한 최근의 저항운동 동향과 콘셉트 아티스트라는 직업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추유진 콘셉트 아티스트

 

- 먼저, 콘셉트 아티스트라는 생소한 직업에 대한 소개 좀 부탁드려요. 

“콘셉트 아트는 보통 영화나 게임, 애니메이션 같은 산업 분야에서 활용되며, 콘셉트 아티스트는 캐릭터부터 건축, 환경 등 전반적으로 보이는 모든 부분들의 디자인을 만들고 프로젝트의 시각적 방향성을 설정하는 역할을 하고요. 간단히 설명해 건물로 말한다면 건축 설계사라고 할 수 있겠네요. 설계를 먼저 한 뒤에 철근과 빔을 세우고, 벽과 바닥, 천장, 그리고 인테리어 작업을 하는 것처럼, 작품의 첫 콘셉트를 창조하는 거죠.”

 

- 설계사가 건축주의 의향을 잘 파악해야 하듯, 감독이나 제작진의 의중을 잘 읽어야겠군요.

“감독이 꿈꾸는 이미지가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게 아니다 보니 감독의 머릿속에 있는 아이디어를 끄집어서 형상화하는 작업이 쉽지 않아요.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 슈팅 들어가기 전에 아이디어 짜내는 과정에서 감독과 대화하면서 추상적 영감을 스케치하고, 이걸로 콘셉트 아트 작업을 하는 거죠. 작업 과정은 다양해요. 특히 새로운 장소에 대한 디자인을 요구받을 경우 드로잉을 하며 아이디어를 짜내면서 3D 테크닉, 포토배쉬 테크닉 등의 여러 기술을 이용해 작품을 완성합니다.”

 

- 감독의 두뇌같은 역할을 하시는군요. 완성된 콘셉트 아트는 어디에 어떻게 쓰이나요? 

“콘셉트 아트는 영화감독과 프로덕션 디자이너가 원하는 비주얼 및 디자인을 최대한 끌어낸 것이기 때문에 VFX, 3D, 세트 디자이너들이 실제로 또는 3D로 구현하는 마지막 단계까지 활용됩니다.”

 

© 추유진

- <더 마블스>를 보면 어떻게 저런 놀라운 영상이 나올까 싶어요. 영감을 얻는 비결 같은 게 있을까요?

“어렸을 적에 봤던 <은하철도 999>, <에반게리온>, <에스카플로네>는 물론, 좀 더 크고나서 봤던 <디스트릭트 9>나 <블레이드 러너>에서도 많은 영감을 얻고 있고, <카사블랑카> 같은 고전 로맨스물에서도 많은 영감을 얻는 편이에요.”

 

- 어떻게 미국에서 콘셉트 아티스트로 활동하게 되었나요?

“어렸을 적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어요. 초등학교 땐 게임하는 것도 좋아해 게임 캐릭터와 팬 아트도 많이 그렸습니다. 이후 미술학원을 다니며 애니메이션학과를 준비했고, 사회에 나와서는 2011년쯤 네오위즈라는 회사에서 콘셉트 아티스트로 일하게 되었죠. 3년 정도 일을 하다가 퇴직금을 모두 털어서 2013년에 미국에 갔어요. 그냥 회사를 관두고 무작정 이제 좀 더 큰 물에서 놀아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했어요. 운 좋게도 4년 전, 제가 작업한 <토르: 러브 앤 썬더>라는 작품을 통해 아트디렉터스 길드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할리우드 영화 쪽의 작업을 위해선 해당 길드에 소속되어 있어야 하거든요.”

 

- 길드 가입이 좀 배타적이지 않나요? 

“조합원이 되기 위한 과정이 좀 까다로운 편이에요. 가장 먼저 감독님이나 프로덕션 디자이너 분의 마음에 들어야 하고, 또 조합의 허락을 받아야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처음 작업을 시작하고, 3개월 동안 내가 잘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해야 하는데, 이 기간 동안 저의 능력치를 최대한 발휘하느라 머리카락이 많이 빠졌었죠. 다행히 조합원 과정에 통과해 노동조합 소속이 되었고, 이후 다른 영화들에도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 유명배우들도 많이 만났겠군요. 

“배우 분들을 보는 것도 아주 멋진 일이지만, 저는 콘셉트 아티스트이다 보니, 특히 나이젤 펠프스라는 프로덕션 디자이너분과 같이 일할 수 있다는 게 더 흥분되는 일이었어요. <트랜스포머 시리즈>, <미이라>,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 등 놀라운 작품에 참여한 베테랑 디자이너와 일한다는 게 너무 신기하고 행복한 경험이었습니다.” 

