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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숙의 문화톡톡] <미싱타는 여자들> ― 배움과 실천의 ‘무위의 공동체’를 위한 처절한 투쟁
[서곡숙의 문화톡톡] <미싱타는 여자들> ― 배움과 실천의 ‘무위의 공동체’를 위한 처절한 투쟁
  • 서곡숙(문화평론가)
  • 승인 2022.05.09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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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싱타는 여자들>: 전태일의 누이들
 

<미싱타는 여자들>(이혁래·김정영, 2020)은 1970년대 가난과 여자라는 이유로 평화시장에서 미싱을 타는 시다의 삶을 그리고 있다. 이 영화는 청계피복노동조합 여성 노동자들이 노동교실을 통해 희망을 키우는 과정, 정치적 억압에 맞서는 과정을 보여준다. 특히 1977년 9월 9일 점거농성 사건으로 특수공무방해, 폭력행위등처벌위반혐의, 건조물방화미수라는 죄목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은 세 인물, 즉 이숙희, 신순애, 임미경을 중심으로 앎·삶·꿈의 공간인 노동교실을 목숨을 걸고 지키는 과정을 보여준다.


2. 1975년 2월 8일 노동교실 폐문 부당 항의농성: 노동교실의 배움과 노동자의 권리 자각
 

<미싱타는 여자들>의 전반부는 1975년 노동교실 폐문 부당 항의농성을 통해 노동교실의 배움과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자각을 보여준다. 1973년 평화시장 여공들은 육영수 여사와의 만남 자리에서 노동교실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하여 노동교실이 개관하지만, 붉은 글씨 등 사상이 불온하다는 이유로 바로 폐쇄 조치가 결정된다. 여공들은 2년 정도 항의 편지를 쓰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자, 1975년 2월 8일 평화시장 여공들 200명이 ‘노동교실 폐문 부당’을 주장하며 문을 닫고 항의 농성을 하여 승리한다. 1975년 4월 30일 이관식을 하고 6월 26일 대의원 회의를 하며, 청계피복노조소식 제4호에 ‘일하면서 배우는 중등교실 수강생들’에 대한 소식이 실린다.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이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며 분신자살을 하지만, 이숙희는 깡패 운동하던 사람이 폐병에 걸려서 죽었다는 공장 사장의 말을 전해 듣는다. 1971년 11월 모란공원에서 열린 전태일 1주기 추도식에 가면 빵과 우유를 준다는 말에 참석하여 전태일이 왜 죽었는지 알게 되면서 노동조합에 가입하게 된다. 이숙희는 ‘노동교실 폐문 부당’ 항의 농성에서 책임 노조원이 오지 않자 직접 나서게 되며, 1시부터 7시까지 구호를 외치며 200명의 여공들이 참여하는 농성을 주도하였으며, 처음 싸움에서 승리하여 자신감을 얻게 된다.

신순애는 13살 때 “시다 해 봤니?”라는 질문에 거짓말을 하고 취직을 하지만, 3분 만에 밥을 먹고 계속 미싱 일을 해서 머리카락이 한 웅큼씩 빠질 정도로 몸 상태가 안 좋아진다. 노동교실이 개관하면서 중등과정 무료 교실이 열리면서 종이 칸에 ‘○번 시다’가 아니라 ‘신순애’라는 자신의 이름을 처음으로 써보게 된다. 이후 선생님의 가르침으로 배움의 기쁨을 느끼게 되면서 모범상을 받게 되고, 조합원의 밥을 담당하며 노조를 하면서 돈을 아끼지 않는 봉사와 책임의 삶을 실천하게 된다.

