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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리뷰] 한국 전통의 장단을 보편적 몸의 언어로 제의하다
[공연 리뷰] 한국 전통의 장단을 보편적 몸의 언어로 제의하다
  • 안치용/춤평론가
  • 승인 2022.09.03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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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림의 ‘제ver.2 <타오르는 삶>’

무대의 좌우편에서 무용수가 조용조용 무대 중앙으로 조신하게 걸어 나온다. 두 무용수가 바닥에 깔린 커다란 하얀 종이 위로 가벼운 동작으로 그렇지만 묵직하게 올라간다. 무대 위의 또 다른 무대. 소설로 치면 액자소설이지만, 종이 위의 이야기가 전체 공연과 유리되지는 않는다.

두 무용수가 서로 한 손을 내밀어 맞잡고 목탄을 쥔 남은 손으로 각자의 편에다 무엇인가를 그린다. 두 무용수가 대응하면서 대칭으로 그리기 때문에 종이 위의 그림, 혹은 흔적은 원형에 가까운 형상이 되어 간다. 목탄을 쥔 두 무용수가 손을 맞잡고 집중해서 신들린 듯이 그린다. 목탄이 접신한 듯하다.

하얀 바탕 위에 검은 형상이 그려진다. 두 무용수가 누워도 여백이 남는 커다란 종이 위에 의미를 확인하기 힘든 형상이 갖춰지면서, ()를 딛고 선 두 무용수가 점점 더 강화하는 의미의 그물망 위로 옮아간다. 그러한 무속의 동작과 샤먼적 작업을 통해 주어진 공간은 공간의 이동 없이 그 자리에서 조금씩 다른 공간으로 바꾼다. 공간을 장식하거나 해석하는 방법이 있는가 하면 공간을 변용하는 방법이 있는데, ‘ver.2 <타오르는 삶>’은 변용에 해당한다. 크게 보아 마법이다. 하얀 종이 위의 두 사람이 전하는 동작은 기본적으로 춤이지만, 어찌 보면 염원 같고 어찌 보면 기원 같다. ‘ver.2 <타오르는 삶>’이란 제목을 참고하면 제의라고 보아야 할까. 더 정확하게는 혹은 기도.

서울문화재단 대학로극장 쿼드(QUAD) 개관 기념으로 8월에 공연된 99아트컴퍼니의 ver.2 <타오르는 삶>’20193월 국립현대무용단과 스웨덴 스코네스댄스시어터의 교류작업인 스웨덴 커넥션에서 ()’란 제목으로 초연된 작품이다. ‘ver.2 <타오르는 삶>’은 제목에서 드러나듯 ()’의 업그레이드 버전(ver.2)이다. 안무를 맡은 장혜림은 노동의 시간 그 자체가 하늘에 바치는 경건한 소산물임을 일깨우며 이 시대의 제의를 무용으로 그렸다고 말했다.

()’가 스웨덴 스코네스댄스시어터 소속 7명의 무용수가 한국의 전통춤 승무를 바탕으로 작업하여 승무의 정중동과 동중정 미학을 동시대의 이야기로 풀어내었다면 이번 ()는 두 명 무용수의 상징적이고 강렬한 몸짓으로 승무에 들어있는 장단을 노동이란 키워드에 맞추어 재해석하였다는 것이 장혜림의 설명이다. 그는 우리 몸에 녹아 있는 국악, 한국 춤의 방법론을 확장하여 동시대 이야기를 표현하는 데에 주력했다고 강조했다.

승무와 번제

한국무용에 뿌리를 둔 많은 무용가가 승무를 바라본다. 한국무용계에 조금이라도 발을 걸치고 있다면 뒷산 정상의 큰 바위처럼 어떤 식으로든 의식하게 되는 존재이다. ‘ver.2 <타오르는 삶>’노동이란 키워드를 의식한 소품이 공연 후반부에 등장하는 헤드랜턴과 안전모라면 전반부는 제의가 지배하며 하얀 종이 위에 그려진 접신한 목탄화로 구체화한다.

