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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수연의 문화톡톡] 2020년, 우리는 무엇을 노래했는가?
[류수연의 문화톡톡] 2020년, 우리는 무엇을 노래했는가?
  • 류수연(문화평론가)
  • 승인 2020.12.21 09: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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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다사다난(多事多難)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의 삶이란 어느 때이든지 수많은 사건사고로 점철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말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한 해란,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지만 2020년은 조금은 다를 것 같다. 팬데믹이라는 현실이 너무나 압도적이었기 때문에 다른 사건사고들은 그대로 묻혀버린 것 같은 상황이다. 다난(多難)은 분명하되, 다사(多事)는 떠올려지지 않는다고나 할까? 2020년을 둘러싼 모든 일들이 코로나19 하나에서 촉발되고 귀결되는 것 같은 느낌을 떨쳐낼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2020년 우리의 일상을 부연하는 어휘들은 그리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신조어인 집콕이라는 단어의 발랄한 느낌뿐만 아니라, ‘잠시 멈춤이나 언택트등의 용어들에서도 긍정적인 지향을 담아내고자 한 우리 사회의 노력이 느껴진다. 팬데믹으로 인한 고립이라는 현실보다는 휴식이나 새로운 방식의 소통이라는 다채로운 가능성이 더 많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목덜미에 노란 깃털을 두른 작은 새가 꽃을 따먹고 있다. 쉬잇! 너무 이뻐. 새가 놀라지 않게 까치발을 한 휴대폰 카메라가 두세 차례 초점을 맞추고 떠난다. 앙증맞고 귀여운 새여서 꽃은 황홀했을까. 검고 구불텅한 벌레가 갉아먹고 있었다면 끔찍했을까. 카메라마저 각도를 틀었을까.

고양이가 반려자의 가슴에 안겨 고요히 눈을 감고 있는 장면이 있었다. 반려자로부터 바이러스가 전염되었다고 한다. 박쥐나 아르마딜로나 또는 두개골이 크고 온몸에 털이 숭숭한 단백질 덩어리가 전염시켰다면 고양이는 치를 떨었을까. 보드라운 머릿결과 아늑한 가슴이어서 고양이는 행복했을까. 그래서 기꺼이 몸을 웅크려 맡겼을까.

먼지가 곧 연분홍 벚꽃이고 벚꽃이 고양이고 고양이의 수염이 사람이고, 차별 없이, 사람이 산허리 작은 돌들이고, 돌들은 바람이고, 바람은, 흙은, 하늘은, 책은, 또 사람은, 벌레는. 서로의 눈과 귀를 바꿔보는 날, 황은, 흑은, 백은, 유기질과 무기질은,

볕 좋은 공원 마당에서 한 아이가 마스크를 쓰고 자전거를 탄다. 돗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 주위로만 빙글빙글 돌고 있다. 우리에서 멀어지면 안 돼. 경계를 벗지 마. 보도블록 위에 떨어진 하얀 날개를 까만 개미들이 부산하게 끌어가고 있다.

- 김명철, 꽃은, 고양이는, 창작과비평, 2020년 여름호.

 

멈춤이 야기한 자리에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사색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역설적으로 그 거리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들로 채워졌다. “털이 숭숭한 단백질 덩어리가 만들어낸 공포 속에서도 우리를 견디게 만든 것은, “보드라운 머릿결과 아늑한 가슴으로 기억되는 인간적인 연대가 아니었던가?

그래서일까? 의도치 않게 유폐된 지난 1년 동안, 우리는 서로에게 닿지 않으면서도 닿을 수 있는 방법들을 깊이 모색했다. 어쩌면 문학도 그 방법 가운데에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집이라는 섬(?)에서의 생활은 우리가 그간 외면했던 보다 정적이고 고요한 일들에 다시금 주목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비단 추정만이 아닌, 실질적인 데이터로 입증된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 2020년 도서 판매량은 뚜렷한 상승세를 보였다고 한다. 대표적인 인터넷서점인 예스24와 교보문고의 도서 판매량이 각각 23%7.3%가 증가했고, 특히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도서 판매량이 껑충 뛰었다고 한다. 물론 이것은 아이들의 자유로운 선택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학교도 도서관도 학원도 문을 닫아버리면서, 마음이 조급해진 부모들의 다그침도 있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무엇 하나 좋아질 것이 없이 답답하기만 했던 2020년의 상황에서, 누군가는 책을 펼치는 일로 스스로를 위로했다는 것은 꽤나 고무적으로 느껴진다.

