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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부터 낭만까지, 더 머물고 싶은 대학으로”
“지성부터 낭만까지, 더 머물고 싶은 대학으로”
  • 이호영 l 창원대 총장
  • 승인 2020.12.31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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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비대면 사회에서 인구절벽과 학령인구의 급감으로 인해 대학이 존폐의 위기에 처해있다. 본지는 무한경쟁의 시대에 대학 본연의 철학과 가치관, 미덕을 살려 위기를 이겨내는 대학 총장들을 만나보는 장을 마련했다. 

 

이호영 창원대 총장

“우수한 인재를 잘 뽑는 것보다 잘 가르쳐 우수한 인재를 만드는 일이 제가 생각하는 대학의 모습입니다. 특히 지역대학의 붕괴는 그 지역사회의 붕괴로 이어질 수 때문에 지역 공동체 사회에 기여할 줄 아는 지성인의 양성을 저희 대학의 최고의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학령인구의 가파른 감소세와 맞물려 지난해 갑작스럽게 닥쳐온 코로나 19로 인해 대학사회가 큰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위기를 뉴노멀의 창의정신으로 삼는 대학들도 있다. 국립 창원대가 그 중 하나다.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약 3시간, 창원중앙역에서 내려 조금 걸어가니 창원대 건물이 성큼 다가온다. 경남의 중심지이자, 인구 105만 명의 메가시티의 문턱에 우뚝 선 창원대에서 굴뚝 산업도시의 텁텁한 이미지를 털고, 스마트한 도시로 탈바꿈하는 창원의 이미지가 겹쳐졌다. 만일 창원대가 없었다면, 이 도시 이미지는 어떨까? 창원이란 도시는 국내 최대 국가산업단지이자 기계 산업의 메카로서 군림하겠지만, 젊음과 지성이 결합한 스마트 도시의 이미지는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 본부의 벽에 전시된 멋진 그림들을 감상하며 총장실로 향하니 훤칠한 키의 이호영 총장이 마스크 위로 환한 눈웃음을 지으며 기자를 반갑게 맞이한다. 격식이 없었다. 처음 만난 사이임에도 그가 프랑스에서 공부를 했다는 공통분모 덕분인지, 친근감을 느낄 수 있었다.

 

 - 프랑스 학위출신자(이총장은 툴루즈대학 정치학 박사출신이다)가 대학 최고책임자가 되신 것은 이례적인 일입니다. 무한경쟁과 패권주의가 만연한 대학사회에 총장님 같은 인문주의자가 대학을 어떻게 운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대학 본부에 들어설 때, 멋진 그림들이 많이 있는 것을 보면서 산업도시 속의 ‘무미건조한’ 대학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긴 했습니다만… 

 “저는 초임 교수시절부터 대학이 토론과 논쟁의 ‘아고라’가 돼주길 늘 고민해왔습니다. 학교가 강의와 수업만 주고받는 물리적 공간에 그치지 않고, 연구와 사유, 성찰의 장소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총장이 된 후에는 도서관 리모델링을 통해 오픈 열람실을 늘려 학생접근성을 높이고, 건물마다 스터디 카페를 만들어 학생들의 자유로운 사색과 토론의 장이 되도록 했습니다. 카페는 책으로 데코레이션 소재로 해 학생의 정체성을 살렸구요. 42만 평 캠퍼스 곳곳에 테마와 스토리를 입힌 로즈가든 산책로를 조성해, 8,500명의 학생들과 350명의 교수들에게 사색공간을 제공했습니다.”

    

- 대학 앞의 카페들이 싫어하겠군요. 

“다행히도, 학교 앞에는 카페가 별로 없습니다. 예전에는 수업 후 학교를 떠나기 바빴던 학생들이, 이제 교내 카페에 머무르며 책도 읽고, 스터디도 하고, 친구들과 토론도 하더군요. 대학이 학생들에게 더 머물고 싶은 학교, 떠나고 싶은 않은 공간으로 바뀌고 있어 더할 수 없이 기쁩니다.”

 

- 수도권 이외의 많은 지역 대학들의 황량한 모습과는 대조적입니다. 이런 인문주의적인 환경 조성도 못지 않게, 지역사회가 요구하는 대학 본연의 역할도 중요할 듯 싶습니다.  

