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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 없는 버스, 취약계층 없는 버스?
현금 없는 버스, 취약계층 없는 버스?
  • 바람저널리스트(정민주)
  • 승인 2022.06.26 12: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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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 없는 버스 사진

 

지난 30일 낮 서울 마포구에서 7611번 버스를 탄 노인 A 씨는 손에 쥐고 있던 현금을 낼 요금통이 없어 당황했다. 신호가 파란불로 바뀌었지만, 자신이 요금을 내지 않아 버스가 멈춰 있자 A 씨는 어찌할 줄을 몰랐다. 버스 기사가 카드로만 요금을 낼 수 있다고 설명했지만 A 씨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서울시는 지난해 10월 8개의 노선, 171대를 시작으로 올해 1월 1일부터 18개의 노선의 버스 418대에 현금 없는 버스를 시범 운영 중이다. 서울시는 교통카드를 사용하면 요금할인과 환승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또한 현금을 통한 코로나19 감염을 방지하고 잔돈을 거슬러줘야 하는 등의 운전 방해 요소를 제거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국은행이 조사한 ‘2021년 지급수단 및 모바일금융 서비스 이용행태’에 따르면 70대 이상의 최근 1개월 내 신용카드 이용률은 57.3%에 불과했지만 현금 이용률은 98.8%였다. 또한 70대 이상의 87%가 향후 현금 사용량에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답변한 점을 고려할 때 여전히 A 씨와 같은 사례가 반복되고 있는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서울시에 이어 인천시와 대전시에서도 순차적으로 현금 없는 버스의 운행이 늘어나고 있다.

교통카드를 잘 사용하지 않는 고령층 대부분은 버스에서 다시 내려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다음 버스를 탈 수 있을지 또한 미지수이다. 가까운 편의점에서 교통카드를 구입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더더욱 대책이 없다. 목적지까지 가는 다른 버스가 존재하고, 그 버스에 요금통이 있기만을 바라야 하는 현실이다.

이는 당연히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현금 없는 버스에 관한 설명은 정류장 그 어디에서도 확인할 수 없다. 저 멀리 다가오는 버스에 ‘현금 없는 버스’라는 표지판과 전광판을 통해 알 수 있을 뿐이다. 또한 카드를 가지고 현금 없는 버스에 탑승한 뒤에서야 버스 안에서 작은 글씨로 된 설명 스티커를 발견할 수 있다. 이에 대한 설명은 눈에 잘 띄지 않을뿐더러 취약계층에게는 교통카드를 발급하는 방법마저 어렵다.

 

버스에 부착되어 있는 교통카드 발급 설명 스티커, 이 스티커는 현금 없는 버스에만 부착되어 있다.

 

버스에서 제공하는 교통카드 발급 방법은 다음과 같다.

-주변 편의점 및 지하철 역사에서 구입, QR 코드를 활용한 티머니페이 다운로드(무료), 어르신교통카드(주민센터 및 신한은행), 청소년증(주민센터), 기타 체크 및 신용카드

 

이마저도 제시되어 있지 않은 버스가 있다. 티머니페이를 다운로드할 수 있는 QR코드만을 안내하고 있기도 하다. 스마트폰이 없다면 애초에 시도할 수 없고 QR코드를 통한 방식은 스마트폰에 익숙하지 않은 디지털 취약계층에게 어려운 일이다.

한국보다 먼저 대중교통을 비롯해 현금 없는 사회로 빠르게 진입한 유럽의 여러 국가에서는 이에 따른 부작용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현금사용 선택권 보장’이라는 개념이 주목받고 있다. 한국은행의 홍보 교육 자료에 따르면 현금사용 선택권은 소비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결제 수단 선택 시 현금을 배제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스웨덴, 영국, 뉴질랜드 등에서 국민들의 현금 접근성이 악화되면서 취약계층의 금융 소외 및 소비 활동이 제약되는 문제가 발생하자 정책적 대응 방안을 세운 것이다. 한국은행은 아직 우리나라가 현금 결제 거부 사례, 금융소외 계층의 발생 가능성 등이 낮다고 설명했지만 6월 이후 결정되는 ‘현금 없는 버스’의 전 노선 확대 여부에 따라 우려되는 상황임이 분명하다.

각 시의 현금 없는 버스 시범 운영은 6월 30일까지이다. 서울시는 시범 운영 기간은 시범 운영 결과에 따라 향후 변경 가능하다고 밝혔다. 대중교통법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대중교통서비스를 제공받는 경우 부당한 차별을 받지 않을 권리를 가지며 국가는 이에 따른 책무를 지닌다. 카드나 스마트폰 사용이 어려운 취약계층을 비롯해 모든 사람이 편리하고 안전하게 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서비스 개선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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