필자 역시 2020년은 부정적인 의미에서도, 그리고 긍정적인 의미에서도 특별한 한 해였다. 비록 집에 갇혀 돌봄 육아라는 이중고에 시달렸지만, 그 어떤 때보다 많은 책과 영상을 볼 수 있었던 해였다는 점은 다소나마 위안이 된다. 이동거리의 단축이 야기한 의외의 성과라고나 할까? 까닭에 한 해를 정리하는 의미를 더하여 필자의 집콕 일상에 위안과 사유를 던져준 두 권의 시집에 담긴 시를 소개하는 것으로 202012월 문화톡톡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2.

사진1. 주민현의 [킬트, 그리고 퀼트]
사진1. 주민현의 [킬트, 그리고 퀼트]

 

오늘은 나의 이란인 친구와

나란히 앉아 할랄푸드를 먹는다

 

그녀는 히잡을 두르고 있고

나는 반바지 위에 긴 치마를 입고

우리는 함께 앉아서 텔레비전을 본다

 

암사자는 물어 죽인 영양을 먹다가

뱃속의 죽은 새끼를 보자

새끼를 옮겨 풀과 흙을 덮어주고 있다

 

마치 생각이 있다는 듯

생각이 있다는 건

 

총 밖으로 새가 날아오른다는 건

 

오늘 친구와 나는 나란히 앉아 피를 흘리고

우리는 가슴이 있어서 여라자 불린다

 

마치 생각이 없다는 것처럼

그녀는 검은 히잡을 두르고 있고

 

철새를 사냥하듯이 총을 들고 숲을 뒤졌다고 했다

그녀의 친구가 옆집 남자와 웃으며 대화했다는 이유로

 

흑백사진 속에선 무엇이든

흰 눈밭의 검은 얼룩처럼 보이고

 

흰 얼룩도 긴 적막도

발사된 뒤에 모두 사라지는 소리지만

 

그녀의 히잡은 검고

내 치마는 희고

 

우리는 나란히 앉아

이 세계에 허락된 음식을 먹는다

 

우리는 나뭇가지로 딱총을 만들어

나뭇잎들을 맞히기 시작하는데

 

떨어지는 나뭇잎은 날아오르는 새들 같고

우리는 생각 없이 웃는다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

내 발바닥엔 글씨가 적히기 시작한다

-주민현, 철새와 엽총, 킬트, 그리고 퀼트, 문학동네, 2020.
 

2010년대 한국문학의 가장 중요한 화두 중 하나는 페미니즘이었다. “#문단내성폭력운동에서 촉발되어 미투 운동을 거치는 동안, 한국문학의 페미니즘은 가장 역동적이면서도 단단한 연대를 구축해온 전위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주민현의 시는 이러한 페미니즘적인 지향 안에서, 그러면서도 일정한 거리를 두고 그것을 노래한다. 이 과정을 통해 시인이 찾아낸 것은 바로 페미니즘이 나아가야 할 진정한 지향점, 다름 아닌 또 다른 나를 향한 따뜻한 연대의 손길이다.

주민현의 킬트, 그리고 퀼트(문학동네, 2020)의 발문에서 김상혁 시인은 주민현 시인의 윤리적 전략을 함께 있음이라고 말한 바 있다. 철새와 엽총은 이를 잘 보여주는 시이다. 아마도 룸메이트일지도 모를 두 친구, 그들은 같은 공간에서 밥을 먹으며 텔레비전을 본다. 그들의 행위는 동일하지만, 사실 그들에게 주어진 환경은 완전히 다르다. 히잡을 두른 친구와 반바지를 입은 나는 함께 있지만, 서로 다른 정치적문화적사회적종교적 배경을 가졌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단절이 아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이 나란히 앉아있음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에게 주어진, 혹은 허락된 전혀 다른 음식을 먹는 순간에도 그들의 연대는 끊어지지 않는다. 그들의 행위는 그들이 나란히 있음으로 인해, 그저 함께 있음으로 인해 충분히 유의미해진다. 곁에 있는 누군가를 향해 내미는 손, 묵묵히 함께 해주는 든든한 지탱, 그것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연대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사진2. 이용임의 [시는 휴일도 없이]
사진2. 이용임의 [시는 휴일도 없이]

