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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의 문화톡톡] 홍대용과 과학의 달
[김정희의 문화톡톡] 홍대용과 과학의 달
  • 김정희(문화평론가)
  • 승인 2022.04.18 08: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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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라이더 만들기
글라이더 만들기  사진 김정희

 

고무동력기와 글라이더의 추억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면 무심코 지나쳤던 일상들이 새롭게 다가온다.

학부모들에게 4월은 과학의 달이다.

학교에서 실시하는 과학의 달 행사에는 과학 상상화 그리기, 과학을 주제로 한 글쓰기, 과학 독후감 쓰기, 물로켓 대회, 발명품 경진대회 그리고 고무동력기와 글라이더 날리기 대회가 있었다. 고무동력기와 글라이더는 ‘날리기 대회’였으므로 재료를 구입하여 만들어 가기도 했다.

아이 혼자서 만드는 것이 쉽지는 않아 학부모들에게는 부담스러운 행사였다. 이제는 코로나로 하여 그런 행사를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한다.

 

다윈, 에디슨 말고 우리의 과학자

과학의 날은 매년 4월 21일로, 일제강점기 때 다윈의 기일을 전후하여 ‘과학데이’를 정했던 데서 유래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자들은 대체로 서양 사람들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장영실 말고도 알려지지 않았을 뿐 많은 과학자가 있었다. 그들 중 2001년 별의 이름이 된 홍대용의 흔적을 따라가 보기로 한다.

 

홍대용 초상화  실학박물관 홍대용이 연경에서 우정을 맺은 엄 성(1732~1767)이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홍대용 초상화 실학박물관  사진 김정희
홍대용이 연경에서 우정을 맺은 엄 성(1732~1767)이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행성 홍대용

2001년 9월25일 한국천문연구원 보현산천문대 1.8m 광학망원경을 이용하여 발견된 소행성 94400에게 홍대용이란 이름이 주어졌다. ‘새로운 우주관을 제시한 조선 후기 과학사상가’로 전통적 우주관을 극복, 지전설과 무한우주의 개념을 제시했고, 다양한 천문의기를 제작하여 활용했다는 홍대용의 업적 때문이라고 한다.

 

홍대용 집터
홍대용 집터  사진 김정희

홍대용은 1731년(영조 7)에 태어났다. 자는 덕보, 호는 홍지, 당호는 담헌이다.

 

천안홍대용과학관
천안홍대용과학관  홍대용집터 바로 옆에 있다.  사진 김정희

 

석실서원

홍대용은 12세(1742년 영조18)에 석실서원에 들어가 35세까지 23년간 미호 김원행(1702~1772) 을 스승으로 모시고 공부를 한다. 홍대용은 어릴 때부터 과거 공부보다는 학문에 뜻을 두고 천문학, 수학, 역산학, 음악, 병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공부를 했는데 경학(유교 경전에 대한 공부)에서도 뛰어났다고 한다.

 

석실서원터 (조말생묘 남양주시 수석동) 석실서원은 김상용과 김상헌의 충절과 학덕을 추모하기 위해 설립된 서원이다. 서인 노론계의 학자와 관리들을 다수 배출하였다. 이후 서원철폐령(1868년 고종5)에 따라 없어지게 되었다. 지금은 석실서원터에 조선 초기 문신인 조말생(1370~1447)의 묘가 있다. 원래 조말생의 묘가 있던 곳에 고종과 명성황후의 능인 홍릉이 들어서면서 이곳으로 이장하게 되었다.현재 석실서원의 자취는 석실마을이란 이름과 표지석뿐인데 그마저도 주택들이 지어지는 공사가 진행되며 접근할 수가 없게 되었다. 겸재 정선의 미호 그림에 당시 석실서원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다.
석실서원터 (조말생묘 남양주시 수석동)  사진 김정희
석실서원은 김상용과 김상헌의 충절과 학덕을 추모하기 위해 설립된 서원이다.
서인 노론계의 학자와 관리들을 다수 배출하였다. 이후 서원철폐령(1868년 고종5)에 따라 없어지게 되었다. 지금은 석실서원터에 조선 초기 문신인 조말생(1370~1447)의 묘가 있다. 원래 조말생의 묘가 있던 곳에 고종과 명성황후의 능인 홍릉이 들어서면서 이곳으로 이장하게 되었다. 현재 석실서원의 자취는 석실마을이란 이름과 표지석뿐인데 그마저도 주택들이 지어지는 공사가 진행되며 접근할 수가 없게 되었다.
겸재 정선의 미호 그림에 당시 석실서원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다.