가야금과 거문고 연주자를 등장시킨 실연 음악은, 음악 구성 자체로 한국적인 정취와 제의성을 증폭한다. 음악은 공연의 배경이 아니라, 공연의 일부가 된다. 음악과 춤, 그리고 노동은 고래로부터 제의의 핵심 요소였다. 2019()’란 제목의 공연을 보지 못해 비교할 수 없어 안타까운 마음인데, 개인적으로는 제의란 키워드로 중심으로 전체 공연이 정렬된 느낌을 받았다.

장혜림은 제의와 관련하여 구약성서의 번제(燔祭)를 염두에 두었다고 한다. 번제는 희생을 통으로 태우는 제사법으로 그 향기를 신에게 올린다. 따라서 제물 또는 희생은 흠 없는 것으로 골라야 하며, 구약시대에는 아름다운 수컷(수송아지, 숫양, 숫염소 등)을 골라서 바쳤다.

공연에서 실제로 향을 피우지만, 나에게는 목탄의 드로잉이 시각화한 향기로 느껴졌다. 두 무용수가 무의 제단 위에서 추는 춤이 번제의 형상화로, 그 소묘가 향기로 다가왔다. 무용수들이 단순 반복 동작을 통해 목탄의 그을음을 몸에 묻히는 과정이, 그 춤이 번제단에 올라간 아름다운 짐승들의 불타오름을 연상케 했다. ‘타오르는 삶은 번제단에서 행하는 우리의 제사인 셈이다. 또한 일종의 여담으로, 우리의 번제인 만큼 구약성서와 달리 소나 양이 아니고 남성이 아닌 여성이라고 하여 트집을 잡을 유대교도는 없지 싶다. 번제에서는 모든 걸 다 태우지만, 가죽은 남겨 제사장의 몫으로 돌린다. 그렇다면 이 공연에서 관객의 몫으로 남은 가죽은 무엇일까. 드로잉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이 공연에서 번제를 떠올리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그 분위기가 확연하기에 나중에 설명을 통해 공감하는 관객이 있을 수 있다. 문제는 승무. 승무의 춤사위를 직접 삽입한 것이 아니라 승무의 장단을 노동이란 키워드에 맞추어 두 명의 무용수의 몸짓으로 재해석하였기에 공연만으로 알아챌 사람이 있을까.

곡선 형태의 움직임과 손사위는 승무에 바탕한다고 짐작해 볼 수 있겠지만, 타령-자진모리-휘모리-염불 등 장단이 지니는 느낌을 독자적으로 해석하여 각 장면에 어울리는 장단으로 재배치한 것을 파악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음악가를 무용수와 함께 작품 내에 존재하는 표현가로 기능을 하게 하면서 현악기로 구현할 수 있는 승무의 장단(타악)을 탐색한 것 또한 방법론상의 쇄신이지만 대중에게 소구하기는 더 어렵지 싶다.

그럼에도 이러한 노력은 전통을 컨템포러리에 녹아들게 하며 전통을 갱신하여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는 의미 있는 시도이다.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어 할 것이 있지만, 예술가로서 대중을 선도해야 할 것 또한 존재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만들어진 차이가 어쩌면 더 중요한 차이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제의와 노동이란 두 가지 키워드가 무대를 채웠는데, 승무와 연관지어 제의에 더 초점을 맞추는 연출을 생각해 봄 직하다.

 

안무 장혜림, 공동착작 장혜림 장서이, 공동작곡 주보라 황진아, 출연 장혜림 장서이 주보라 황진아, 작가 이주희, 의상디자인 라인플랜트 민천홍

 
 
 
글 안치용 춤평론가, 사진 장혜림 안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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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춤평론가
안치용/춤평론가 carmine.draco@gmail.com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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