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4월호 구매하기
[이호의 문화톡톡] 만국의 개미들이여 단결하라?
[이호의 문화톡톡] 만국의 개미들이여 단결하라?
  • 이호(문화평론가)
  • 승인 2022.02.07 09: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확히 1년 전쯤, 작년 2021년 2월에 있었던 일이다. ‘게임스탑’이라는 미국의 게임회사는 1984년에 설립된 작은 규모의 회사로 콘솔 게임 전문 소매업 체인 회사였다. 미국을 포함해 14개국에 5천 개 이상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었지만 지난 몇 년간 800개 가량의 매장을 폐쇄하면서 시장 지배력을 잃어간다는 평을 받던 회사였다. 더구나 실적 발표에서 1천 개 이상의 매장을 폐쇄할 것이라 밝혀 향후 전망이 더욱 어두워져 가는 그런 회사.

그런데 반려동물 관련 업체 츄이(Chewy)의 공동 창업자인 라이언 코언이 게임 스탑의 이사회에 합류하게 되면서 실적 개선의 전망을 예측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게임스탑의 사업모델을 오프라인 중심에서 온라인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미국 최대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의 주식 관련 게시판 ‘월스트리트베츠’(Wallstreetbets)에서 활동하는 투자자들(250만명)이 게임 스탑 주식을 매수하자고 의견을 모으게 된다.

당연한 결과로 게임 스탑의 주식 가격이 상승했다. 그러자 자본가들의 이익 대리자인 대규모 헤지펀드들이 게임스탑에 공매도(숏)를 친다. 복잡하지만 아주 단순하게 말해서 숏이란, 가격이 하락할 거라는 쪽에 베팅을 하는 것이다. 여기까지만 해도 그럴 수 있는 일이지만, 그들의 오만이 하늘을 찔렀던가? 헤지펀드 자신들의 공매도 포지션을 공개하면서 게임스탑의 주식을 매수한 개미들을 ‘머저리들’(Idiots)이라고 조롱하기에 이른다.

이에 열 받은 만국의 개미들이 ‘단결하라’고 외치며 게임스탑의 주식을 미친 듯이 더 매수하게 된다.(가격이 올라가면 공매도를 행사한 대규모 헤지펀드들은 막심한 손해를 입게 되고 개미들이 승리하게 되는 게임이 펼쳐지게 되는 것이다.) 심지어 이 모든 작전들이 인터넷 사이트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공유되고 공개된 채로 말이다. 공매도 투자자들은 주가가 상승하면 손실 폭을 줄이기 위해 매도한 가격보다 비싸도 주식을 사들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그 결과 주식의 가격이 급상승 하게 되자 온 세상의 주목을 끌게 되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전 세계의 개미들이 대거 참전을 결정한다. 그리하여 게임스탑의 주식은 순식간에 1주당 31달러에서 347달러로 폭등하는 결과가 발생한다. 게임스탑이라는 회사의 실체나 실적, 재무재표와는 전혀 무관한 개미들과 헤지펀드 사이의 전쟁이 발발하게 된 것이며 이후 여러 가지 이유와 다양한 욕망을 가진 사람들이 이곳에 뛰어들게 되었다.

이렇게 헤지펀드가 선전포고하고 개미들이 참여하여 벌여 놓은 전쟁에 또 다른 큰 손들도 끼어들고, 심지어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도 참전하며 자신의 트윗에 “게임 스통크!!”(맹폭격하라!)는 명령을 내리기도 한다. 한국의 이른바 서학개미들로 불리우던 사람들도 동맹군에 참전한다. 그때 한국에서 게임스탑에 투자한 금액순위는 2위까지 하기에 이르렀으며(1위는 미국의 전기차 회사 테슬라) 국내에서 해외주식 거래량이 13배 폭증까지 하게 되었다. 그리고 게임스탑은 1주식 당 500달러에 육박한다. 여기에는 개미들의 분노가 로켓의 연료가 된 점이 없지 않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극심한 경제적 피해를 겪으며 성장한 세대의 울분이 반영된 것이다.