농수각

32세 1762년(영조 38)에 아버지가 나주 목사로 부임하자 따라가서 호남의 실학자 나경적을 만나 혼천의와 후종(자명종)을 제작하였다. 홍대용은 집 남쪽 연못 한가운데에 작은 천문대를 만들어 이것들을 보관하였다. 이 천문대는 두보의 시 중에서 “해와 달은 조롱 속의 새요, 하늘과 땅은 물 위의 부평초”라는 부분에서 한 글자씩을 따서 농수각이라 하였다. 농수각 연못의 크기가 얼마였는지, 홍대용이 실제로 천문관측을 하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지만 사설 천문대를 만들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현재 농수각은 남아있지 않아서 천안 홍대용과학관에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이 마련되어 있다.
현재 농수각은 남아있지 않아서 천안 홍대용과학관에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이 마련되어 있다. 사진 김정희

연경에 가다

35세였던 1765년(영조41) 작은 아버지를 따라 연경을 여행하고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홍대용은 남천주당(1605년 마테오리치가 세운 중국의 첫 번째 성당)을 찾아가 자명종과 망원경을 구경하였고, 파이프오르간을 자세히 관찰하고 연주하여 옆에 있던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고 한다. 이어 청나라의 관상대를 방문하였는데 6의 즉, 천체의, 적도의, 황도의, 지평경의, 지평위의, 기한의 등이 있었다고 한다.

 

천리경 망원경. 당시에는 천 리 밖을 훤히 볼 수 있다 해서 천리경이라 부름.  숭실대기독교박물관
천리경 (망원경) 당시에는 천 리 밖을 훤히 볼 수 있다 해서 천리경이라 부름.
숭실대기독교박물관   사진 김정희

 

자명종 중국에서 활동하던 천주교 신부들이 만든 시계로 중국에 간 사신이 가져왔음. 숭실대 기독교박물관
자명종
중국에서 활동하던 천주교 신부들이 만든 시계로 중국에 간 사신이 가져왔음.
숭실대 기독교박물관  사진 김정희

 

의산문답

42세 1772년(영조48)에 <의산문답>과 수학책인 <주해수용>을 완성한 것으로 추정한다.

의산문답은 가상인물인 조선의 선비 허자(虛子)가 의무려산에 숨어 사는 실옹(實翁)을 찾아가 대화를 한다는 설정이다. 대화의 내용은 주로 천문, 지리, 천체운행, 지구자전설, 우주무한론등 과학에 대한 것이다.

홍대용은 ‘천지간 생물 중에 사람이 귀하다’는 허자에 대하여 실옹을 통해 ‘초목(식물), 금수(동물), 사람이 동등 하다’고 말하고 있다. 사람과 동물에 이어 식물까지도 동등하다고 하는 주장은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환경오염과 기후 문제의 원인을 생각해볼 때 문제해결의 단초를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홍대용은 땅은 둥글고, 지구는 스스로 돌고 있다는 지구자전설과 우주무한론을 주장한다. 이어서 화이일(華夷一)이라고 한다. 중국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모든 주체를 평등하게 보는 것이다. 역외춘추, 공자가 우리나라 사람이었다면 분명히 우리나라의 역사를 썼을 것이라고 하는 실옹 즉, 홍대용의 생각은 당시로서는 가히 혁명적이라 할 수 있다.

“사람으로서 물(物)을 보면 사람이 귀하고 물이 천하지만 물로써 사람을 보면 물이 귀하고 사람이 천하다. 하늘이 보면 사람이나 물이 마찬가지다.”

“월식을 보고도 땅이 둥근 줄을 모른다면 이것은 거울로 자기 얼굴을 비추면서 그 얼굴을 분별하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어리석지 않으냐?”

“대저 땅덩이는 하루 동안에 한 바퀴를 도는데, 땅 둘레는 9만 리이고 하루 시간은 12시간이다. 9만 리 넓은 둘레를 12시간에 도니, 번개나 포탄보다도 더 빠른 셈이다.”

