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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경의 시네마 크리티크] 기지촌 꽃분이 들을 위한 천도굿,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
[김 경의 시네마 크리티크] 기지촌 꽃분이 들을 위한 천도굿,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
  • 김 경(영화평론가)
  • 승인 2022.04.12 10: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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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뺏벌'이 위치하고 있는 지도를 보여주며 시작한다. 뺏벌이라는 공간에 대한 설명은 곧 시간으로 즉, 뼈다귀들의 이야기 “옛날 옛날에…….”로 전환된다. 신도시 개발과 고속도로 공사로 드러난 뺏골의 뼈다귀들에 대한 이야기, 그들의 한을 풀어 '천도' 해 주고 싶은 이야기. 이는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이고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저승사자들도 고심하는 것처럼 이름 없이 죽은 뼈다귀들을 저승명부에라도 잘 등재할 수 있도록 하고 싶은 이야기다.

 

포스터

 

기지촌 타자화에 대한 경계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는 김동령 감독의 인터뷰(씨네21, 2022-01-27)에 의하면 "기지촌에 관한 영화라기보다 기지촌을 둘러싼 담론들에 관한 영화다." "기지촌에 대한 담론을 누가, 왜, 어떻게 만들어왔느냐에 대한 관심과 비판이 영화를 만들게 했다." 그렇다면 그 담론들 중에는 김동령, 박경태 감독이 만들어낸 영화담론도 포함된다. 그들은 그 메타담론의 한 가운데 서서 영화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주제어 박인순을 재현한다. 박인순에 대한 재현에는 이름 없이 스러져간 수많은 기지촌 박인순들과 꽃분이들을 둘러싼 이야기와 한이 겹쳐있다. 이들을 위해, 이들과 함께 만든 영화는 이미 의미심장한 천도굿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 감독에게는 특정한 장르도 대본도 필요하지 않았다. 기지촌을 기웃거리고 타자화 시키는 담론이 아니라 공감하고 사랑하는 담론이 필요하다고 설득한다. 이를 위해 기지촌을 바라보는 여러 담론의 예가 등장한다. 교수와 미술작가 그리고 영화감독(자신들의 작업을 포함시키고 있는 재치와 진정성.) 영화후반부에서는 저승사자들까지도 기지촌을 둘러싼 담론으로 이야기 담론을 생산하며 이 굿판을 다채롭게 한다.

영화전반부에 등장하는 교수(변중희)와 미술작가(김아해), 그리고 감독(박경태)의 뺏벌 탐색은 다소 건조하고 삐거덕거리며 어색하다. 교수는 미군 위안부 국가배상 소송을 위한 실태조사차 박인순을 인터뷰하며 미술작가는 새로운 전시를 준비하려고 아이디어를 수집하느라 연신 셔터를 누른다. 이들은 기지촌을 둘러싼 담론생산자의 예시다. 박인순과 교수의 인터뷰는 뭔가 소통이 안 되고 박인순과 관객을 불편하게 한다. 이는 극중 인물 교수가 보여주듯이 피해자 타자화 때문일 것이다. 예컨대, 교수는 박인순에게 사인을 요청하지만 그녀는 '사인이 없다.' 집주소도 무색한 무허가 주택에서 이미 수십 년 전에 사망한 다른 이의 신분으로 사는 박인순에게 서명은 대낮에 나와 돌아다니는 귀신만큼 헛되다. 현실 속에서 공증 받지 못한 존재에 대한 사회공인절차 자체가 억압의 과정이다. 미술 작가의 기지촌 타자화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녀가 눌러대는 셔터 끝에서 기지촌은 타자화된다. 미술작가는 카메라로 사냥을 다니다가 폼페이의 시신들처럼 멈춰있는 클럽 뉴웨이브로 들어선다. 마침 적당한 사냥감을 찾았다. 벽면에서 오래된 위안부들의 사진을 뜯어가며 "다른 작가가 이곳을 발견하기 전에 빨리 작업을 시작해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이 불편한 상황을 전달하기 위해 감독은 사진을 뜯어가는 모습이 공간을 훼손시키는 것처럼 느껴지도록 연출한다. 낡은 사진 속 정지된 기지촌의 단편들은 벽에서 뛰어내려 사망하는 모습처럼 작가의 손끝에서 떨어져 나뒹굴고, 그녀의 카메라는 무덤의 도굴꾼처럼 고요하고 난폭하다. 그녀가 꽃분이 귀신과 마주치는 장면은 매우 인상 깊은 데, 쇼윈도 바깥에서 안 쪽을 향해 셔터를 눌러대는 사진작가를 보고 있던 꽃분이 귀신이 서서히 쇼윈도 쪽으로 이동하면서 영화 카메라도 트래킹 샷으로 움직이면 귀신과 작가가 쇼윈도 유리위에서 겹친다. 그림자인 듯 귀신인 듯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서 서성이던 꽃분이 귀신은 이제 무덤 밖으로 나오기 시작한다. 고속도로 공사장 굴착기 끝에서 뼈들이 튀어나온 것처럼.