 

- 작년 말에 개봉한 <더 마블스>의 마지막 화면에 적힌 제작진 이름에 추유진 씨 이름을 봤어요. 기억에 남는 일은 없었나요?

“<더 마블스>에서는 프로덕션 디자이너의 드로잉을 받아 콘셉트 아트로 만드는 작업을 했습니다. 캡틴 마블이 모니카 램보를 부축하는 신에서 제가 디자이너의 드로잉을 마블이 램보를 어부바 해주는 걸로 착각해 마블이 램보를 업고 여러 장소를 다니는 장면을 그렸다가 그 작업물이 팀 내부에서 아주 즐거운 웃음거리가 된 적이 있어요.” 

 

© 추유진

 - 현재 작업 중인 작품이 있을까요? 

“지금은 한국에서 열리는 전시 기획에 참여 중에 있고, 또 <레이디 인 더 레이크(Lady in the lake)>라는 애플 드라마가 나올 예정입니다.”

 

- 아쉽지만, 작가님이 참여한 <더 마블스>가 흥행에는 그다지 좋은 성적을 못 거두었어요. 그 이유가 뭘까요?

“제 생각으로는 아무래도 영화에 우리 관객에게는 불편할 수 있는 PC(Politically correctness) 주의가 좀 많이 가미되지 않았나 싶어요. 여성 평등이나 인종 평등 같은 원칙을 중요하게 생각하다 보니, 흑인 아시아인 등 다양한 문화권의 배우들을 출연시키고, 융합을 강조하다 보니 스토리가 강렬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봤을 때 솔직히 <더 마블스>가 <토르: 러브 앤 썬더>보다는 좀 더 잘 만든 스토리라고 생각했어요. 물론 한국 배우 박서준 씨의 분량도 너무 적은 게 아쉬웠지만, 개인적으로는 저는 상당히 재밌게 봤어요.”

 

- 이제, 할리우드 창작자들이 시위하는 생성형 AI의 예술복제 문제를 얘기해볼까요? 얼마 전에 추유진 씨가 한국의 유명 유튜브에 나와 “할리우드 창작자들은 자신의 작품을 온라인에 올린 뒤, 이를 본 제작사의 연락을 받아 새 프로젝트를 시작하지만, 이제 창작자들의 작품을 함부로 긁어가 제3세계 국가에서 ‘데이터 세탁’을 하는 생성형 AI 회사 앞에 창작자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라고 말한 걸로 기억합니다. 얼마나 심각하나요? 

“인공지능이 적당한 수준의 그림을 그려주는데 만족하는 제작사가 늘면서 새 작업을 제안하는 전화도, 보수도 줄고 있어요. 광고업계와 출판업계 종사자들도 큰 타격을 받고 있어요. 창의적인 작업을 해오던 이들이 AI의 보조 역으로 전락하고 있는 거죠.”

 

- 그럼, 어떻게 해야할까요?

“어떻게든 막아야죠. 또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죠. 글 쓰는 작가나 그림 그리는 사람들은 생성형 AI 업체에 ‘데이터셋을 투명하게 공개하라’고 압박하고 있습니다. 현재 오픈 AI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기업인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사를 상대로 소송하고 있는 단체들도 많이 늘고 있어요. 일례로 <왕좌의 게임>의 작가도 자신의 작품이 도용되었다고 소송을 걸었고, 심지어 <뉴욕타임스>에서도 기사가 표절되었다고 소송을 건 상태입니다. 제가 속한 조합에서도 곧 파업 여부를 고민 중이에요. ”

 

© 추유진

 

창작자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AI의 예술품 복제에 반대해야

- 감독이나 제작자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올해 아카데미상을 휩쓴 <오펜하이머>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애니메이션의 거장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등 유력 인사들은 ‘지금 당장에는 우리가 쓰기에도 편할지 모르나 나중에 우리에게도 독이 될 수도 있고 우리가 같이 사랑하고 같이 연대하고 같이 일했던 창작자들이 그것으로 인해서 피해를 보는 걸 반대한다’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어요. 특히 하야오 감독은 AI를 쓰는 것 자체가 그냥 인간에 대한 모욕이라고 지적하고 있죠.”