“은하란 여러 세계를 묶은 한 세계로, 해와 지구 등의 세계도 그 중의 하나일 뿐, 이 은하는 하늘에 한 큰 세계이다. 그러나 지구에서 볼 때 이와 같을 뿐, 지구에서 보이는 외에도 은하 세계와 같은 것은 몇천 몇만 몇억이나 되는 줄을 알 수 없으니”

“공자가 바다에 떠서 구이(九夷)로 들어와 살았다면 중국법을 써서 구이의 풍속을 변화시키고 주나라 도를 역외(域外)에 일으켰을 것이다. 그런즉 안과 밖이라는 구별과 높이고 물리치는 의리가 스스로 딴 역외 춘추(域外春秋)가 있었을 것이다.”

 

주해수용 숭실대기독교박물관 홍대용이 지은 수학책으로 각 단위 사이의 관계와 비례상수 및 면적‧ 체적에 관한 공식들이 실려 있다. 각 산법, 예컨대 상제법‧ 귀제법 등의 항목에는 예제가 주어져 있고, 그 예제의 풀이가 적혀 있어서 처음으로 공부하는 사람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주해수용
숭실대기독교박물관
홍대용이 지은 수학책으로 각 단위 사이의 관계와 비례상수 및 면적‧ 체적에 관한
공식들이 실려 있다. 각 산법, 예컨대 상제법‧ 귀제법 등의 항목에는 예제가 주어져 있고, 그 예제의 풀이가 적혀 있어서 처음으로 공부하는 사람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사진 김정희

 

홍덕보 묘지명 박지원

홍대용은 53세인 1783년(정조7)갑자기 중풍에 걸려 고향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홍대용의 묘지명은 지기(知己)이던 연암 박지원이 지었다.

“아! 슬프다. 덕보는 통달하고 민첩하며, 겸손하고 아담하며, 식견이 원대하고 이해가 정미하며 더욱 율력(律曆)에 장기가 있어 혼의(渾儀) 같은 여러 기구를 만들었으며, 사려(思慮)가 깊고 골독(汨篤, 한 가지 일에 정신을 씀)하여, 남다른 독창적인 기지가 있었도다. 서양 사람이 처음 지구에 대하여 논할 때 지구가 돈다는 것을 말하지 못했는데, 덕보는 일찍이 지구가 한 번 돌면 하루가 된다고 하여 그 학설이 묘미하고 현오(玄奧)하였다. 다만 저서에까지는 이르지 못했으나 그 만년에 있어서는 더욱 지구가 돈다는 것에 대해 자신을 가졌으며, 이에 대하여 조금도 의심이 없었다. 세상에서 덕보를 흠모하는 사람들은, 그가 일찍이 스스로 과거할 것을 그만두고 명리에 뜻을 끊고서 한가히 앉아 명향을 태우고 거문고와 비파를 두드리면서 ‘나는 장차 아무 욕심 없이 고요히 자희의 태도로 마음을 세속 밖에 놀게 하겠노라’하는 것만 보았을 것이다. 그들은 덕보가 서물을 종합 정리하고 체계 있게 분석하였으므로, 방부를 맡고 멀리 떨어진 곳에 사신 갈 만하며, 통어의 기략이 있었다는 것은 모른다.”

여기에서 다루지 않았지만 홍대용의 학문과 관심은 너무도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기에 간단하게 정리하기 어렵다. 그래서 ‘새로운 우주관을 제시한 조선 후기 과학사상가’라고만 말하기에는 뭔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 과학관을 가거나 과학에 대해 얘기하게 될 때 우리나라에도 훌륭한 과학자들이 있었고, 그 중에서도 홍대용 선생은 자신의 집에 천문대를 만들었던 멋진 분이라고 말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학문에 뜻을 두고 다양한 공부를 했던 분이라고 덧붙였을 때 아이가 즐거워하는 세상이 온다면 정말 좋겠다.

 

홍대용 묘소
홍대용 묘소     사진 김정희

 

홍대용에 대해서는 이런 곳을 가면 좋을 것 같아요!

1. [충남 천안시]

천안홍대용과학관 -> 홍대용 집터 -> 홍대용 묘소 *근처에 유관순 생가가 있으니 같이 둘러보면 좋아요.

2. [경기도 남양주시]

1) 실학박물관

*정약용 유적지가 바로 앞에 있어요.:정약용유적지--> 마재성지-->생태공원 둘러보기를 추천해요.

2) 조말생묘: 찾기가 쉽지 않아서 아이와 함께 가는 것은 추천하고 싶지 않아요.)

3. [서울]

숭실대 기독교 박물관

: 실학 관련 내용 외에도 고고미술실에 청동검 거푸집 등 만나보기 어려운 유물들이 있어요.

어린이용 자료집도 기대 이상이에요.

 

 

글•김정희(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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