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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희의 시네마 크리티크] 4·19에 꼭 봐야 할 영화<효자동 이발사>
[서성희의 시네마 크리티크] 4·19에 꼭 봐야 할 영화<효자동 이발사>
  • 서성희(영화평론가)
  • 승인 2022.04.19 10: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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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 이념을 계승하고,···

- 대한민국 헌법 전문

 

4월 19일 이맘때면 늘 다시 찾아보는 영화가 있다. 바로 <효자동 이발사>다. 이날은 우리나라 최초로 학생과 시민이 중심이 되어 독재에 저항한 4·19혁명 기념일이다. <효자동 이발사>는 바로 이 시대를 소재로 삼은 임찬상 감독의 2004년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는 송강호 배우의 젊은 시절도 볼 수 있다. 놀랄 만큼 연기력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좋다. 소심하고 때론 엉뚱하고, 그러면서도 짠하고 따뜻한 아버지로 나온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울분과 설움을 삼키는 아버지이자, 모진 세월동안 대통령의 머리를 깎았던 이발사 성한모를 송강호 배우가 아니면 누가 그렇게 완벽하게 소화할 수 있을까. 그에겐 역사의 중압감을 덜어내고 인간의 무게를 늘리는 신기한 재주가 있다.

 

1954년 사사오입 개헌

영화는 청와대가 ‘경무대’로 불리던 1950년대 자유당 정권 시대부터 시작한다. 경무대가 위치한 동네에 효자 이발관을 운영하는 성한모는 깍쇠, 두부 한 모라고 놀림을 받아도 얼굴 한 번 붉힌 적 없는 착하고 평범한 인물이다. 그런데 면도사 겸 보조였던 김민자(문소리)를 유혹해 덜컥 아이를 갖게 하고, 게다가 임신 5개월이면 사사오입 원칙에 따라 무조건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설득하는 때론 대책 없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 개인사는 1954년 사사오입 개헌을 빗대어 코미디 같은 상황을 펼친다. 원래 136표가 되어야 가결인데 135표가 나왔고, 끝자리가 5면 반올림할 수 있다는 황당한 논리를 펼쳐서 결국 정족수 미달의 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한모도 이 논리를 적용해 아이도 낳고, 결혼도 한다.

 

이 얘기만 들어도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을 짐작하게 될 텐데, 정치 상황을 패러디하고 현실을 희화하면서 이야기를 웃을 수도 울 수도 없게 끌고 간다. 또 이런 비슷한 설정이, 1960년 3월 15일, 지금은 3·15부정 선거로 잘 알려진 장면에서도 나온다. 한모는 나라를 위해 이 부정선거에도 가담한다. 개표 요원으로 참여해 야당 표를 몰래 삼켜버리거나 아예 통째로 야산에 묻어버린다. 한모는 그저 권력자가 무슨 일을 하든 나라를 위한 일이라고, 나라가 하는 일은 무조건 옳은 일이라고 믿었다.

 

1960년 4·19혁명

그런데 한모에게 그렇게 옳기만 했던 국가가 시민혁명이라는 역사의 큰 전환점을 맞게 된다. 1960년 4월 19일, 바로 4·19를 맞이하게 된다. 또 이날 한모의 아들 낙안이가 태어난다. 아내의 진통이 시작돼 병원에 가야 하는데, 거리는 온통 시민들로 가득하다. 큰 부귀영화는 못 누려도 평생 편안하게 산다는 이름을 받은 낙안이는 사사오입으로 운명이 결정되더니, 4·19현장에서 태어난다.

 

낙안(이재응)이는 이름처럼 그렇게 별 탈 없이 클 수 있을까 싶을 만큼 격변기 속에서 태어난다. 걱정과는 달리 낙안이는 무럭무럭 잘 자라서 초등학생이 되는데, 어느 날 효자동 이발소로 낯선 남자가 찾아온다. 알고 보니 대통령 경호 실장이었는데, 그가 뜬금없이 흘리고 간 간첩에 대한 정보로 한모는 어쩌다 보니 간첩 잡은 모범 시민이 된다. 그리고 청와대에 초청이 돼 청와대 이발사가 되는 행운까지 누린다.

