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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의 문화톡톡] 아이와 함께하는 역사문화기행 : 정월대보름과 세시풍속
[김정희의 문화톡톡] 아이와 함께하는 역사문화기행 : 정월대보름과 세시풍속
  • 김정희(문화평론가)
  • 승인 2022.02.21 11:1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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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질서

아이를 키우면서 부모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일까?

아이의 건강문제와 더불어 아이에게 ‘언제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하는 문제일 것이다. 이 문제들이 어려운 이유는 정해진 답이 없고, 어떤 길을 택하더라도 부모의 의도나 생각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교육의 문제는 아이의 미래와 직결되기 때문에 부모들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이 고민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현대 교육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코메니우스는 『대교수학』에서 ‘자연의 질서에 따른 교육’을 이야기한다. 자연의 질서란 무엇일까? 해가 뜨고 지고, 달의 모양이 바뀌고, 계절이 변화하고, 다시 같은 계절이 돌아오며 다른 한 해를 맞이하는 것. 한 마디로 ‘자연스러운 삶의 흐름’이다. 예전에는 이런 것들은 굳이 가르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지금은 해가 뜨고 지는 모습을 일출과 일몰명소에서만 감상할 수 있다. 달이 언제 뜨고 지는지, 달의 모습이 매일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는 달빛보다 더 환한 밤이 일상이 된 삶에서 더 이상 관심거리가 되지 못한다. 코로나가 장기화 되면서 실내에서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본래 계절을 잊어버린 과일과 채소들 앞에서, 자연의 변화는 그 의미를 잃어버린지 오래다.

굳이 옛 서양 교육학자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인간이 자연을 떠나 존재할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과거의 아이들은 자연의 변화를 저절로 느끼면서 시간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자연의 변화를 느끼기 어려워진 지금의 아이들에게는 시간의 변화와 자연의 질서에 대해 배울 다른 계기를 마련해줘야 할 필요가 있다.

 

살곶이 다리 조선시대 가장 긴다리.  한양대학교 부근과 성수동을 이어주는 다리이다.
살곶이 다리
조선시대 가장 긴다리. 한양대학교 부근과 성수동을 이어주는 다리이다.
2011년12월23일 보물 제1738호로 승격되었다.  사진 김정희

세시 풍속

아이들에게 시간의 변화를 가르치는 일은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다. 아이를 데리고 장을 보러 마트에 가는 일만으로도 시간의 변화를 느끼게 하기에는 충분하다. 대형마트는 연중행사에 맞추어 판매 물품이 진열되어 있다. 지난 주까지 초콜릿으로 가득 차 있던 판매대는 다음 달이면 사탕으로 가득 찰 것이다. 하지만 자연의 산물과는 거리가 먼 초콜릿과 사탕으로 느낀 시간의 변화를 자연의 질서에 대한 가르침으로 생각하기에는 아직 부족한 느낌이 있다.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단순한 시간의 변화가 아닌, ‘자연스러운 변화’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간단한 해결책이 있다. 바로 세시 풍속을 가르치는 것이다. 세시 풍속은 음력 정월부터 섣달까지 해마다 같은 시기에 반복되는 전통의 주기전승의례이다. 해마다 같은 시기에 반복되는 것이기에 부모는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세시 풍속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할 수 있다. 부모는 아이와 함께 세시에 맞는 놀이를 하고 음식을 먹으면 되는데, 이런 일들은 아이가 자랐을 때, 부모와 함께했던 순간에 대한 기억을 풍부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세시 풍속은 일 년 열두 달을 봄, 여름, 가을, 겨울 일정한 시기에 되풀이해 온 고유한 풍속인데, 유득공은 『경도잡지』에서 세시(歲時) 19개를 소개하고 있다. 그 중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원일元日(설날), 입춘立春, 상원上元(정월 대보름), 한식寒食, 파일八日(부처님오신날), 단오端午, 복伏, 중추中秋(추석인데 가배라고도 함), 동지冬至등 9개 정도이다. 세시는 농사를 지어야 하는 때에 맞추어진 것으로, 자연의 흐름에 따르는 우리 조상들의 삶의 방식을 잘 보여준다. 조상들은 이 세시에 맞추어 의례를 지키고 음식을 먹고 놀이를 해왔다. 이 중에서 정월대보름을 소개하고자 한다.

 

김홍도    논갈이    단원풍속도첩   출처:국립중앙박물관
김홍도 논갈이 단원풍속도첩 출처:국립중앙박물관

정월대보름

정월대보름(상원(上元))은 해가 바뀌고 처음으로 보름달이 뜨는 날로 농사가 천하의 근본이라고 생각했던 우리 조상들이 설날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던 날이었다.

정월대보름에 대해 최남선은 “옛날 아주 오랜 옛날 시절에는 사람들이 달 밝은 날을 신비한 의미로 좋아하여, 매양 보름날 밤이면 동네 동네가 한 마당에 모여서 놀이도 하였고, 첫 번 드는 정월 보름은 그 해의 연운(年運)을 점치는 것이라는 의미로 특별히 소중하게 여겨서 보름 가운데 큰 보름이라 하여 대보름이라고 일컬었다”고 한다.

이어 “이날이 깨끗하고 궂음과 이날 달이 밝고 희미함과 이날 공기가 맑고 흐림과 이날 풍세가 곱고 사나움 등으로써, 그 해 일년 동안의 수한(水旱)과 풍흉(豊凶)과 다른 여러 가지 화복(禍福)을 미리 짐작하며, 또 이것 저것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일년 내 모든 일의 길흉을 판단하는 풍속”이라고 한다.

