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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의 문화사회학 vs. 아파트의 정치경제학
빌라의 문화사회학 vs. 아파트의 정치경제학
  • 성일권 l <르몽드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 승인 2020.07.31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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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 밀집지역인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회사가 있고, 그 인근 서교동 빌라에 사는 나는 매일 회사와 집을 오가며 길고양이들과 인사를 나눈다. 주차장 한켠에서 늦잠을 자던 갈색 고양이는 앞발과 뒷발을 쭉 뻗어 기지개를 켜고는 꼬리를 곧추세워 나의 인기척을 애써 무시한다. 아침마다 녀석에게 물 한 모금과 한 줌의 먹이로 같은 구역에 사는 이웃의 연대감을 표시하지만, 녀석은 늘 도도하고 까칠하다. 집에서 회사까지 직선거리로 고작 1km 남짓이지만, 보아뱀이 꽈리를 튼 것처럼 꼬불꼬불 골목길을 걷다 보면 지구별에 불시착한 어린왕자의 호기심으로 주변을 보게 된다. 

다세대주택, 연립주택의 낮은 담장 위로는 감나무와 대추나무, 은행나무에서 아직 파릇한 열매가 햇볕을 쬐고 있고, 문밖에 즐비하게 놓인 화분들에선 나팔꽃, 접시꽃, 패랭이꽃, 노루오줌꽃, 봉숭아꽃이 부끄러운 듯 내게 살짝 얼굴을 붉힌다. 호박꽃과 감자꽃, 고추 이파리, 오이꽃을 보면 어렸을 적 시골집의 텃밭 향수가 느껴진다. 나는 이 동네의 통장도 동장도 아니지만, 골목길에 내놓은 생활폐기물만 봐도 어느 집의 어떤 사람이 떠나고, 새로 들어오는지 대충 감을 잡을 수 있다.

 

<마포구 합정동 빌라촌에 자리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전경>, 2018 - 신영빈

문화, 이웃, 길고양이가 상생하는 빌라촌

서교동과 합정동은 인간과 길고양이의 공존의 공간이다. 담장 위에 웅크린 채 늦잠을 즐기는 녀석, 음식 쓰레기를 뒤지는 녀석, 도도하게 꼬리를 세우고서 ‘날 보란 듯이’ 내 앞을 지나치는 녀석과 인사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회사에 도착한다. 회사에 오면 어김없이 나의 출근시간을 체크하는 갈색 고양이가 얼굴을 내민다. 녀석은 ‘왜 이리 늦게 출근하느냐’고 나무라는 표정이다.

출판사와 잡지사, 인터넷 언론사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이 지역에는 종이를 많이 소비하는 동네의 특성 탓인지 유독 폐지를 줍는 노인들이 많다. 내가 일하는 회사도 출판사여서 내다 버려야 할 종이들이 늘 넘쳐나지만, 밖에 내놓기가 무섭게 폐지를 줍는 노인들이 경쟁적으로 수거해가니 고마운 일이다. 지척 거리에 자리한 고물상은 동네의 미관을 해친다는 지적을 받지만, 노인들의 쏠쏠한 돈벌이에 나름 기여를 하는 셈이다. 골목길의 가파른 언덕을 힘겹게 오르는 노인들의 리어커를 밀어줄 때마다 전동기 리어카의 필요성을 고민해본다. 

사무실이 빌라촌 1층에 있다 보니, 간판을 보고서 독자는 물론 호기심이 많은 청년들과 프랑스인들이 찾아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기도 한다. 연립주택과 다세대주택이 즐비한 이 지역에 출판사와 잡지사가 많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할머니와 어머니의 추억이 담긴 전통시장이 있고, 거리에는 전통음식과 현대적 퓨전 음식의 맛집이 입맛을 돋우지만, 무엇보다도 꼬불꼬불 골목 산책로를 걷다 보면 편집자들의 지적·문화적 상상력을 자극할 소재들이 감춰져 있다. 

김대중 정권 때 정부의 적극적 지원 아래 조성된 파주출판단지에 웬만한 출판사와 출판인쇄소의 반 이상이 이전했으나, 아직도 이곳 합정동, 서교동에는 종이 냄새가 깊게 배여 있다. 파주출판단지의 매력은 세제 혜택에 더해, 지근거리에 물류창고와 인쇄소, 도매 총판이 있다는 점 등일 것이다. 하지만 공장에서 벽돌 찍듯 출판사들을 출판단지에 대거 입주시켜 책을 대량 찍어낸다는 발상은 반(反)문화적, 반(反) 지성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빌라촌 골목길에서 출판인이나 필자를 만나면 반가운 나머지, 격의 없이 커피나 맥주를 한잔하며 선거, 부동산, 생태, 젠더, 북한, 미국, 일본, 취업, 대학생, 동물, 복지 등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를 맥락 없이 나누다 보면 어느덧 해가 저물어간다. 초고층 빌딩이 즐비한 광화문이나 고층 아파트들을 사이에 둔 강남대로에 사무실을 뒀더라면, 빌라촌 골목의 소소한 일상과 행복을 알 수 있었을까? 