임미경은 13살 때 여자라서 공부를 하면 안 된다며 중학교를 보내주지 않아서 평화시장 여공으로 일하게 되었다. 교복 입은 학생을 부러워하며 나이가 어린 데도 학생이 아니라는 이유로 일반인과 똑같은 버스 요금을 내는 등 현실의 부당함을 느끼게 된다. 과거 경찰서에 가서도 잘못 한 일이 없다며 당당하고 강한 모습을 보였던 그녀이지만, 현재 전적이 화려한 과거를 자신을 아는 사람에게 알리는 것 때문에 다큐멘터리 출연을 망설이게 된다. 딸이 “사람들은 남의 일에 관심이 없어요. 후회 없이 하세요.”라는 말에 용기를 내어 아픈 기억을 끄집어내게 된다.

‘노동교실 폐문 부당’ 항의 농성과 승리의 결과 쟁취한 노동교실을 통해서 이숙희는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된 기쁨을 느끼고, 신순애는 지식의 배움과 노조 책임의 기쁨을 느끼고, 임미경은 노동자의 권리를 알게 된 기쁨을 느낀다. 사실상 노동교실은 계급 차별의 현실, 남녀 차별의 현실, 가부장제의 현실의 모순을 드러내며, 어린 여성 노동자에게 최소한의 배울 권리, 노동자의 권리, 친교의 권리를 깨닫게 해준 공간인 것이다.
 

3. 1977년 9월 9일 점거농성: 열악한 노동현실과 목숨을 건 노동교실 지키기
 

<미싱타는 여자들>의 중반부에서 1977년 9월 9일 노동교실 점거농성은 열악한 노동현실에서 목숨을 걸고 최소한의 배울 권리, 노동자의 권리, 친교의 권리를 지키고자 하는 노동자의 투쟁을 보여준다. 이소선 어머니가 법정모독죄로 구속되어 여성 노동자들이 구치소로 함께 가서 구치소에 갇힌 어머니를 격려하며 시위를 벌인다. 1977년 건물주가 9월 10일을 기한으로 배움의 장소인 노동교실을 폐쇄한다는 내용 증명을 보내고, 전경이 노동교실 앞을 지키고 봉쇄하게 된다.

이숙희는 간부를 지키기 위해 비공식적으로 점거노성을 시작하였으며, 구속될 각오를 하고 노동조합 교육선전부장으로서 점거농성을 이끈다. 이숙희는 폐쇄 하루 전날인 9월 9일 원래 농성하기로 한 책임 노조원이 오지 않자, 혼자 노동교실로 들어가서 농성에 대비해 사전 준비를 하고, 임미경 등 어린 여공이 합세하게 되면서 농성을 시작하게 된다. 청계피복노동조합 신광용이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죽을 것이라며 몸에 휘발유를 붓고 깨진 유리로 자신의 배와 손목을 그으며 저항한다. 임미경과 전순옥은 구치소에 갇힌 어머니를 데려오지 않으면 투신해서 떨어져 죽겠다며 저항한다. 이숙희는 불을 질러 경찰을 막으려는 노조원을 설득해 불을 끄는 한편, 제2의 전태일이 되어야겠다며 떨어지려는 임미경을 구하기 위해 애를 쓴다.

 

신순애는 공장 일이 8시에 끝내는 것이 아니라 항상 사장이 끝내는 시간에 끝냈으며, 일만 하고 월급 타서 가족들 챙기는 것에 올인을 다한다. 임미경은 15일 동안 타이밍을 먹고 밤일을 해서 남산에 가서 잠을 자려고 나가다가 들켜서 더 열심히 하겠다고 빈다. 그녀는 ‘잠 좀 잔 게 그게 그렇게 잘못한 것일까?’, ‘15일 밤일보다 어떻게 더 열심히 해준다는 것일까?’라며 과거를 회상하며 울먹인다. 나중에 노동조합을 알게 되면서 ‘우리 노동자는 살려고 일하자. 우리 죽고 사장은 사는 식으로 일하지는 않겠다.’라고 결심하게 된다.