 

한모 인생은 이제 탄탄대로만 열리는 건가 했지만, 대통령의 이발사는 결코 쉬운 자리가 아니다. 대통령의 얼굴에 감히 흠집이라도 내면 그날로 끝이고, 권력 2인자 자리를 두고 경호실장과 중앙정보부장은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는 살얼음판이다. 하지만 한모는 그래도 국가밖에 모른다. 국가를 위해 충성을 다하고, 국가가 하는 일이면 무조건 옳다고 믿었다. 마루구스 병이 유행하기 전까지는.

 

1968년 1·21사태

이 마루구스 병은 성한모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된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인 청와대 뒤 북악산에 간첩이 침투한다. 그런데 침투 작전 중에 무장 공비들이 설사를 해 지체가 되고, 그 틈에 발각이 된다. 이 사건으로 정부는 간첩들의 설사가 전염병 때문이라고 발표하고 설사를 하는 사람을 간첩과 접촉한 것으로 규정하고 잡아들이기 시작한다. 문제는 낙안이도 설사를 시작한다.

 

일단 자신이 청와대 이발사고, 신고해야 한다니까 아들이지만 순수한 마음으로 신고한다. 죄를 짓지 않았으니까 당연히 문제가 없을 거라는 순진한 생각을 한 거다. 애들 다툼에 권총을 꺼내드는 무소불위의 권력 지근거리에서 “죄 없는 사람 절대 안 잡아가는 민주국가”임을 철썩 같이 믿었던 그는 국가가 하는 일은 모두 옳기 때문에 죄가 없으니 당연히 바로 풀려날 거라 생각해 국가 권력기관인 동네 파출소에 아들을 잠시 맡겼는데, 결국 낙안이는 간첩 사범으로 중앙정보부 고문실까지 끌려가게 된다.

4·19에 낳은 낙안이가 전기고문으로 반신불수가 되는 이 전개는 사실, 당시의 시대 상황을 성한모라는 인물과 그 가족을 통해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영화는 시대를 풍자한 블랙 코미디이다. 임찬상 감독은 연출의 변에서 말한다.

 

“60∼70년대라는 격동의 시대를 살아낸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아버지를 떠올렸다…. 이 영화는 그 사람의 시선에서 세월과 역사의 흐름을 보려 한다.”

 

사실 성한모 입장에서 본다면, 청와대, 당시 경무대가 있던 지역주민으로서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했을 뿐이다. 아들까지 신고할 정도로 국가를 믿었다. 너무 순진했고, 너무 몰랐기 때문에 그는 피해자이면서도 피해자일 수만은 없다. 불의의 시대를 살면서 옳고 그름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것, 부패한 권력의 주문을 적극적으로 이행했던 건 나중에 후회와 분노로 자기 머리카락을 잘라내는 그것만으론 씻어낼 수 없었다.

 

4·19혁명의 상징이자 민주주의의 상징이었던 낙안이는 오랜 시간, 걸을 수 없었고, 그 시간 동안 아버지 한모는 병을 고치기 위해 고통스러운 속죄의 여정을 떠난다. 그리고 한모는 어리석었던 시대를 떠나보내는 배설 의식을 치루고 나서야 절대 권력 앞에서도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자가 된다.

 

정권이 바뀌고 다시 청와대 이발사로 추천된 한모가 절대 권력 앞에서 말한다. “각하, 머리가 다 자라면 다시 오겠습니다.” 그 말을 하고 흠씬 두들겨 맞지만, 한모는 그제야 편하게 웃는다. ‘마음만은 편했다’고 하면서. 영화는 이발사로 살아온 소시민 아버지와 아들이 어떻게 그 시기를 극복했는지에 대한 과정을 속에 국가 권력은 남용되어서는 안 되며, 어떤 경우에도 개인의 인권이 존중돼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아낸다.

<효자동 이발사>는 국가 권력이 국민을 주권자가 아닌 국가 운영의 노동력 수준으로 이해하던 슬픈 시절을 배경으로 하는 무거운 주제지만 무겁지 않게, 슬프지만 또 따뜻하게 풀어내고 있다. 그래서 영화는 절망의 시대를 참고 살았던 아버지 세대에게 바치는 속 깊은 아들의 헌시처럼 느껴진다.

 

 

글·서성희
영화평론가·화학박사. 대구경북영화영상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으로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 대표,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센터장으로 영화·영상 생태계를 살리는 일에 동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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