연립주택이나 다세대주택의 가격을 표준화하기 힘든 것은 어쩌면 아파트단지처럼 쉽게 가격을 매기기 힘든 ‘그 무엇’이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같은 지역, 같은 규모라도 아파트와 빌라의 가격은 보통 3~5배 차이가 난다. 최근 지어진 빌라는 엘리베이터, 주차장, CCTV 등 아파트 못지않은 편의시설과 구조를 갖추고 있는데도 집이 필요한 신혼부부나 무주택자들은 가격 부담이 적은 빌라를 거들떠보지 않고, 값비싼 아파트를 고집한다. 

아파트의 경우 빌라보다 생활하기 편하고 안전하다는 고정관념이 퍼져있는 데다가, 코스피의 인기 주식처럼 잘만 고르면 떼돈을 벌 수 있고, 오래된 아파트일수록 재개발이나 재건축의 대박을 터트릴 가능성이 높아 많은 이들이 ‘영끌’까지 하면서 경쟁적으로 구매에 나선다. 그러다 보니 정부의 온갖 대책을 비웃기라도 하듯 아파트 가격은 자고 나면 또 뛴다. 공장에서 찍어낸 규격 상품을 거래하듯 네이버와 다음, 부동산114, 부동산 중개업소에는 저마다 76㎡, 85㎡, 105㎡, 140㎡ 등 아파트 평형의 가격 변동을 등락 곡선으로 보여준다. 

정부가 아파트 가격 안정을 위해 별의별 정책을 강구해도, 아파트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는 것은 아파트가 더 이상 주택이 아니라, 투기상품으로 변질됐기 때문이다. 부동산 사이트는 주식 시세표마냥 아파트 가격이 1주, 1개월, 1년 전에 비해 얼마나 치솟았는지 한눈에 보여준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최근 페이스북에 “한 사모펀드가 강남 아파트 46채를 사들였다는 언론보도가 있다. 부동산이 투전판처럼 돌아가는 도박 광풍에 법무부 장관이 좌시할 수 없듯, 침묵한다면 도리어 직무유기”라고 주장했지만, 사실 아파트가 여유층의 투자종목이 된 지는 오래다. 추 장관의 말대로 “지금 당장 금융과 부동산 분리를 한다고 해도 한발 늦었다.” 이제는 자본시장법상 사모펀드의 먹잇감이 돼버린 주거용 아파트를 어떻게 규제할 것인지 고민이 시급한 때다. 

 

강남 개발이익, 비강남 주거환경 개선에 써야 

박원순 서울시장의 시정 체제가 막을 내리자, 강남 3구 인근의 그린벨트 해제와 용적률 상향의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국회의원과 장차관, 청와대 비서관, 대기업 임원, 정규직 교수들의 주거가 강남 3구에 집중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끼리끼리의 집합이다. 고위공무원 및 국회의원 재산공개를 통해 이 지역의 그린벨트와 재건축대상 아파트를 어떤 이들이 주로 소유하고 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정치·경제적으로 힘이 있고, ‘아파트 머니게임’을 벌일 돈의 여유가 충분한 그들 자신이 아니던가? 

그들은 50층을 허용하는 용적률 상향을 주장하며 ‘지역 주택난 해소’를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정작 용적률 상향에 따른 증가분만큼 공공임대주택을 늘리는 등 ‘소셜 믹스’의 의무를 지라는 지적에는 수익성 하락을 이유로 난색을 표해왔다. 이는 결국 강남지역의 재건축이 ‘머니게임’의 일환임을 보여준다. 또한 강남 3구지역에서 가까운 그린벨트를 풀어 주택난을 해소한다는 발상은 서민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땅 소유주 대부분은 정보력과 자금력이 풍부한 강남 3구의 부유층이다. 즉,  어차피 이곳에 세워질 주택은 4층 이하 다세대주택이나 연립주택이 아니라, 가진 자들의 울타리만 더 견고하게 넓혀줄 십억 이상 고층 아파트다. 오히려 규제가 풀릴 경우, 이곳에서 한평생 밭을 일구고 화원을 가꾸던, 그러나 정작 자기 땅은 한 평도 없는 원주민들이 대책 없이 내쫓길 게 분명하다.

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내놓을 때마다 강남권 아파트 가격이 고공행진하는 것은 수량이 한정된 지역이 아파트를 더 늦기 전에 경쟁적으로 구입하려는 심리, 일종의 ‘밴드왜건’효과 탓이라고 본다. 수요와 공급의 균형점에서 가격이 정해진다는 것은 중학교 교과서에서도 나온다(조기교육의 영향으로, 요즘에는 초등학생들도 아는 내용일 듯하다). 그런데도 정부가 수요가 터지는 이곳에 공급을 늘리지 않고 자꾸 그 옆으로 게걸음 치는 바람에, 강남 3구뿐 아니라 그 게걸음 지역까지 아파트 가격이 오르막이다.

