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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의 시네마 크리티크]나이로비의 소녀와 네바다의 미군이 조우한 기이한 방법론
[안치용의 시네마 크리티크]나이로비의 소녀와 네바다의 미군이 조우한 기이한 방법론
  • 안치용(영화평론가)
  • 승인 2021.01.07 13: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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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영화리뷰) ‘아이 인 더 스카이(Eye in the Sky)’

 

요즘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물체로 드론을 빼놓을 수 없다. 드론이 영화 소재로 많이 활용되는가 하면, 드론을 이용한 영화나 드라마, 다큐멘터리 촬영은 일반적인 풍경이 됐다.

〈아이 인 더 스카이(Eye in the Sky)〉(감독 개빈 후드)는 드론이 등장하는 대표적 영화이다. 이 영화에는 많은 등장인물이 나오는데, 딱히 누구를 주연이라고 하기 힘들다. 인물 중심으로 영화가 전개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엄밀하게 말하면 드론이 이 영화의 주연이자 주인공인 셈이다.

 

이중성과 이격성
 
영화에는 고공에 떠 있는 폭격기 수준의 대형 드론과 인간에게 보이지 않게 접근할 수 있는 벌레 크기의 아주 작은 소형 드론이 나온다. 집 밖에서 출입 동향을 감시하며 CCTV 기능을 수행하는 영화 속 소형 드론은 얼핏 벌새처럼 보인다. 이 드론이 이동하려고 날아오르면 영어 단어 ‘drone’이 가진 본래의 의미대로 ‘윙윙거리는 소리’를 낸다. 다음에 등장하는 드론은 이것보다 더 작아서 영화에서는 “딱정벌레”라 불리며, 웬만큼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는 사람이 잘 식별할 수 없다. ‘딱정벌레’ 드론도 윙윙거리는 더 작은 소리를 내고, 실내에 몰래 들어가 방 안의 동정을 관찰하여 그 영상을 케냐에서 미국과 영국으로 보낸다. GPS 추적과 마찬가지로 ‘딱정벌레’ 드론이 촬영한 화상의 전송은 인공위성의 도움을 받는다. 이 정도로 구현된 언택트 기술에는 경탄을 넘어선 경악의 가능성이 제기된다.
 
드론의 정식 명칭은, (탑승하는) 조종사 없이 무선전파의 유도에 의해 비행이 가능한 비행기나 헬리콥터 모양의 (군사용) 무인항공기다. 영어로는 UAV라고 한다. 풀어쓰면 ‘unmanned aerial vehicle’과 ‘uninhabited aerial vehicle’의 두 가지가 가능하다. 드론의 크기와 무게는 벌레에서 소형 자동차까지 다양한 범위에 걸쳐 있다. 카메라와 센서, 통신 시스템은 거의 기본으로 탑재되고 원격 제어를 통해 이동할 수 있는 동력을 갖춘다.
 
드론은 2차 세계대전 직후 수명을 다한 낡은 유인항공기를 공중 표적용 무인기로 재활용하려는 목적에서 개발되기 시작했다. 원래 개발 목적이 지금의 용도와는 달랐다는 얘기다. 이후 다른 분야의 기술 발달과 결합하면서 2000년대 들어 위협적인 군사무기로 부상했다. 민간 비즈니스 영역에서 새로운 가능성이 모색되고 있지만 드론의 활용처는 아직 거의 군사 쪽에 몰려 있다.
 
의성어와 연관된 ‘드론’이라는 이름은 사람이 드론을 어떻게 감각적으로 인식했느냐에 초점을 맞춘 작명이다. 무인항공기를 벌이나 딱정벌레처럼 윙윙거리는 무엇으로 지각하고 그것을 이름으로 굳힌 데에는 모종의 인간중심주의가 개입했으며, 이 인간중심주의는 드론에 대한 오인을 반영한 것이란 해석이 가능하다. 간단히 말해 ‘소리’나 벌은 사람을 못 죽이지만 ‘물체’나 항공기는 대규모 살상까지 자행할 수 있다. 영화에서 드러나듯 대면 드론의 파괴력보다 비대면 드론의 파괴력이 훨씬 더 크다고도 할 수 있다. 극중 대면 드론은 정탐기능을 수행하지만 고공에 떠있는 비대면 드론은 살상기능을 수행한다.
 
드론은 ‘미미한 소리’가 아니라 기기[vehicle]이자 ‘무기’다. 드론은 그것을 포착하는 사람에겐 ‘미미한 소리’지만, 전파를 통해 드론을 조종하는 사람에겐 ‘드론 앞의 사람’을 언제든 제거할 수 있는 치명적 무기다. 이 이중성은 본질적으로 이격성(離隔性)에서 비롯한다. ‘소리’이자 ‘무기’라는 이중성은 이격성과 결부되어 영화의 좋은 소재가 된다. 사실 휴대전화의 구조도 이격성을 소통으로 전환한다는 측면에서 동일하다. 소통하며 저편으로 전하는 것이 화력이 아니라 음성이란 차이만 있을 뿐이다.

