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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미의 문화톡톡] 당신이 어두운 여행을 떠나는 진짜 이유
[장윤미의 문화톡톡] 당신이 어두운 여행을 떠나는 진짜 이유
  • 장윤미(문화평론가)
  • 승인 2022.04.11 11: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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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무엇을 보는 행위인가

관광, 빛이 비치는 곳을 보는 행위. 나의 시선은 오로지 빛을 따라가고, 빛이 멈추는 곳에서 나의 시선도 머무른다. 빛에 반사된 그것은 눈부시게 아름답다. 그것이 주는 경이로움과 감동에 취해서인지, 아니면 단지 빛의 강렬함 때문인지 빛이 비치는 곳을 따라가는 동안 나는 다른 것을 볼 수 없다. 혹 볼 수 있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볼 수 없다. 다만 추측할 뿐이다. 내 사고에 맞춰 왜곡되고 파편화된 채로 말이다.

유감스럽게도 빛이 비치는 존재 이외의 것들은 나에게 온전하게 발견되지 못한다. 빛이 빛을 비추는 범위에서 벗어나 있다는 이유로, 그리고 내가 보지 않았다는 이유로 분명히 존재하지만 나로부터 외면당하거나 부정당한다.

다크 투어리즘. 다소 낯선 여행 방식이다. 보통 관광이라 하면 세계적 명소, 유명한 건축물, 뛰어난 자연경관을 보기 위해 떠나는 행위를 떠올리지만, 다크 투어리즘은 일단 ‘다크’라는 말부터 투어라는 단어와 왠지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다.

다크 투어리즘의 사전적 정의는 ‘재난이나 역사적으로 비극적 사건이 일어났던 곳을 찾아 체험하면서 반성과 교훈을 얻는 여행’이다. (두산백과사전) 다크 투어리즘의 핵심은 비극 그리고 반성과 교훈이다. 그런데 반성에는 필연적으로 심리적 고통스러움과 함께 마음의 부채가 따른다. 지겹고 지루한 일상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서 선택하는 것이 여행이고 관광인데 비싼 돈을 들여 비극을 체험하고 반성을 한다고 생각하면 유쾌한 선택은 아니지 싶다.

관광은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거대 사업이라면, 이 사업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 여행사가 할 일은 매력적인 공간의 발견과 심심할 틈 없는 스케줄로 관광객을 유혹하는 것이고, 관광객이 할 일은 여기에 맞춰 시간과 돈을 소비하는 것이다. 다크투어리즘 역시 목적은 반성과 교훈에 있다고 하지만, 어쨌든 상품이고 상품은 되도록 많이 팔려야 한다. 그렇기에 다크 투어리즘의 타이틀을 달고 있는 여행 상품 역시 어쩔 수 없이 또는 의도적으로 ‘비극’ 체험보다 비극 ‘체험’에, 반성이나 교훈보다 기억과 기념에 방점이 찍혀 있는 경우가 많다.

 

비극의 당사자와 비극의 체험자 사이에서

김초엽의 므레모사는 므레모사에 초대받은 유안을 비롯한 관광객 여섯 명의 이야기다. 원인불명의 화재 이후 각종 유독 물질 확산으로 인해 사람이 살 수 없게 된 이르슐의 므레모사는 수십 년간 국가 통제구역으로 지정된 곳이다. 므레모사가 어떤 곳이었고, 어떤 이유로 통제되었는지 아는 사람은 전무하다. 그러다 보니 소문과 음모론만 무성할 뿐이다. 접근이 대상이 적을수록, 확인되지 않은 정보의 양이 많아질수록 사실은 늘 왜곡되거나 과장되기 마련이다.

 

김초엽, [므레모사](현대문학, 2021)
김초엽, [므레모사](현대문학, 2021)

그런데 이르슐이 주민 자생과 지역 경제 발전이란 명분으로 사람들에게 므레모사를 공개한다. 하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별로 없고 사실과 음모 사이에서 만들어진 잡음 덕분에 므레모사는 여행자들 사이에서 가장 핫한 여행 장소가 되었다. 하지만 아무나 므레모사를 여행할 수는 없다. 오로지 초대받은 사람들이 가능한데, 초대라는 말에서 느껴지듯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만이 므레모사 여행자 자격을 얻는다.

관광학 연구자 유지, 전문 다크 투어리스트 헬렌, 여행잡지 기자 탄, 여행 유튜브 채널 운영자 주연, 셀럽이자 전직 무용수 유안, (아직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레오, 이들의 직업이 말해주듯이 이들이 므레모사에 올 수 있었던 이유는 곧 선택당한 이유이기도 하다. 므레모사 연구로 실적을 쌓고 싶은 연구자, 좀 더 센 비극을 맛보고 싶은 여행가, 구독과 조회 수를 늘리기 위해 온 유튜버, 므레모사의 비밀을 폭로해 실력을 인정받고 싶은 신문기자. 므레모사를 알리는 것이 최종 목표인 누군가의 입장(누군가는 실체가 있는 국가일 수도 있고, 실체는 없지만, 국가보다 더 강력한 무엇일 수도 있다)에서 이들은 므레모사의 비극과 참상을 알리기에 최적화된 조건을 가진 인물들이다.