 

아파트보다 빌라촌에 솔로몬의 지혜를   

‘그들만의 리그’ 지역인 강남 3구를 시장의 자율성에 맡기면 안 될까? 재건축과 리모델링, 용적율과 건폐율 확대를 왜 두려워하나? 녹색지대가 줄고, 교통난이 심각해 질까봐? 아니면, 세대가 다닥다닥 붙게 되면 층간소음이 날까봐? 또 아니면, 기존 소유주들의 불로소득을 눈 뜨고 볼 수 없어서? 삭막한 시멘트 바닥에 교통난과 층간소음이 심각해지면, 그것은 강남 3구 사람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그러면 시장이 적정하게 가격을 내릴 것이다. 불로소득? 정부에선 그걸 과감하게 거둬 비(非)강남지역이나 빌라촌 주거환경 개선에 쓰면 된다. 

파리의 교통대책은 파리 시내에 새 건물 건축 승인 시에 주차장 건설을 불허하는 것이다. 역발상이다. 가진 자들의 선호도가 가장 높은 강남 3구의 삶의 질을 우선 그들이 원하는 대로 ‘사정없이’ 떨어뜨리는 역발상이 필요한 시점이다. 더 이상 사람이 살 곳이 못 될 정도로 삶의 질이 떨어지면 강남3구 아파트 가격은 다른 지역과 적절한 균형을 맞출 것이다. 혹시 강남에 사는 위정자들이 곧 죽어도 그게 싫으면 비(非) 강남 거주지의 삶의 질을 강남처럼 만들 아이디어를 짜내어야 한다. 강남지역의 그린벨트 해제 같은 아이디어 말고…

어쩌다가 활주로만큼이나 넓은 강남대로변의 아파트단지에 가보면 주차장이 지하로 연결되고, 녹지대가 잘 가꾸어져 대체적으로 쾌적한 느낌을 받지만, 이내 내가 일하는 빌라촌과 비교돼 은근히 화가 나기도 한다. 빌라촌은 출·퇴근 시에 비좁은 공간에서 주차전쟁을 벌여야 하고, 골목길 곳곳에 보도블록은 깨져있고, 전선줄과 케이블선이 뒤엉켜 있고, 가로등 수는 절대 부족한데다 조명은 침침하고…, 정부와 시 당국이 강남 3구의 아파트 가격을 잡는 데 솔로몬의 지혜를 짜내느라 곤혹스럽겠지만, 조금이라도 더 다세대주택과 연립주택에 세심한 관심을 가진다면 그게 곧 솔로몬의 지혜가 아닐까. 

 

<어린왕자>를 연상시키는 당 대표의 발언

아파트의 구조 변경에 대해선 한없이 관대하고, 빌라촌에 대해선 엄격한 법 적용을 해대는 당국의 처사는 형평성에 어긋난다. 골목길 주차단속만 해도 그렇다. 휴일이나 퇴근 후에 동사무소와 관공서 주차장을 무료 개방하고, 더 나아가 인근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 운동장에 지하주차장을 만들어 주차난을 해소하는 방법도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외국에서 빌라는 고급주택을 의미한다. 빌라(Villa)는 원래 시골의 저택, 별저(別邸), 별장(別莊), 교외주택을 이르는 말로 그 시초는 고대 로마의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로마 교외의 티볼리에 지은 하드리안(Hadrian) 빌라로 알려져 있는데, 넓은 대지에 정원과 농원(農園)을 조성하고, 그 가운데에 주변의 자연환경을 압도하는 모양의 건물을 세운 것이다. 우리나라의 빌라도 처음에는 도시지역의 고급 연립주택을 지칭하는 말로 쓰였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주택 당국이 ‘아파트 공화국’에만 관심을 가지는 바람에 급기야 ‘빌거’라는 오명까지 갖게 됐다.

하지만 빌라촌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얼마 전 토크콘서트에서 행정수도 이전을 언급하며 “(프랑스) 센강 같은 곳에 가면 노트르담 성당 등 역사유적이 쭉 남아있다. 그걸 보며 프랑스의 역사 이야기를 듣는다. 그런게 제대로 된 관광인데, 우리는 한강변에 쭉 들어선 아파트단지를 보여주며 가격을 이야기한다. 이런 천박한 도시를 만들면 안 된다”고 말했다가 질타를 받은 적이 있다. 종종 그의 정치적 발언은 너무나 직설적이고 논쟁적이어서 찬반논란을 빚어내곤 하지만 이번만큼은 ‘공감이 가는 발언’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어른들은 창가에는 제라늄 화분이 놓이고 지붕 위에는 비둘기가 날아드는 멋진 빨간 벽돌집이라고 하면 관심이 없고, 100만 프랑짜리 집이라고 해야 비로소 멋진 집이라고 경탄한다.” <어린왕자>에 나오는 이 대목을 공당의 대표가 읽었을까? 강남 재건축아파트에 대한 용적률 상향가능성과 특혜시비 우려를 크게 보도한 조간신문을 읽으며, 더 높은, 더 많은 숫자들만 좋아하는 지구별 사람들이 왠지 외계인으로 변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글‧성일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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