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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식의 시네마 크리티크] 봉준호 영화의 희생양들⓷ - 괴물은 과연 ‘나쁜 놈’이기만 할까?
[임정식의 시네마 크리티크] 봉준호 영화의 희생양들⓷ - 괴물은 과연 ‘나쁜 놈’이기만 할까?
  • 임정식(영화평론가)
  • 승인 2022.02.07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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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의 최고 흥행작 <괴물>의 관객 수는 1302만 명. 이 영화는 <명량>이 개봉되기 전까지 8년 동안 한국영화 역대 흥행 기록 1위를 유지했다. <괴물>의 흥행 비결을 한두 가지로 설명하기는 힘들다. 그렇지만 권선징악의 메시지와 결말 장면의 카타르시스를 빼놓을 수는 없다. 권선징악의 카타르시스는 대중영화의 전형적이고 전통적인 조건이다. <괴물>에서는 돌연변이 괴물을 불태워 죽이는 장면이 하이라이트이다. ‘악의 화신’인 이 괴물은 평화로운 한강 둔치에 난입해 납치, 살인, 파괴를 일삼은 악당이다. 흉측한 외모의 괴물이 납치한 인물은 순진무구한 여학생 현서. 강두는 괴물이 딸 현서를 꼬리에 말아쥐고 유유히 한강을 헤엄쳐 건너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만 했다. 심장이 멎을 듯 안타까운 일이다. 물론 강두 일가족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현서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현서는 괴물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다. 그러니 강두 남매가 힘을 합쳐 괴물을 불태워 죽이는 장면에서 관객들이 환호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관점을 조금만 바꾸면, 괴물의 탄생 과정에 초점을 맞추면, 괴물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 돌연변이 괴물이 우리 사회에 재난을 가져온 ‘나쁜 놈’이라는 사실이 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동시에 희생양의 면모를 지니고 있다는 점도 드러난다. 괴물이 희생양이라고? 이 관점이 어색하다면, 괴물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 보자. 이 괴생명체는 본디 한강에 서식하는 평범한 물고기였다. <괴물>은 괴물의 원래 어종이 무엇인지 설명하지 않는데, 그것이 흔한 토종 물고기의 하나라는 점은 분명하다. 이 괴물은 한강 낚시 장면에서 처음 등장한다. 그런데 이때부터 돌연변이답게 공격적인 성향을 드러낸다. 이 괴물은 어류도 아니고 파충류도 아니다. 자연 생태계에는 존재하는 않는 생명체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이 질문은 가볍지 않다. 

<괴물>은 그 이유를 분명하게 설명한다. 주한미군 장교가 한국인 병사에게 포름알데히드를 한강에 방류하도록 지시하는 장면과 한강의 낚시 장면을 디졸브로 연결한다. 독극물 방류가 돌연변이 탄생의 직접적인 이유라고 명시적으로 말한다. <괴물>의 돌연변이 괴물은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그로 인해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다. 그런데 독극물 방류 사건이 없었다면, 그래서 한강의 어린 물고기가 포름알데히드에 노출되지 않았다면? 그 물고기는 아마도 한강의 물속을 유유히 헤엄치며 성장하고, 새끼를 낳고, 순리에 맞게 살아가다가 죽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괴물은 자연의 삶을 누리지 못했다. 자신은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원하지 않는 괴물이 되어, 살인과 파괴를 일삼다가 화염에 휩싸여 고통스럽게 생을 마감한다.

 

이 괴물을 폭력의 주체로만 해석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시각에서 그러할 뿐이다. 생태학적인 차원에서 인간과 자연의 공존, 인간과 동물의 상생은 당연한 이치이다. 괴물의 삶은 정반대이다. 인간의 폭력에 의해, 한국사회의 구조적 모순으로 인해 돌연변이가 되어 비극적인 삶을 살아간다. 물론 표면적으로 괴물은 인간의 목숨을 빼앗고, 사회를 혼란에 빠트린 존재이다. 하지만 한강 속을 헤엄치던 새끼 물고기가 인간의 부도덕한 행위 때문에 괴생명체가 되었다면, 그 물고기 역시 희생양이라고 부를 수 있다.