여섯 명의 인물에게 므레모사 관광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그러니 애초부터 역사적 반성이니 교훈 따위는 애초부터 없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을 비난할 필요는 없다. 여행의 진짜 목적은 체험과 과시이기 때문이므로. 므레모사 여행 상품을 개발한 당사자의 입장도 이들과 다르지 않다. 이들 덕분에 므레모사는 더 빨리, 더 많이 세상에 알려질 것이고 성지순례 하듯 므레모사를 방문하는 관광객은 점점 늘어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수익은 늘어날 것이고 더불어 자생적 경제 활동은 물론 지역 사회에 도움이 되는 것도 확실하다. 그런 측면에서 다크 투어리즘은 사적 이익과 공적 이익을 동시에 창출하는 괜찮은 ‘사업’이 분명하다.

그런데 레오와 유안은 네 명의 인물과 다소 다른 스탠스를 가진 인물이다. 먼저 주인공 유안은 사고로 의족을 착용하게 된 전직 무용수다. 다리를 잃게 되는 불행을 겪었지만, 연인과 주변의 응원과 관심을 부채 삼아 이른바 정상적인 무용수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도무지 적응되지 않는 낯선 의족과 환지증 사이에서 갈등한다. 다리의 흔적, 기억, 신경은 자신의 일부이자 모든 것이라는 걸 끝내 부정할 수 없는 유안은 차라리 만인 앞에서 의족을 뽑아버리겠다는 극단적 상상을 하며 몸부림친다.

레오는 전직 국제구호단체 회원으로 므레모사로 의료 봉사를 떠났다가 실종된 연인을 구출하겠다는 목표 하나로 므레모사로 온 인물이다. 레오에게 므레모사는 삶을 거부하는 공간, 악이 지배하는 공간이다. 그는 스스로 구원자 또는 해결사라고 생각하며 므레모사에 갇힌 불쌍한 사람들을 구하겠다는 목표로 므레모사에 입성한다.

레오는 자신을 포함해 피해자(로 규정당하는 자)가 입은 고통과 상처에 집중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착각하는 인물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그의 행동과 해결 방식이 일방적이고 폭력적이라는 데 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므레모사에 진입할 수 없다는 걸 아는 레오는 유안의 허락 없이 유안의 약점(의족)을 마음대로 이용하고, 자신의 연인을 구출하는 데 실패하자 므레모사를 불태워 완전히 그 흔적까지 없애려고 한다.

결과적으로 레오는 자신에게 가장 유용한 수단이었던 유안의 의족으로 응징을 당한다. 비극을 견뎌내든 혹은 비극을 선택하든 어디까지나 당사자의 몫이라 생각하는 유안과 달리 레오는 정당하지 못한 것, 비극으로 규정된 과거는 다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응징하고 또 구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레오는 같은 편이라 생각했던 유안이 자신을 공격하자 그들의 ‘암시’에 걸렸다고 의심하며 유안을 부정하기 시작한다.

유안이 므레모사 투어리즘을 선택한 이유는 ‘다른 길’에 대한 갈망과 기꺼이 그것을 선택한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유안과 므레모사 귀환자의 공통점이 있다면 일상을 파괴당한 경험을 가진 비극의 당사자들이라는 것이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유안은 의족 끼고 비극 이전의 삶 이른바 정상적인 삶을 선택했지만, 귀환자들은 비극의 한복판으로 돌아가 비정상적인 일상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일부러 고통을 피하지 않는 것, 고통의 흔적을 지우거나 포장하지 않는 것, 원치 않는 도움은 분명하게 거절하는 것. 이 세 가지는 비극 당사자들의 권리이자, 동시에 비극의 체험자가 함부로 훼손하지 말아야 할 최소한의 의무이기도 하다.

므레모사의 유안이 앓고 있던 환지증은 신체 일부가 절단되었는데도 사라진 부위의 감각을 느끼는 증상이다. 유안은 이 증상을 애써 지우고 싶지 않다. 다리가 두 개였던 과거의 자신도, 하나만 있는 현재의 자신도, 그리고 의족과 함께 세 개의 다리로 살아가야 할 미래의 자신도 유안의 전부이자 유안 그 자체이므로.

 

기억은 사라지고, 기념품만 남는

다크 투어리즘은 아픈 역사를 되돌아보고 이 공간과 시간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한 행위이자 체험 상품이다. 물론 그 취지에 맞게 정보를 전달하고 또 관광객에게 울림을 주는 경우도 있지만, 이 역시 어디까지나 여행 ‘상품’인지라 잘 팔리기 위해서는 부가적인 상품을 얹어야 조금이라도 (예비) 관광객을 끌어낼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챌린지 성공할 때마다 찍어주는 스탬프와 성공하면 받게 되는 굿즈, SNS 인증하면 받는 각종 기념품과 브랜드 커피 쿠폰 등등 부가적으로 딸려오는 상품이 매력적일수록, 그곳이 과시하기에 적합한 것일수록 사람들의 관심은 그곳의 역사보다 여행 ‘상품’으로 옮겨간다.

관광이 지닌 가치는 경험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이 경험이 무엇을 기억하느냐다. 여행 중에 사 온 마그넷이 냉장고에 붙어 있다면, 그것을 보면서 떠올리는 당신의 첫 번째 기억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마그넷의 가격인지, 아니면 아름다웠던 그 공간의 기억인지. 그것도 아니면 그곳에 일부가 되어 느꼈던 설명할 수 없는 낯선 감정인지.

 

 

·장윤미(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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