맨 먼저 선전포고를 했던 헤지펀드의 매니저가 사과한다는 영상을 발표했다. 그런데 더 재미있어지는 건, 너무나 오른 가격, 펀더멘털과 무관하게 올라간 게임스탑의 가격이 결국 꺼질 것으로 본 세력들이 다시 공매도를 치고 들어온 것이다. 이제부터 진짜 흥미로운 심리전이 펼쳐진다. 이미 주식을 산 모든 사람들(주로 개미들)이 주식을 팔지 않으면 공매도를 친 모든 사람들을 이길 수 있게 되고, 심지어 이익도 더 크게 볼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지구 각 곳에 흩어진 개인들 역시 결국 가격은 떨어질 것이라 예측하고 조금이라도 이익을 볼 수 있을 때 팔고 나가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그런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가격은 하락하고 결국은 공매도를 행사한 사람들의 예상이 맞게 되는 것이고, 그들이 이익을 보게 될 것이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개인적으로 손해를 보더라도 무수한 개미들이 팔지 않고 홀드할 수 있었을까? 아니면 연대와 연합의 공동체는 이탈하는 작은 개인들로 인해 붕괴되었을까? 결과를 말하기 전에 믿지 못할 카타스트로피가 발생했다. 증권수수료가 무료이기에 가장 많은 이들이 이용하는 미국의 무료증권 어플 ‘로빈후드’(이름만 의미심장한)와 몇몇 거래소에서 매수버튼이 사라진 것이다. 팔 수만 있고 살 수는 없는 희대의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거래소는 의무예치금이 바닥나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랬다고 법제도적인 핑계를 댔다. 기존 금융권에 반항하며 젊은 밀레니엄 세대와 개인 투자자들의 편을 들겠다면서 급성장한 로빈후드에서 말이다. 대규모 펀드들의 편을 들었다는 의혹 속에서 진실 공방은 법정이나 청문회로 가고, 언제나 그렇듯 진정한 진실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영역으로 사라져 갔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게임스탑의 주가는 100달러 즈음에 머물러 있다.

게임스탑 사례는 왜 중요한가?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생각해 볼 수 있을까? 짧게 약술한 이 사태의 전개는 이른바 주식 시장의 개미들(즉 이익을 창출하고자 하는 소규모 개인 투자자들)과 헤지펀드(이익을 창출하고자 하는 거대 펀드) 사이의 전쟁(같은 입장의 사람들끼리 연합하여 사거나 팔거나 하여 상대방의 자금을 축내고 이익을 보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로 단결된 행동을 하는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이 모든 행위들이 금융 시장이라고 하는 전장에서 벌어졌다는 것이고, 무기는 돈, 전투 행위는 사고 파는 매매 행위였다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바야흐로 금융자본주의 시대이다.

말바꿈을 하자면 게임스탑에서 만국의 노동자들(개미들)이 단결하는 행위가 인터넷을 통한 금융 시장에서 벌어졌다는 말이다. 무산계급 대 헤지펀드의 전쟁, 월스트리트 대 메인스트리트의 격돌. 거대 자본이 만들어 놓은 시장에 따르던 개인들이 돌연 자산불평등과 불합리한 자본 시장에 도전하는 개인으로 변화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라고 정리하는 사람들이 많다.

 

당시 게임스탑의 주가 그래프

이 사건은 그저 일회성 해프닝일 것인가 아니면 월가 권력 역학의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 그것이 가능하더라도 우리가 사는 세상을 근본적으로 얼마나 바꿀 수 있을까 새삼스러이 옛스러운 질문이 떠오른다. 멀게는 2008년 금융 위기를 돌파하고자 한 양적 완화 정책 이후, 그리고 코로나 이후 금융 자본주의가 가속화된 것도 사실이다. 이제 주변 대다수 사람들 가운데 주식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여기에는 급등하는 주가와 부동산, 그로 인한 이득 때문에 가만히 있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벼락거지’가 되는 상황으로 세상이 변화한 것이다. 이제 개인들은 생존하기 위해서 혹은 세상의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서라도 주식을 해야만 하는 그런 상황에 처해 있다고도 말할 수 있으리라.

게임스탑의 내용을 가만히 들여다 보노라면,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가와 노동력을 제공하는 임노동자 사이의 갈등과 대결구도와 전개 양상이 매우 닮아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백여년 전에는 역사발전의 자연스러운 흐름이 노동자 쪽에 있다는 역사인식의 후광이 주어져 있었고, 과학과 역사와 윤리가 모두 그들 편에 서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입장과 처지는 달랐어도 개미와 헤지펀드 사이에는 강력한 공통분모가 하나 있다. 그것은 모두가 경제적 이득을 취하고자 하는 점이다. 이것은 나의 이득이 다른 누군가의 손해로 이어지는 제로섬 게임의 양상을 가졌음은 물론이다.

오래전 노동자들도 자신들의 이익을 탐하기 위해서 혁명의 반열에 서 있었을까? 그 시대를 살아보지 못해서 잘은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지금 우리의 시대가 법의 틀 안에서라면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를 비난할만한 아무런 근거와 당위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윤리와 도덕과 양심이라는 이데올로기적 카테고리가 아직도 없지는 않지만, 개인의 이득 추구라는 매우 강력한 ‘인간-동물’의 에너지 앞에서 오늘따라 그런 것들은 희미한 옛사랑의 아득한 그림자 같은 것들로만 느껴진다.

 

 

글·이호
문화평론가

  • 정기구독을 하시면 온라인에서 서비스하는 기사를 모두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독 신청을 하시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후 1:1 문의하기를 작성해주시면 1회에 한해 과월호를 발송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