 

미군 위안부 출신 박인순에 대한 사랑의 담론

교수나 작가(로 대표되는 대부분의 관객)에게는 난해한 탐구과제였을 '박인순(이 대표하는 기지촌 여성)'은 이 영화를 제작한 김동령, 박경태 감독에게는 매우 특별한 사랑의 대상이다.

 

박인순

김동령 감독은 박인순의 존재가 메타담론이라고 설명한다. 그녀는 피해자를 타자화하는 관찰자 시선에 의해 다듬어지고 훈련되지 않는 존재, 본래의 자신을 훼손시키지 않은 존재다. 그녀는 관찰자가 대상화시키기 어려운 난제라는 의미이다. 그렇기 때문에 감독은 영화를 통해 박인순의 이야기를 영화담론으로 만든 것이고, 감독의 영화 연출 작업이 그녀를 타자화 시키는 것을 방지하려는 의도로 박인순과 관객을 담론의 의미생산구조에 통합시키기 위하여 어떤 형식도 대본도 필요치 않았을 것이다. 다만 박인순이라는 존재 영화의 ‘뼈다귀’ 되었다. 박인순 내면의 뼈다귀들과 기지촌에서 죽어나간 꽃분이 뼈다귀들이 '이야기'가 된다.

"마침 바람이 해골들 사이로 불어오자 뼈다귀들이 이때다 싶어 있는 힘껏 몸을 부딪쳐 소리를 내니 마침내 이야기 하나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감독은 아주 조심스럽게 때 마침 불던 바람만큼만 ‘박인순들’에 대한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에, 열린 영화형식, 열린 이야기 구조를 통해 관객과 함께 의미를 만들자고 한다.

 

임신한 나무들의 자궁, 뺏벌

'질퍽하고 너른 벌판' 은 배나무가 많아 배벌>뱃벌>뺏벌 이라고 불렸다는데, 박인순이 기지촌에서 만난 미군을 따라 미국에 가서 아이를 낳고 살다가 학대당하고 몸을 팔며 다다른 하와이에서 문득 정신을 차리고 들었던 오직 하나의 단어도 '뺏벌'이었다. 그녀는 무작정 뺏벌로 향한다. 뺏벌이라는 공간 자체가 "질펀하고 너른" 여성의 자궁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배'벌에서는 동음이의어인 임신한 '배(자궁)'라는 의미도 보인다. 뺏벌은 다층적 자궁이다. 공익의 이름으로 사용된 국가 공공 자궁이며, 고향이라는 자궁이다.  

'뺏벌'자궁 안에 들어서면 울 밑에 선 봉선화같이 애처로운 꽃분이 묘비가 있다. 박인순이 그러하듯이 꽃분이도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다. 그러나 화면 오른쪽 모서리에 덤불속에 놓여있는 꽃분이 묘비와는 달리 화면 가득히 가로 누워 잠자는 박인순의 뒷모습은 반은 살아있고 반은 죽어있다. 몸을 추슬러 일어나서 고개를 갸우뚱하며 내다보는 시선을 따라 이어지는 다음 장면은 어두운 계곡 위 하늘배경 앞에 서 있는 저승사자를 주관적 시점 앙각으로 올려다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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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인도해주는 저승사자 덕분에 '죽어야 사는' 새 국면을 맞게 된 셈이니 적절하고 재미있는 미장센이다. 이제 영화는 본격적으로 이승과 저승, 산 자와 죽은 자, 꽃분이와 박인순, 다큐와 판타지가 혼재하는 천도굿의 여정으로 들어선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닌 세계, 안 보이는 것이 더 사실인 세계를 찾아가는 여정.

 

천 개의 강에 비친 <망자 천도굿>

박인순이 창문 너머 저승사자와 마주한 후 첫 번째 한 일은 목욕재계다. 꽃분이라는 망자들과 현재도 계속되고 있는 역사, 살아 있는 현실 문제를 고스란히 안고 사는 박인순은 영화와 함께 저승으로 향하는 천도굿을 시작하는 것이다. 박인순 항상 자신이 어떻게 죽을까 상상하거나, 자신을 괴롭힌 자들의 눈알을 파먹기 위해서 죽어서 독수리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영화라는 한 편의 천도굿에서는 이 모든 것이 가능하다. 남편의 머리를 잘라 질질 끌며 저승길에 동행한다. 남편이라는 이름의 미군보통명사는 이렇게 제물로 역전된다. 현실 일상에서 "어디든지 가는 그녀의 튼튼한 두 다리"는 '공사 중 진입금지 푯말'이 막고 서기 일쑤이나, 이 굿판 안에서는 마지막까지 꿋꿋하게 걸어갈 수 있는 힘이 있다.

"신도시 개발에 밀려 베어지거나 펜스에 갇혀 기능을 잃을 위기에 처한 당산나무"처럼 임신한 배나무들을 위한 이 천도굿이 "현실에서 제 기능을 하기를" 응원한다. 다큐와 판타지를 넘나드는 열린 형식과 이 굿판에 기꺼이 열린 마음으로 동참한 배우들, 감독, 관객이 함께 벌인 천도굿이 천개의 강에 비춘 천 개의 의미가 되는 것을 함께 지켜보는 또 한 개의 강줄기로.

 

 

글·김 경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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