노동교실은 잠을 못 자서 미싱 바늘에 손을 박고 다리미에 손을 데이는 열악한 노동 현실에서 자신의 월급은 모두 가족에게 바치면서 삶의 모든 권리를 빼앗긴 어린 여공들에게 유일한 탈출구의 역할을 한다. 공권력은 노동조합을 빨갱이들이 하는 짓이고 노동조합이 운영하는 노동교실을 빨갱이 양성소라고 인식해 노동교실을 폐쇄한다. 사실상 1977년 9월 9일 노동교실 점거 농성은 어린 여성 노동자들의 유일한 삶의 공간이자 앎의 공간을 박탈하는 것에 대한 처절한 저항인 것이다. 이러한 투쟁의 현장에서도 여성 노동자들은 자신들보다 간부들을 배려하고, 오지 않는 노조 책임자 대신 농성을 주도하면서, 더 많은 책임과 희생의 삶을 살아간다.
 

4. 1977-1979년 구치소에서 감옥으로: 여성 노조원들의 격렬한 싸움과 억압적인 현실에 저항
 

<미싱타는 여자들>의 후반부는 구치소와 감옥으로 끌려가는 과정을 통해 여성 노조원들의 격렬한 싸움과 억압적인 현실에 대한 저항을 보여준다. 노동자들은 9월 9일 점거 농성에서 노동교실 되찾기와 어머니 석방하기를 요구하였고, 경찰이 두 가지 요구조건을 들어주기로 하였다는 지부장의 말을 듣고 농성을 풀었지만, 요구 조건을 들어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체포, 폭행, 투옥을 당하게 된다.

노동교실은 피곤하고 배고파도 찾아가고 억울한 소리를 할 수 있고 권리를 찾을 수 있으며, 밤새도록 일하고 한 달에 하루도 안 쉬는 삶에서 유일하게 벗어날 수 있으며, 대한민국에서 가장 힘없고 가난하지만 근로기준법이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노동자들에게 삶의 소중한 부분이었다.

점거 농성에서 여성 노조원들이 격렬하게 싸웠다는 점에서 제2의 전태일은 여성이었다. 결국 피를 흘리는 노동자 동료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점거 농성을 철수하게 된다. 법정에서 판사가 김일성을 아버지라고 부르거나 이소선을 어머니로 부르며 북한의 기념일인 9월 9일에 점거 농성을 벌인 죄목에 대해서 질문한다. 변론 기회에서 이숙희는 ‘친구 어머니를 아주머니로 부르느냐?’라며 반문하고, 신순애는 ‘존경하는 판사님이 밝혀줄 줄 알았는데 너무 억울하다’며 쓰러지고, 임미경은 ‘8시간 일하고 8시간 휴식하고 8시간 자라고 적혀 있는데 왜 그렇게 안 해 주느냐?’, ‘뭐를 잘못 했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한다.

 

점거 농성 이후 이숙희는 경찰에게 심하게 폭행당해서 두려움에 떨던 어린 여공들의 상처를 잘 감싸주지 못한 점을 후회하며, 현재 동창들보다 고향 친구들보다 친했던 그때 그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 한다. 신순애는 경찰에게 빨갱이 새끼라며 폭행당해 왼쪽 귀를 다치게 되며, 경찰서에서 여공들과 학생들에 대한 차별에 분노한다. 임미경은 만 14살이어서 소년원에 보내야 하는데 주민번호를 위조해서 감옥에 갇히게 되고, ‘저렇게 어린애들이 왜 잡혀 왔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이러면 안 되는데. 내보내야 하는데.’라는 형사들의 말을 들으며 지시에 복종해야 하는 그 사정을 알게 된다. 그리고 감옥소에서 동료가 넣어준 책 『천국의 열쇠』 사이사이에 적힌 최현배 선생님의 격려 글에 감동하며, 감옥의 조그만 구멍 사이에 보이는 한겨울의 별, 달, 눈을 보며 힘을 내고, 자신 때문이라고 진술한 친구들이 가슴 아파할까봐 염려한다.