<괴물>의 괴물에게는 희생양 징후가 농후하다. 흉측한 외모를 지닌 이 괴물은 돌연변이이다. 수많은 신화에서 돌연변이는 괴물로 취급된다. 스핑크스가 인간과 사자의 합성체인 것처럼, 이 괴물은 어류와 파충류(양서류)의 합성체이다. 이 괴물은 또 납치, 살인, 파괴와 같은 흉악 범죄를 저지른다. 이방인이 침입해 사회에 재난을 일으킨다면 그는 당연히 퇴치 대상이 된다. 그런데 <괴물>에서 이 괴물은 주한미군기지에서 흘러나온 독극물의 피해자이다. 중세 시대에 페스트가 만연하였을 때, 유대인들은 샘에 독을 풀었다는 터무니없는 이유로 희생양이 되었다. <괴물>에서는 한강에 독극물을 방류한 책임자가 명확하다. 그런데 주한미군 장교 대신 피해자인 돌연변이 괴물이 처벌을 받는다. 봉준호 영화에서는 이처럼 범죄의 진범 대신 제3자가 처벌을 받는 일이 흔하다. <플란다스의 개>에서는 반려견 살해범으로 윤주 대신 노숙자가 끌려가고, <살인의 추억>에서는 백광호를 비롯한 마을의 청년들이 용의자로 지목돼 고문을 당하거나 죽고, <마더>에서는 도준 대신 고아이자 정신 박약아인 종팔이 아정의 살인범으로 수감 된다. 그렇다면 <괴물>의 괴물은 노숙자, 백광호, 종팔과 비슷한 유형의 인물이다. 그러한 점에서 <괴물>의 괴물은 복합적인 캐릭터이다. 다만 괴물이 일방적인 폭력의 가해자만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공간의 측면에서도 돌연변이 괴물의 희생양 면모를 찾아볼 수 있다. 괴물이 탄생하고 죽어간 한강은 한국의 근대화, 산업화를 상징하는 공간이다. ‘한강의 기적’은 박정희 정권 때 시작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성공을 상찬하는 용어이다. 하지만 한국의 집약된 근대화, 산업화는 많은 문제점을 노출했고, <괴물>은 프롤로그에서 기업체 사장의 한강 투신자살을 통해 그 단면을 보여준다. 괴물의 서식지인 하수구, 한강 다리 아래의 미로도 한국의 경제 발전과 자본주의 시스템의 어두운 그늘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그렇다면 <괴물>의 괴물은 한국과 미국의 정치적·지정학적 수직 관계, 한국 경제 발전의 모순과 취약점이 응축되어있는 존재가 된다.

 

<괴물>에 등장하는 괴물은 이방인이자 타자이며, 악의 화신이다. 이는 고대 희생 제의의 희생양과 유사한 점이다. 이 괴물은 성서의 레위기에 나오는 염소와 유사한 역할을 수행한다. 고대 희생 제의에서는 인간 희생양이 동물 희생양으로 대체된다. 동물 희생양 중에서 염소는 죄악을 나타내는 동물이다. 염소는 중세의 종교예술 작품에도 뿔이 솟고 수염을 기른 악마의 형상으로 나타난다. 희생 제의에서 염소는 사악한 죄악의 전염원으로서 사회 내부의 죄악들을 뒤집어쓰고 황무지로 내쫓기는 독특한 역할을 맡았다. 염소는 인간과 사회의 온갖 죄를 짊어지고 황무지로 추방된 것이다.

<괴물>의 돌연변이 괴물은 동물 희생 제의의 염소에 대응한다. 불에 타 죽는 돌연변이 괴물의 최후 장면은 고대 희생 제의의 현대적 변용이다. 한강이 상징하는 지정학적, 경제적 모순을 한강에서 태어난 괴물에게 뒤집어씌워 처벌하는 행위이다. 괴물을 죽이는 직접적인 수단이 불화살인 것도 주목할 만하다. 괴물에게 투사된 한국사회의 모순을 활로 제거하는 행위는, 괴물 탄생의 원인을 고려하면, 어쩔 수 없이 민족주의적인 의미를 지니게 된다. 활과 불로써 괴물을 퇴치하는 희생 제의를 통해 한국사회의 정치적, 경제적 모순과 부조리를 없애려는 의지를 강력하게 표현한 것이다.

<괴물>의 희생양은 복합적이고 다원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재난은 괴물의 출현으로 발생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괴물은 희생양이기도 하다. 괴물은 살인, 납치 등의 범죄를 저지르지만 인간이 만든 독극물에 의해 괴물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괴물은 인간에 의해 화형이라는 처벌을 받는다. 그 이후 사회는 표면상 안정을 찾은 것처럼 보인다. 과연 그럴까? 아니다. 괴물이 사라진 이후에도 불안과 공포는 여전히 존재한다. 괴물 탄생의 구조적인 모순과 부조리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영화 안에서도, 관객들도, 괴물을 진심으로 애도하지 않는다. 괴물의 신성화도 생략된다. 강두가 총을 들고 매점 밖을 주시하는 마지막 장면은 괴물이 언제든 다시 출현할 수 있다는 불안감의 표시이다.

 

<괴물>에서 강두와 괴물은 가해자/피해자의 적대적인 관계이다. 그런데 그들의 관계는 단선적이지 않다. 강두는 딸의 납치와 죽음을 경험한 피해자이자 위선적인 국가 권력의 희생양이다. 하지만 강두는 ‘현대판 염소’인 괴물을 죽인다. 그렇다면 강두는 동물 희생 제의를 집행한 제사장의 역할을 담당한 셈이 된다. 강두가 병원에서 괴물의 피를 씻어낸 것은 제사장이 의식을 관장하기 전에 몸을 정화한 행위의 변형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괴물은 순진무구한 현서와 무고한 시민들을 납치, 살해한 가해자이다. 하지만 인간의 악행에 의해 돌연변이가 되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희생양이기도 하다. 강두와 괴물의 행적에는 한국사회의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모순과 부조리가 포함되어있다. <괴물>에서는 집단 폭력과 박해의 양상이 다원화되어 있으며, 돌연변이 괴물은 희생 대체의 현대적인 표본이 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돌연변이 괴물은 이제 한국사회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일까? 안타깝게도 이 질문은 다소 허황하다. <괴물>의 돌연변이 괴물의 아우들은 열차에, 학교에, 거리에, 관공서에 떼 지어 출몰해 유령처럼 활보한다. 괴물들의 행진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글·임정식
영화평론가. 영화를 신화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작업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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