“저의 원칙은 기본에 충실하자는 것입니다. 교육과 연구에 충실한 대학, 그리고 지역의 국립대로서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대학이 대학다운 대학이라고 봅니다. 대학이 최근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국립대학은 그 지역의 발전을 견인해야 하는 소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창원대는 창원국가산단이 필요로 하는 맞춤형 전문인력을 양성해 왔고, 지금은 산단의 고도화와 스마트화 견인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또한 창원시는 약 9만 개에 이르는 대기업 및 중견·강소기업 사업장과 200여 개의 공공기관, 80여 개의 연구기관이 집적한 경남의 수부도시이며, 창원대는 산-학-연-관을 아우르는 지역 모든 분야의 발전을 선도하는 ‘코어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입지적 특성과 강점들을 통해 창원대는 저의 취임 이후 대규모 정부지원 국책사업들을 유치함으로써 가시적인 성과들을 거두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산업단지공단이 시행하는 ‘2020년 스마트제조 고급인력 양성사업’의 총괄 주관기관으로 선정됐고, 교육부의 ‘지자체-대학 협력기반 지역혁신 플랫폼 사업’에 선정돼 스마트 제조엔지니어링 분야의 중심대학이 됐습니다. 지역 산학협력의 중심 역할을 하는 사회 맞춤형 산학협력선도대학(LINC+) 육성 사업에도 재선정됐고,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지원하는 4단계 BK21 사업은 3개 사업단 최종 선정돼 전국 지역중심대학 중 최고의 성과를 거뒀습니다. 

교육부의 국립대학육성사업과 대학혁신지원사업을 포함하면 2020년 한해 확보한 사업의 총 지원액은 1,200억 원에 달합니다. 이와 같은 국책사업들의 성공적 수행을 통해 창원대는 창의적 연구와 교육으로 지역과 세계와 함께하는 대학, 경남의 중심에서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도약하는 대학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작지만 강한 대학, 내실 있고 최고의 경쟁력을 가진 대학이 명문대학이며, 창원대가 그런 대학으로 더 높이 도약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 서울 및 수도권 대학에서도 성취하기 어려운 성과라고 봅니다. 지역의 많은 대학들이 학령인구의 급감으로 어렵습니다. 창원대는 국립대라는 이점도 많이 작용합니다만, 지역 대학들은 이 중차대한 상황을 어떻게 돌파할까요? 현재 부산·울산·경남·제주 대학총장협의회 회장으로 활동하시는 총장님께서 누구보다도 지역 대학의 현안을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임기 1년이 3월에 끝납니다만, 인구절벽 및 학령인구 급감의 시기를 맞는 요즈음, 지역 대학들 간의 상생을 위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벚꽃이 지는 순서대로 지역 대학들이 문을 닫을 것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이니 말입니다. 짧은 임기 동안, 부산·울산·경남·제주 지역 대학 공동의 발전을 위해 대학 간 교류협력 및 소통을 더욱 강화하고, 대학이 지역사회 발전의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등 대학에 주어진 공공성 및 책무성을 다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지금 대학의 여건의 매우 어렵습니다. 지역 대학들이 서로의 성과와 정보를 공유하고 상생방안을 마련해 나간다면 함께 도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해 11월에는 부산·울산·경남·제주지역 대학교 총장협의회의 이름으로 ‘지역인재 채용의무제 정책건의문’을 채택한 바 있습니다.”

 

- 정책건의문 중 특기할만한 내용을 하나 소개한다면요. 

“공공기관의 지역인재 채용과 관련해 현행 ‘지방대육성법’에서는 35%(비수도권), ‘혁신도시법’에서는 30%(공공기관 이전지역, 2020년까지)로 규정하고 있지만, 총장협의회에서 2가지 법 모두 50%까지 확대 개정하는 내용을 제안했습니다.

또한 협의회에서 법의 실효성을 제고를 위해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 반영 및 기업의 지역인재 채용비율 공개를 의무화함으로써 규범력을 강화하고, 공공기관 경영평가 시 ’지역인재 채용비율 달성 노력도 평가방법‘ 개선에 뜻을 모으고, 정부와 국회에 건의해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국가균형발전과 지역 고등교육 발전을 앞당기는 데 있어 실질적인 역할을 하는 협의회가 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 나가겠습니다.”

