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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경의 문화톡톡] 두 발과 자유의지, 그리고 억압의 역사-영화 <조조 래빗>
[김희경의 문화톡톡] 두 발과 자유의지, 그리고 억압의 역사-영화 <조조 래빗>
  • 김희경(문화평론가)
  • 승인 2021.01.11 09: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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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두 발이 향하는 곳은 곧 그가 가고자 하는 길이다.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이라면 자신이 원하는 꿈과 인생을 향해 두 발을 딛고 걸으며 나아간다. 그러나 이 당연한 전제가 역사 속에서 온전히 성립됐던 적은 과연 얼마나 될까.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의 영화 <조조 래빗>은 독일 나치즘이 인간의 자유의지를 통제하던 제 2차 세계대전 시기를 10살 소년의 시선으로 조명한다. 신발 끈조차 제대로 묶지 못하는 서툰 아 소년이 자신만의 생각으로 스스로 설 수 있기까지의 과정을 통해 역사의 억압과 통제, 그럼에도 회복되고 피어나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보여준다.

 

영화는 이 소년이 거울을 바라보며 자신의 의지를 강력히 외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소년의 이름은 조조(로만 그리핀 데이비스). 그는 독일소년단 훈련을 받으러 가기 전 히틀러를 위해 자신의 목숨도 바칠 수 있다고 말한다. 뱀의 정신, 늑대의 몸, 표범의 용기를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말들이 닿는 곳은 자신의 환상 속 친구 히틀러’(타이카 와이티티). 조조는 히틀러에게 자신의 강인한 의지를 수차례 강조한다. 그런다 돌연 못할 것 같다며 속마음을 이야기 한다. 자신 있게 뭐든 할 수 있다 했지만 조조는 사실 아직 어리고 순수한 마음을 가진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환상 속 친구는 그를 끊임없이 다그친다. 강인한 정신으로 유대인을 억압하는 충성스런 나치가 되어야 한다고 외치며.

이 오프닝은 조조의 두 발을 이끄는 것이 온전한 조조의 의지가 아님을 암시한다. 어린 아이가 만들어낸 환상 히틀러는 사회가 강요하고 세뇌시킨 이념의 허상에 불과하다. 그 허상 앞에서 뱀, 늑대 등 강인해 보이는 동물을 나열하지만 결국 조조는 토끼와 같다. 그래서 영화의 제목도 조조 래빗이다. 물론 토끼도 작지만 제 발로 어디든 갈 수 있고 영리하다. 그러나 조조는 이마저도 서툰 작은 아이일 뿐이다. 조조는 결국 독일소년단에 가 망신을 당한다. 환상 속 친구가 위대한 토끼가 되라고 다시 부추기는 바람에 수류탄을 과감히 던져 더 큰 사고를 내기도 한다.

 

그런 조조를 지켜주는 동시에 그가 새롭게 눈을 뜰 수 있도록 이끄는 존재는 엄마 로지(스칼렛 요한슨). 로지는 조조에게 생각을 바꾸길 강요하지 않는다. 환상 속에 사로잡힌 조조의 사고를 하나씩 열어줄 뿐이다. 영화는 조조와 로지의 발을 번갈아 비추며 갇힌 조조와 자유분방하고 열린 사고의 로지를 대비한다. 조조는 스스로 끈도 묶지 못하면서도 어른인 척 으스댄다. 로지는 그런 조조의 신발 끈을 다정하게 묶어준다. 그러면서도 양발의 신발 끈을 이어 묶는 장난을 쳐 조조가 넘어지기도 한다. 조조를 보듬으면서도, 그가 뭐든 할 수 있다고 큰 소리 치는 어른이 아닌 순수한 어린 아이의 모습으로 돌아가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로지는 전쟁을 멈추고 모두가 각자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즐겁게 춤을 추라는 의미로 조조의 앞에서 신나게 춤을 추기도 한다. 이 장면에서 카메라는 로지의 풀샷에서 전환해 발을 클로즈업하며 이를 바라보는 조조의 시선을 담아낸다. 이때만 해도 조조는 그런 엄마를 이해하지 못한다. 조조가 그 발을 바라보는 이 쇼트는 이후 다른 장소에서 엄마의 발을 바라보게 되는 쇼트와 겹쳐진다. 영화는 두 쇼트의 오버랩을 통해 자유의지를 가진 로지의 발걸음이 역사 속에서 얼마나 잔인한 방식으로 멈춰지는지를 부각시킨다.

 

갑작스런 한 소녀와의 만남도 조조의 환상을 깨뜨리는 주요 장치가 된다. 이 소녀는 조조가 그토록 혐오하던 유대인 엘사(토마신 맥켄지). 엘사는 유대인이란 이유로 숨어 있어야만 하고, 제대로 세상에 발을 딛을 수조차 없다. 영화는 제대로 걷고 있다 생각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세뇌당한 조조, 걷고 싶지만 세상의 억압으로 걷지 못하는 엘사를 만나게 해 서로를 천천히 일으켜 세우고 걷게 해주는 존재로 연결시킨다.

처음 조조가 엘사와 마주했을 땐 크게 당황한다. 유대인에 대해 말도 안 되는 허상의 이미지만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엘사와 서로를 알아가며 그 또한 평범한 사람임을 깨닫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로지의 자유로운 발걸음이 멈춰버리고, 조조는 엘사와 집에 단 둘이 남게 된다. 조조가 먹을 것을 구하러 나간 세상은 온갖 걸음으로 소란스럽다. 서로를 죽이기 위해 돌진하고, 때론 폭탄을 피해 도망가기 바쁘다. 이 황폐화된 세상에서 각성한 조조는 스스로 환상 속 친구 히틀러를 몰아냄으로써 온전한 걸음을 뗄 준비를 한다.

그 걸음은 홀로 서는 법을 깨달으며 시작된다. 신발 끈도 묶지 못했던 조조는 혼자 남는 두려움에도 엘사를 세상 밖으로 돌려보낼 준비를 한다. 이를 위해 엘사의 신발 끈을 단단히 묶어주기도 한다. 조조가 자신은 물론 타인의 신발을 묶을 수 있는 존재로 성장한 것을 암시한다.

그렇게 세상에 새롭게 발을 뗀 엘사가 자유의지로 시작한 행위는 로지처럼 춤추는 것이다. 과거 로지가 춤출 땐 따라하지 않았던 조조는 엘사와 눈을 맞추며 신나게 춤을 춘다. 그 동작들엔 앞으로 걸어가는 듯한 춤도 포함돼 있다. 진정한 자유의지를 갖고 걷게 된 스스로를 격려하고 축복하는 것만 같다.

 

·김희경(문화평론가)

*사진: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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