 

모니터 앞에서 드론을 조종하는 이격성 하의 사람에게도 이중성 비슷한 것이 불가피하게 나타난다. 드론의 정식 명칭 UAV에서 ‘U’의 의미로 ‘unmanned’와 ‘uninhabited’라는 두 단어가 함께 쓰인다는 데 주목하면, 영화 〈아이 인 더 스카이〉를 더 용이하게 이해할 수 있다. ‘unmanned’와 ‘uninhabited’는 한국어로는 둘 다 ’무인‘ 정도의 의미이지만 ’unmanned’는 단어 속 ‘man’이 직접적으로 지시하듯 ‘무인’ 중 ‘인’에 초점을 맞추었고, ‘uninhabited’는 ‘무인’ 중 ‘무’에 방점을 찍었다. 어느 쪽이든 의미는 비슷하다. 조종석에 조종사가 부재한 비행기를 설명할 때 “조종사가 없다”와 “조종석이 비었다”가 같은 뜻이기 때문이다. 개나 원숭이가 조종석에 앉을 수는 없으니 말이다. 결국 핵심 의미는 접두어 ‘un’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다. 모니터 앞의 ‘조종사’는 현장에서 적군을 직접 사살하는 게 아니라 멀리 미국 네바다의 공군기지에 안전하게 ‘앉아서’ 드론이 미사일을 발사하도록 버튼을 누른다. 미사일 발사라는 최종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들은 또 다른 곳에서 조종사와 ‘언택트’되어 있으며, 건조하게 결정을 조종사에게 통보한다.

 

전장에서 ‘부수적 피해’에 관한 고려

영화상 ‘미사일 발사’는 마치 공군기지 조종실에서 손가락으로 방아쇠를 당기는 것처럼 묘사된다. 하지만 그 동작 자체는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의 상공에 위치한 공격용 드론에게 전파를 쏘아 보내는 행위에 불과하다. 조종사가 방아쇠를 당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니터에는 폭격으로 사람들이 죽는 모습이 중계된다. 폭격과 살해를 이 조종사가 한 것인지, 공식적인 경로에서 미사일 발사를 최종적으로 승인한 사람들이 한 것인지, 발사 명령이라는 의사결정 과정에 실질적 정보를 제공하는 등 이면에서 개입한 사람들이 한 것인지, 혹은 그저 드론이 한 것인지가 불분명하다. 이 ‘unmanned’인지 ‘manned’인지, ‘uninhabited’인지 ‘inhabited’인지로, 조종사를 포함한 사람들은 혼란을 겪고 분열을 겪게 된다. 그러나 드론에겐 갈등이 없다.

언택트는 코로나 시대를 거치며 주목받고 있지만, 어차피 기술 문명의 앞길에 놓인 반드시 거쳐야 할 정류장이었다. 그 길을 지나 우리는 불가피하게 AI를 만나야 하며, “unmanned”인지 “manned”인지 혼동을 그려낸 영화 〈아이 인 더 스카이〉의 딜레마는 전면적인 존재와 인식의 문제로 인간에게 주어지게 된다.

 

이 영화가 다루는 또 다른 주제는 전쟁 상황에서 종종 거론되는 소위 ‘부수적 피해’이다. 군 작전 중에 일어날 비전투원의 피해, 즉 ‘부수적 피해’를 어느 수준까지 사전에 예방하도록 노력해야 하는가. 만일 ‘부수적 피해’가 예상되지만 그럼에도 작전을 강행해야 한다면 그때의 도덕적 기준과 실무적 절차는 어떠한 것인가. 이런 것이 전장에서 고려돼야 하고 영화에서도 그려진다.

영화는 ‘부수적 피해’를 무릅쓸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피해 가능성에 관한 확률 모델을 작동시킨다. 인명피해 가능성을 ‘적정한’ 퍼센트로 제시하여 작전 승인을 받고, 테러리스트를 죽이고 싶은 열망에 퍼센트를 조작하기까지 한다. 분명 추악한 모습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인간적인, 즉 “manned”의 모습이기도 하다. 열망하고 갈등하고 조작하는 행태는 인간에게만 나타나지 AI에게는 나타나지 않는다. 드론에게도 마찬가지다. 소녀의 무고한 죽음과 그 죽음에 죄책감을 느끼는 군인들의 모습은 이 영화가 드론 영화이지만 주연이 인간이 될 수밖에 없는 증명인 셈이다.

 

 

글·안치용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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