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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호의 문화톡톡] 성적 농담의 사회학
[이 호의 문화톡톡] 성적 농담의 사회학
  • 이호(문화평론가)
  • 승인 2022.10.04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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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색즉시공1>

오래된 영화로 이야기를 꺼내려니, 시간의 흐름과 세상의 변화가 새삼 무상하게만 느껴진다. 5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들었던 김상헌의 심사가 이런 것이었을까. 2002년 한일 월드컵이 열리던 해에 개봉되어 나름 상당한 관객을 끌어 모았던 섹시 코미디 장르의 이 영화에는 과도한 해석을 유발하는 장치들이 적지 않게 포진돼 있어, 시간이 흘렀음에도 꼭 재음미해보고 싶은 장면들이 있어 이야기를 꺼내 본다. 사실 이후로 이 정도로 야한 농담과 연출을 하면서도 킬킬거리며 볼 수 있는 소동극도 흔치 않은데다가, 우리 사회는 해답 없이 문제들만 포화된 다양한 계층 갈등의 시대라고 봐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먼저 이 영화는 계급에 관한 영화다. 이런 표현이 가능하다면 ‘성적 계급’에 관한 영화다. 여기서 ‘성’이란 ‘젠더’가 아니며, ‘섹스’도 아니다. 뭐 굳이 말하자면 섹스에 가깝기는 하지만 정확히 말해서 ‘섹스’를 무기로 타인의 시선과 인정을 얼마나 받아내어 자신의 몸값, 혹은 인지도와 값어치를 상승시킬 수 있는가의 문제를 다룬다. 타인에게 욕망의 대상으로 자신을 인식시키는 일(홍보 전략 혹은 매력적으로 보이는 일)이 매우 중요하게 등장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노골적이긴 하지만 전혀 말이 안 되는 설정은 아니다. 그렇다, 이 영화는 과장과 소동을 본령으로 하는 코미디극이므로 너무 진지한 리얼리티의 잣대를 들이대지는 말자. 그렇게 우리 사회는 성적 욕망의 대상이 되는 것이 하나의 재산이 되고 그것의 소유 정도에 따라 새로운 계층으로 등장할 수도 있는 사회다. 심지어 ‘어그로’를 끄는 것조차 힘이 되는 사회. 유튜브와 숏츠, 틱톡에 등장하는 벌거벗은(?) 몸자랑의 장면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올 여름 헐벗었지만 매력적인 헐벗은 몸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강남대로를 질주했던 커플들의 유튜브 조회수를 생각해 봐도 금방 알아챌 수 있는 문제이리라.

영화는 첫 장면부터 여주 은효(하지원)의 둔부와 가슴, 그리고 대학신입생 환영회에서 가래침이 술그릇에 섞이는 장면을 교차적으로 보여준다. 시선에 나포된 혹은 시선의 먹이로 제공하여 자신의 주가를 올리는 전략으로서의 여성 신체와 무질서한 카니발리즘을 아주 효과적으로 암시하고 있는 셈이다. 대학생 은효는 에어로빅 동아리의 퀸카다.(킹카라니 이 얼마나 고색창연한 어휘인가.) 그녀는 식당에서 남주 은식(임창정)의 시선을 받는다. 하지만 은식은 별 볼일 없는 복학생일 뿐이다. 그의 그런 시선에 얼토당토 않다는 듯, 감히 ‘너 따위가 나를 쳐다보느냐’는 듯 가랑이를 벌리며 조롱한다. 그런 그녀의 커플은 돈 많고 잘 생긴 킹카 함상욱과 커플을 이루어 간다.

 

골간의 줄거리로는 주변 인물들의 말도 안 되는 어설프고 황당한 작은 에피소드들로 이야기가 구성되어 있다. 그들 대부분은 이성의 몸을 탐하는 어거지 해프닝들로 구성되어 실소를 자아내면서 진행된다. 하지만 이들 젊은 대학생 무리는 집단에서 상위 랭커가 아닌 그저 그런 갑남을녀 필부필부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서 아름다운 결합을 이루는 은효와 함상욱(정민)만이 그들 무리의 단연 돋보이는, 부와 미모로 결합된 ‘아름다운 커플’이다. 그런데 은효는 그만 함상욱과 즐기다가 아이를 임신하고 만다. 예상가능하듯 함상욱은 은효가 임신을 하자 차갑게 돌변한다. 카드를 건네주며 “가서 떼고 와라”는 식이다. 은효가 그저 엔조이 상대였을 뿐 자신은 여성의 몸에 발생한 문제에 대해서는 ‘네가 알아서 처리하라’는 식으로 대할 뿐이다.