점거 농성 이후 구치소, 법정, 감옥으로 끌려간 이숙희, 신순애, 임미경은 자신보다 더 상처 입었을 어린 여공들을 걱정하고, 노동자를 차별하는 현실에 대해서 분노하고, 자신들의 탓이라고 진술하여 양심의 가책을 느낄 친구들을 염려한다. 세 사람의 걱정, 분노, 염려는 당시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공권력, 빨갱이 노이로제의 정권, 열악한 노동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5. 앎·삶·꿈의 노동교실: 제2의 전태일과 끝나지 않는 울림
 

<미싱타는 여자들>은 열악한 노동 환경 속에서 권리, 해방, 소통의 공간인 노동교실 폐쇄에 대해서 격렬하게 저항하며 앎, 삶, 꿈의 노동교실을 지켜내려는 제2의 전태일 혹은 전태일의 누이들을 그려낸다. 두 번의 농성에서 모두 원래 주동하기로 한 노조 책임자는 오지 않고 여자 노동자가 대신 주도적으로 농성을 치러낸다. 이 영화는 1970년대 눈부신 경제개발 뒤편에서 하루 3분 밥 먹는 시간 외에는 종일 노동해야 하는, 15일간 밤일에 시달리면서 자지 못하는, 한 달에 하루도 쉬지 못하는 열악한 노동 현실을 드러낸다. 초등학교 의무교육이 끝나고 중학교에 가지 못하고 13살부터 평화시장 여공으로 일하면서 자신의 월급을 가족에게 모두 줘야 하는 눈물겨운 희생이 있다.
 

노동교실은 노동 환경과 노동자 권리에 대한 자각의 공간이자 배움의 장소이며, 취미생활, 동호회 활동, 교우관계 등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채워줄 수 없는 것을 충족시켜 주는 공간이다. 이런 점에서 노동교실의 폐쇄는 어린 노동자들의 최소한의 권리와 자유를 박탈한다는 점에서 격렬한 저항으로 맞설 수밖에 없는 탄압이라고 할 수 있다. 제2의 전태일 혹은 전태일의 누이들은 전태일 열사의 분신자살로 노동현실에 대해 자각하여 노동조합에 가입하게 되고, 노동교실을 중심으로 두 차례의 농성을 벌이고, 체포되어 경찰서, 구치소, 감옥으로 끌려가게 된다.
 

<미싱타는 여자들>에서 전반부는 강렬한 기억의 순간을 화가의 그림으로 재현하고, 중반부는 과거 힘겨운 현실과 현재 회고의 순간을 교차하고, 후반부는 농성 장소에 가서 함께 노래를 부르고 과거의 자신에게 말을 건넨다. 첫 장면에서 이숙희, 신순애, 임미경은 풍경 좋은 언덕 위에 있는 미싱 기계에 앉아 미싱을 타며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는 일하기도 좋았을 것이라고 웃으며 말한다. 사실상 이러한 장면은 과거 세 사람이 겪었던 현실을 무게를 가볍게 희석시키는 작위적인 설정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하지만 전반부에서 현재의 세 사람이 언덕 위에서 웃으면서 미싱을 타고, 화가와 인터뷰를 하고, 옛날 사진을 보고, 경포대에 가서 과거 여행을 회상하는 행복한 여정은 이후 중반부·후반부에서 과거의 열악한 노동현실과 점거농성 이후 폭행·구속 사건에서의 참혹함과 대비를 이루면서 그들이 겪은 현실에 대해서 더 절망과 분노를 느끼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미싱타는 여자들>은 어린 여공들을 중심으로 배움과 실천의 ‘무위의 공동체’를 위한 처절한 투쟁을 통해 끝나지 않는 울림을 보여준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글 · 서곡숙
문화평론가, 영화평론가, 영화학박사. 청주대학교 연극영화학부 조교수로 있으면서,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총무이사, 『크리티크 M』 편집위원장, 한국영화교육학회 부회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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