 

순결한 네 이마에서

불온한 자궁의 무늬를 읽는 건

우연이 아니야

 

녹슨 시계덩어리 심장 그게 바로 너야

 

말랑한 숨결이 비린 건

아직 밤이 깊지 않아서

갓 태어난 지문이 희미한 건

아직 이야기가 깨어나지 않아서

 

내가 밤마다 네게 불러 준

노래를 기억해

몸에서 몸으로 물려 준

감각을 기억해

 

기억해 여자여 어린 여자여

희디흰 살결에 붉은 입술을 지녔지만

언제나 독에 취해 잠을 자는 여자여

 

내 몸에 더운 무덤을 만들고

파도에 젖은 분침 소리로

내게 인사한 여자여

 

네 심장 소리를 듣고서야

알았네 왜 기억은 관절마다

둥지를 트는지 왜 나는

시효가 만료된 순간들이

검은 낯짝을 치켜들고

웅성거리는 집단거주지인지

 

피투성이 시계덩어리 심장 그게 바로 나야

 

기억해 우리에게

밤은

까마귀 날개가 창궐한 묘지란 걸

 

몰려오는 시간을 염하고 묻는

장의사이자

숙성된 뼈에 밀어를 새기는

도굴꾼이란 걸

 

여자의 시간은 멈추지 않아

여자의 시간은 흐르지 않아

 

기억해

 

저녁 종소리를 마시고

잉태한 나의 여자여

-이용임, 시계의 집, 시는 휴일도 없이

 

하지만 저항으로서의 목소리가 줄어든 것은 아니다. 주민현 시인이 가슴이 있어서 여자라 불려야 했다고노래한 두 친구의 연대를 지탱하는 또 다른 현실은, 이용임 시인의 시에서 마주할 수 있다. 시는 휴일도 없이(걷는 사람, 2000)에서 이용임 시인이 보여주는 것은 그 연대를 지탱해주고 있는 힘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제 목소리를 내는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적인 현실을 환기한다. 이 시에서 불온한 자궁이라는 시어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서로 충돌하는 이중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끊임없이 여성을 타자화하고 대상화하는 모욕이 드리워진 말이지만, 시인은 거기에 개의치 않겠다고 말한다. 오히려 그 불온성에서 가장 건강하고 능동적인 가능성을 도출하고자 한다. 수없는 폭력과 모욕 속에서도 멈추지 않고 흐르지 않을 수 있었던유일한 힘은 바로 그 불온성이었기 때문임을 잊지 않고자 한다. 가장 뜨거운 언어를 잉태한 존재로서의 여성, 자기 자신을 자각하는 순간인 것이다.

 

3.

두 편의 시, 그리고 그 언어가 담긴 두 권의 시집. 하지만 사실 그것은 하나의 목소리이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두 시인의 다른 듯 같은 목소리이고, 그들과 마주 잡은 손의 주인들이 내는 목소리이기도 하다. 코로나19로 인해 우리 모두는 자신의 광장을 뒤로 하고 각자의 무인도에 스스로를 가두어야 했지만, 우리의 목소리는 씌어졌고’ ‘읽혔고그럼으로써 또 다른 연대로 나아갈 수 있었다.

이제 2020년도 꼭 열흘이 남았다. 아직 채우지 못한 공허가 있다면, 혹은  팬데믹이 야기한 이 진득한 고립감을 떨쳐내고 싶다면, 지금 두 시인의 시집을 여는 것으로 남은 2020년의 시간을 정리해보는 것은 어떨까?

 

 

·류수연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대학 교수. 문학/문화평론가. 인천문화재단 이사. 계간 <창작과비평> 신인평론상을 수상하며 등단하였고, 현재는 문학연구를 토대로 문화연구와 비평으로 관심을 확대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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