 

- 그럼에도 지역의 청년들이 서울 수도권으로만 몰려들고 있으니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인구절벽과 학령인구의 감소에 덧붙여, 입시를 비롯한 사회 대부분의 영역에서 수도권 쏠림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지역 대학의 붕괴는 곧 그 지역사회의 붕괴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지역사회에 우수한 대학이 없으면 청년들이 역외로 유출되고 이에 따른 도심공동화 현상이 발생합니다. 따라서 지역의 좋은 대학이 그 도시의 활력을 불어넣고 나아가 지역의 기업체와 지자체, 인문·사회분야, 기초학문 분야 등 다양한 분야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는 대학, 그것이 대학다운 대학이며 지역 국립대학의 기본이자 본연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 코로나 19가 초래한 비대면 시대에 지역대학의 미래는 어떨까요? 대면시대에 나타난 수도권 중심 대학의 패권주의가 여전할까요?

“감히 말씀드리자면, 모든 대학들이 힘든 상황에서 대학들이 패권경쟁을 벌이기보다는 머리를 맞대고 경험을 나누고 상생의 혜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대학은 코로나19의 발발 직후에 비상대책본부와 비대면 수업지원단 등을 구성해 학내 안전·건강권을 확보하면서 비대면 교육의 질을 높이는 다양한 지원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각 단과대학에는 공동 강의촬영실을 구축했습니다. 공동강의 촬영실은 코로나 19로 인해 대면과 비대면 수업을 병행하는 상황에서 비대면 온라인 수업제작의 전 과정을 지원해 교수와 학생들의 교육 만족도를 크게 높이고 있습니다. 특히 온라인 동영상 강의를 촬영할 수 있는 전용 PC와 듀얼 모니터, 크로마키 스크린, 웹캠, 핀 마이크, 태블릿(펜), 조명, 삼각대 등 모든 교수들이 최고의 영상강의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포스트 코로나시대에 대비하는 일에도 역량을 쏟고 있습니다. 

저희 대학은 온라인 학습관리 시스템과 이러닝 콘텐츠 제작, 무크(MOOC)등의 교육기법을 보다 적극적으로 개발해 활용하고, 뉴노멀이 된 비대면 온라인 강의의 안정적 지원을 위한 시설 인프라 및 강의 플랫폼을 구축해 교육 환경을 개선하는 등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온라인 교육을 선도하는 대학으로 발돋음 하고자 합니다.”

 

창원대 본관내 복합문화전시공간 ‘아트 스페이스 창’

- 총장께서 대학을 운영하시면서 특히 중요하게 여기는 삶의 철학은 무엇일까요?

“돈이 없어 학업을 포기하는 학생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총장이 된 후 학업안정장학금 수혜자를 성적순이 아니라 가정형편에 따라 선정했고, 얼마 전에는 생활비가 부족해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에게 119 긴급구호장학금으로 1인당 100만 원씩 149명에게 지급하기도 했습니다. 창원대는 국립대 중에서도 수업료가 저렴하지만, 지역의 특성상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많은 편입니다.

프랑스에서 유학하는 동안, 타인에 대한 배려를 생활화한 다양성과 톨레랑스의 정신을 많이 봤고, 어린 시절 시골 초등학교의 교장 선생님이셨던 아버님의 따뜻한 교육관, 5남매를 가르치신 어머니의 사랑 속에서, 교육에 대한 나름의 가치관을 형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 소중한 가르침에 따라 저는 대학교수가 된 1995년 이후, 매월 일정액을 적립해 제자들에게 매년 장학금 지급을 시작했고, 정말 가슴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인터뷰 후, 이 총장은 대학본부 1층을 수놓은 화사한 그림들을 가리켰다. 그는 예술대 미술학과 학생들과 교수들의 작품이라고 설명하며,  “교내 갤러리가 좀 더 활성화돼 모든 학교 구성원들이 생활 속 예술다움을 체감하길 바란다”라고 덧붙였다. 

2019년 10월 창원대 8대 총장에 오른 이호영 총장(61)은 경북대 정치학과를 나와, 툴루즈 1대학에서 정치학 석·박사학위를 받았고, 동아시아국제정치학회 회장(2014)과 경남도민매니페스토추진협의회 위원장(2014)을 지냈다.  

 

 

글·성일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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