농가월령가에서는 정월대보름 풍속에 대해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보름날 약밥 제도 신라적 풍속이라.

묵은 산채 삶아내니 육미를 바꿀소냐.

귀 밝히는 약술이며, 부름 삭는 생율이라.

먼저 불러 더위팔기 달맞이 횃불 켜기.

흘러오는 풍속이요 아이들 놀이로다. ”

유득공의 『경도잡지』에도 정월대보름의 여러 가지 풍속들이 자세하게 나와 있다.

“대보름에는 개에게 밥을 주지 않는 금기사항이 있었다. 이날 밥을 먹이면 여름에 파리가 많이 꾀고 개가 마른다는 속설이 있어, 항간에서는 굶는 것을 보고 농담 삼아 “개 보름 쇠 듯 한다.”라고 했다.”

“나물로 먹는 것은 대개 외꼭지, 가지 고지, 시래기 등인데, 모두 버리지 않고 서서히 햇볕에 말려서 정월 대보름날을 기다려 삶아 먹으면 더위를 타지 않는다.”

“무명실을 자아 옷을 지으면 길하다고 하여 부녀자들은 정월 대보름날 실을 서로 선물한다.”

“새벽에 종각 네거리의 흙을 퍼다가 부뚜막에 바르면 재물이 모인다.”

“봄을 타서 얼굴이 검게 되고 마르는 아이는 정월 대보름날 백 집에서 밥을 빌어다가 절구를 타고 개하고 마주 앉아 개에게 한 숟갈 주고 자기도 한 숟갈 먹으면 다시는 병에 걸리지 않는다.”

“삼문 밖과 아현 사람들이 만리재 위에서 돌을 던져 서로 싸우는데, 속설에 삼문 밖이 이기면 경기도에 풍년이 들고, 아현이 이기면 팔도에 풍년이 든다고 한다.”

“어린 아이들은 종이연에 액(厄)자를 써서 해질녘에 연줄을 끊어 날려 보낸다.”

 

정월 대보름 달집태우기전 모습  출처: 서울역사박물관
정월 대보름 달집태우기전 모습 출처: 서울역사박물관

대보름날 놀이로는 줄다리기, 지신밟기, 쥐불놀이, 달집태우기, 더위팔기, 연날리기, 다리 밟기 등이 있다.

『경도잡지』는 다리밟기에 대해 아래와 같이 이야기한다.

“달이 뜨면 서울 사람들이 모두 종로에 나가 종소리를 듣고는 흩어져 여러 다리를 밟는데, 그러면 다리병이 낫는다고 한다. 대광통교와 소광통교와 수표교에서 가장 성대하다. 이날 저녁에는 전례대로 야금을 풀어 사람들이 매우 많이 모이는데 퉁소와 북소리로 요란하다.”

정월 대보름날밤 광통교를 밟는 모습을 그린 그림 <상원야회도>와 이 그림에 쓴 <상원야회도화제>에도 다리 밟기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세속에서 답교놀이를 중시하니,

대개 정월 대보름은 한 해 중의 가장 아름다운 날이고

육교(광통교)는 한양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다.

이날 밤 달빛이 지극히 밝은데, 온 장안의 사인(士人)들과 여인들이

마치 구름이 모이듯이 소매를 연이은 채 나와서 답교를 한다.

악기 소리와 노래 소리가 사방에서 요란하게 들리니,

참으로 한 해 중의 대단한 놀이이다.”

이덕무의 『청장관전서』에서도 답교놀이를 소개하고 있다.

“정월 보름날 밤이면 우리나라 남녀들이 성안의 큰 다리 위에서 노는데 그것을 일러

‘답교’라 하며, ‘답교놀이’를 하지 않으면 반드시 다리병을 앓는다고 한다.”

이처럼 정월대보름은 일년 농사가 잘 되기를, 풍년이 들기를 간절히 비는 시간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 풍년과 마을의 안녕을 비는 동제를 지내고, 오곡밥과 묵은 나물을 먹었으며, 귀가 밝아지라고 귀밝이술을 마셨으며 부스럼을 앓지 말라고 잣, 호두, 밤등 견과류를 먹었다.

세시 풍속 중 대보름을 소개한 이유는 대보름이 아이와 함께 먹고, 놀 수 있는 것들이 가장 많은 날이기 때문이다. 우선, 대보름이라는 이유로 아이에게 오곡밥과 묵은 나물을 먹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밤, 호두, 땅콩 등 견과류를 먹으며 부럼깨기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귀밝이 술을 앞에 놓고 예전에는 어린아이도 먹였던 술이라 말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대보름의 다양한 놀이 중 더위팔기, 답교놀이, 달맞이는 도시에서도 충분히 함께 해볼 수 있을 것이다. 보름날 아침, 아이의 이름을 부르고 아이가 대답을 하면 “내 더위 사라”라고 외치고 나의 더위를 아이에게 팔아볼 수 있을 것이다. 저녁에는 동네에 있는 다리를 걸으면서 이렇게 걸으니 다리병이 생기지 않기를 함께 기원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날씨가 허락한다면 먼저 달을 보는 사람을 두고 내기를 해볼 수 있을 것이다.

대보름날의 음식과 놀이에 가득한 ‘아이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아이가 봄을 타지 않고, 한 해동안 부스럼이 생기지 않고, 다리병이 생기지 않고, 귀가 밝아지기를, 여름에 더위 먹지 않기를, 풍년이 들기를, 좋은 일이 생기기를, 쥐가 없어지기를, 파리가 꼬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들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올해는 ‘아이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아이가 봄을 타지 않기를........’무엇보다

아이와 부모들 모두 건강하기를 달님에게 빌어본다.

 

 

·김정희(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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