 

-놀란 감독은 원자폭탄의 핵구름 같은 걸 이미지로 만들 때, 충분히 AI 이미지에 대한 유혹도 느낄 만할 텐데...

“놀란 감독은 AI가 핵과 비슷하다고 지적했습니다. 핵무기가 만들어졌을 때 과학자들의 대응 방식이나. 지금 AI가 나왔을 때 과학자들의 대응 방식이 너무 비슷하다는 거예요. 가장 큰 문제는 AI로 어떤 무기든 다 만들 수 있다는 지적이죠. AI가 제공하는 3D 프린팅으로 거의 모든 무기를 만들 수 있는 정보를 이젠 누구든 갖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 AI의 창작물 권리 침해가 가속화되고 있지만, 한편에서는 AI로부터 저작권을 보호하려는 정책적 대책도 마련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우리 정부도 저작권 등록 관련 규정을 개정하면서 AI가 만든 그림, 시, 소설 등 창작물은 저작권을 등록할 수 없다고 내용을 명시했거든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뒤늦게나마 창작자의 권리를 존중한 정부의 조치에 감사해야겠지만, 문제는 수없이 많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저질러지는 AI의 무차별적인 복제 행위가 창작자들의 일자리를 뺏고 있다는 점이에요. 대부분의 아티스트들은 AI가 그린 그림을 회사의 입맛에 맞게 수정하는 보조 인턴으로 일하고, 심지어 베테랑 아티스트들조차 AI의 그림을 갖고서 터치하는 수준으로 전락하는 거죠. 이런 상황에서 젊은 아티스트들의 일자리는 자꾸 사라질 수밖에 없는 거죠.”

 

- 요즘 서점가에 보면 AI 기술로 멋진 그림을 그리고 매혹적인 글을 써서 돈 버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들이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라있어요. 결국 이것은 AI 기술로 남의 창작물을 훔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게 아닐까요?

“결과적으로는 그런 셈이죠. 너무 어이없는 게 뭐냐면 그걸로 돈 번 사람들이 없어요. 쉽게 얘기하면은 남이 만든 저작권을 어떻게 자기 걸로 소화해서 그럴듯하게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일러스트도 하고 이런 테크닉을 가르쳐주는 책들이 잘 팔린다는 건 슬픈 현실이에요. 출판사와 필자는 책 팔아 돈을 벌겠지만 그걸 믿고 따라 할 경우, 자칫 잘못하면 소송에 휘말릴 수도 있을 거예요.”

 

- 그럼, 어떻게 해야 AI를 바람직하게 사용할 수 있을까요?

“제 생각에는 AI는 교통, 의료, 건강, 교육 등 일상생활의 보조품 정도로 사용하면 바람직할 것 같아요. 창의적인 문화예술 분야에서는 아무래도 신중해야 할 것 같습니다.”

 

© 추유진

- 메이저 AI 제작업체들의 지능적인 ‘창작품 절도’에 좀 더 지능적인 대책은 없을까요?

“벤 자오 시카고 교수팀이 지난해 발표한 ‘나이트세이드(Nightshade)1.0’이 생성형 AI를 파괴하는 독극물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 소프트웨어의 규칙은 ‘나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지 말라’에요. 창작자가 자신의 작품에 나이트세이드를 적용하면, 인공지능 학습 때 이미지가 손상돼 개가 고양이가 되고, 자동차가 소가 되는 거죠. 제가 얘기 듣기로는 지오 교수팀은 음악 쪽에도 이런 식의 독극물을 삽입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어요. 미국 배우조합인 SAG-AFTRA에서도 AI가 배우 인물을 가져다 쓰면, 그 데이터를 찾아낼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 중인 것으로 알고 있어요.”

 

- AI의 등장으로 콘셉트 아티스트라는 직업이 타격을 받고 있는데, 그럼에도 해외로 진출하고 싶은 아티스트 유망주에게 조언해준다면?

“할리우드에서 같은 일을 하는 한국 사람을 만나면 참 반갑죠. 하지만 요즘에는 굳이 해외로 나가지 않아도 현지 회사와 협업할 수 있는 기회가 아주 많습니다. 실제로 한국에서 해외 일을 하는 분들도 많이 늘고 있고요. 영어로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만 공부한 후 작업물을 온라인에 공개해 컨택할 기회를 만드신다면 한국에서도 쉽게 해외 기업과 일을 얼마든지 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인터뷰이·추유진 콘셉트 아티스트
인터뷰어·성일권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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