에어로빅 연습실에서 연습하던 은효의 몸에 빠져든 은식은 사랑에 관해서 늘 그렇듯 몽롱한 판타지에 빠져 은효를 선망하지만 그에게 그녀는 그저 ‘그림의 떡’일 뿐이다. 여기서 주목할 장면 하나. 은효와 상욱이 은색 포르쉐 컨버터블을 타고 노을이 바라보이는 고급펜션으로 여행을 떠나는 장면과 차력 동아리 멤버들의 닭싸움과 차력쇼의 장면들은 일부러 교차편집 돼 있다. 즉 문화적 계급성의 차이를 질펀하게 제시한다. 즉 경제와 더불어 시선과 선망을 소유한 커플들의 고급한 문화 향유에 대비해 별 볼일 없는 계층의 유치하고 시시한 놀이가 대비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앙리 르페브르의 ‘아비투스’가 생각나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한국 사회처럼 좁고 부자들의 아비투스를 모방하기 쉬운 사회적 조건에서는 다소 양상이 다를 수 있고, 요즘처럼 하나의 문화적 행위가 SNS로 급속하게 전파되는 시류 속에서는 르페브르의 진단이 다소 케케묵은 이론, 적용 현실성이 떨어지는 면이 없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배 계층과 피지배 계층의 문화적 아비투스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긴 어렵다. 모든 사람이 대중이 되어버린 시대에, 정보의 획일성이 지배하는 사회임에도 계층간 문화적 아비투스는 더 은밀하고 지속적인 형태로 우리 삶과 신체에 각인되어 있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 진짜로 변해버린 게 있다면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인식하지 못하거나(않거나) 그것을 해결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는 것, 혹은 어쩌면 그런 것을 말로 표현하지 않는 세상이 되어버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차피 해결될 수도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인지(그렇다면 영리하다) 아니면 서로 불쾌하고 불편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것이 원만한 사회생활을 영위하기에 유리하기 때문인지(그렇다면 매우 영리하다) 알기는 어렵지만 말이다.

역설적이게 임신중절을 하는 병원에 동참하고 그녀를 돌봐주는 은식. 은식의 따스한 배려와 돌봄에 은효는 은식에게 마음을 열게 되고 둘은 이어서 진정한 커플로 형성되기에 이르는 과정을 영화는 애절하게 보여준다. 나이가 많았지만 은효는 은식에게 반말을 해왔다. “내가 나이가 더 많아요” “그래서?” 라는 대화가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들 간의 계급성을 보여주었으나 시선의 먹이로서 자기 신분을 상승하려던 은효는 상류층의 환멸을 맛보고 미혼모인 엄마와 더불어 자신의 계급적 자각을 하고 자신의 지위에 머무르려 한다.(이것이 이 영화의 보수성이지만, 다시 한번 상기하자 이 영화는 코미디 영화다.) 그리고 은효는 비로소 은식에게 존대말을 사용한다.

 

지나치지 말아야 할 또 하나의 장면. 임신중절을 하고 회복실에서 쓸쓸하고 우울하게 누워 있는 은효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 은식은 차력쇼를 선보인다. 임창정 특유의 몸개그가 빛을 발하는 장면. 그것을 보던 은효는 웃다가 서러운 울음을 크게 울고(남자에게 버림받고 신세가 처량해진 자신에 대한 울음으로 보이겠지만, 실상은 자신의 계급적 한계성을 깨닫는 울음) 이마로 도마 위에 마늘을 내리치는 쇼를 보이던 임창정도 오열을 한다.(마늘 때문에 혹은 은효에게 감정이입한 울음으로 보이겠지만, 실상은 자신의 계급적 처지에서는 버려진 여자를 위로함으로써밖에 여자를 얻을 길이 없는 자의 울음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20년의 시간이 흘러 우리 사회의 계급적․계층적 차이는 어디로 갔을까?(우리 시대에는 계급이 없다는 말이 있어온지도 오래지만 정확히 말하자. 계급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계급으로 사람들을 파악하는 이론 틀이 용도폐기처분 됐을 뿐이다.) 그것이 어디로 갔는지는 필자로서도 알 길이 없다. 진심으로 알지 못한다. 다만 한 가지 분명히 알고 있는 게 있는데, 돈이 없으면 거지, 돈이 있으면 귀족이라는 냉엄한 현사실성에 아무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사회 현상이라는 것만큼은 알 수 있다. 그 자리를 복지제도가 채워갔다는 것도 알겠다. 가난한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하는데 그런 것들을 파악하고 논하는 문제틀은 사라지고, 그저 그런 문제들을 제도와 법과 행정으로만 전유하는 사람들이 해결해주는 듯한 포우즈만 가득한 세상. 하지만 괜.찮.다. 150년 전 돌아가신 마르크시즘의 뒷다리를 잡고 문화적 아비투스를 논했던, 50년도 더 지난 이론 툴로 유통기한이 수십년이나 경과한 영화에, 촌스럽게 덧붙이는 글이나 쓰고 있는 저자는 그저 무덤 속으로 빨리 사라져야 할 틀딱의 넋두리에 불과하니 그냥 잊으시면 되겠다.

 

 

·이호(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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